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3화: 보상은 전리품이 아니다
공터에 내려앉은 그루는 알 세 개를 몸으로 감쌌다.
거대한 앞발은 여전히 절뚝였지만 아까처럼 바닥을 내리찍지는 않았다. 대신 노란 눈동자가 알과 진우의 손을 번갈아 따라왔다. 진우의 손바닥 안에는 피와 흙을 씻어 내지 못한 푸른 결정이 들어 있었다.
차가웠던 돌은 이제 미지근했다.
그 위로 태산 길드 검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건 넘겨."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검사는 검집에 손을 얹은 채 손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눈은 결정을 향해 박혀 있었다.
"게이트 폭발 잔류물이다. 현장 부산물은 협력 길드와 관리국이 분류해. F급 행정관 주머니로 들어갈 물건이 아니지."
"제 주머니에 넣은 적 없습니다."
"그럼 손부터 펴."
진우는 손을 펴지 않았다.
그루의 콧김이 낮게 새어 나왔다. 바람 같은 숨결에 진우의 셔츠 자락이 흔들렸다.
"그르르르."
[내 거 빼앗아?]
진우는 짧게 숨을 삼켰다.
"아닙니다. 여기 있어요."
그루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태산 검사 쪽으로 향한 발톱은 흙을 깊이 팠다.
검사가 헛웃음을 쳤다.
"이제 물건 주인까지 대변해 주네. 몬스터가 계약서라도 썼어?"
"그루가 직접 제 앞에 놓고 줬습니다."
"그래서? 짐승이 던진 돌이면 선물인가?"
"그 짐승이 지금 이 돌을 빼앗는 행동을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진우는 결정을 쥔 손을 가슴 앞에 붙였다.
"그리고 겨우 진정한 마수 앞에서 그걸 시험할 이유도 없습니다."
검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겁주지 마. 저놈은 C급이야. 포획조만 제대로 붙으면 끝난다."
"그 포획조가 오기 전에 막내 알이 깨지면요?"
진우는 팔레트 위의 가장 작은 알을 가리켰다. 실금은 거미줄처럼 얇았지만 분명히 껍질 전체로 번져 있었다.
"그때도 전리품 분류부터 하실 겁니까?"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박도식이 둘 사이로 들어왔다.
"손 치워."
"반장님. 마력결정이면 가격이 얼마나 될지 아십니까?"
"몰라. 그래서 더더욱 현장에서 가로채지 말라는 거야."
박도식은 진우를 한 번 흘끗 봤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진우의 손에서 결정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유 행정관. 그게 마수한테 받은 물건이라는 말은 보고서에 적을 거다. 숨기지 마."
"네."
"대신 네가 들었다는 말도 전부 적어. 나중에 말 바꾸면 나도 못 막아."
진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아 준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박도식이 처음으로 진우의 말을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했다는 뜻이었다.
그때 공터 바깥에서 경적이 울렸다.
낮은 화물차 한 대가 차단선 안으로 들어왔다. 적재함 뒤에는 철창으로 된 포획 우리가 실려 있었다. 두꺼운 잠금장치가 덜컹거릴 때마다 그루의 귀가 뒤로 젖었다.
"그워어어!"
[그거 싫어. 작은 애 흔들려.]
포획 우리 안쪽의 쇠사슬이 부딪히며 쨍 소리를 냈다. 막내 알의 실금이 아주 가늘게 떨렸다.
진우는 바로 손을 들었다.
"차 멈춰요! 시동도 끄고요!"
운전석의 요원이 창문을 내렸다.
"이송 지시 받았습니다. 가까이 붙여야 적재를 하죠."
"포획 우리는 뒤로 빼 주세요. 지금 소리와 진동에 반응합니다."
"마수가 반응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알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습니다."
진우는 팔레트 쪽으로 뛰어갔다. 그루는 알 앞에 앞발을 내밀어 벽처럼 세웠다. 상처 난 발에 다시 힘이 들어가자 검은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그루. 발에 힘 주지 마. 또 찢어진다."
[저 큰 쇠상자에 넣으면 작은 애가 깨져.]
"안 넣을게. 내가 말할게."
진우는 박도식을 향해 돌아섰다.
"알과 그루를 따로 옮기면 안 됩니다. 포획 우리도 안 됩니다. 완충재를 깐 낮은 적재함에 알 팔레트를 먼저 싣고 그루가 바로 옆에 탈 수 있게 해 주세요. 시동을 걸 때도 미리 알리고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마수를 트럭에 풀어 놓자고?"
"문을 잠그는 순간 뛰어내릴 겁니다. 그러면 막내 알부터 떨어집니다."
"탈출하면?"
"그루가 알을 버리고 갈 수 있는 상태인지 보셨잖습니까."
박도식의 시선이 그루에게 향했다. 마수는 알 하나에 코끝을 대고 있었다. 막내 알에서 들리는 아주 약한 긁는 소리에 귀를 세운 채였다.
박도식은 욕설을 삼키듯 입술을 깨물었다.
"완충재는?"
"장비차에 방진포 남아 있습니다. 타이어 고정용 고무 매트도요. 팔레트 밑에 두 겹 깔면 됩니다."
"그건 네가 확인해."
"네."
"이송차는 포획 우리 떼고 적재함 바닥부터 비워. 엔진은 꺼 둬."
박도식이 무전기에 대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경적 한 번만 더 울리면 네가 그 우리 안에 타고 간다."
요원들이 급히 움직였다. 철창 우리를 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루는 다시 몸을 낮췄다. 진우는 바로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저건 멀리 보낼 거야. 네가 타는 차에는 안 실어."
[진짜?]
"진짜."
[사람은 맨날 진짜라고 하고 다른 거 해.]
진우는 대답이 막혔다.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루 주변에는 무기를 든 사람들이 서 있었고 알은 팔레트 위에 놓여 있었다. 믿으라고 말하기에는 인간 쪽이 먼저 너무 많은 칼을 보여 줬다.
"그래서 보여 줄게. 차가 준비될 때까지 여기서 안 움직일게."
그루가 한참 진우를 내려다봤다.
[너도 작고 약한데 말은 많아.]
"그건 부정 못 하겠습니다."
뒤에서 짧은 헛웃음이 들렸다. 박도식이었다. 그는 곧 표정을 지웠지만 진우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완충재를 옮기는 동안 태산 길드 검사는 차단선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결정을 보는 눈빛은 처음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관리국이 너무 오래 끄는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 마수는 이미 부상 상태다. 지금 잡아야 피해가 없다."
"지금 잡으려고 하면 피해가 생깁니다."
진우가 말했다.
검사가 다가왔다.
"넌 현장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맞습니다. 저는 행정관입니다. 그래서 이송 기록과 안전 절차를 압니다."
"말장난하지 마."
"말장난도 아닙니다. 여기서 포획을 강행하면 알 손상과 부상자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남습니다. 그 뒤에 누가 책임질지도요."
검사의 표정이 굳었다.
"나한테 겁주냐?"
"아뇨.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일이 책임 소재가 흐려지는 겁니다."
진우는 그의 손이 다시 자신의 손등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검사가 빠르게 푸른 결정을 낚아채려 했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검사의 손끝이 진우의 손목을 스쳤다.
그루가 포효했다.
"그워어어어어!"
[손 치워! 그건 길 잃지 말라고 준 거야!]
마수의 앞발이 바닥을 찍었다. 흙이 터지고 적재함 옆에 세워 둔 빈 팔레트가 넘어졌다. 요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태산 검사의 검집에서 붉은 빛이 튀었다.
"봐라. 결국 공격하잖아."
"검 뽑지 마세요!"
진우는 검사의 손목 앞을 막아섰다. 아까보다 무서웠다. 그루가 다시 흥분하면 그가 아무리 말해도 막내 알이 먼저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그루는 인간이 또 약속을 어겼다고 믿을 것이다.
"그루. 나 봐!"
거대한 눈동자가 진우에게 돌아왔다.
"이 사람 손은 내가 막을게. 넌 발을 멈춰. 알 바로 옆이야."
그루의 숨이 거칠었다. 앞발은 흙 속에 반쯤 박혀 있었다.
[내 거 건드렸어.]
"알아. 그런데 네가 한 번 더 치면 작은 애가 놀라. 너도 그건 싫잖아."
그루의 시선이 알로 내려갔다.
진우는 기다렸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태산 검사의 손목을 막은 팔은 힘이 빠져 떨렸다. 그래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루가 발을 천천히 뽑았다.
[다음에는 네가 막아.]
"막겠습니다."
"그르륵."
[그 돌은 길표야. 네 냄새가 묻으면 나도 알고 작은 애들도 알아. 다른 데 가도 말할 수 있어.]
진우는 손안의 결정을 내려다봤다. 시장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광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몰랐다. 다만 그루에게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한 표식이었다.
전리품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건네는 다음 약속이었다.
박도식이 태산 검사 앞에 섰다.
"현장 지휘는 내가 한다. 길드는 지금부터 차단선 밖으로 나가."
"반장님. 이걸 그냥 넘긴다고요?"
"넘기는 게 아니라 기록한다. 마수에게서 받은 물품과 이송 협조. 네가 더 손대면 방해 행위까지 적어 줄 테니 골라."
검사는 이를 갈았다. 진우를 노려보던 시선이 결정을 한 번 훑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두고 봐. 그 돌이 네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그래서 보고서에 먼저 적겠습니다."
진우의 대답에 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송차 적재함 바닥에는 고무 매트와 접은 방진포가 두 겹으로 깔렸다. 요원들이 팔레트를 들어 올리지 않고 경사판 위로 밀어 올렸다. 그루는 적재함 앞에서 한참 냄새를 맡았다.
"바닥은 안 미끄러워. 막내 알은 저기 가운데에 둘 거고."
[차가 울면?]
"출발 전에 말할게. 멈출 때도 말할게."
[빨간 칼 든 놈은?]
진우는 차단선 밖에서 등을 돌린 태산 검사를 봤다.
"못 따라옵니다."
그루는 한쪽 앞발을 적재함 위에 올렸다가 멈췄다. 상처 난 발이었다. 진우는 차체 옆 난간을 붙잡고 그루의 눈높이까지 고개를 들었다.
"나도 같이 갈게."
[너 안 가면 안 타.]
"저도 지금은 네 옆이 제일 안전해 보입니다."
그루의 꼬리가 한 번 바닥을 쓸었다. 허락인지 불만인지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그는 천천히 적재함으로 올라갔다. 몸을 말아 알들 곁에 누울 때까지 요원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진우는 마지막으로 팔레트 고정끈을 확인했다. 막내 알은 방진포 둥지 안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이제 시동 걸 겁니다. 소리 나도 놀라지 마."
그루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았어. 네가 말했으니까 참아.]
진우는 손에 든 푸른 결정을 꽉 쥐었다.
결정 안쪽에서 아주 약한 빛이 번졌다. 그 빛은 그루가 내쉰 숨결과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천천히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휴대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박도식이 화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통화하던 그는 진우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본부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유진우 행정관. 현장 일을 인계하고 즉시 본부로 복귀하십시오. 마수와 의사소통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상세 경위 청취가 필요합니다."
진우는 적재함 안의 그루를 봤다. 그루는 막내 알을 코끝으로 감싼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 가?]
진우는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뗐다.
"일하러요."
[또 말하러?]
"아마도요."
그루가 낮게 코를 울렸다.
[그럼 길표 잃어버리지 마.]
진우는 손바닥을 닫았다.
본부가 자신을 믿을지 조사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의 손안에는 더 이상 이름 모를 돌멩이가 없었다.
다음 대화를 잇게 할 첫 번째 길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