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3화: 세 줄이면 충분하다
다음 수업 날 제3강의동 끝 강의실은 전날보다 조금 일찍 차 있었다.
일찍 왔다고 해서 모두 성실해진 것은 아니었다. 몇몇 학생은 책상 위에 과제지만 올려둔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뒤쪽 귀족 학생들은 서로의 종이를 힐끗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답을 맞췄다.
엘리안은 교탁 위에 쌓인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열 박자 전부에 동그라미가 쳐진 답안이 가장 많았다.
근거란에는 비슷한 문장이 반복됐다. 제국 학회 표준 공식이므로 필요하다. 선배들도 그렇게 배웠다. 교재에 적혀 있다.
엘리안은 세 번째 답안에서 손을 멈췄다.
"이름."
뒷자리의 남학생이 턱을 들었다.
"헤이든 발몬트입니다."
"헤이든 발몬트. 네 답에는 이유가 없다."
"표준 공식이라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출처다."
엘리안은 답안지를 뒤집어 그의 책상 앞으로 밀었다.
"나는 네 마력이 왜 열 번의 박자를 견뎌야 하는지 물었다. 학회가 그렇게 말했다는 말은 네 손목이 아플 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헤이든의 표정이 굳었다.
"제 손목은 멀쩡합니다."
"아직은 그렇겠지."
짧은 말이었는데도 뒤쪽의 웃음이 멎었다.
엘리안은 다음 답안을 들었다. 시엘의 것이었다. 종이에는 열 박자가 반듯한 글씨로 정리되어 있었다. 각 박자 아래에는 안정성, 완충, 역류 방지라는 설명도 빠짐없이 달려 있었다.
교재의 문장을 거의 한 글자도 놓치지 않은 답이었다.
"시엘 라인하르트."
"예."
"네가 고른 필수 박자는 열 개다."
"첫 공식은 초심자의 안전을 고려해 설계됐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빼면 마력 흐름이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시엘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러나 펜 끝을 쥔 손가락이 희게 질려 있었다.
엘리안은 그녀의 답안에서 여섯째 박자부터 열째 박자까지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다섯 개는 무엇을 막지."
"앞선 순환에서 생길 수 있는 충돌을 완충합니다."
"그 충돌은 어디서 생기지."
시엘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넷째 박자의 방향 전환에서요."
"그렇다면 넷째 박자에서 억지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시엘은 교재를 펼쳤다. 익숙한 설명이 눈에 들어왔지만 방금 자신이 한 말도 그 안에 있었다. 충돌을 막기 위한 다섯 박자. 충돌을 일으키는 넷째 박자.
그녀는 낮게 말했다.
"그래도 방향 전환 자체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불씨를 안정시키려면."
"필요할 수 있다는 말과 필요하다는 말은 다르다. 오늘은 그 차이를 확인한다."
엘리안은 마지막 남은 답안을 집어 들었다.
레온의 이름 아래에는 동그라미가 하나도 없었다.
종이 가운데에 작고 눌린 글씨만 있었다.
세 번째 박자 뒤부터 손목이 아픕니다.
"왜 비워 뒀지."
레온은 자리에서 움찔했다.
"모르겠습니다. 아픈 박자는 알겠는데 빼도 되는 박자는 모르겠습니다. 잘못 고르면 더 위험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나."
"예."
레온은 고개를 숙였다. 또 틀렸다는 말을 들을 준비를 하는 얼굴이었다.
엘리안은 그의 답안에 짧게 표시했다.
관찰. 통과.
"오늘 네가 확인할 것은 하나다. 아픈 것이 네 잘못인지 공식 잘못인지."
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교실 안의 시선이 모두 교탁으로 모였다. 엘리안은 제국 표준 마법학 개론서를 펼쳤다. 금박이 찍힌 표지와 두꺼운 종이는 여전히 번듯했다.
그는 첫 장 모서리를 잡았다.
"강사님."
시엘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그 책은 아카데미가 지정한 교재입니다. 훼손하실 이유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반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수석 입학생으로서 누구보다 먼저 모범을 지켜야 한다고 배워 온 학생의 표정이었다.
엘리안은 첫 장을 놓지 않았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 학생의 손목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네게 보게 하겠다."
그는 교재 첫 장을 한 장만 조용히 뜯어 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헤이든이 벌떡 일어났다.
"학회 표준서를 찢으셨습니다!"
"종이는 찢어진다."
엘리안은 찢어 낸 페이지를 칠판에 붙였다.
"공식은 검증된다."
그는 열 박자를 세 구간으로 나누었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붉은 분필로 묶었다. 넷째와 다섯째에는 검은 선을 그었다. 여섯째부터 열째까지는 가느다란 괄호로 묶었다.
"첫 구간은 불씨를 모은다. 여기까지는 목적이 분명하다."
엘리안의 손끝에서 실처럼 가는 불빛이 떠올랐다. 불빛은 학생들의 눈앞에서 첫째 박자에 모이고 둘째 박자에 가늘게 이어졌다. 셋째 박자에 작은 열기가 생겼다.
"넷째 박자는 흐름을 오른쪽으로 꺾는다. 이유는 교재에 뭐라고 적혀 있지."
시엘이 무의식적으로 읽었다.
"불꽃 핵의 편향을 막기 위한 선행 조정입니다."
"좋다."
불빛이 엘리안의 손끝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였다. 가늘던 선이 한순간 납작해졌다.
학생 몇 명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불꽃 핵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없는 것을 막기 위해 흐름을 꺾은 셈이다."
다섯째 박자가 더해지자 불빛은 다시 왼쪽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이어진 다섯 박자는 휘어진 빛을 억지로 곧게 펴려는 듯 잘게 떨렸다.
레온이 숨을 삼켰다.
"제 손목에서 느끼던 것과 같아요."
"그래. 네 마력은 넷째 박자를 견디지 못한 게 아니다. 필요 없는 꺾임을 거부한 거다."
헤이든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보정문을 빼면 초심자는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맞다. 이미 흐름을 꺾었다면 보정문을 빼는 것은 위험하다."
엘리안은 검은 선이 그어진 넷째와 다섯째 박자를 지웠다.
"그러니 처음부터 꺾지 않는다."
남은 다섯 박자도 하나씩 지워졌다. 칠판에는 짧은 세 줄만 남았다.
불씨를 모은다.
흐름을 잇는다.
형태를 고정한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너무 짧았다. 열 박자를 외워 온 학생들의 눈에는 장난처럼 짧아 보일 만큼.
시엘이 먼저 물었다.
"그 세 줄만으로 누구나 불꽃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까?"
"누구나 같은 크기의 불꽃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마력량도 흐름도 다르다."
엘리안은 세 줄 아래에 작은 화살표를 덧그렸다.
"하지만 마력을 자기 흐름과 반대로 꺾으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공식은 사람을 맞춰 넣는 상자가 아니다. 사람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시엘은 말없이 칠판을 바라봤다. 그녀의 답안지 위에서 열 개의 동그라미가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
엘리안은 레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와라."
레온의 어깨가 굳었다.
"제가요?"
"네 과제의 빈칸을 채울 차례다."
"하지만 또 역류하면..."
"멈춘다. 이번에는 네가 아니라 공식부터."
레온은 한참 붕대 감긴 손목을 내려다봤다. 전날 손끝에서 빛이 꺼졌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교재를 한 번 보고 칠판의 세 줄을 한 번 보았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이든이 팔짱을 꼈다.
"실패하면 그 이상한 세 줄이 문제라는 증거겠군요."
"그때는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엘리안은 쉽게 인정했다.
그 대답에 헤이든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레온은 교탁 앞에 섰다. 지팡이는 들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불씨를 모은다."
작은 열기가 손바닥 안에 모였다.
전날보다 훨씬 느린 시작이었다. 레온은 두 번째 줄을 말하다가 습관처럼 손목을 안쪽으로 접으려 했다. 붕대 아래에서 파란 빛이 아주 희미하게 번졌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멈춰야..."
"꺾지 마라."
엘리안의 목소리가 짧게 끼어들었다.
"통증이 오면 손목을 접지 말고 호흡을 늦춰라. 마력은 앞으로 간다. 네가 길을 막지 마라."
레온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러나 그는 손목의 힘을 풀었다.
파란 빛이 더 번지지 않았다.
손바닥에 모인 열기는 팔을 거슬러 오르지 않고 손끝으로 조용히 흘렀다. 레온은 놀란 얼굴로 숨을 들이켰다.
"흐름을 잇는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열기가 가느다란 선이 되어 손바닥 위에서 한 바퀴 돌았다. 누구도 숨 쉬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레온은 마지막 줄을 앞에 두고 엘리안을 바라봤다.
엘리안은 고개만 끄덕였다.
"형태를 고정한다."
불꽃이 피어났다.
손톱만 한 불씨가 아니었다. 레온의 손바닥 위에서 주먹 절반 크기의 붉은 불꽃이 둥글게 떠올랐다. 흔들림은 있었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붕대 아래의 푸른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온은 한동안 불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손목을 만졌다.
"안 아픕니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강의실의 누구도 놓치지 못했다.
"정상이라서 그렇다."
엘리안이 말했다.
레온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손바닥 위 불꽃은 꺼뜨리지 않았다. 마치 조금만 더 보고 있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듯했다.
시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교재 첫 장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는 엘리안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시엘은 찢어진 페이지와 과제지를 함께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열 박자 중 일곱 박자에는 굵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제 답을 수정하겠습니다."
엘리안은 페이지를 보았다.
"근거는."
"넷째 박자가 충돌을 만들고 여섯째부터 열째까지가 그 충돌을 수습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불꽃 핵의 편향 문제는 더 검증해야 합니다."
"좋다. 그 문장이 오늘 네 과제의 답이다."
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아직 모르는 부분을 정확히 찾았다는 표정이었다.
헤이든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저는 인정 못 합니다.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시 강사가 표준 교재를 찢고 검증도 끝나지 않은 공식을 가르친다고요."
그는 문 쪽으로 향했다.
엘리안은 출석부를 덮었다.
"좋다. 증인을 더 데려와라."
헤이든의 발걸음이 문턱에서 잠깐 멈췄다. 하지만 곧 문이 세게 열렸다가 닫혔다.
엘리안은 남은 학생들을 둘러봤다.
"다음 과제. 세 줄 공식을 한 번씩만 사용해라. 성공 여부와 마력 반응을 적는다. 실패했다면 어느 줄에서 왜 멈췄는지도 적는다."
"또 과제입니까?"
누군가 힘없이 물었다.
"검증은 한 번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레온은 손바닥 위의 불꽃을 껐다. 그는 빈 과제지 대신 새 종이를 꺼냈다.
이번에는 첫 줄부터 적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복도는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찢어진 교재 첫 장과 주먹만 한 불꽃 이야기가 제3강의동을 타고 퍼졌다.
마법학부 조교 하나가 그 소문을 들은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조교는 망설이다가 교수 연구실이 모인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문패에는 아스테리아 마법 아카데미 마법학부 수석교수, 베르나르 하르트만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조교는 문 앞에서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노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