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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1화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시놉시스

헌터 관리국 소속 만년 F급 하급 행정관 유진우는 게이트 부산물 수거 현장에서 의문의 폭발에 휘말린다. 그날 이후 그의 눈과 귀에는 마수의 포효가 한국어 자막처럼 번역되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피에 굶주린 괴성인 줄 알았던 울부짖음은 사실 통증과 억울함과 사소한 요구의 난장판이었다. 인간들이 칼부터 뽑는 현장에서 진우는 말 하나로 마수와 인간 사이의 오해를 풀어 가며 전 세계 유일의 마수 통역사가 된다.

1화: 제발 밟지 마!

유진우는 오늘도 현장에서 제일 싼 목숨 취급을 받았다.

서울 외곽 제17 임시 게이트 폐쇄 현장.

닫힌 게이트가 남긴 균열은 아직 아스팔트 위에 번개 자국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차단벽 안쪽에는 탄내와 철 냄새와 마력에 그을린 흙냄새가 뒤섞였다. 태산 길드 헌터들은 보스 마수의 시체를 트럭에 싣고 있었다.

진우에게 돌아온 것은 시체가 아니었다.

깨진 마석 조각. 점액 묻은 폐장비. 출처 불명의 뼈. 보험 처리용 사진. 현장 부산물 목록.

전부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다.

"유 행정관. 저쪽 잔해도 적어."

현장 반장 박도식이 턱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가리켰다.

진우는 마력 측정기를 내려다봤다.

"반장님. 저쪽은 아직 수치가 튑니다. 폐쇄 확인서에 안정화반 호출 필요라고 적어야 합니다."

"또 시작이네."

박도식은 담배 필터를 이로 물었다.

"F급이 숫자 몇 개 봤다고 현장 멈추면 태산 길드가 우리 말을 듣겠냐?"

태산 길드의 검사가 피 묻은 장갑을 벗어 진우가 든 조사표 위에 툭 던졌다.

"관리국 애들은 종이 들고 겁주는 게 일이야? 빨리 끝내자고. 우리 뒤풀이 예약 잡혀 있어."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진우는 조사표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화를 내 봐야 손해였다. F급 하급 행정관에게 현장 발언권은 없었다. 위험수당도 없었다. 대신 사고가 나면 서류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첫 번째로 불려갔다.

그게 유진우의 자리였다.

눈치껏 위험하고 책임은 꼼꼼히 지는 자리.

"그래도 이 파형은 이상합니다."

진우는 측정기 화면을 들어 보였다.

녹색 선이 가늘게 떨리다가 갑자기 위로 솟았다. 게이트 중심부가 닫힌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잔류 마력이 심장박동처럼 뛰고 있었다.

"바닥 아래에 결정화된 마력핵이 남은 것 같습니다. 건드리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마력핵이면 돈이네."

태산 검사가 바로 반응했다.

박도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길드 소유물로 분류되기 전에 관리국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확인? 발로 밀어 보면 나오겠지."

검사가 군화 끝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툭 찼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갔다.

"잠깐만요. 밟으면 안 됩니다."

그 말에 검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공무원이 몸으로 막네. 감동적이다."

그는 진우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가볍게 민 것뿐인데 진우는 차단선까지 비틀거렸다. F급 판정을 받은 몸은 현장 헌터의 장난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진우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검사의 군화가 잔해 더미를 강하게 걷어찼다.

쩌적.

소리가 바닥 아래에서 났다.

녹색 빛이 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얇은 유리 금이 번지듯 게이트 잔향이 아스팔트 위로 퍼졌다. 공기가 반쯤 접히고 현장의 소음이 물속처럼 멀어졌다.

진우의 등골이 식었다.

"엎드려요!"

폭음이 그의 말을 삼켰다.

세상이 뒤집혔다.

진우는 바닥을 굴렀다. 등과 팔꿈치가 긁히고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귀는 먹먹했다. 누군가 욕을 했고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트럭 경보음이 끊어진 벌레 소리처럼 울렸다.

그 와중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녹색 먼지 사이로 떠오르는 글자.

[아파.]

진우는 눈을 깜빡였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허공에 박힌 자막처럼 흰 획이 번졌다가 다시 모였다.

[뜨거워. 발 아파. 아래 밟지 마.]

"뭐야."

진우는 중얼거렸다.

잔해 더미가 안쪽에서 밀려났다. 콘크리트가 터지고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그것은 버스보다 컸다. 등에는 뼈 같은 돌기가 줄지어 돋았고 앞발은 전봇대만큼 굵었다. 주둥이 양옆에는 톱날처럼 생긴 어금니가 삐져나왔다. 폭발에 그을린 털 사이로 열기가 피어올랐다.

관리국 요원 하나가 주저앉았다.

"마수다!"

"C급 이상! 전투조 앞으로!"

태산 헌터들이 무기를 뽑았다. 붉은 검기가 바닥을 긁고 마력탄 장전음이 철컥철컥 이어졌다. 차단벽 밖에서는 대피 방송이 꼬인 테이프처럼 반복됐다.

마수가 주둥이를 벌렸다.

"크르르르아아아아아!"

현장 전체가 얼어붙을 만큼 흉악한 포효였다.

진우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제발 밟지 마!]

그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뭐?"

마수가 다시 포효했다.

"그워어어어어!"

[거기! 거기 알 있다! 발 치워! 아파 죽겠네 진짜!]

자막이 한 번 더 떠올랐다. 이번에는 귀 안쪽에서도 같은 문장이 울렸다. 거친 포효의 결이 한국어 의미로 풀려 들어왔다. 화난 목소리였다. 그런데 살의보다 억울함이 짙었다.

진우는 자신이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쉬웠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헛것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마수는 앞발을 들었다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발바닥 가장자리에 푸른 파편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 아래쪽 잔해 틈에는 회색 알 세 개가 반쯤 드러나 있었다.

방금 태산 검사가 밟으려던 곳이었다.

"저놈이 알을 지키는 겁니다."

말은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박도식이 피 묻은 이마를 누르며 돌아봤다.

"뭐라는 거야?"

"발 밑에 알이 있습니다. 그리고 파편이 박혔어요. 지금 공격하면 더 날뜁니다."

"머리 깨졌냐?"

태산 검사가 검을 고쳐 쥐었다.

"괴물한테 사정이 있다는 소리 처음 듣네."

"저도 방금 처음 들었습니다."

진우는 대답하고 나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현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도식의 얼굴에는 걱정보다 짜증이 먼저 떠올랐다.

"유진우. 뒤로 빠져. 헛소리할 정신 있으면 부상자 확인이나 해."

"반장님. 정말입니다. 저 마수는 침공하려는 게 아닙니다. 알을 밟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마수가 말을 해?"

"포효가... 뜻으로 들립니다."

태산 헌터들이 웃었다. 폭발 직후라 웃음에도 날이 서 있었다.

"대단한 능력 나셨네."

"F급 번역사님께서 괴물 말씀을 들으신단다."

마수의 목구멍에서 낮은 소리가 끓었다.

[저 빨간 칼 든 놈 치워. 자꾸 우리 애 위에 발 올리려고 해.]

진우의 시선이 태산 검사에게 갔다.

검사의 군화가 알 하나 바로 옆 잔해를 누르고 있었다. 그가 한 발만 더 밀면 알은 돌조각 아래에서 깨질 것이다.

"발 치우세요."

"뭐?"

"그 발부터 치우세요. 지금 이 현장에서 제일 위험한 건 저 마수가 아니라 당신 군화입니다."

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마수가 동시에 몸을 낮췄다. 뿔 같은 어깨 돌기가 세워지고 꼬리가 차단벽을 후려쳤다. 철판이 종잇장처럼 휘었다. 현장 뒤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진우는 알았다.

이대로면 죽는다.

헌터들은 마수를 베려 들고 마수는 알을 지키려 들 것이다. 누군가의 검이 잘못 들어가면 마수는 현장을 갈아엎을 것이다. 관리국 보고서에는 C급 마수 돌발 침공이라고 적힐 테고 F급 행정관 유진우의 이름은 사망자 명단 어딘가에 작게 남을 것이다.

그 결말이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몸이 움직였다.

진우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대피 방송용 낡은 장비였다. 손잡이에 금이 가 있었고 전원등은 깜빡거렸다.

"유진우! 뭐 해!"

박도식이 소리쳤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단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리가 떨렸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썹을 타고 내려왔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태산 검사와 마수 사이.

가장 멍청한 사람이 설 법한 자리.

진우는 그 자리에 섰다.

"밟지 말라고 했잖아!"

확성기에서 찢어진 목소리가 터졌다.

그 말이 누구를 향했는지 진우도 잠깐 헷갈렸다. 마수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인간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현장이 얼어붙었다.

마수의 눈동자가 정확히 진우를 향했다. 노란 홍채가 좁아졌다. 그것은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시선이라기보다 갑자기 자기 말을 알아들은 이상한 벌레를 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크르르르?"

[너 들려?]

진우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뒤에서는 헌터들의 무기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앞에서는 C급 마수가 숨만 쉬어도 흙먼지가 밀려왔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주 간절히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자막이 다시 떠올랐다.

[알 밟으면 안 돼. 저거 내 새끼야.]

그 문장을 본 순간 진우의 공포가 조금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는 확성기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들려."

마수가 숨을 멈춘 듯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마. 네 알 밟히기 전에 내가 막아 볼 테니까."

박도식이 헛숨을 삼켰다.

"진우야.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냐?"

"저도 알고 싶습니다."

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다만 지금은 제가 들은 척이라도 안 하면 다 죽을 것 같습니다."

태산 검사가 이를 갈았다.

"비켜. 저놈 숨통 끊으면 끝나."

그의 검기가 붉게 길어졌다.

마수의 포효가 다시 끓었다.

[빨간 칼 싫어. 알 옆에 세우지 마. 아픈 발로 버티는 것도 힘들어. 나 진짜 참는 중이야.]

진우는 그 처절하게 사소한 말을 듣고 잠깐 웃을 뻔했다. 세상을 찢어발길 듯한 괴물이 하는 말치고는 너무 생활감이 있었다. 하지만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검 내리세요."

"명령이냐?"

"부탁입니다. 그리고 경고입니다."

진우는 검사의 군화를 가리켰다.

"당신 오른발 아래에 알이 있습니다. 그걸 깨면 저 마수는 여기 있는 사람을 전부 적으로 볼 겁니다."

"헛소리."

"마수는 지금 발에 파편이 박혀서 제대로 뛰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안 덤비고 있습니다. 왜겠습니까?"

검사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발밑을 내려다봤다.

잔해 틈의 회색 알이 보였다.

아주 작게 꿈틀거리는 알.

웃음이 사라졌다.

그 순간 마수가 낮게 울었다.

[제발.]

진우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괴성을 부탁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 부탁을 무시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확성기를 더 단단히 쥐었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통역합니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바로 공격하지도 못했다.

진우의 눈앞에는 새 자막이 떠올랐다.

[먼저 저 뾰족한 것 좀 빼 줘. 진짜 너무 아파서 화내는 거야.]

진우는 피 묻은 이마를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말로 합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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