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코어

3화: 일그러진 일상
지독한 이물감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가운 금속 조각을 억지로 삼킨 듯한 감각에 민우는 격렬하게 기침을 토하며 눈을 떴다. 번쩍 뜨인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얼룩덜룩한 곰팡이 자국이 가득한 회색빛 시멘트 천장. 코끝을 찌르는 것은 골목길의 피비린내가 아니라, 코를 찌르는 알싸한 소독약과 정체 모를 허브 향이 뒤섞인 기묘한 냄새였다.
“……윽!”
민우는 급히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가슴팍에서 전개되는 강렬한 결림에 신음하며 다시 침대 위로 무너져 내렸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갈기갈기 찢겨 나갔던 교복 셔츠는 온데간데없고, 하얀 붕대가 가슴 전면을 빽빽하게 감싸고 있었다.
괴물의 발톱에 찢겨 나가 뼈가 보일 정도였던 상처였다. 당연히 상상도 못 할 통증이 밀려와야 정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통증은 희미했다. 그저 상처 부위가 미치도록 간지럽고, 피부 밑에서 무언가 수만 마리의 미세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살점을 이어 붙이는 듯한 기괴한 발열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일어났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민우는 고개를 돌렸다.
방 구석, 희미한 알코올램프 불빛이 비추는 책상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가죽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둔 채, 민소매 차림으로 권총의 부품을 정밀하게 닦고 있던 여자. 골목길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들쳐메고 사라졌던 구원자, 백서아였다.
그녀는 총열을 조립하며 철컥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그 소리가 민우의 고막을 자극하자, 이상하게도 심장 깊은 곳이 동조하듯 ‘쿵’ 하고 강하게 뛰었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사방이 왜 이래요?”
민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온통 기괴한 장비들로 가득했다. 일반적인 병원의 의료 기기가 아니었다. 원통형 유리 실린더 안에서 정체 모를 청색 액체가 기포를 일으키며 순환하고 있었고, 복잡한 파동을 그리는 모니터들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네오젠의 사냥개들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 이면 세계의 안전 가옥 중 하나야.”
백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민우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민우의 가슴, 정확히는 붕대 안쪽의 심장 부위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지독하게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보통 인간이라면 마더 코어의 원액이 체내에 닿는 순간 세포가 융합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액체처럼 녹아내렸을 텐데. 넌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무슨 소리예요?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데요!”
민우의 목소리에 거친 패닉이 섞여 들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살점을 찢고 파고들던 청색의 유기체, 기계적인 시스템 음성,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방탄조끼를 입은 거구를 날려버렸던 초인적인 힘.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직감한 순간 오한이 들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흡수한 거야. 인간을 생체 병기로 진화시키는 금단의 유기체. ‘바이오 코어’를.”
백서아는 냉혹하게 현실을 꽂아 넣었다.
“그 물질은 지금 네 심장에 완벽히 뿌리를 내렸어. 네 신경망을 장악하고, 유전자를 실시간으로 변형시키는 중이지. 방금 전 네 상처를 확인해 봤는데, 세포 재생 속도가 일반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해. 괴물의 발톱에 찢긴 상처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민우는 멍하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손이었지만, 힘을 주자 피부 밑의 미세한 모세혈관들이 아주 잠깐 청색으로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전신을 잠식했다.
하지만 그 공포보다 더 빠르게 민우의 뇌리를 스친 것은 따로 있었다.
“……시계. 지금 몇 시예요?”
“새벽 4시 반.”
“안 돼, 비켜요! 당장 가야 해요!”
민우는 붕대가 뜯겨 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 밖으로 발을 던졌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근육통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미쳤어? 지금 밖에는 네오젠의 감시 드론이 깔려 있어. 나가면 즉시 포획당해 해부실로 끌려갈 뿐이야!”
백서아가 민우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억지로 힘을 쥐어짜 낸 민우의 신체는 어설프게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민우는 서아의 손을 뿌리치며 벽면에 걸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속의 자신은 초라했다. 안색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가슴의 붕대 사이로 얼핏 보이는 피부에는 청색의 기묘한 나선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엄마 병원에 가야 해요…….”
민우는 거울 속 자신의 일그러진 형상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빨을 악물고 참아냈다.
“전 매일 새벽 5시에 병원 들러서 엄마 상태 확인하고, 6시 반까지 편의점 교대하러 가야 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심부름센터 사장이 약값 가불해 준 거 전부 취소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오늘 당장 입금 안 되면 엄마 산소호흡기 떼여요!”
소년의 절규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백서아는 권총을 쥔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눈앞의 소년은 초인의 힘을 얻고 각성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당장의 하루를 버텨내지 못하면 소중한 사람이 죽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18세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 서랍에서 검은색 하이넥 바람막이 옷을 꺼내 민우에게 던졌다.
“……가서 평범하게 행동해. 네오젠은 바보가 아니야. 구도심 전역의 CCTV와 통신망을 뒤지고 있을 테니까, 평소와 단 1%라도 다른 동선이나 행동을 보이면 그 즉시 꼬리가 잡혀.”
민우는 건네받은 옷을 다급하게 껴입었다. 목까지 지퍼를 올리자 청색의 나선 문양은 감쪽같이 가려졌다.
“대신 이것만은 명심해.”
백서아가 민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불빛에 흔들렸다.
“네 심장에 박힌 코어는 제어 장치가 없는 시제품이야. 네 감정이 극도로 분노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네 의지와 상관없이 폭주해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할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평정심을 잃지 마. 네가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민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전 가옥의 철문을 열고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뛰어 나갔다.
새벽 5시 10분, 종합병원 일반 병동 402호.
의료 장비의 단조로운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병실 안에서, 민우는 창백하게 여윈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각종 호스에 의지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어젯밤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
민우는 어머니의 손등바닥에 이마를 갖다 댔다. 심장 깊은 곳에서 청색의 나노 유기체가 요동칠 때마다 전신이 불타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기적처럼 심박수가 안정되었다. 백서아가 말한 평정심의 열쇠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낼게요. 내가 괴물이 되더라도, 엄마는 살릴 거야.’
소년은 마음을 다잡으며 병실을 나왔다.
아침 6시 30분, 구도심 주택가 초입에 위치한 위장 편의점 ‘초코 24’.
민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편의점 유니폼 조끼를 입고 카운터 뒤에 섰다. 밤샘 근무를 마친 아르바이트생과 무덤덤하게 교대를 마친 뒤, 물건 진열대에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손끝이 가볍게 떨렸지만, 전신에 감도는 근육의 묵직한 밀도감은 이전의 나약했던 몸과 확실히 달랐다. 생수 20kg짜리 번들을 양손에 세 개씩 들어도 아무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들키면 안 돼. 평범하게…….’
민우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가쁜 숨을 골랐다.
딸랑-!
경쾌한 도어벨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열렸다. 민우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초코 24입니다.”
카운터로 걸어 들어오는 인물은 두 명이었다. 평범한 손님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회사원 같았지만, 그들의 걸음걸이와 각 잡힌 어깨, 그리고 귀에 꽂힌 은밀한 인이어 이어폰은 어젯밤 골목길에서 보았던 네오젠의 사냥개들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들은 편의점 내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캔하더니, 곧장 민우가 있는 카운터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 중 한 명이 품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민우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어젯밤 민우가 메고 있던 가죽 가방의 사진, 그리고 민우의 흐릿한 뒷모습이 찍힌 CCTV 캡처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학생, 혹시 어젯밤 11시경에 구도심 재개발 구역 근처에서 이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사람을 본 적 있나? 혹은 심부름센터 배달부 중에 이런 체격을 가진 자를 아는지 묻고 싶군.”
사내의 매서운 눈빛이 민우의 얼굴 전체를 샅샅이 훑어 내렸다.
순간, 민우의 가슴속 심장이 격렬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피부 밑의 청색 나노 입자들이 주인의 위기를 감지하고 다시금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려 꿈틀거렸다.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푸르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백서아의 경고가 뇌리를 때렸다.
‘절대로 평정심을 잃지 마. 네가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민우는 손톱이 손바닥 살점을 찢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괴물을 이성으로 짓누르며, 평범하고 어설픈 고등학생의 목소리를 연기해 냈다.
“어…… 잘 모르겠는데요. 전 어젯밤에 계속 심부름센터 사무실에만 있어서요. 소장님이 배달 나간 가방들은 워낙 많아서 제가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해요.”
사내는 민우의 대답을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민우의 미세한 호흡 변화와 눈동자의 떨림까지 포착하려는 듯한 잔혹한 시선이었다. 편의점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과연 이 사냥개들의 눈을 속이고 숨 막히는 일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소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위태롭게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