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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3화

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

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

3화: 검증의 첫 장

마두식의 명함은 얇고 구겨져 있었다.

서진우는 찻집 창고 문을 잠근 뒤에도 한참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다. 상자 안의 드로잉은 기름종이에 싸여 있었고 병원비 납부 안내는 휴대폰 화면에서 계속 빛났다.

삼십억 원이라는 숫자는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증거가 되기 전까지는 종이 한 장이었다.

진우는 명함의 번호를 눌렀다.

"마두식 사장님. 아까 명함 주신 사람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

"상자 열어 봤구먼."

"열었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럼 그 목소리는 왜 그렇게 조심스러워?"

진우는 창고 벽에 기대 선 채 말했다.

"급히 팔 물건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셨죠. 팔기 전에 확인할 곳도 아십니까."

마두식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물건이 뭔데."

"지금은 말 못 합니다."

"그럼 내가 왜 움직여?"

"부산 중구 주소 하나와 오래된 은지 포장 흔적이 있습니다. 피란기 자료와 맞물릴 수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주소는."

"자료가 있는 곳부터 알려 주시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두식이 혀를 찼다.

"젊은 양반. 장사도 감정처럼 하려고 드네."

"감정이 먼저입니다."

"좋아. 부산 피란미술자료관에 아는 직원이 하나 있소. 보관 목록은 함부로 못 보지만 주소가 정확하면 열람 사유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 대신 내 시간과 차비는 누가 내나?"

"목록이 맞으면 중개는 사장님에게 먼저 맡기겠습니다. 다만 원본 매각은 제가 결정합니다."

"그 말은 물건이 있다는 뜻이군."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두식은 웃으며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첫 열차였다.

통화를 끊은 진우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 드로잉은 찻집 창고에 둘 수 없었다. 그는 준비한 무산성 보관 봉투에 꾸러미를 넣고 궤짝과 분리했다.

보관처는 마두식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능력이 보인다고 해서 보관의 원칙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밤 진우는 싼 임시 숙소로 돌아가 종이 가장자리와 은지 조각을 촬영한 사진만 여러 장 복사했다. 원본 사진은 암호를 걸어 따로 저장했다.

원본을 지키는 첫 방법은 원본의 위치를 아는 사람을 늘리지 않는 일이었다.

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마두식은 내내 그의 가방을 힐끗거렸다.

"그림은 안 들고 왔나 보네."

"왜 들고 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열람이 끝나고 무엇으로 확인하겠어?"

"기록이 맞으면 그때 보관 상태를 공개할지 정합니다."

마두식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법 독하네. 그 독함은 오래 가야 한다. 물건 가진 놈이 먼저 흔들리면 그때부터 값은 남이 정해."

진우는 그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마두식이 조력자인지 매수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남자가 시장의 냄새를 읽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부산 피란미술자료관은 바닷바람이 닿는 오래된 창고를 개조한 건물이었다. 관람객이 드문 평일 오전이라 로비는 조용했다.

열람실 앞에서 마두식이 작은 봉투를 꺼내려 하자 진우가 손목을 잡았다.

"그런 건 하지 마십시오."

"커피값도 못 쓰게 하네."

"기록이 필요합니다. 빚이 아니라."

마두식은 봉투를 다시 넣었다.

잠시 뒤 오현정이라는 직원이 열람실로 들어왔다. 단정한 셔츠 차림의 그녀는 진우가 내민 주소 사본을 보더니 곧장 고개를 저었다.

"부산 중구 주소만으로는 보관 목록을 열람할 수 없어요. 개인 소장품의 출처를 찾는 일이라면 더 그렇고요."

"개인 소장품을 팔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확인하려는 겁니까?"

진우는 준비한 사진을 한 장씩 테이블에 놓았다. 종이의 불규칙한 절단면과 은지의 눌린 무늬 그리고 궤짝 안쪽에서 촬영한 접착 흔적이었다.

"이 종이는 피란 시절에 접어 보관된 흔적이 있습니다. 은지는 담뱃갑 포장지가 아니라 상점에서 쓴 포장 은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수취인 주소가 부산 중구로 남아 있습니다."

오현정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죠?"

"담뱃갑 은지는 얇고 접힌 자국이 날카롭습니다. 이 조각은 종이 섬유가 한 겹 더 붙어 있고 가장자리에 풀 자국이 있습니다. 습기를 막으려고 겉을 한 번 덧댄 포장입니다."

진우는 사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종이는 재단지가 아닙니다. 편지지를 찢어 쓴 겁니다. 뒷면 수취인 이름이 지워진 방식도 봉투에서 뜯긴 흔적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자료관이 소장품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대신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피란기 보관 기록의 주소 표기와 포장 방식만 확인해 주십시오. 기록의 오류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로 신청하겠습니다. 주소가 맞지 않으면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오현정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마두식이 끼어들려 하자 진우가 시선으로 막았다.

"원본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과 맞지 않으면 꺼낼 이유가 없습니다."

오현정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피란기 개인 보관 기록의 표기 확인으로 범위를 제한하죠. 작가 감정이나 소장품 확인은 하지 않습니다."

자료관의 목록은 디지털 파일보다 오래된 카드에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진우는 장갑을 끼고 카드의 모서리만 잡았다. ‘부산 중구’ 아래에 적힌 주소들이 하나씩 넘어갔다.

처음 삼십 분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두식이 의자를 끌며 몸을 뒤척였다.

"틀린 주소면 돌아가야지."

"주소가 틀린 게 아니라 표기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진우는 수취인 이름의 남은 획을 떠올렸다. 복례의 복 자인지 복순의 복 자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카드의 분류를 바꿨다. 주소 대신 임시 여관과 우편물 보관으로 넘어갔다.

그때 낡은 카드 한 장이 손끝에 걸렸다.

‘해동여관 임시 보관 물품.’

카드 하단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김복례 수령. 화가 가족 스케치 묶음 포함. 1951. 2. 17.’

진우의 목이 말랐다.

그는 카드의 잉크 번짐과 숫자의 필압을 먼저 보았다. 나중에 덧쓴 글씨가 아니었다. 당시 작성자의 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앞에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대상: 해동여관 임시 보관 물품 카드]

[진위 여부: 진품]

[현재 시세: 2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180,000,000원]

[핵심 단서: 김복례 수령 기록. 운송 표식 ‘해동상회’. 뒷면 분리 보관 목록]

진우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 카드는 드로잉을 진품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드로잉이 나타날 수 없는 곳에 나타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첫 고리였다.

"뒷면을 볼 수 있습니까?"

오현정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제가 직접 만지지 않겠습니다. 스캔으로 확인해도 됩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보존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캔 화면이 켜지자 마두식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카드 뒷면에는 운송 물품의 분리 기록이 적혀 있었다. 가족 스케치 묶음 옆에는 ‘은지 포장. 해동상회 건어물 봉투 사용’이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진우의 손가락이 사진 속 은지 무늬 위에서 멈췄다.

사각 테두리 안에 작은 파도 세 줄.

똑같았다.

"이건 복사본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현정은 고개를 저었다.

"공식 신청서를 내면 검토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기록만으로 특정 작가 작품을 말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특정 작가 이름은 아직 쓰지 않겠습니다."

진우는 신청서에 ‘피란기 개인 보관품 출처 조사’라고 적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열람실 유리벽 너머로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휴대폰을 귀에 댔다. 그는 자료관 로비 쪽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마두식의 표정이 굳었다.

"아는 놈이오?"

"모릅니다."

"모르는 놈이 저렇게 오래 사람 얼굴을 외우진 않아."

진우는 신청서 사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원본은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그럼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오늘 확인한 건 원본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누가 찾는다고 해서 제가 먼저 팔 이유는 없습니다."

마두식은 한숨을 쉬었다.

"해동여관 자리는 지금 빈 건물이라더군. 그런데 지난달부터 그 일대 토지 서류를 뒤지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어."

"누군지 압니까?"

"거기까진 몰라. 다만 네 물건을 아는 사람이 생겼다면 여관부터 먼저 가야겠지."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진우는 현관 유리문에 비친 뒤쪽을 먼저 살폈다. 골목 건너편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가 다가왔다.

"서진우 씨죠?"

진우는 가방끈을 짧게 잡았다.

"누구십니까."

"오래된 그림 하나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인사동에서 상자를 사셨습니까?"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 종이. 가지고 계시면 곤란해질 겁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름도 회사도 없었다.

단지 뒷면에 한 줄만 적혀 있었다.

해동여관에 가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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