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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코어54화

바이오 코어

바이오 코어

54화: 지배자(支配者)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끝없는 나락.

민우는 홀로 그 어둠 속의 물 위에 서 있었다. 발밑의 수면에서 미세한 동심원이 일더니, 이내 물밑에서 거대한 푸른빛 점액질 눈동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바이오 코어의 본능이자 본질인 기생 유기체의 자아였다.

코어의 기계적이고 잔혹한 음성이 민우의 뇌리에 직접 메아리쳤다.

민우의 몸 밑에서부터 무수한 청색 나노 촉수들이 솟구쳐 올라 그의 다리와 몸통을 칭칭 감아 쥐었다. 촉수가 닿는 곳마다 민우의 기억과 자아가 흐릿하게 지워져 가는 지독한 영혼의 소멸 고통이 느껴졌다.

‘……괴물이 된다고?’

민우는 칭칭 감긴 촉수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내가 괴물이 된다면…… 그들을 구한 뒤의 나는 더 이상 내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잖아. 내 동료들의 대장이 아니잖아.’

민우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타올랐다.

‘내가 널 선택한 게 아니야. 네놈이 살기 위해 내 심장으로 기어 들어온 거잖아.’

민우는 감겨 있던 나노 촉수들을 자신의 손으로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인간의 의지와 분노가 나노 촉수들을 타고 코어의 본체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지배당하지 않아. 널 지배하는 건 나다.’

“아아아아아!”

민우가 포효하자, 그의 영혼의 형상에서 눈부신 순백의 인광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솟구쳤던 나노 촉수들이 민우의 의지력에 굴복하며 순식간에 청색의 입자가 되어 그의 발밑으로 복종하듯 흩어졌다.

거대했던 코어의 눈동자가 민우의 압도적인 이성과 정신력 앞에 흔들리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며 나락 속으로 가라앉았다.

[경고: 숙주의 의지력이 나노 시스템 장악율 100% 도달.]
[주도권 이양: 바이오 코어의 완전 복종 모드 전환.]
[세포 재배치 안정화 가동.]

현실 세계.

침대 위에서 괴물처럼 요동치던 민우의 전신 피부 아래의 나노 돌기들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흘러나오던 불규칙한 빛들은 맑고 투명한 청색의 아우라로 정제되어 그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쌌다.

스우욱.

민우가 감겨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동자는 짙고 맑은 청색 안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깨졌던 갈비뼈와 찢어졌던 심장은 이전보다 훨씬 강인하고 조밀한 신인류의 조직으로 완벽하게 진화해 있었다.

괴물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 괴물을 자신의 발밑에 굴복시킨 진정한 진화의 지배자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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