블라인드 아포칼립스

5화: 방재실
방화문 너머의 남자가 다시 박두식의 이름을 불렀다.
“팀장님. 저 도현입니다. 정문에 있던 김도현이요.”
박두식의 손이 손잡이 위에서 멎었다.
한결은 그 손 대신 문 아래를 들었다. 목소리는 가까웠지만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남자가 들이마시는 숨 사이마다 한 박자 늦은 숨이 겹쳤다. 축축하고 낮은 숨이었다.
“도현 씨.”
한결이 말했다.
문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방재실 전실에 소화전함이 있죠. 어느 쪽입니까?”
“뭐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닿는 쪽이요.”
남자는 숨을 급히 삼켰다.
“왼쪽이요. 왼쪽 벽. 빨간 함 앞에 정수기 있어요. 팀장님 제발 열어 주세요.”
수아가 한결의 팔을 약하게 눌렀다.
“맞아요.”
그녀가 숨으로 말했다.
“정수기 있어요. 전실은 화재 나면 연기 막는 데 쓰는 작은 공간이고요.”
박두식이 손잡이를 돌리려 했다. 한결은 손등으로 그의 손목을 막았다.
“하나만 더 물을게요. 보안팀 호출음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뒤로 웃음이 흘렀다.
— 톡. 톡. 톡.
한 박자 쉬고.
— 톡.
방화문을 긁던 손톱이 그 박자에 맞춰 움직였다. 도현이 숨을 들이켰다.
“팀장님. 저 혼자 아니에요. 얘들이 문을 치고 있어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 아래 틈으로 피 냄새가 번졌다. 그 안에서 고무 밑창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도현은 문을 등지고 버티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적어도 두 개의 발소리가 있었다.
그는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가능성이 문을 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결은 그 구분이 자기 안에서 너무 빨리 세워지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산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싫었다.
박두식이 이를 갈았다.
“도현아. 방재실 쪽 문은?”
“잠겼어요. 안에서 열 수 있는 거 아는데 손잡이까지 못 가겠어요.”
“그 문은 안에서 잠글 수도 있다.”
“팀장님!”
방화문이 통로 쪽으로 흔들렸다.
— 쾅.
도현의 신음이 들렸다. 이어서 웃음이 문에 달라붙었다. 지우가 한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이의 손이 차갑게 젖어 있었다.
“문을 조금만 열어요.”
수아가 빠르게 말했다.
“전실 안에 비상 담요 보관함이 있어요. 문 옆 걸이에요. 그걸 꺼내면 방재실 모니터부터 가릴 수 있어요. 전실은 창문도 없으니까 담요를 넘겨받는 동안은 빛을 막을 수 있고요.”
“도현은?”
박두식이 물었다.
수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문을 손바닥만큼 열면 사람은 못 들어와요. 그래도 방재실에 들어갈 준비는 할 수 있어요.”
한결은 바닥을 더듬었다. 벽에 기대 있던 청소용 밀대가 손끝에 걸렸다. 끝의 고무 날이 차갑고 넓었다.
“문은 제가 잡겠습니다. 수아 씨는 이걸로 담요를 끌어요. 팀장님은 문이 더 열리지 않게 붙잡아 주세요.”
박두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현이 문 너머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담요 말고 저부터….”
한결은 눈가리개 매듭을 한번 눌렀다.
눈을 뜨면 거리가 보일 것이다. 도현의 손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버린 사람들의 얼굴도 보일지 몰랐다.
그러나 붉은빛을 본 뒤에도 그 얼굴을 기억할 자신은 없었다.
“소화전함을 치세요.”
그가 문 너머에 말했다.
“도현 씨. 왼쪽 소화전함을 세게 쳐요. 문에서 멀어지게.”
“뭘로요?”
“발로라도요.”
잠깐의 정적 뒤 금속이 울렸다.
— 쾅!
웃음이 소화전함 쪽으로 튀었다. 한결은 즉시 손잡이를 돌렸다. 박두식이 반대편에서 문을 붙잡았다.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와 피 냄새가 쏟아졌다.
수아의 밀대가 틈을 통과했다.
“오른쪽 위요.”
그녀가 말했다.
밀대 끝이 벽을 훑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수아는 담요 모서리를 걸어 천천히 끌었다.
“잡았어요?”
도현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순간 전실 바닥에서 빠른 발이 뛰었다.
한결은 문을 닫았다.
— 쾅.
박두식의 손이 문 위에서 크게 떨렸다. 도현이 부르던 소리는 철판에 막혀 짧게 찢겼다. 그 뒤로는 웃음뿐이었다.
한결은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닫은 문 너머에 남은 숨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귀는 멋대로 문 너머를 더듬었다. 소리가 끊긴 자리에 남는 침묵까지도 누군가의 마지막일 수 있었다.
수아가 끌어온 담요가 통로 바닥에 닿았다. 은박 비닐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방재실 문은 전실 안쪽에 있어요.”
수아가 말했다.
“들어가면 바로 잠글 수 있어요. 모니터만 가리면 여기는 임시로 버틸 수 있어요.”
박두식이 낮게 말했다.
“내가 앞에 선다.”
“안 됩니다.”
한결이 손잡이에서 떨어져 나왔다.
“눈가리개 매듭을 확인한 사람만 들어갑니다. 수아 씨가 방향을 말하고 저는 담요를 잡겠습니다. 팀장님은 뒤쪽 사람들을 문에서 떼어 놓아 주세요.”
“내 직원이 밖에 있는데 날 뒤로 빼라고?”
“지금은 여기에 있는 사람을 모니터 앞에 세우지 말자는 겁니다.”
박두식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수아가 담요 한쪽을 한결 손에 쥐여 주자 그는 반대쪽 끝을 잡았다.
“왼쪽 두 걸음.”
수아가 말했다.
방재실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전자음이 한꺼번에 새어 나왔다. 낮은 냉각팬 소리. 어딘가에서 반복되는 경보음. 천장 스피커의 노이즈가 금속 천장에 들러붙어 있었다.
한결은 고개를 더 숙인 채 담요를 폈다.
“앞에 책상 있어요. 그 위가 모니터 벽이에요.”
담요가 책상 모서리에 닿았다. 한결은 손으로 평평한 화면을 찾았다. 유리보다 차갑고 매끈했다.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열이 손바닥을 데웠다.
“덮습니다.”
수아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은박 담요가 첫 화면 위를 덮었다. 사각거리는 소리 뒤로 냉각팬의 울림이 한 겹 낮아졌다.
“오른쪽에 두 개 더 있어요. 책상 아래 연결선 조심하세요.”
세 사람은 말보다 손으로 움직였다. 한결이 담요를 넘기면 수아가 모서리를 눌렀다. 박두식은 끝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의 손은 거칠고 뜨거웠지만 이번에는 담요를 빼앗지 않았다.
마지막 화면이 가려졌을 때 수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문 잠갔어요.”
그녀가 말했다.
방재실 문 안쪽의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통로와 전실의 위험은 문 하나 너머로 밀려났다. 안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얇은 철판이었다. 그래도 이제 그 철판을 누가 열지 결정할 수 있는 곳은 이 안이었다.
“이제 제어반입니다.”
한결이 말했다.
박두식이 코웃음을 쳤다.
“화면도 안 보고 셔터 상태를 어떻게 확인해.”
“수아 씨. 제어반 배열 압니까?”
“위쪽 줄이 출입구예요. 맨 왼쪽이 정문이고 그 옆이 동쪽 출입구. 버튼을 누르면 릴레이가 붙고 셔터가 움직일 때는 모터가 계속 울려요.”
한결은 오른쪽 벽을 따라 움직였다. 손끝에 플라스틱 덮개와 둥근 버튼들이 닿았다.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버튼의 줄과 간격은 느껴졌다.
그는 동쪽 출입구 버튼 위에 손을 얹었다.
“아주 짧게 누릅니다.”
딸깍.
릴레이가 붙는 소리와 함께 낮은 진동이 손끝으로 올라왔다가 멎었다. 먼 곳의 모터는 돌아가지 않았다.
수아가 말했다.
“잠금이 걸린 거예요. 동쪽은 완전히 내려갔어요.”
한결은 옆 버튼으로 손을 옮겼다. 정문 보조 셔터였다.
딸깍.
이번에는 릴레이가 붙었다가 바로 풀렸다. 대답처럼 멀리서 금속이 반 뼘쯤 긁혔다. 모터가 한 번 으르렁거리고 숨을 죽였다.
수아의 숨이 가빠졌다.
“멈췄어요. 완전히 닫힌 셔터면 잠금음만 나야 해요. 저건 내려가려다 걸렸을 때 나는 소리예요.”
박두식이 제어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문이 열려 있다는 거야?”
“열려 있는지는 몰라요. 다만 완전히 닫히진 않았어요.”
수아의 대답은 짧았다.
한결은 손바닥을 제어반에 붙였다. 모니터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닫힌 문과 멈춘 문은 서로 다른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서 절차가 필요한 것이었다.
방재실 천장 스피커가 치직거렸다.
지우가 문가에서 말했다.
“아까 그 소리랑 똑같아요.”
“뭐가?”
박두식이 물었다.
“세 번 짧고 한 번 길게요. 이 방 안에서 나는 거예요.”
수아가 벽면을 더듬었다.
“무전 중계기예요. 방송실 회선하고 연결돼 있어요. 외부 스피커도 여기서 넘길 수 있고요.”
“방송은 꺼.”
박두식이 말했다.
“그 소리 때문에 놈들이 더 옵니다.”
“출처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한결이 말했다.
“전실에서 들은 목소리와 같은 회선일 수도 있어요.”
수아가 송출 스위치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노이즈가 뚝 끊겼다.
낮은 남자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렀다.
“팀장님.”
박두식의 숨이 멎었다.
“저 아직 안에 있어요.”
김도현의 목소리였다.
방재실 문 바깥에서 두드림이 들렸다.
— 톡. 톡. 톡.
한 박자 뒤.
— 톡.
수아의 손에서 스위치가 떨어졌다.
지우가 한결의 팔을 잡았다.
“보안팀 호출이에요.”
한결은 잠긴 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전실에 있던 목소리가 이제는 스피커 안과 문밖에서 동시에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