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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2화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2화: 뾰족한 것부터 빼 줘

진우는 확성기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마수는 여전히 낮게 으르렁거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김이 진우의 얼굴을 훑었다. 그러나 거대한 앞발은 들린 채였다. 노란 눈동자가 진우와 태산 길드 검사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그르르르."

[빨간 칼 치워. 알 옆에서 반짝거리는 거 싫어.]

진우는 침을 삼켰다.

"검기부터 거두세요."

태산 길드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괴물 취향도 통역해 주게?"

"취향이 아니라 경계입니다. 저 빛을 공격 준비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검사의 검끝에서는 붉은 기운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잔해 틈에 박힌 회색 알이 그 빛을 받아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마수의 어깨 돌기가 그때마다 조금씩 솟았다.

진우는 알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서 물러나세요. 발밑에 알이 있습니다."

"봤어. 그렇다고 몬스터가 달라지나?"

"달라집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진우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사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앞의 마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기만 해도 그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뒤쪽의 헌터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지금 물러나면 검이 먼저 나갈 것이다.

박도식이 피 묻은 이마를 짚었다.

"유 행정관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은 해야겠지. 전투조, 칼끝 내려. 완전히 내리진 말고."

"반장님."

검사가 불만을 터뜨렸다.

"마수 하나 때문에 우리를 묶어 두겠다는 겁니까?"

"그 마수 하나가 여기 차단벽을 부수면 보고서 쓸 사람도 없다."

박도식의 말이 끝나자 검사는 이를 악물고 검을 옆으로 내렸다. 검기까지 거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붉은 빛이 알에서 멀어졌다.

마수의 콧김이 조금 잦아들었다.

[저 사람 발 냄새도 싫어.]

진우는 하마터면 헛웃음을 낼 뻔했다. 이 상황에서 발 냄새까지 따질 정신이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투정 덕분에 마수가 완전히 이성을 놓지는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발도 더 뒤로 빼 주세요."

"이젠 냄새까지?"

"그건 제 말입니다. 알에서 떨어지세요."

검사가 진우를 노려봤다. 그러나 박도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진우는 마수의 앞발을 살폈다. 발바닥 가장자리에 푸른 파편이 깊게 박혀 있었다. 폭발 직전 바닥 아래에서 보였던 결정화 마력핵의 조각 같았다. 파편 주위 살은 검게 그을렸고 걸을 때마다 굵은 핏물이 흙으로 떨어졌다.

"저거 빼면 돼?"

마수가 고개를 낮췄다. 주둥이가 진우의 머리 위까지 내려왔다.

"크르르."

[빼. 근데 아프게 하면 너도 싫어할 거야.]

"저도 아픈 건 싫습니다. 최대한 조심할게요."

뒤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가 곧 끊겼다. 진우는 마수가 정말로 대답했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수의 눈이 그의 말 뒤에 누그러졌으니까.

"반장님. 장비차에 긴 구조용 집게 있습니까? 방진포도 필요합니다."

박도식은 잠시 진우와 마수를 번갈아 봤다.

"있어. 왜?"

"파편을 뽑고 알을 옮겨야 합니다. 이 상태로 두면 또 밟힙니다."

"알을 옮긴다고? 저놈이 허락할 것 같아?"

진우는 마수에게 다시 물었다.

"알이 여기 있으면 위험해. 저쪽 빈 공터까지 옮기자. 너도 같이 가고."

마수의 귀가 뒤로 젖었다.

[사람 손 싫어. 잘못 들면 깨져.]

"그래서 네가 보는 데서 할 겁니다. 내가 계속 말할게요."

한참 동안 마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대한 눈동자가 알 셋을 훑었다. 가장 바깥쪽 알 하나에는 이미 실금이 길게 나 있었다. 마수의 숨결이 그 위를 스칠 때마다 금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알은 막내야.]

그 짧은 말에 진우는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더 늦으면 안 됩니다."

그는 박도식을 돌아봤다.

"집게부터 부탁합니다."

장비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나치게 길었다. 차단벽 바깥의 대피 방송은 계속 반복됐다. 누군가가 휴대폰으로 현장을 찍으려다 요원에게 제지당했다. 태산 길드 헌터들은 무기를 쥔 손을 풀지 못한 채 마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진우는 그 사이에 계속 말을 걸었다.

"이름이 있어?"

마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우우."

[그루.]

"그루. 알은 몇 마리야?"

[셋. 근데 하나는 너무 조용해.]

진우의 시선이 금 간 알로 향했다. 그는 섣불리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대신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만 말했다.

"지금 가장 먼저 아픈 발부터 고치자. 네가 제대로 서야 알도 지킬 수 있어."

그루가 낮게 울었다.

[너는 말이 길어. 그래도 듣고 있어.]

"직업병입니다."

"유 행정관."

박도식이 장비차 쪽에서 날아온 긴 집게와 방진포를 받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집게를 내밀면서도 진우보다 마수를 더 경계했다.

"진짜 할 거냐? 전투조 불러서 발을 묶고 처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묶는 순간 저쪽은 알을 빼앗는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는?"

"그루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박도식이 입을 다물었다. 믿는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반박할 말도 찾지 못한 표정이었다.

태산 길드 검사가 앞으로 나섰다.

"집게로 끄적일 필요 없어. 내 검기로 파편 주변만 태우면 금방 빠진다."

그가 검을 들어 올리자 붉은 기운이 다시 번졌다.

그루의 목에서 흉흉한 진동이 터졌다. 앞발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바닥이 진동했고 알 위의 돌가루가 와르르 쏟아졌다.

"안 됩니다!"

진우가 소리쳤다.

"빛이 닿으면 움찔합니다. 그 발이 내려오면 알도 저도 끝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지금 들었습니다."

검사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루는 붉은 검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검과 마수 사이를 가로막았다.

"검을 내리세요. 당신이 처리할 수 있는 건 파편일지 몰라도, 그 다음에 벌어질 일까지 처리할 수는 없잖습니까."

검사의 턱이 굳었다.

"F급이 나한테 훈수 두지 마."

"F급이라서 압니다. 한 번 잘못되면 제일 먼저 깔려 죽는 쪽이 누군지요."

진우는 집게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해 보겠습니다."

그는 그루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제 파편을 뺄게. 아프면 소리쳐도 돼. 하지만 발은 내려놓지 마. 여기 알이 있고 나도 있다."

그루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내가 참으면 진짜 뺄 수 있어?]

"빼겠습니다."

진우는 발바닥 아래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세상에 남은 것은 거대한 발과 축축한 흙냄새와 손 안의 차가운 집게뿐이었다. 발이 아주 조금만 기울어도 그는 납작해질 터였다. 장비를 든 손가락이 떨려 집게 끝이 파편을 한 번 빗나갔다.

푸른 파편이 살을 긁었다.

그루가 이를 드러내며 숨을 들이켰다.

"잠깐! 미안해. 다시 할게."

"그르르르아."

[아프다. 빨리.]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겁이 난다는 이유로 손을 빼면 그루는 더 아플 것이고 알은 계속 위험할 것이다. 그는 집게를 파편 가장자리에 단단히 물렸다.

"하나. 둘. 셋."

힘을 주었다.

푹.

파편이 빠져나왔다.

검은 피가 한꺼번에 터졌다. 그루의 발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진우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떨어졌다.

"멈춰! 알 밟혀!"

진우는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그루의 발이 공중에서 멈췄다.

바닥의 돌가루가 진우의 뺨으로 떨어졌다. 그는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을 떴을 때 발바닥은 손가락 한 마디 거리에서 멎어 있었다.

현장 누구도 숨을 쉬지 못했다.

그루가 떨리는 발을 천천히 옆으로 옮겼다. 박도식이 진우의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끌어냈다.

"미쳤냐!"

그 말에는 평소의 짜증보다 질린 기색이 많았다.

진우는 대답 대신 손에 쥔 파편을 내밀었다. 푸른 결정은 피와 흙을 뒤집어쓰고도 안쪽에서 맥박처럼 빛났다.

그루가 발을 바닥에 대고 낮게 울었다.

[덜 아파.]

그 말은 너무 작아서 진우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몸이 처음으로 힘을 뺀 모습은 모두가 보았다. 등 돌기가 가라앉고 꼬리가 땅에 닿았다.

박도식이 파편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걸 빼 달라는 거였어."

"네."

"그리고 네가 알아들은 거고."

진우는 답하지 못했다. 그 말에 대답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금 간 알에서 아주 작게 딱 하는 소리가 났다.

그루의 몸이 다시 굳었다.

[막내.]

"아직 안 깨졌어요."

진우는 알 쪽으로 다가갔다. 실금은 더 길어졌지만 껍질은 버티고 있었다. 잔해 틈에서 돌조각을 그대로 빼면 충격이 갈 수 있었다.

"방진포를 네 겹으로 접어 주세요. 팔레트도 가져오고요. 알을 들지 말고 바닥째 밀어야 합니다."

박도식은 이번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움직여."

요원 두 명이 방진포를 펼쳤다. 진우는 그루에게 과정을 하나씩 설명했다. 사람 둘이 알 옆의 작은 돌부터 손으로 걷어 낼 것이다. 방진포를 밑으로 밀어 넣고 팔레트까지 함께 옮길 것이다. 아무도 알을 꺼내 안지 않을 것이다.

그루는 계속 콧김을 뿜었지만 막지 않았다.

[그 작은 애 손 떨려.]

"저도 떨립니다. 그래도 조심하고 있어요."

[너는 더 떨려.]

"그건 말하지 마."

이번에는 박도식의 입꼬리가 아주 잠깐 움직였다. 긴장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은 마수를 향하던 시선을 알과 손놀림 쪽으로 돌렸다.

방진포가 알 아래로 들어갔다. 팔레트가 천천히 밀려 왔다. 파편을 옮기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가장 금이 간 알이 흔들릴 때마다 그루의 발톱이 흙을 팠다.

진우는 계속 말했다.

"괜찮아. 조금만. 지금 지나간다."

마수에게 하는 말인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지 그는 구분하지 못했다.

마침내 알 셋이 팔레트 위에 올라갔다. 요원들은 공터 쪽으로 아주 느리게 이동했다. 그루는 두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발을 절뚝였지만 더는 포효하지 않았다.

태산 길드 검사가 차단선 쪽에서 말했다.

"이제 포획조를 불러야지. C급이면 보상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루의 귀가 다시 뒤로 젖었다.

[또 묶는다고?]

진우는 검사를 똑바로 봤다.

"지금 포획을 시도하면 다시 싸움입니다. 부상자도 있고 알도 불안정합니다."

"관리국 행정관이 마수 처리까지 결정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현장 위험을 말하는 겁니다."

박도식이 이번에는 진우 앞에 섰다.

"처리 여부는 본부 판단이다. 지금은 구조 우선. 길드도 민간 협력자면 현장 지휘를 따라."

검사는 불쾌한 얼굴로 검집을 밀어 넣었다.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공터 끝에서 그루가 멈췄다. 요원들이 팔레트를 바닥에 내려놓자 그는 긴 주둥이로 알들을 하나씩 살폈다. 금이 간 막내 알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던 그루가 진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우."

[살아 있어?]

진우는 알 껍질에 귀를 가까이 댔다. 안쪽에서 아주 미약한 긁는 소리가 났다.

"살아 있어. 화난 성격도 너 닮았나 봐."

그루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숙여 앞발로 흙을 긁었다. 파편이 빠진 상처 옆에 남아 있던 푸른 결정 하나가 흙 밖으로 굴러 나왔다. 그루는 그것을 코끝으로 밀어 진우 앞에 놓았다.

"그르륵."

[이거 네 거. 다음에는 알 밟지 말라고 더 크게 말해.]

진우는 결정을 집어 들었다.

차갑던 조각이 손바닥 안에서 갑자기 뜨거워졌다. 녹색 잔광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귀 안쪽에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

[마수 언어 동시통역]

[직역/의역 최적화]

진우는 숨을 멈췄다.

그 글자는 폭발 뒤에 보였던 자막과 달랐다. 마수의 말을 옮긴 문장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의 안쪽에 새 도구의 이름표를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유 행정관?"

박도식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진우는 손바닥을 닫았다. 푸른 빛이 사라졌다.

그루는 알들 곁에 엎드린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인간을 완전히 믿는 눈은 아니었다. 다만 처음처럼 당장 물어뜯을 상대를 보는 눈도 아니었다.

진우는 확성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크게 말할게요."

그루가 낮게 코를 울렸다.

[그리고 빨간 칼 든 놈은 멀리 세워.]

진우는 멀찍이 서 있는 태산 길드 검사를 흘끗 봤다.

"그건 제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 말을 농담으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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