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코어

12화: 심연의 창고
지독하게 습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도심 외곽, 안개에 휩싸인 폐공장 지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성 약품 제3 물류창고’. 한때 혁신적인 의약품이 오가던 이곳은 이제 깨진 유리창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건물 외벽에 희미하게 남은 네오젠의 로고가 이곳의 추악한 과거를 증언하고 있었다.
“조심해. 여기서부터는 빛을 최소화해야 해. 저놈들은 시각보다 청각과 후각에 예민하니까.”
백서아가 야간 투시경을 내리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민우는 거칠게 맥동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안의 나노 입자들이 날카로운 파편처럼 혈관을 긁어대고 있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내부에는 부패한 유기물 냄새와 코를 찌르는 약품 향이 뒤섞인 악취가 진동했다. 거대한 선반들이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점액질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다.”
민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덮쳐왔다.
“키에에에엑!”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얇아 내부의 장기가 훤히 비쳐 보였다. 네오젠의 초기 실험 중 자아를 잃고 세포가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실패작, ‘굴절체’였다.
퍼억-!
민우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단숨에 꿰뚫었을 타격이었지만, 주먹이 굴절체의 미끈거리는 피부에 미끄러지며 중심이 휘청였다.
“크윽……!”
굴절체의 날카로운 발톱이 민우의 어깨를 스쳤다. 생체 장갑이 즉시 돋아나 상처를 막았지만, 코어의 과부하로 인해 표면이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민우야, 물러나!”
백서아가 소음기 달린 권총을 연사했다. 굴절체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지만, 그것은 죽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재생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괴물이었다.
“안 돼요. 총소리가 더 불러모을 거예요. 제가…… 제가 끝낼게요.”
민우는 이를 악물고 가슴 깊숙한 곳의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생체 에너지 잔량 15%.]
[불안정 동기화 진행 중. 신경 소멸 위험 감지.]
경고음이 뇌리를 때렸지만 무시했다. 민우는 굴절체의 머리 위로 도약해, 공중에서 자신의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팔뚝에서 뻗어 나온 청색 나노 촉수들이 굴절체의 전신을 칭칭 감았다.
“삼켜버려……!”
민우의 명령과 함께 나노 촉수들이 굴절체의 세포 속으로 파고들어 생체 에너지를 역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굴절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검게 말라 비틀어져 가루가 되었다.
“……하아, 하아.”
민우는 바닥에 착지하며 무릎을 꿇었다. 방금의 ‘역흡수’는 코어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도박이었지만,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미쳤어? 그런 식의 흡수는 코어의 자아 오염을 가속시킨다고!”
백서아가 달려와 민우를 부축했다. 민우의 눈동자 주변에 푸른 실핏줄이 더욱 짙게 돋아나 있었다.
“괜찮아요…… 유청만 얻으면…….”
민우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지하 계단 쪽을 가리켰다. 창고 깊숙한 곳에서 더 많은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실패작들이 신선한 ‘바이오 코어’의 냄새를 맡고 몰려오고 있었다.
“빨리 가요. 저놈들이 다 깨어나기 전에.”
두 사람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지하 수납고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계단 밑, 심연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붉은 안광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