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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3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3화: 17분의 가격

밤 10시 50분.

섀도 엔틱의 카운터 위에는 같은 내용의 종이 세 장이 놓여 있었다.
양피지를 스캔한 복사본이었다. 그러나 세 장 모두 다른 곳이 비어 있었다. 한 장에서는 계좌 번호가 사라졌다. 다른 한 장에서는 냉매 탱크 규격이 지워졌다. 마지막 장에는 좌표의 끝자리만 남아 있었다.

강태오는 검은 펜으로 종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선을 그었다.

11:43 / 9-B / 17분

그는 그 세 줄만 남긴 종이를 접었다.

정보는 전부 팔면 장부가 된다. 장부는 주인이 바뀌면 목줄이 된다. 반쪽만 팔아야 상대가 다시 찾아온다.

금고 안에는 양피지 원본과 완전한 복사본이 따로 들어 있었다. 태오는 금고 문을 닫고 오래된 가스 난로의 불꽃을 낮췄다. 폐업한 전당포처럼 보이는 가게라도 전기세와 보존액 값은 나갔다. 독고가 던지고 간 폐기 비용만으로는 다음 달 임대료도 모자랐다.

작업대 모서리에는 만식의 신발에서 떨어진 흰 가루가 유리 샬레 안에 담겨 있었다.
염화칼슘 흡습제와 냉동창고 바닥의 미세한 시멘트 분진. 만식은 청자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청자가 들어온 뒤에도 그 창고를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태오는 가루를 손톱 끝으로 굴렸다.

“17분이면 충분하겠군.”

검역 코드 9-B는 남항 시스템에 남는 정식 허가가 아니었다. 그날 밤만 살아 있는 임시 통과 신호였다. 코드를 아는 사람은 창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시간을 아는 사람은 그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는지 볼 수 있었다.

둘을 한 사람에게 주면 태오가 필요 없어졌다.

방화문 아래로 손전등 불빛이 한 번 스쳤다.

태오는 미리 잠가 둔 뒷문을 열었다. 빗물이 말라붙은 골목에 회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코트 소매는 지나치게 깨끗했고 구두 굽은 진흙 하나 묻지 않았다. 이런 골목에서 깨끗한 사람은 길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길을 사는 사람이었다.

“주름?”

사내가 입가만 움직였다.

“강 사장. 물건이 종이 한 장이라 들었는데.”

“종이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태오는 지하로 그를 들이지 않았다. 뒷문 앞 좁은 계단에 접이식 의자 두 개를 놓았다. 주름은 앉지 않고 태오의 손만 보았다.

“청색 항로를 판다는 사람이 시간을 들먹이면 웃어야 합니까?”

“웃고 싶으면 먼저 값을 내십시오.”

주름이 얇은 현금 봉투를 꺼냈다. 태오는 받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밤 공기도 못 삽니다.”

“가짜면 그 공기도 아깝죠.”

태오는 접은 종이를 계단 난간 위에 올려두었다.

“오늘 밤 열한 시 사십삼 분. 폐 냉동창고 2번 출입구. 검역 코드 앞자리는 9입니다. 들어가려면 그 뒤를 알아야겠죠. 하지만 당신들이 원액을 챙기려면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쪽이 더 중요할 겁니다.”

주름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

“왜 우리에게 팝니까.”

“삼거리파에게 팔면 제 가게가 먼저 타니까요.”

“우린 다르다고 믿는 겁니까?”

“아니요. 당신들은 계산서를 남깁니다.”

태오는 주름의 구두 끝을 보았다. 밑창 가장자리에 투명한 얇은 필름이 붙어 있었다. 현장에 남는 발자국을 피하려는 운반책들이 쓰는 덧창이었다. 사내는 불법을 숨길 줄 알았다. 그래서 돈을 제대로 쓸 줄도 알았다.

“현금 두 배. 그리고 폐 냉동창고 앞 카메라 접근권을 주십시오. 오늘 밤 자정까지.”

“카메라를 왜 봅니까?”

“제가 판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주름이 짧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남항 검역반에 익명 제보를 넣으십시오. 무단 냉매 탱크가 옮겨진다고.”

골목의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주름은 대답하기 전에 한참 태오를 바라봤다.

“우리에게 물건을 빼앗으라는 말이군.”

“아닙니다. 창고 문을 열어 달라는 말입니다. 누가 무엇을 들고 나오는지는 각자 값으로 정하면 됩니다.”

주름은 현금 봉투를 두 개 더 꺼냈다. 이어 손목 단말에 짧은 문자열을 띄웠다. 외부 카메라 망에 접속하는 일회성 인증키였다. 태오는 인증키를 자기 단말에 옮기고 영상 저장 경로까지 확인했다.

태오는 종이를 밀어 주었다. 주름은 읽자마자 그 내용을 외웠다. 종이는 다시 태오에게 돌아왔다.

“나머지 코드는?”

“창고 앞에서 보게 될 겁니다.”

“강 사장. 우리를 가지고 놀면—”

“당신도 저를 믿지 않잖습니까.”

주름은 협박을 끝내지 못했다. 태오의 말이 맞았다. 믿지 않는 거래는 약속으로 묶이지 않는다. 서로가 잃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사내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자 태오는 손목 단말을 켰다. 만식의 번호로 보낼 수 있는 일회성 메시지 창이 열렸다. 그는 짧게 적었다.

청자 굽바닥에서 냉동창고 출입 카드 조각 확인. 폐기 전 마지막 검증 필요.

보내기 버튼을 누른 뒤 단말을 부쉈다. 부서진 조각은 보존액 통 아래로 밀어 넣었다.

독고는 만식을 먼저 보낼 것이다. 만식은 가루가 묻은 신발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독고는 청자보다 창고에 남았을지 모를 물건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태오는 카운터 밑에서 싸구려 플라스틱 카드를 꺼냈다. 카드에는 검은 유성펜으로 9-B가 적혀 있었다. 진짜 카드처럼 보이게 만든 미끼였다.

11시 31분.

폐 냉동창고 맞은편 빈 세탁소 2층.

태오는 깨진 창틀 아래에 몸을 낮췄다. 손목 단말 화면에는 주름이 넘긴 외부 카메라 영상이 네 칸으로 떠 있었다. 창고 2번 출입구, 진입로, 하역장, 골목 끝 차단기.

화면 한쪽에 검은 승합차가 잡혔다.

어젯밤 섀도 엔틱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차였다. 이번에는 번호판을 천으로 가리지도 않았다. 번호판 대신 차량 등록 정보 자체가 화면에서 깨져 있었다. 누군가 카메라 신호 위에 잡음을 덧씌운 흔적이었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주름도 삼거리파도 아닌 제3자가 있었다.

잠시 뒤 만식이 창고 쪽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만식의 뒤에는 독고와 사내 둘이 붙어 있었다. 독고는 한쪽 팔을 붕대로 감싼 채 주변을 훑었다.

“여기서 나온 거 맞아?”

만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 사장이 굽바닥에서 카드 조각을 봤답니다. 청자 안에 숨긴 게 하나가 더 있을 수도 있어요.”

독고가 만식의 뺨을 후려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저도 몰랐죠. 청자 들고 온 날엔 피 때문에—”

“입 닥쳐.”

태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입모양은 읽혔다. 독고는 의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의심보다 욕심이 조금 더 컸다.

독고의 부하가 지갑에서 출입 카드를 꺼냈다. 카드 표면에는 희미하게 9-B가 찍혀 있었다. 태오가 시장에 풀었던 소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복제 카드였다.

태오는 화면 화각을 다듬고 타임스탬프를 고정한 뒤 저장 버튼을 눌렀다. 렌즈 각도상 독고의 얼굴과 부하 손에 들린 카드 표면의 관리 번호가 정확히 한 프레임에 담겼다. 이 영상 기록은 경찰에 넘길 신고거리가 아니었다. 훗날 독고가 딴소리를 할 때 그가 발을 뺄 수 없도록 만들 영수증이자 거래 테이블에서 그의 값을 깎아내릴 무기였다.

11시 42분.

차단기 옆 경광등이 한 번 붉게 번쩍였다. 냉동창고 문이 낮은 기계음과 함께 열렸다. 독고 일행이 안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주름의 회색 코트가 하역장 반대편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동료 둘과 함께 냉매 탱크가 실린 소형 트럭 뒤에 붙었다.

태오는 화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자정 전에 검역반이 온다. 주름은 화물을 가져가려 하고 독고는 숨겨진 것을 찾으려 한다. 둘 다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될 것이다.

11시 43분.

창고 안에서 둔탁한 충돌음이 울렸다. 독고 일행과 주름의 움직임이 엉키기 직전이었다.

바로 뒤이어 골목 끝에서 흰색 검역차 두 대가 들어왔다. 경광등의 푸른빛이 빗물 젖은 공장 벽을 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태오가 주름에게 거래 조건으로 요구했던 남항 검역반 익명 제보가 정확히 약속된 하역 시각에 맞춰 발동한 결과였다.

주름이 먼저 달렸다. 그는 트럭의 문을 열려다 검역차를 보고 방향을 틀었다. 독고는 창고 안에서 뛰쳐나왔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붕대 끝에는 새 피가 번져 있었다.

“강태오!”

독고의 고함이 빈 창고 벽에 부딪혔다.

태오는 2층 창문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독고가 발을 헛디디며 난간에 손을 짚는 순간 작은 카드 하나가 빗물 위로 떨어졌다. 복제 출입 카드였다.

태오는 계단을 내려가 어둠 속으로 몸을 옮겼다.

검역반의 손전등 불빛이 창고 입구를 훑고 지나가는 찰나, 태오는 골목 바닥의 빗물 속에서 카드를 집어 들었다. 카드 뒷면에는 미세하게 압인된 관리 번호가 남아 있었다. 임시 검역 코드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복제 카드를 만들어 낸 인쇄소나 공급책의 흔적이었다. 그는 카드 표면에 남아 있을 독고 부하의 지문조차 닦지 않았다. 깨끗하게 세탁된 증거보다 누군가 현장에 급히 떨어뜨리고 간 허물이야말로 다음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를 옥죄는 실체적 목줄이 되었다.

그때 검은 승합차의 뒷유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태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쪽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태오의 손에 든 카드가 아니라 현금 봉투 쪽을 휴대 단말로 찍고 있었다.

소매에 꽂힌 은색 핀이 가로등 불빛을 받았다. 뱀처럼 꼬인 선 세 줄이 새겨진 문양이었다.

태오가 차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승합차는 곧장 출발했다.

그는 번호판을 읽지 못했다. 차량은 검역차 불빛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손목 단말이 울렸다.

발신자는 표시되지 않았다. 추 실장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강태오 씨. 백사장님이 감정 하나를 맡기고 싶답니다.”

“오늘 청자 때문에 전화한 겁니까?”

“아닙니다. 액면가가 백억쯤 되는 채권입니다. 진짜인지 보시죠.”

태오는 은색 핀이 사라진 골목 끝을 보았다.

“값은 비쌉니다.”

“값은 백사장님이 정하십니다.”

“물건값은 제가 정합니다.”

통화가 끊겼다.

태오는 젖은 복제 카드를 현금 봉투와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밤 손에 넣은 것은 운영 자금만이 아니었다. 삼거리파가 숨기던 문 하나와 자신을 찍고 간 누군가의 문양이었다.

멀리서 냉동창고의 차단기가 다시 내려왔다.

태오는 그 짧은 시간을 팔아 더 긴 전쟁의 계약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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