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4화: 증인은 더 많을수록 좋다
제3강의동 끝 강의실의 문이 열렸을 때 학생들은 아직 과제지를 펴지도 못했다.
문턱을 넘은 노인은 검은 로브의 소매를 한 번 정리했다. 은실로 수놓인 마법학부 문장이 가슴께에서 빛났다. 그의 뒤에는 헤이든과 조교 둘이 따라붙었다.
헤이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수업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강의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나는 마법학부 수석교수 베르나르 하르트만이다. 이 수업의 임시 강사에게 교재 훼손 및 비인증 공식 교육에 관한 이의가 접수됐다."
엘리안은 출석부를 덮지 않았다.
"접수됐군요."
"가볍게 들을 일은 아니지. 제국 학회가 인증한 교재를 찢고 학생에게 검증되지 않은 공식을 쓰게 했다고 한다. 교재는 학부가 안전 기준을 확인했다는 약속이기도 하네."
베르나르는 조교가 든 쟁반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찢어진 교재 첫 장과 헤이든의 진술서가 놓여 있었다.
"훼손된 교재는 확인했습니다."
엘리안이 말했다.
"그 공식으로 다친 학생은 확인하셨습니까?"
베르나르의 눈썹이 움직였다.
"공식은 수십 년 동안 사용됐다. 개인의 불편을 표준의 오류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수십 년 동안 기록하지 않은 불편이 있을 수 있겠군요."
교실 뒤쪽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베르나르가 엘리안을 내려다봤다.
"말장난으로 규정을 피할 생각이라면 그만두게. 임시 강사는 학생 안전에 의문이 생긴 방식의 수업을 즉시 멈춰야 한다."
"저도 그 규정에 찬성합니다."
엘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재현 검증을 신청하겠습니다."
헤이든이 웃음을 터뜨렸다.
"교양 강사가 학부 교수에게 검증을 신청한다고요?"
엘리안은 그를 보지 않았다.
"수업 방식에 이의가 있을 때 입회 아래 재현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마법학부 훈령 제십칠조. 표준식이 안전하다면 공개하는 편이 교수님께도 나쁘지 않겠지요."
베르나르의 시선이 잠시 조교에게 갔다. 조교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다만 학부장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허가하겠네."
베르나르는 곧바로 대답했다.
"단 오늘 수업은 중지다. 학생들은 비인증 공식을 더 연습해서는 안 된다."
엘리안은 출석부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연습은 멈추겠습니다. 기록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가 레온의 자리 쪽을 바라봤다.
"레온 카터. 네 손목은 어제 어떤 반응을 보였지."
레온의 어깨가 움찔했다. 붕대 감긴 손목이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베르나르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 학생이 문제인가?"
레온은 고개를 더 숙였다.
"개인의 마력 적응력에는 편차가 있다. 그 때문에 표준식을 바꾸자는 것인가."
엘리안은 레온에게 대답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려고 기록을 받았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강의실의 시선이 레온에게 쏠렸다. 그는 한참 붕대를 쥔 채 앉아 있었다. 손목을 드러내면 다시 재능 없는 학생이라는 말이 따라올 것 같았다.
그러나 손바닥 위에 떠 있던 불꽃도 떠올랐다. 아프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레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준식은 셋째 박자까지 괜찮았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작았다.
"넷째 박자에서 손목 안쪽이 당겼습니다. 다섯째 박자부터는 흐름이 돌아오는 것 같았고 여섯째부터는 아픈 걸 참으면서 외웠습니다."
헤이든이 코웃음 쳤다.
"그건 네가 약해서 그렇겠지."
레온의 손가락이 굳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세 줄은 달랐습니다. 둘째 줄에서 손목을 꺾으려다가 멈췄는데 통증이 가라앉았습니다. 불꽃도 만들었습니다."
"우연히 한 번 성공했다고?"
"그래서 검증하자는 겁니다."
엘리안의 말이 헤이든의 말을 잘랐다.
베르나르는 레온을 잠시 살폈다. 그 눈에는 걱정보다 계산이 먼저 떠올랐다.
"학생의 체질은 실험 조건으로 부적합하다.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하지."
"맞습니다."
엘리안은 쉽게 동의했다.
"그러니 한 명의 체질로 결론 내리지 말고 여러 명의 기록을 남기면 됩니다."
시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전날 수정한 답안과 새 과제지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맨 위에는 불꽃 핵의 편향 항목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저도 제출할 기록이 있습니다."
베르나르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라인하르트 양. 자네까지 이 수업의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건가?"
"옳다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닙니다."
시엘은 문장을 고르듯 천천히 말했다.
"표준식의 넷째 박자와 이후 보정이 서로를 필요하게 만든다는 점을 관찰했습니다. 세 줄 공식은 불꽃을 만들었지만 불꽃 핵이 긴 시간에도 편향되지 않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헤이든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안전하지 않다는 말 아닙니까."
"모른다는 말입니다."
시엘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쓰지 않겠습니다."
베르나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학생이 교수 앞에서 교재를 의심하는 시대가 됐군."
"학생이 손목을 숨기는 시대보다 낫습니다."
엘리안은 시엘의 기록을 받아 들었다.
베르나르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좋다. 재현은 하게. 하지만 복잡할 것 없다. 지금 여기서 표준식과 그 세 줄을 한 번씩 사용해 보면 된다."
헤이든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제가 표준식을 쓰겠습니다. 저는 문제 없을 겁니다."
"한 번의 성공은 증명이 아니다."
엘리안이 말했다.
"한 번의 실패도 증명이 아니지."
베르나르가 받았다.
"그럼 무엇을 원하는가."
엘리안은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어제 남겨 둔 세 줄 아래에 네 줄을 적었다.
같은 마력량.
같은 촉매.
각 공식 세 번.
반응 전부 기록.
"두 공식 모두 같은 조건에서 세 번씩 사용합니다. 불꽃의 크기와 지속 시간만 보지 말고 손목 통증과 마력 흔들림도 기록합니다."
"마력량이 다르면 큰 불꽃이 나와도 공식 덕분인지 사람 덕분인지 모릅니다. 촉매가 다르면 오래 타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레온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말을 마친 뒤 그는 자신이 끼어든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엘리안은 그를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나르가 비웃었다.
"학생들이 기록하면 공정해진다는 건가?"
"학생들이 직접 겪은 반응을 쓰면 적어도 누군가의 권위만 남지는 않습니다."
엘리안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교수님은 입회인이 되십시오. 시엘은 기록관을 맡고 레온은 자신의 반응을 쓰면 됩니다. 표준식 시연자는 헤이든이 하겠다고 했으니 그에게 맡기지요."
헤이든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마법학부 학생들도 부르겠습니다. 제 가문과 가까운 후원자들도 표준식이 망신당하는 꼴은 보고 싶어 할 테니까요."
"더 좋군요."
엘리안은 태연하게 답했다.
"증인은 더 많을수록 좋다."
베르나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공개 검증이 되면 임시 강사의 무모함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기록까지 공개되면 교재를 지키는 일도 깔끔하지만은 않을 터였다.
마침내 그가 조교에게 말했다.
"내일 첫 종이 울리기 전 소강당을 비워 두게. 마력 측정구와 표준 교재 원본도 가져와라."
조교가 급히 받아 적었다.
"그리고 이 수업 학생들은 전원 참석한다."
엘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전원은 아닙니다. 증언은 강요할 수 없으니까요."
몇몇 학생이 놀라 엘리안을 보았다.
"기록관도 시연자도 자원자만 받겠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와서 보고 떠나도 좋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적지 않고 결론만 말할 생각이라면 자리도 필요 없습니다."
베르나르의 눈가가 좁아졌다.
"그렇게 자신 있나?"
"자신이 아니라 절차입니다."
베르나르가 돌아서자 헤이든도 뒤따라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강의실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레온이 붕대 끝을 만졌다.
"저는 다시 표준식을 써야 하나요?"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마라."
엘리안은 새 종이를 꺼내 학생들 책상 위에 놓았다.
"네가 할 일은 네 손목에서 일어난 일을 적는 것이다. 표준식과 세 줄 중 무엇을 쓸지는 내일 네가 고른다."
레온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도망칠 길을 열어 준 말인데도 이상하게 발을 빼고 싶지 않았다.
"기록은 하겠습니다."
시엘이 말했다.
"불꽃 핵의 편향도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아직 모른다고 쓴 부분이니까요."
엘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항목은 지우지 않는다. 정통식이든 세 줄이든 문제가 있으면 그대로 쓴다."
뒷자리의 학생 하나가 손끝만 들었다.
"저는 교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넷째 박자에서 아픈 건 제가 박자를 틀린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생은 시선을 들지 못한 채 말했다.
"저는 촉매 무게를 재겠습니다. 적어도 그건 틀리지 않게 적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불꽃이 꺼진 시간을 적을게요."
다른 학생이 뒤따랐다.
손이 하나씩 올라왔다. 평소라면 출석만 채우고 나갔을 학생들이었다.
헤이든이 남긴 의자만 비어 있었다.
엘리안은 그 빈자리를 한번 보았다가 출석부를 펼쳤다.
"좋다. 그럼 오늘 과제는 바뀌었다. 내일 무엇을 확인할지 한 줄씩 적어라."
종이 위에 펜 끝이 닿는 소리가 강의실을 채웠다.
레온은 한참 망설이다가 첫 줄을 적었다.
넷째 박자에서 내 손목은 정말 아픈가.
시엘은 그 아래에 다른 문장을 적었다.
불꽃 핵의 편향은 어느 공식에서 생기는가.
엘리안은 두 문장을 읽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법학부 소강당 쪽 창문에는 이미 조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내일이면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교재 한 권이 증언대에 올라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