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코어

14화: 잠입의 눈
익숙한 교문, 낡은 운동장, 그리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민우가 속해 있던 세계였다. 하지만 지금, 등굣길의 풍경은 민우에게 마치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교복 셔츠 아래, 심장에 박힌 바이오 코어는 고요하게 맥동하며 주변의 모든 생체 정보를 민우의 뇌로 실시간 전송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연기해야 해.’
민우는 가방끈을 고쳐 매며 교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야, 강민우! 너 며칠 동안 왜 안 나왔냐? 아파서 결석이라더니,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
짝꿍인 정훈이 반갑게 다가오며 민우의 어깨를 툭 쳤다. 예전 같으면 가벼운 장난이었겠지만, 지금의 민우에게는 정훈의 손바닥이 닿는 순간 그의 혈류 속도와 근육의 긴장도가 수치화되어 읽혔다.
“어…… 좀 지독한 몸살이었어. 이제 괜찮아.”
민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옆 분단에 앉아 있던 지윤이 고개를 돌려 민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 조용하고 세심한 성격의 그녀는 민우와 눈이 마주치자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민우야, 너…… 좀 변한 것 같아.”
지윤의 나직한 말에 민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가? 얼굴이 좀 상해서 그런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되게 낯선 사람 같아. 서늘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지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민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코어의 안정화로 신체는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지만, 사람의 본능까지 속이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교실 안은 평화로워 보였다. 칠판을 긁는 분필 소리, 뒷자리 애들이 속닥거리는 연예인 이야기. 하지만 민우의 뒤통수를 찌르는 서늘한 감각은 멈추지 않았다.
관찰당하고 있다.
단순히 시선이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민우의 피부 밑 나노 입자들이 미세하게 반응하며 특정 방향에서 날아오는 전자파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다.
‘CCTV…… 아니야, 저건 위치가 달라.’
민우는 책상에 엎드리는 척하며 시선을 슬쩍 돌렸다. 교실 뒷문 옆, 게시판 뒤쪽에 아주 작은 렌즈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보안 카메라가 아닌, 생체 신호를 추적하는 네오젠의 정밀 센서였다.
“자, 자, 조용히 해라. 오늘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있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앞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차가운 인상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이윤아라고 한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서투른 점이 많을 테니 잘들 도와줘라.”
교실 안이 술렁였다. 예쁘장한 외모에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민우의 가슴 속 코어는 경련하듯 요동쳤다.
[경고: 고출력 생체 에너지 반응 감지.]
[대상자: ‘이윤아’. 신체 내부에 다수의 나노 칩 이식 정황 포착.]
‘……요원인가?’
이윤아는 교실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정확히 민우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입가에 아주 미세하고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민우의 대각선 뒷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안녕, 강민우?”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나직하게 건넨 인사. 민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민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전학생이 짝꿍의 이름을 묻는 방식이 아니었다. 사냥감이 덫에 걸렸는지 확인하는 포식자의 목소리였다.
수업 시간 내내 민우는 칠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윤아의 시선은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녀는 필기를 하는 척하면서도 민우의 호흡 수와 맥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급식실로 빠져나간 뒤 빈 교실에 민우와 이윤아만 남았다.
“네오젠은 참 부지런하네요. 학교까지 사람을 보낼 줄이야.”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윤아는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의외네. 겁에 질려 도망갈 줄 알았는데. 역시 ‘바이오 코어’와 공생 단계에 들어선 숙주는 배짱부터 다른가 봐?”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보라색 빛을 띠었다. 일반적인 코어와는 다른, 네오젠 본사에서 직접 제어하는 ‘관찰자용’ 임플란트의 흔적이었다.
“여기서 소란 피울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도 많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난 널 잡으러 온 게 아니거든. 널 ‘평가’하러 온 거지.”
그녀는 책상 위에 작은 데이터 칩 하나를 올려두었다.
“한도준 팀장이 전하래. ‘완성된 무기’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고 싶다고. 오늘 방과 후, 학교 뒤편 폐쇄된 체육관으로 와. 안 오면…… 네 짝꿍이나 저기 웃고 있는 친구들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길게.”
이윤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민우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오늘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민우는 가슴 위의 교복 위를 손으로 꾹 눌렀다.
“……간다, 갈게.”
방과 후의 종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소년의 두 번째 전쟁터는, 가장 평화로워야 할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