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실전된 가치

6화: 실전된 가치
쉬이이이이익-!
어두운 동굴 공기를 찢으며 기분 나쁜 고온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팀 스파이더의 가열로에서 뿜어낸 백색의 증기였다.
"뜨거워! 젠장, 접근하기가 힘들어!"
크리스가 장패를 들어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9레벨 몬스터답게 스팀 스파이더들의 협공은 매서웠다. 고열의 스팀이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궁수와 마법사의 공격 타이밍이 어긋나고 있었다.
스팀 스파이더 한 마리가 벽을 박차고 크리스의 방패 측면을 향해 도약했다. 예리한 가위 모양의 강철 다리가 번뜩였다.
"크리스 씨, 9시 방향! 방패를 15도만 내리십시오!"
고목 뒤에서 기계 거미들의 움직임을 매섭게 노려보던 지한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시야 속에서 '기계 구조 인지' 스킬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늑대의 약점을 집어내듯 거미의 이동 라인을 투시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반사적으로 지한의 지시대로 방패 각도를 꺾었다.
깡-!
스팀 스파이더의 강철 다리가 방패 표면을 미끄러지며 불꽃을 튕겼다. 정확한 방어였다.
"마법사님! 지금 저 거미의 배 하단에 있는 압력 조절 밸브에 파이어 볼을 쏘세요! 거기가 압력이 집중되는 임계점입니다!"
"알았어요!"
마법사가 지팡이를 뻗자, 그녀의 손끝에서 완성된 화염 구가 지한이 가리킨 기계 거미의 하부를 강타했다.
쿠웅-!
정확한 약점 타격이었다. 하단 밸브가 폭발하며 가열로의 증기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스팀 스파이더는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츠츠츠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해 경련을 일으켰다.
"궁수님, 쓰러진 녀석의 중앙 태엽 기어를 저격하세요!"
"오케이!"
궁수가 쏜 화살이 팽팽한 바람을 뚫고 거미의 망가진 틈새에 박혔다. 콰지직하는 금속 파괴음과 함께 스팀 스파이더 한 마리가 완전히 작동을 멈추었다.
지한의 기막힌 약점 오더 덕분에 파티원들은 한결 수월하게 나머지 세 마리의 기계 거미를 격파할 수 있었다.
툭, 툭, 스스슥…….
네 마리의 기계 거미들이 차가운 광산 바닥에 고철 덩어리가 되어 널브러졌다.
"하아, 하아…… 지한 형씨. 전투 요원도 아니면서 몬스터 약점을 그렇게 정확하게 짚어내다니, 대체 정체가 뭔가?"
크리스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경이로운 눈으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지한은 슬며시 검은 도구 상자를 열며 대답했다.
"직업병 같은 겁니다. 기계는 설계된 구조대로만 움직이니까요."
지한은 곧바로 사체 해체에 착수했다.
일반 동물 몬스터와 달리 기계 몬스터는 분해 과정이 훨씬 정교하고 정밀해야 했다. 기름때와 그을음으로 가득 찬 강철 외피 아래에서 온전한 태엽과 톱니바퀴, 그리고 압력 밸브를 상처 없이 추출해 내는 것은 공장의 베테랑 정밀 조립공이었던 지한에게 가장 유리한 작업이었다.
그는 미세 갈고리로 강철 다리의 접합 핀을 고정하고, 톱날 족집게를 이용해 내부에 촘촘히 얽혀 있는 구리 마력 도선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서각, 팅. 툭.
기계 부품들이 마치 미리 맞춰둔 퍼즐 조각처럼 지한의 손끝에서 부드럽게 분리되어 나왔다.
[정밀 해체를 완료했습니다.]
[재료 보존율 148%!]
[획득한 전리품]
- 스팀 스파이더의 온전한 강철 다리 (상급) x 8
- 정밀한 청동 톱니바퀴 세트 (상급) x 4
- 초소형 증기 밸브 (마법) x 2
- 마력석 파편 (일반) x 12
"세상에……."
마법사가 입을 틀어쥐었다.
"스팀 스파이더를 사냥해서 마법 등급의 증기 밸브가 두 개나 나왔다고요? 보통은 고철 부스러기 한두 개 나오는 게 고작인데……!"
마법 공학 장비 제작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증기 밸브'는 대도시 마법사 길드나 대장간에서 개당 최소 15실버 이상에 불과 몇 초 만에 팔려나가는 인기 재료였다. 밸브 두 개에 강철 다리, 태엽 세트까지 합치면 방금 한 번의 전투로 자그마치 40~50실버 상당의 재료를 획득한 셈이었다.
"이거 진짜 노다지 자루를 들고 다니는 기분이군!"
크리스가 주먹을 쥐며 흥분했다. 지한 역시 내심 짜릿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동시에 그의 귀에 가장 기다리던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띠링!
[스캐벤저 직업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1차 전직을 위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퀘스트 목표인 '녹슨 고대 코어'를 획득하면 전직이 완료됩니다.]
"좋아, 숙련도는 다 채웠다."
지한의 눈에 서린 열망이 한층 더 짙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지하 2층으로 내려가 전직 퀘스트의 목표인 고대 고철 골렘을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일행은 정비를 마치고 어두운 경사로를 따라 광산의 더 깊은 곳, 지하 2층으로 진입했다.
지하 2층으로 내려서자, 사방의 공기가 얼어붙을 듯 차가워졌다. 벽면의 철광석들은 마력에 오염되었는지 희끄무레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쯤 전진했을까. 일행의 앞을 거대하고 육중한 청동 문이 가로막았다.
문의 표면에는 고대 마법 문양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회전식 잠금장치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문 너머가 바로 고대 골렘이 잠든 봉인 구역이군."
크리스가 문을 밀어보았으나,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력 봉인이 걸려 있어요. 억지로 부수려다간 광산 전체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마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한은 천천히 청동 문 앞으로 걸어가 손을 얹었다.
그의 눈앞에 '기계 구조 인지' 스킬과 '해체' 명령이 동시에 반응하며 복잡한 청동 문 내부의 잠금장치 기믹이 반투명한 푸른빛의 입체 도면으로 설계되듯 나타났다.
"억지로 부술 필요 없습니다."
지한의 뼈칼 끝날이 청동 문 중앙의 톱니바퀴 틈새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제가 해체하겠습니다."
숨겨진 직업의 문이, 지한의 손끝에서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