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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1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시놉시스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감정사였으나 위작 스캔들로 몰락한 강태오. 슬럼가 지하에서 조직들의 피 묻은 장물과 기밀을 세탁해 주는 유령 가게 '섀도 엔틱'을 열다! 무력 대신 사물의 진짜 가치와 숨겨진 정보를 쥐고 밤의 세계를 흔드는 해결사의 피카레스크 느와르 서스펜스.

1화: 피 묻은 청자와 진품의 가치

지이이잉-.

낡은 형광등이 비명이 섞인 전자음을 내며 불규칙하게 불꽃을 튀겼다. 수명이 다해 가는 주황빛 전구와 함께 좁고 습한 지하실 내부를 불안하게 흔드는 빛의 파편들.
지상 가로등 배수구 철망 너머로 붉은 네온사인 불빛이 핏물처럼 시멘트 벽면을 따라 젖어드는 새벽 3시 20분이었다.
네오 서울 변두리, 재개발이 수십 년째 중단되어 폐허나 다름없는 구도심 7구역 슬럼가 지하 2층.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목재, 그리고 약산성 세척액의 비릿한 화학 냄새가 얽혀 있는 구석진 골목 끝자락에 볼품없는 전당포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섀도 엔틱(Shadow Antique)’.

낮에는 칠이 벗겨진 싸구려 민속품이나 금이 간 옹기그릇 따위를 늘어놓은 볼품없는 고물상으로 위장해 있지만 밤이 깊어지면 이 도시의 가장 어두운 헐떡임들이 밀수품과 혈흔 묻은 장물을 들고 모여드는 유령 거래소였다.

태오는 카운터의 낡은 가죽 의자에 깊숙이 묻혀 앉아 한 손으로 독일제 10배율 유리 루페(확대경)를 천천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리고 작업대 위에는 자외선 램프, 적외선 투과기, 미세 절삭용 수술도구와 XRF 성분 분석기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지하 전당포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치 서늘한 범죄 현장 감식실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있어야 가장 값진 물건이 흘러 들어오는 법이지.”

태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카운터 위에 놓인 오래된 시계의 째깍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미술품 감정원의 최연소 원장이자 인사동과 청담동 골동품 거리에서 그의 보증서 한 장이면 작품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던 절대적인 안목의 소유자 강태오였다. 전 세계 옥션 하우스와 고미술 컬렉터들이 그가 제시하는 진위 판정서 앞에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 완벽했던 안목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가장 믿었던 동료 한도윤 그리고 정계 막후 실세 김 의원과 연계된 거대 옥션 하우스 카르텔이 설계한 수백억 대 국보급 위작 사기극. 태오는 그들의 음모에 빠져 하루아침에 대형 위작 스캔들의 주범으로 몰렸고 감정사 자격 박탈과 함께 전 재산을 압류당했다. 언론은 그를 '돈에 눈이 멀어 가짜를 진품으로 속인 사기꾼'으로 매장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태오는 한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대신 이 음침하고 악취 나는 슬럼가의 지하 장물 거래소 주인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무력 대신 물건의 진짜 가치와 그 안에 숨겨진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약점을 쥐기로 했다.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자들이 만든 시장의 룰을 역이용해, 그들의 명성과 권력이 모두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임을 증명하기 위한 첫 번째 기지였다.

달칵, 쾅-!

묵직한 방화용 쇠문이 기겁을 하듯 거칠게 열렸다.
축축한 지하의 공기를 가르고 들이닥친 것은 짙은 비린내와 빗물 냄새, 그리고 거친 사내의 숨소리였다.
어깨너비가 성인 남성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떡벌어진 체구, 오른쪽 뺨을 길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번들거리는 삼거리파의 전용 해결사이자 칼잡이 독고였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긴장하여 경련하고 있었고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신문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태오 씨! 삼거리파에서 보냈소. 급하게 감정해야 할 물건이 있소.”

독고가 거칠게 호통을 치며 신문지 뭉치를 작업대 위에 툭 던졌다. 쿵 하는 중후한 울림과 함께 젖은 신문지가 미끄러져 펼쳐졌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종이 껍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영롱하고 은은한 비색(翡翠色)이 감도는 아름다운 도기 그릇이었다. 뚜껑이 조심스럽게 맞물려 있는 작은 고려청자 합(盒).
하지만 도기의 청아한 겉면에는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왔을 검붉은 선혈이 끈적하고 흉측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황 사장 늙은이 밀실에서 뜯어왔소.”

독고가 자신의 이빨에 낀 피 흔적을 침과 함께 바닥에 뱉으며 씩씩거렸다.

“그 영감탱이 목을 긋느라 피가 좀 튀었지만 그릇 자체는 스크래치 하나 없이 멀쩡하오. 이게 진짜 12세기 강진 관요에서 만든 진품이 맞소? 삼거리파 두목이랑 백사장이 진품이기만 하면 3억에 당장 넘겨받겠다고 약조했단 말이오.”

독고는 당장이라도 태오의 멱살을 잡을 듯 다급하게 압박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에는 돈을 향한 탐욕과 혹시라도 가짜일까 봐 두려워하는 조바심이 번갈아 스쳤다.

태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피비린내 속에서도 마치 찻집의 향을 맡듯 조용히 숨을 고른 그는 작업대 밑에서 깨끗한 흰색 면장갑을 꺼내 끼었다. 그리고 카운터 끝에 있던 정밀 유리 루페를 오른쪽 눈가에 밀착시켰다.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합이군요. 구름 사이로 날아오르는 학의 문양이 세밀합니다. 출처가 정확히 어디라고 했습니까?”

“황 사장이 개인 금고에 꽁꽁 숨겨두고 있던 거요! 그 영감이 자기 목숨보다 아끼던 물건이니 진품이 확실하지 않겠소?”

“골동품의 가치는 주인의 목숨값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태오는 냉정하게 대꾸하며 부드러운 양털 솔과 약산성 세척액이 든 병을 꺼냈다. 세척액을 솔 끝에 살짝 묻힌 태오는 청자 표면에 굳어붙은 피막을 섬세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스르륵, 스르륵.
양털 솔이 지나갈 때마다 핏방울이 녹아내리며 청자의 맑고 투명한 청록색 유약층이 드러났다.
태오의 동공이 미세하게 축소되었다. 그의 눈은 단순한 시각 기관이 아니었다. 수만 점의 유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부수고 분석하며 축적된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가 그의 뇌 속에서 즉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유약 밑으로 비치는 정밀한 빙렬(유약 표면의 미세한 균열)의 형태.
가마 안에서 식어가는 동안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균열의 깊이와 장작 가마 특유의 미세한 재 알갱이 흔적.
그리고 굽바닥(바닥면)에 노출된 점토 입자의 질감이 태오의 시선 끝에서 정밀 스캔되었다.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합 - 12세기 강진 관요 제작.]
[유약 산화철 함유량 1.8% 미만. 산화 환원 불꽃의 균형이 완벽한 전형적인 비색.]
[표면 빙렬 형성 오차율 0.01% 이하. 800년 이상의 세월이 만든 자연스러운 도막 형성.]

도기는 진짜였다. 거짓이 없는 12세기 고려 최고 명장의 손에서 탄생한 국보급 진품. 미술품 경매장에 나간다면 3억이 아니라 최소 15억 이상을 호가할 수 있는 극상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태오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린 것은 그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청자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 보관 상태를 레이저처럼 훑어내려가던 태오의 눈에 감춰진 '비대칭의 미학' 뒤에 숨은 치명적인 오류가 포착된 것이다.

12세기 강진 관요에서 제작된 청자 합은 뚜껑과 몸체의 두께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만약 바닥이나 벽면의 두께가 다르면 가마 내부의 섭씨 1,300도가 넘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열팽창률 차이로 인해 그릇이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청자 합의 몸체 바닥 두께는 뚜껑과 측벽에 비해 정확히 3.2밀리미터 비정상적으로 두꺼웠다.

'가마 안에서 터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없는 두께다. 그렇다면…… 후대에 가공된 것이다.'

태오는 망설임 없이 작업대 아래에서 자외선(UV) 램프와 수술용 고배율 현미경을 끌어왔다.
푸른 자외선 빛이 청자의 내부 바닥을 비추자 일반인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극미세한 띠가 드러났다.
합의 안쪽 내벽 바닥면을 따라 원형으로 가로지르는 0.05밀리미터 두께의 미세한 접합선.
현대의 보존 복원 전문가나 고미술 위작의 최고 마스터 수준이 아니면 절대 감지할 수 없는 후대의 장인이 정교하게 덧붙여 만든 ‘이중 바닥(Double Bottom)’ 트릭이었다. 흙과 천연 아교풀로 틈새를 메우고 그 위에 투명 유약을 얇게 재도포하여 가열한 흔적.

태오는 슬그머니 UV 램프를 끄고 루페를 눈에서 떼었다.
그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집중력 대신 깊은 한숨과 함께 씁쓸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이 덧씌워져 있었다.

“독고 씨.”

“왜 그러오? 진품이 맞지? 당장 보증서 쓰시오!”

독고가 침을 튀기며 다가섰다.

태오는 조용히 흰 장갑을 벗어 작업대 위에 던지듯 놓았다.

“12세기 강진 관요 청자는 굽바닥의 점토 성분이 지극히 순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합의 굽바닥을 보십시오. 미세하게 백색 규석 가루가 섞여 있지 않습니까? 또한 유약의 비색이 지나치게 맑습니다. 현대 화학 염료를 섞어 흉내 낸 조선 후기의 방작(倣作), 즉 가짜 모조품입니다.”

“무, 뭐라고? 가짜? 짝퉁이란 말이오?!”

독고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붉게 험악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황 사장 그 늙은이가 자기 목숨하고 바꾸면서까지 감추려던 물건이란 말이오!”

“황 사장도 속았겠지요. 골동품 판에는 가짜를 진짜로 믿고 평생을 바치는 멍청이들이 넘쳐납니다.”

태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독고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유약 내부의 빙렬도 인위적으로 오븐에 넣어 열을 가해 만든 가짜 균열입니다. 이 상태로 백사장이나 삼거리파 두목에게 가져가 보십시오. 전문 감정인이 보면 1분도 안 되어 위작임을 알아챌 겁니다. 독고 씨는 조직 돈을 노리고 가짜를 가져온 배신자로 몰려 황 사장 옆에 묻히게 될 겁니다.”

“쯧…… 빌어먹을!”

독고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작업대 모서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철제 작업대가 흔들렸다.
조직의 숨통을 틔우고 자신의 입지를 올리기 위해 목을 긋고 뺏어온 물건이 가치 없는 흙장난감이라는 말에 독고의 이성이 마비되었다.

“폐기 처리 비용으로 소액 수수료만 받지요. 피 묻은 가짜 도자기를 슬럼가에 방치했다가는 경찰 장물 전담팀의 표적이 될 테니, 제가 알아서 용광로에 넣어 깨뜨려 처분해 드리겠습니다.”

“젠장! 흙덩이 하나 때문에 피를 묻혔다니! 빌어먹을 영감탱이!”

독고는 미련 없이 침을 퉤 뱉고는 피 묻은 신문지와 청자 합을 작업대 위에 내팽개친 채 방화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지하 복도 너머로 독고의 거친 발소리와 욕설이 멀어져 갔다.

지하실 내부에는 다시 빗소리와 형광등의 기계음만이 남았다.

달칵.

태오는 서두르지 않고 걸어가 방화문의 두꺼운 이중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창문의 차광 셔터를 내렸다. 완전한 섀도 엔틱만의 밀실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차갑게 올라갔다.

“진품의 가치란 멍청한 칼잡이들이 정하는 게 아니지.”

태오는 즉시 미세 절삭용 수술 칼(Scalpel)과 정밀 고정 클램프를 가져와 청자 합의 바닥면을 작업대에 고정시켰다.

탁, 탁-!

수술 칼 끝으로 내벽 바닥의 접합선 틈새를 미세하게 후벼 파자 80년 전 정교하게 메워졌던 천연 아교풀 패킹이 바삭하게 부서져 내렸다.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3.2밀리미터 두께의 청자 이중 바닥 덮개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그 숨겨진 틈새 안에서 드러난 것은 습기와 세월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기 위해 얇은 양피지(동물 가죽)로 이중 밀봉된 작은 두루마리 양피지였다.

태오는 핀셋으로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밀봉 수지를 제거하고 작업대 위에 펼쳤다.
적외선 필터 렌즈를 통해 양피지 표면을 스캔하자 인공 나노 호르몬 밀수 유통망의 상세 경로와 함께 대한민국 거대 제약 기업 '메디코프'의 비공식 내부 결재 라인 그리고 스위스 암호화 가상은행의 비밀 계좌 번호들이 빼곡하게 정교한 미세 인쇄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고려청자의 골동품 가치 3억~15억 원과는 비할 바가 못 되는 물건이었다.
이것은 서울의 밤을 지배하는 범죄 조직 삼거리파는 물론, 정계와 대기업 카르텔 전체를 단숨에 멸망시킬 수도 있는 500억 대 가치의 극비 치명적 약점이었다.

황 사장은 청자를 숨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것을 대비해 이 무서운 비밀 장부를 청자 속 이중 공간에 봉인해 두었던 것이다.

“물건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거짓말을 하는 건 언제나 그 물건을 소유하려는 인간들의 탐욕뿐이지.”

태오는 양피지 문서를 고해상도로 스캔하여 자신의 오프라인 암호화 보관함에 저장을 마쳤다. 그리고 보존용 아교로 청자 합의 이중 바닥을 완벽하게 재복원하여 선반 한 구석 가짜 민속품들 사이에 슬그머니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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