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뜻밖의 의뢰

73화: 뜻밖의 의뢰
황태자파 귀족들과 분기당 3,000골드 규모의 대규모 군수 계약을 타결 지은 지한은 자스민 상회 황도 지부의 최고급 VIP 라운지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황성의 명물인 따뜻한 레몬 허브 티와, 아스트라페 상단의 황도 유통 거점 설립을 위한 가죽 보고서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톡 톡-.
노크 소리와 함께 라운지의 프라이빗 룸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찰관 엘레나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섰다. 그녀의 등 뒤에는 늘 대동하던 근위 기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독대 요구였다.
“조용히 찾아와 사과드립니다, 강 특무관.”
엘레나가 후드를 벗으며 피로가 서린 굳은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이것은 황태자 전하의 공식 명령이 아닙니다. 저 개인의 직위와 가문의 사활이 걸린…… 극비 비공식 의뢰를 드리기 위해 사적인 자격으로 찾아왔습니다.”
지한은 찻잔을 들며 차분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어깨 위에서 둥둥 떠 있던 드론 아이리스가 그녀의 가쁜 호흡과 긴장한 심장 박동 주파수를 감지해 고글 화면에 띄웠다.
“사적인 의뢰라니, 변경의 해체사에게 다소 과분한 영광이로군요. 사찰관님.”
“비웃지 마십시오. 저에게는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엘레나가 탁자 위에 복잡한 톱니 룬 인장이 새겨진 낡은 구리 열쇠 하나를 올려놓았다.
“황성 루테시아의 지하 50미터 아래에는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황실 비밀 지하 서고’가 존재합니다. 그 서고 속에는 고대 제국의 잃어버린 전쟁 역사와, 황태자 전하의 치명적인 개인 사생활 및 왕권 직속 밀서 사본들이 보관되어 있지요. 문제는 서고를 지키던 50레벨 고대 마도 보안 장치인 ‘서고의 주시자 - 아르고스’가 알 수 없는 잔류 전류 오작동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한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50레벨의 고대 보안 장치.
“폭주한 기계를 해체하라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내부의 마도 트랩들이 멋대로 작동하여, 황실의 하급 마법사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소식이 제2황자파의 귀에 들어가 붉은 불꽃 같은 랭커 사냥단이나 도굴꾼들이 먼저 우회 진입하여 서고의 비밀 문서를 가로챈다면, 황태자 전하와 저의 목줄은 완전히 잘려 나갈 것입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서고의 주시자 아르고스를 완벽하게 무소음으로 해체해 주십시오.”
지한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댔다.
“50레벨 보스를 잡는 건 제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개인 의뢰라면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명세서가 따르겠지요?”
엘레나는 잠시 망설이다 품에서 은색 마도 카드를 꺼냈다.
“보상으로 서고 내부에서 분해해 얻는 모든 고대 기계 장치와 엔진 실린더의 소유권을 100% 자네에게 귀속시키겠습니다. 또한, 사설 보상으로 태양의 마탑 ‘제2급 극비 도서관’을 3일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상급 도서 열람증을 건네지요. 이 열람증만 있다면 마탑의 최상급 기계 설계도나 마도 기법을 마음껏 복사할 수 있습니다.”
마탑의 제2급 극비 도서관 3일 열람증.
지한에게 그것은 어떠한 보석이나 금화보다 가치 있는 노다지였다. 2차 전직인 ‘마도 철혈 해체사’의 권능과 기술을 신의 반열로 끌어올려 줄 고대 마법 공식들이 가득 차 있는 보물 창고로 가는 직행 통행증이었기 때문이다.
“의뢰를 수락하지요.”
지한은 구리 열쇠와 은색 카드를 챙겨 인벤토리에 넣었다.
“안내해 주십시오. 서고의 주시자를 해체하러 가겠습니다.”
몇 시간 뒤, 지한과 엘레나는 루테시아 중앙 상업 지구 지하 깊숙한 곳의 낡은 빗물 배수 해치를 열고 하강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터널 내부로 들어가 구리 열쇠를 벽면의 고대 열쇠 구멍에 밀어 넣자, 웅장한 톱니바퀴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대리석 격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고대 비밀 서고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습한 흙 냄새와 오래된 종이, 그리고 마도 장치의 전자기 회선 타는 냄새가 차갑게 코끝을 찔렀다. 지한은 오른손의 전설 등급 뼈칼 [아스트라페 - 리레코드]를 가볍게 쥐며 어둠 속으로 첫 발걸음을 뗐다. 50레벨 보스 아르고스를 완벽하게 조각내고, 마탑의 전설적인 지식의 핵심을 도려내기 위한 지한의 잔인하고 정교한 해체의 칼날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번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