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사후의 빗장

56화: 사후의 빗장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던 피의 철장 용병단원들의 비명이 마침내 완전히 멎었다.
사방은 다시금 기분 나쁠 정도의 무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한은 연기를 뿜어내는 왼팔의 마도 공학 의수 다이얼을 원위치로 돌리며, 쓰러진 발록의 흔적 앞으로 걸어갔다.
스으으으-.
빛의 먼지로 산산이 조각나 소멸해 가던 발록의 잔해 밑바닥에, 녀석이 남긴 전리품 더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력 해체 가동.]
- 대상: 용병단장 발록의 유실 장비 및 블랙 골드 탐사대의 수송 궤도 상자.
- 해체 진행률: 20%... 60%... 100%
- 획득 목록: ‘피의 철장 단장의 징박힌 가죽 장갑 (영웅)’, ‘고밀도 그레이 아이언 주괴’ 15개, ‘손상된 마도 전자기 측정기’ 2개, ‘황도 군수 보급 연금 물약’ 20개.
지한은 전리품들을 능숙하게 분류해 길드 인벤토리에 넣은 뒤, 뼈칼 [아스트라페]를 쥔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30여 명에 달하는 탐사대와 용병들의 흔적이 전자기 폭풍의 여파로 하얗게 그을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지한 형님, 현장 정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황도에서 대규모 조사단이 다시 파견될 텐데요.”
크리스가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의 곁에는 사냥개 군단을 역송환시키고 숨을 고르는 아스트라페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결말로 위장해야지.”
지한은 차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곳은 고대 제국의 위험 장막이 쳐진 검은 안개 숲의 최심부다. 블랙 골드 상단 녀석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제단의 권능을 강제로 건드렸고, 그 여파로 제단의 ‘고대 방어 프로토콜’이 폭주해 벼락 전자기 폭풍이 불어와 전멸한 것으로 만든다.”
지한은 단상으로 다어가 제단의 제어 장치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원격 마력 쇄도.”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미약한 전자기 파동이 제단의 잔류 회로 일부를 역으로 단선(Circuit Break)시켰다.
파지지직-! 쾅!
제단 표면에 강제 과부하 흔적이 뚜렷하게 남으며, 마치 외부인이 강제로 레버를 꺾다가 제어반이 폭발해 전자기 폭풍을 사방으로 방출한 듯한 완벽한 기계적 흉터가 완성되었다. 지한을 비롯한 아스트라페 길드가 개입한 마력 주파수의 지문은, 그의 영역 해체 권능 아래 단 한 톨도 남지 않고 깨끗하게 지워졌다.
“철수한다. 흔적을 남기지 마라.”
“네, 형님!”
다음 날 아침, 제국 국경 전체는 물론 황도 정가까지 뒤흔드는 초특급 전갈이 타전되었다.
제2황자의 든든한 금줄인 거대 길드 ‘블랙 골드 상단’의 정예 탐사대와 45레벨 하이랭커 용병단인 ‘피의 철장’ 30여 명이 국경 너머 검은 안개 숲 속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당했다는 정보였다.
오르비스 영주관, 백작의 집무실.
펠릭스 백작은 소파에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도의 긴급 속보 문서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차갑고 표정 없는 얼굴로 서 있는 황도 밀사 엘레나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서 있는 지한이 마주 서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제국 2황자 전하께서 직접 후원하시는 블랙 골드 상단이 국경 숲에서 전멸하다니……! 엘레나 님, 대체 경위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백작이 다급하게 물었다.
엘레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문서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태양의 마탑에서 즉각 파견한 원격 위성 감지 법사들의 1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랙 골드 상단이 불법적으로 황태자 전하의 관할 영역인 국경 너머 고대 철혈 제단을 강제 발굴하려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대 제단의 방어 기계 장치와 전자기 폭풍이 제어력을 잃고 폭주했고, 멍청하게도 그 폭풍을 정면으로 맞아 자멸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엘레나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지한을 쏘아보았다.
“강 특무관, 당신은 이 사건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까? 며칠 전 그 장벽 근처에 아스트라페 길드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요.”
지한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눈동자를 마주했다.
“저희 길드는 영주님의 서약에 따라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 성벽 외곽 순찰대의 주기를 좁혔을 뿐입니다. 블랙 골드 상단이 제국의 국경 조약을 무시하고 불법 유적 발굴을 감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오히려 그들의 무모함 때문에 고대 제단의 위험성이 제국 전체에 증명된 셈입니다.”
엘레나는 지한의 대답에 반박할 수 없었다.
태양의 마탑이 수거해 온 현장의 잔해 데이터는 완벽하게 ‘기계적 강제 제어 과부하 폭발’을 가리키고 있었고, 지한이 개입했다는 마력 흔적은 우주의 먼지만큼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황태자파는 큰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2황자 세력이 국경을 넘어 고대 무기를 독점하려다 자멸했다는 소식은, 2황자파 귀족들에게 거대한 도덕적, 정치적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황태자 직속인 엘레나로서도 현 상황을 ‘제단의 봉인 폭주로 인한 자멸’로 종결짓는 것이 자신의 실적과 파벌에 가장 이로운 결말이었다.
“……그렇군요. 운이 좋았다고 해 두죠, 강 특무관.”
엘레나가 차갑게 돌아서며 접견실 문을 열었다.
“이번 사건으로 검은 안개 숲 최심부는 완전히 폐쇄 조치될 것입니다. 더 이상 고대 유적을 탐하려는 멍청한 자들이 국경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엘레나가 이끄는 사찰단이 오르비스 영주관을 떠나 황도로 철수하는 모습을 보며, 펠릭스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허어…… 강 특무관. 자네의 그 철두철미한 은폐력과 대담함에는 정말 혀를 내두르겠네. 자네가 우리 백작가와 동맹인 것이 내 인생 최대의 다행이군.”
백작은 이제 지한을 단순한 특무관이나 신흥 길드의 장이 아닌, 백작가의 생사여탈권을 쥘 수도 있는 거대한 거물로 깊이 경외하기 시작했다.
지한은 백작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동맹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해체사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영주님.”
서재를 나온 지한은 자신의 인박스를 열었다.
자스민 상회의 루완을 통해 전달된 황도의 새로운 비즈니스 루트와, 전멸한 블랙 골드 상단의 동부 이권이 공백으로 남겨졌다는 첩보가 들어와 있었다.
거대 세력의 침입을 보이지 않는 사후의 빗장으로 완벽하게 걸어 잠근 지금.
지한과 아스트라페 길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오르비스를 넘어 제국 동부 전체의 지하 경제를 완전히 움켜쥐기 위한 위대한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