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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2화

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

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

2화: 먼지 속의 삼십억

퇴원 확인서의 종이는 얇았다.

그 위에 찍힌 금액은 얇지 않았다.

서진우는 원무과 창구 앞에서 카드 한도를 확인했다. 통장 잔액보다 병원비가 먼저 컸고 부친 병원에서 온 문자까지 대기 중이었다.

"환자분. 오늘 바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진우는 그녀의 가슴팍을 보았다. 은제 칠보 브로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달려 있었다.

[대상: 은제 칠보 브로치]

[진위 여부: 진품]

[현재 시세: 8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4,800,000원]

[핵심 단서: 뒷면 음각 장인 표식. 초기 백화점 공예전 출품 가능성]

환각이라면 같은 세부 정보를 반복하기 어렵다.

진우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조금만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확인요?"

"제 눈이 아직 쓸 만한지요."

간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진우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해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낡은 루페와 장갑이 든 상자를 품에 안고 병원을 나섰다.

인사동은 비가 그친 뒤라 더 붐볐다.

골목마다 젖은 나무 냄새와 튀김 기름 냄새가 뒤섞였다. 펼쳐진 돗자리 위에는 도자기 파편과 놋그릇과 액자와 낡은 시계가 아무렇게나 섞여 있었다.

진우가 첫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이 푸르게 번졌다.

[현재 시세: 3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30,000원]

[현재 시세: 12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900,000원]

[진위 여부: 위작]

글자가 너무 많았다.

왼쪽 눈 안쪽이 바늘로 찌른 것처럼 아팠다.

진우는 벽에 손을 짚었다. 능력은 편리한 도구가 아니었다. 조절하지 못하면 시장 전체가 푸른 소음으로 변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루페를 손에 쥐었다.

감정은 언제나 시야를 좁히는 일부터 시작한다.

방송 화면에 잡혔던 상자. 오른쪽 모서리에 검게 탄 자국이 있고 안쪽으로 말린 종이가 잠깐 비쳤다. 덮개 경첩은 새것이 아니라 한쪽만 바뀐 형태였다.

진우는 그 조건만 머릿속에 남기고 걸었다.

세 번째 골목 끝에서 같은 궤짝을 보았다.

먼지 낀 나무 상자 위에 깨진 벼루와 헌 책 묶음이 올라가 있었다. 노점 주인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고 손님 몇이 방송에 나온 물건을 찾는다며 주변을 뒤졌다.

진우의 시야가 상자 안쪽에 닿았다.

[대상: 해송 목제 궤짝]

[진위 여부: 생활 공예품]

[현재 시세: 15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3,000,000,000원]

[핵심 단서: 이중 바닥. 이중섭 미공개 드로잉 보관 가능성]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진우는 표정을 죽였다.

"이 상자 얼마입니까."

노점 주인이 고개만 들었다.

"그거 방송 탔다고 찾는 사람이 좀 있어요. 삼십."

"뒤틀렸습니다. 덮개도 맞지 않고 경첩도 한쪽은 갈았네요."

"골동품이 원래 그런 맛이지."

"골동품이 아니라 잡동사니 보관함입니다. 안쪽에 곰팡이도 있고요."

진우는 일부러 벼루를 들어 보았다. 손은 상자 안쪽 바닥을 스치듯 훑었다.

바닥판이 미세하게 떠 있었다.

못자국은 없었다. 대신 모서리에 대나무 쐐기 끝이 박혀 있었다.

"상자랑 저 헌 책 두 묶음까지 십오만 원 드리겠습니다."

노점 주인이 코웃음을 쳤다.

"장난해요?"

"방송 보고 온 손님들은 상자를 사러 온 게 아닙니다. 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사러 온 겁니다. 그 기대값을 삼십에 팔려면 적어도 안쪽에 든 곰팡이 냄새부터 빼셔야 합니다."

옆 상인이 웃었다.

"말은 잘하네. 그냥 팔어. 저 상자 어제까지 만 원에도 안 나갔잖아."

노점 주인의 눈이 흔들렸다.

진우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냈다. 손끝이 떨렸지만 지폐를 세는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지금 가져가겠습니다."

노점 주인은 잠깐 더 버티다가 손을 내밀었다.

"헌 책은 빼고 십오."

"벼루까지."

"아이고. 가져가요."

진우는 궤짝을 들고 골목 안쪽으로 빠졌다.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안쪽에 종이가 있다면 습기와 충격에 약할 가능성이 컸다.

등 뒤에서 젊은 남자 둘이 노점 주인에게 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방금 나간 사람이 산 상자요. 그거 우리가 먼저 보려고 했는데."

"돈 먼저 낸 사람이 임자지."

"얼마 받았어요?"

진우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시장의 공기는 가벼운 듯 보여도 돈 냄새에는 민감했다. 방송에 스친 물건 하나를 두고도 손님과 되팔이와 상인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가 여기서 상자를 열면 안 됐다.

누군가 드로잉 한 장만 보아도 이야기는 순식간에 골목 전체로 번질 것이다. 진우에게는 아직 권리도 증명도 없었다. 단지 십오만 원짜리 영수증과 눈앞의 가능성만 있었다.

진우는 궤짝을 품에 더 바짝 붙였다.

한때 그는 감정원 출입증 하나면 작품 보관실과 분석실을 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시장 구석에서 낡은 상자 하나를 지키는 것조차 조심해야 했다.

분노가 올라왔지만 오래 붙잡지 않았다.

분노는 손을 거칠게 만든다. 종이를 다룰 때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시장 뒤편의 낡은 찻집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그곳 주인은 노점 상인들이 맡긴 헌 액자와 상자를 종종 보관해 주는 사람이었다. 진우는 차 한 잔 값보다 많은 오천 원을 내고 비어 있는 창고를 잠깐 빌렸다.

창고 안에는 말린 차 상자와 오래된 접이식 의자가 쌓여 있었다.

그는 장갑을 꼈다.

상자 바닥을 바로 열지 않고 먼저 바깥면부터 확인했다.

오른쪽 모서리의 탄 자국은 겉만 그을린 것이 아니었다. 나뭇결 안쪽까지 검게 먹어 들어가 있었다. 오래 보관된 창고 화재나 난로 옆 열기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덮개 안쪽에는 아이 손톱만 한 종이 조각이 말라붙어 있었다.

진우는 그것을 떼지 않았다.

무엇이든 원래 붙어 있던 자리에서 떼어 내는 순간 정보 하나가 사라진다. 그는 노트에 위치를 적고 휴대폰으로 각도만 바꿔 사진을 찍었다.

쐐기를 무리하게 뽑지 않았다. 루페로 틈을 확인한 뒤 얇은 대나무 칼을 빌려 바닥판 가장자리의 먼지를 덜어냈다.

판은 천천히 들렸다.

속에서 마른 한지 냄새가 올라왔다.

진우는 숨을 멈췄다.

이중 바닥 안에는 기름종이로 감싼 얇은 꾸러미가 있었다. 겉면에는 오래된 은지 조각이 붙어 있었다. 담뱃갑 은지를 잘라 습기를 막은 흔적처럼 보였다.

그가 꾸러미를 펼치자 가늘고 강한 선이 나타났다.

아이를 안은 여인.

옆으로 돌아앉은 남자.

몇 개의 선뿐인데 종이 위의 숨이 살아 있었다.

진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림 앞에서 처음 배웠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가격보다 먼저 선이 보이고 이름보다 먼저 손의 속도가 보이는 감각.

억울하게 빼앗긴 것은 직함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림을 보는 자신의 시간을 빼앗겼다.

진우의 눈앞이 다시 푸르게 열렸다.

[대상: 이중섭 미공개 가족 드로잉]

[진위 여부: 진품 추정]

[정밀도: 87.4%]

[작품 단독 현재 시세: 산정 불가]

[숨겨진 잠재 가치: 3,000,000,000원]

[핵심 단서: 편지지 뒷면 수취인 주소. 은지 포장 흔적. 1950년대 피난기 미공개 스케치 가능성]

정밀도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진우를 진정시켰다. 이 눈은 신탁이 아니었다. 감정사가 해야 할 일을 빼앗지 않았다.

단지 어디부터 파야 하는지 알려 줄 뿐이었다.

그는 종이 가장자리를 보았다.

절단면이 일정하지 않았다. 공장 재단지가 아니라 손으로 찢어 쓴 편지지에 가까웠다. 연필 선은 힘이 들어간 곳과 빠진 곳의 속도가 분명했고 억지로 낡게 만든 위작에서 흔히 보이는 지저분한 문지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중섭의 이름은 시장에서 너무 자주 팔렸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은 이름이었다.

필선이 닮았다는 말은 증거가 아니었다. 편지지의 섬유와 흑연 입자와 은지의 산화층 그리고 수취인 주소의 실제 기록이 맞아야 했다.

진우는 스스로에게 낮게 말했다.

"감정표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

진우는 드로잉을 빛에 직접 들지 않았다. 창고 문의 틈에서 들어오는 빛만으로 종이 결을 보았다.

편지지 뒷면.

흐릿한 주소 일부가 비쳤다.

부산 중구.

그 아래 이름은 절반만 남아 있었다.

진우는 드로잉을 다시 접지 않고 기름종이와 함께 평평하게 봉했다.

그때 창고 밖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젊은 양반. 시장 물건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네."

문틈 사이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낡은 조끼에 손때 묻은 염주를 감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이 골목에서 마두식이라 불리오. 방금 그 궤짝 말이야. 어제까지 저쪽 창고에 처박혀 있던 건데 오늘 갑자기 서울 선비 같은 양반이 사 가니 궁금해서."

진우는 꾸러미를 상자 안에 넣고 덮개를 닫았다.

"곰팡이 냄새 나는 상자입니다."

"그런 상자를 살 때 사람 눈이 그렇게 맑아지진 않지."

마두식은 품에서 구겨진 명함을 꺼냈다.

"급히 팔 데가 필요하면 연락해요. 인사동에서 말 안 새게 물건 돌리는 일은 내가 제일 빠르니까."

진우는 명함을 받았다.

이름 아래에는 골동품 매입과 고서화 중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빠른 것보다 정확한 게 먼저입니다."

마두식이 껄껄 웃었다.

"정확한 걸 돈으로 바꾸려면 빠른 놈도 하나쯤 필요해."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친 병원비 납부 마감 안내.

그 아래 박태준에게서 온 짧은 문자도 떠 있었다.

아직 설치지 마라.

진우는 화면을 껐다.

상자 안의 드로잉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한 종이 한 장이 무너진 그의 이름보다 훨씬 크게 숨 쉬고 있었다.

그는 궤짝을 품에 안고 시장 밖으로 걸었다.

십오만 원짜리 먼지는 이제 삼십억 원짜리 가능성으로 검증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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