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코어

9화: 포식자의 놀이터
구도심의 낡은 폐선박 하역장 지하. 녹슨 철문 너머로 땀 냄새와 피비린내, 그리고 광기 어린 함성 소리가 진동했다. 이곳은 이면 세계에서 ‘도살장’이라 불리는 불법 지하 격투장 ‘아레나 X’였다.
“기억해. 네 목표는 승리가 아니야. 실전에서 코어의 출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감각을 익히는 거지.”
후드티를 눌러쓴 백서아가 민우의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 그녀는 가짜 신분증과 참가 신청서를 접수처에 던졌다.
“가명은 ‘블루’.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눈동자 색이 변하지 않게 조심해. 네오젠의 스카우터들이 관중석 어딘가에서 눈을 불을 켜고 보고 있을 테니까.”
민우는 낡은 가죽 글러브의 끈을 조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장에서의 10배 중력보다, 실제 인간들이 내뿜는 살기가 더 차갑게 피부를 찔렀다.
“다음 경기! 무패의 학살자 ‘타이탄’ 대 신참 ‘블루’!”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철창으로 둘러싸인 옥타곤의 문이 열렸다. 민우가 링 위로 올라서자, 반대편에서 거구의 사내가 콧김을 뿜으며 등장했다. 신장 2미터가 넘는 거구에 온몸이 기괴할 정도의 근육으로 뒤덮인 사내였다.
“저 꼬맹이는 뭐야? 이번 판은 1분 컷이겠구먼!”
“타이탄! 저 녀석의 뼈를 발라버려!”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민우는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시야가 맑아졌다.
[전투 태세 돌입.]
[바이오 코어 출력 5% 유지. 신경망 가속 개시.]
민우의 시야에서 타이탄의 움직임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승모근, 무거운 발소리. 단순한 근육질이 아니었다. 타이탄의 피부 밑으로 보이는 핏줄들은 검붉은 색을 띠며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녀석도…… 실험체인가?’
민우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타이탄은 네오젠에서 폐기 직전의 조악한 약물을 주입받아 이성을 잃고 근육만 기괴하게 비대해진 하급 실험체였다.
“죽여버리겠다아아!!”
타이탄이 포효하며 민우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주먹이 민우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공기를 가르는 둔탁한 소리가 옥타곤 전체를 울렸다.
하지만 민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이 코앞 10센티미터까지 도달한 순간, 민우는 고개만 살짝 옆으로 틀어 공격을 흘려보냈다.
슈슉-!
주먹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민우의 후드가 벗겨졌다.
“어?”
타이탄이 당황하며 다시 주먹을 휘둘렀지만, 민우는 물 흐르듯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바이오 코어의 힘을 최소화한 상태에서도, 민우의 반사 신경은 이미 초인의 영역이었다.
퍽! 퍽!
민우의 가벼운 잽 두 방이 타이탄의 턱과 명치에 정확히 박혔다. 큰 충격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민우의 주먹 끝에는 미세한 진동 파동이 실려 있었다. 코어의 나노 입자들을 손끝에 집중시켜 타격 순간 고주파 진동을 일으켜 충격을 내부 장기로 직접 전달하는 ‘진동 타격’이었다.
“커헉……!”
타이탄의 거구가 일순간 굳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민우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정적.
광기 어린 함성을 내지르던 관중석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단 10초. 무패의 학살자가 이름 없는 신참의 가벼운 손짓에 무너진 것이다.
“……승자, 블루!”
사회자의 당황스러운 판정 선언과 함께 민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링을 내려왔다.
“잘했어. 출력 조절은 완벽했어.”
백서아가 다가와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관중석 상단의 VIP 룸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꼬리가 붙었네. 방금 저격수의 조준 레이저가 네 가슴을 스쳤어.”
민우는 가슴 부근을 내려다보았다. 훈련받은 감각이 전해주는 소름 끼치는 살기.
VIP 룸의 검게 틴팅된 유리창 너머로,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바쁘게 태블릿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일그러진 DNA 문양, 네오젠의 엠블럼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들이군요. 나를 실험체로 사냥하러 온 놈들이.”
민우의 손등에 아주 잠깐 청색의 실핏줄이 돋아났다가 사라졌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게 될 거야.”
민우는 후드를 다시 깊게 눌러썼다. 도살장의 피비린내 속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사냥개’가 아닌 ‘사냥꾼’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