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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2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2화: 양피지 속의 밀수 지도

새벽 4시 07분.

섀도 엔틱의 방화문 안쪽은 다시 조용해졌다.
밖에서는 빗물이 하수구 철망을 때리는 소리만 얇게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칼잡이의 숨과 피 냄새가 들끓던 작업대 위에는 고려 청자 합과 손바닥보다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다.

강태오는 호흡을 낮추고 검은 고무 매트를 펼쳤다.

“진품은 그릇이 아니었군.”

그가 핀셋으로 양피지 귀퉁이를 눌렀다.
오래된 동물 가죽 특유의 누런 섬유가 미세하게 일어났다. 표면에는 방수 수지와 옻을 섞은 얇은 막이 발려 있었다. 조선 후기 밀서에서나 쓰던 방식이었지만 잉크는 달랐다.

너무 새것이었다.

태오는 자외선 램프를 켰다.
푸른빛이 양피지 위를 훑자 검은 선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던 숫자들이 떠올랐다.

[청색 항로]
[검역 코드 9-B]
[하역 제한 시간 17분]
[익명 계좌 5개. 분할 입금 순서: 3-1-5-2-4]

서울 남항의 컨테이너 동선과 폐 냉동창고 번호, 인공 나노 호르몬 원액을 숨기는 냉매 탱크 규격까지 적혀 있었다.
단순 장부가 아니었다. 기업형 밀수 유통망의 심장이었다.

태오는 문서를 확대 촬영하고 적외선 필터를 한 번 더 끼웠다.
잉크 아래 숨어 있던 점선이 살아났다. 점선 끝은 이상할 만큼 가까운 장소에 닿아 있었다.

섀도 엔틱에서 세 골목 떨어진 폐 냉동창고.

그는 잠깐 손을 멈췄다.
우연히 흘러든 장물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 골목까지 피 묻은 청자를 몰고 왔다. 어쩌면 황 사장은 죽기 전에 청자를 숨긴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이곳으로 흘려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쾅쾅쾅.

방화문이 거칠게 울렸다.

“문 열어! 독고 형님이 다시 보냈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고 양피지를 투명 보존 필름 사이에 눌러 넣었다.
스캐너가 낮게 웅웅거렸다. 진행률은 아직 62퍼센트였다.

“안에서 불 켜진 거 다 보여. 강 사장! 그 청자 다시 가져가야겠단다!”

태오는 청자 합의 이중 바닥을 임시로 덮고 피가 묻은 신문지를 그 위에 대충 걸쳐 놓았다. 그다음 낡은 철제 캐비닛 문을 열어 폐기 동의서 묶음을 꺼냈다.

방화문을 열자 젖은 점퍼를 입은 사내가 턱을 들이밀었다.
삼거리파 말단 만식이었다. 눈 밑이 벌겋고 손에는 접이식 칼이 반쯤 나와 있었다.

“독고 형님 말이 바뀌었다. 가짜라도 일단 가져오라는데.”

“가짜라서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태오는 만식의 칼보다 젖은 소매 끝을 먼저 보았다.
빗물에 섞인 흰 가루가 손목 안쪽에서 뭉쳐 있었다. 남항 냉동창고 바닥에 까는 흡습제였다.

만식은 이미 그곳을 다녀왔다.

“말장난하지 마라. 우리 형님이 가져오라면 가져가는 거야.”

“그러면 폐기 보관료부터 내야겠군요.”

태오는 폐기 동의서를 작업대 위에 밀었다.
종이 위에는 ‘후대 방작 도자기. 혈흔 오염. 보관 가치 없음’이라는 예비 소견이 적혀 있었다.

만식의 눈이 흔들렸다.

“방금 봤는데 벌써 썼어?”

“가짜를 보는 데 오래 걸리면 감정사가 아닙니다.”

태오는 청자 합을 만식 앞으로 돌렸다.
피가 덜 닦인 표면이 형광등 아래에서 지저분하게 번들거렸다. 그는 일부러 세척을 끝내지 않았다. 피막과 유약이 뒤섞이면 비색은 탁해지고 빙렬은 싸구려 균열처럼 보였다.

만식이 코를 찡그렸다.

“백사장 쪽에서도 기다린다더라. 이거 진짜면 바로 삼억이라며.”

“백사장은 가짜에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뭘 알아?”

태오는 루페를 집어 만식의 손에 쥐여 주었다.

“굽바닥을 보십시오. 규석 가루가 섞여 있습니다. 고려 관요 점토라면 저런 흰 입자가 뭉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벽 접합선이 너무 반듯합니다. 후대 장인이 진품인 척 꾸민 흔적입니다.”

만식은 루페를 거꾸로 들고 보다가 욕을 중얼거렸다.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이 속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스캐너의 진행음이 멈췄다.

태오는 아무렇지 않게 캐비닛 쪽으로 몸을 기울여 전원 스위치를 껐다. 복사본은 이미 암호화 저장 장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건 버린다는 거냐?”

“폐기하거나 싸구려 장식장에 올려두겠죠. 원하시면 가져가도 됩니다. 대신 내 감정서에는 위작으로 남습니다.”

만식은 칼을 접었다.
조직이 원하는 건 돈이었다. 위작 판정이 찍힌 청자는 돈이 아니라 문제였다.

“기다려. 전화하고 온다.”

만식이 밖으로 나가자 태오는 방화문을 잠그지 않았다.
잠그면 의심한다. 열어두면 얕본다.

그는 양피지 원본을 다시 펼쳤다.
자외선에만 드러났던 운송 날짜는 오늘 밤이었다. 하역 제한 시간은 17분. 폐 냉동창고의 출입 기록은 검역 코드 9-B로 덮이도록 되어 있었다.

태오는 원본의 표면을 아주 얇은 중성 보존액으로 닦았다.
보존액이 지나간 자리에서 잉크의 광택이 죽었다. 복사에는 충분하지만 다른 사람이 뒤늦게 보면 오래된 잡문서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골목 끝 공중전화 벨이 울렸다.

섀도 엔틱 안에는 전화가 없었다.
태오는 일부러 가게 안에 통신선을 들이지 않았다. 연락은 골목 끝 공중전화로만 받았다. 위치 추적이 붙으면 수신자가 아니라 전화를 건 자가 먼저 드러나도록 만든 구조였다.

그는 낡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공중전화 부스 유리에는 빗물이 줄줄 흘렀고 수화기에서는 이미 낮은 남자 목소리가 새고 있었다.

“강태오 씨 맞습니까.”

“물건부터 말하십시오.”

“백사장님이 궁금해하십니다. 삼거리 애들이 들고 간 청자, 진짜입니까?”

추 실장.
백사장 곁에서 돈과 피 묻은 계약서를 함께 관리한다는 사내였다. 목소리는 예의 바르지만 끝이 서늘했다.

태오는 부스 밖을 보았다.
만식이 골목 모퉁이에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 뒤편 어둠 속에는 번호판을 가린 검은 승합차가 서 있었다.

“후대 방작입니다.”

“근거는요?”

“유약의 빙렬은 흉내를 냈지만 깊이가 일정합니다. 굽바닥 점토에는 규석 가루가 뭉쳐 있고 내벽 바닥에는 현대 복원용 접합선이 있습니다. 진품 고려 청자라면 그 조합이 나올 수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삼거리파에서는 황 사장이 목숨 걸고 지킨 물건이라고 하던데요.”

“사람은 진품이 아니라 자신의 착각을 지키다 죽기도 합니다.”

태오는 의도적으로 마지막 문장을 건조하게 끊었다.
상대가 감정가를 믿지 않으면 탐욕을 건드려야 한다.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보다 가짜를 비싸게 사서 망신당할 공포가 커지게 만들면 된다.

추 실장이 낮게 웃었다.

“청자 말고 안에 든 건 없었습니까.”

태오의 시선이 부스 유리에 비친 자기 눈과 마주쳤다.

백사장 쪽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피와 곰팡내뿐입니다.”

“얇은 가죽 조각 같은 것도?”

“그런 게 있었다면 삼거리 애들이 먼저 찢어 봤겠죠.”

다시 침묵.
이번에는 추 실장의 숨이 아니라 더 무거운 누군가의 기척이 수화기 끝에 붙었다.

“태워.”

낮고 굵은 목소리 한마디가 들렸다.

백사장이었다.

추 실장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청자는 불태우랍니다. 방작이면 시장에 풀 이유가 없으니까요. 강태오 씨 소견은 그렇게 기록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태오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걸고 부스 밖으로 나왔다.
만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검은 승합차의 뒷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누군가 태오를 보고 있었다.

그는 못 본 척 가게로 돌아왔다.

독고는 20분 뒤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깨 넓은 사내 둘이 뒤따랐고 독고의 팔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다. 황 사장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가 스며 나온 붕대였다.

“강 사장. 물건 다시 보자.”

“이미 소견은 냈습니다.”

“내 눈으로 봐야겠어.”

태오는 청자 합을 작업대 중앙에 올렸다.
그 사이 원본 양피지는 바닥 아래 금고로 내려갔다. 청자 안에는 오래된 족보 조각처럼 보이는 가짜 종이가 들어 있었다. 먹물로 아무 의미 없는 숫자를 적고 보존액 냄새를 입힌 미끼였다.

독고가 뚜껑을 열었다.
안은 비어 보였다. 이중 바닥은 다시 봉합되어 있었다.

“열어 봐.”

“깨집니다.”

“깨.”

태오는 기다렸다는 듯 조각칼을 들었다.
그는 굽바닥 가장자리 한쪽만 얕게 긁었다. 흙가루가 하얗게 일어나며 표면 아래 숨겨 둔 규석층이 드러났다. 사실은 그가 방금 전 덧입힌 얇은 가루였지만 형광등 아래에서는 조악한 위작의 속살처럼 보였다.

독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황 사장 이 늙은 개자식이 우리를 속였군.”

“속인 건 황 사장이 아니라 그 물건을 믿고 싶었던 사람들일 겁니다.”

독고가 태오의 멱살을 잡았다.

“말조심해. 네 감정서 한 장 때문에 우리 돈줄이 끊겼다.”

“내 감정서가 없었으면 백사장에게 삼억짜리 가짜를 들고 갔겠죠. 그 뒤에는 돈줄이 아니라 목이 끊겼을 겁니다.”

독고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그는 계산할 줄 아는 칼잡이였다. 죽일 상대와 살려둘 상대를 구분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폐기해.”

“폐기 비용은 선불입니다.”

독고가 이를 갈며 현금 뭉치를 던졌다.
태오는 그 돈을 세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독고 일행이 나가자 전당포 안에는 다시 형광등 소리만 남았다.
태오는 작업대 아래 금고를 열었다. 양피지 원본은 은색 보존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다. 복사본은 세 개의 저장 장치로 나뉘어 각각 다른 암호를 입었다.

그는 폐 냉동창고 좌표를 화면에 띄웠다.
오늘 밤 11시 43분. 검역 코드 9-B. 하역 시간 17분.

그리고 그 아래.

[삼거리파 임시 보관조 접선 예정]

태오는 붉은 스탬프를 들었다.
청자 합 옆에 감정표를 놓고 망설임 없이 내리찍었다.

[후대 방작. 시장 가치 없음.]

삼거리파는 제 손으로 500억짜리 기밀을 버렸고 백사장은 원본의 행방을 확신하지 못했다.
라이벌 조직들은 아직 이 정보의 진짜 가치를 몰랐다.

태오는 감정표를 말린 뒤 청자 합을 싸구려 철제 선반 위에 올렸다.
그곳에는 깨진 항아리와 모조 불상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줄지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거운 기밀을 품었던 고려 청자는 이제 5천 원짜리 위작 장식품들 사이에 섞였다.

그 순간 골목 밖에서 검은 승합차의 엔진이 켜졌다.
차는 폐 냉동창고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태오는 우산을 접고 전당포의 불을 껐다.
유리 진열장 속 청자의 비색만이 어둠 속에서 잠깐 푸르게 빛났다.

“좋아. 이번에는 진짜 값을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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