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황도의 첫 번째 밀서

54화: 황도의 첫 번째 밀서
자스민 상회와의 은밀한 독점 계약이 체결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오르비스 시내의 아스트라페 길드 비밀 집무실 탁자 위로 밀봉된 가죽 주머니 하나가 떨어졌다.
탁-.
자스민 상단의 특급 전령이 극비리에 배달하고 간 황도의 내부 정보 보고서였다.
지한은 차분하게 보고서의 붉은 밀랍 봉인을 뜯어내고 양피지 문서를 펼쳤다. 2차 전직 스킬인 ‘철혈의 해체 영역’에서 파생된 고도의 집중력 덕분에 복잡한 황도의 정치 상황과 인물 관계도들이 머릿속에 와이어프레임처럼 체계적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역시 단순한 사찰이 아니었군.”
지한의 눈이 보고서의 한 행에 멈췄다.
[황도 내부 정보 보고서 - 극비]
- 내용 1: 황태자 직속 사찰관 엘레나는 현재 황태자파의 핵심 감시관이지만, 황실 내 반대 세력인 ‘제2황자파’와 그들을 후원하는 제국 최대 군수 길드 ‘블랙 골드 상단’의 거센 견제를 받고 있음.
- 내용 2: 블랙 골드 상단은 최근 제2황자파의 비호를 받으며 제국 동부 국경선 너머 검은 안개 숲 일대에서 고대 제국 유적의 잔해를 은밀히 발굴하여 독점적인 기계 군단 무기를 생산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임.
- 내용 3: 이를 위해 블랙 골드 상단이 고용한 45레벨 이상의 베테랑 전투 용병단 ‘피의 철장(Blood Iron Cage)’이 대규모 탐사대를 이끌고 조만간 검은 안개 숲 최심부로 진출할 예정임.
“블랙 골드 상단이라…….”
지한은 턱을 괴었다.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거대 길드이자 제2황자의 자금줄인 그들이 검은 안개 숲 최심부로 향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지한이 이미 에너지를 해체 흡수해 버린 ‘철혈의 고대 제단’을 노린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들이 제단에 도달하여 제단의 고유 동력이 이미 무손실로 완벽하게 해체되어 강탈당했음을 알게 된다면, 오르비스 지역에서 유일하게 마도 공학 기술을 휘두르는 아스트라페 길드와 펠릭스 백작가를 배후로 지목해 대대적인 압박을 가해올 것이 뻔했다.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겠군요, 지한 형님.”
옆에서 보고서를 함께 읽던 크리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블랙 골드 상단 녀석들은 거추장스러운 제국의 법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녀석들입니다. 제2황자의 이름 뒤에 숨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는 무법자들이지요. 피의 철장 용병단 역시 45레벨 이상의 하이랭커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정면 대결은 위험합니다.”
“정면 대결을 할 필요는 없다.”
지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그들이 노리는 제단은 이미 내 통제 하에 있다. 제단의 통제 장치를 역이용하면 그 검은 안개 숲 전체가 녀석들의 거대한 무덤이 될 테니까.”
지한은 어깨 위에 앉은 해체 드론 아이리스의 센서를 조율했다.
“크리스, 정예 인원 5명만 선발해라. 블랙 골드 녀석들이 제단 근처에 발을 들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제단의 고대 방어 트랩망을 역동기화시켜 가동한다. 그들이 숲의 안개 속에서 헤매다 트랩에 걸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거다.”
“네, 형님! 즉시 출정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몇 시간 뒤, 지한 일행은 야간 장벽 통행권을 이용해 오르비스의 강철 문을 통과하여 다시금 검은 안개 숲으로 신속하게 은밀 진입했다.
바람을 타고 스쳐 지나가는 안개는 며칠 전보다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한의 눈가에 밀착된 [마법 공학 감지 고글]과 공중을 선회하는 아이리스 드론은 숲속의 미세한 동선과 마력 궤적을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스스스스-.
숲의 최심부, 잿빛 석조 기둥들이 늘어선 ‘철혈의 고대 제단’에 도달한 지한은 즉시 제단 중앙의 단상으로 걸어갔다. 2차 전직 각성 당시 에너지를 흡수하고 남은 제단의 석판 회로에는 여전히 은은한 잔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철혈의 해체 영역 가동.”
지한의 전신에서 반경 20미터 영역으로 푸른 전자기 역장이 방출되며 제단 전체를 감쌌다.
[제단의 메인 제어 그리드(Grid) 해체 조율 시작.]
- 동기화율: 10%... 50%... 100%
- 완료: 제단 주변의 고대 방어 시스템 통제권이 유저 ‘강지한’에게 임시 위임되었습니다.
[고대 방어 시스템 트랩 목록:]
- 안개 방전 과부하 (Mist Discharging) - 숲속의 검은 안개를 전자기 전류로 충전하여 영역 내 침입자들에게 초당 500의 지속 전격 피해 부여.
- 철혈의 경비견 격납고 강제 방출 - 기지 하부에 대기 중인 32레벨 경비 사냥개 20마리를 특정 좌표로 강제 소환.
지한은 고글의 지도 윈도우를 띄워, 아이리스가 숲의 초입에서 감지해 실시간으로 전송해 오는 붉은색 점들의 무리를 주시했다.
블랙 골드 상단의 탐사대와 피의 철장 용병단 무리였다. 그들은 횃불을 밝히며 숲의 안개를 헤치고 빠르게 제단 방향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붉은 점들의 평균 레벨은 43에서 45에 달하는 정예 강자들이었다.
“탐사대의 선두가 첫 번째 전격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트랩을 터트린다.”
지한은 제어 단상 위의 톱니바퀴 레버를 꺾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용병들이라 해도, 고대 제국의 방어 프로토콜을 온몸으로 맞서며 제단까지 무사히 걸어오지는 못할 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단상의 마지막 룬 배선을 강하게 그어 내렸다. 검은 안개 숲 전체가 웅장한 번개 진동과 함께 서서히 붉은색 전자기 스파크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넝마주이 출신 지한이 거대 세력 블랙 골드를 사냥하기 위해 던진 보이지 않는 죽음의 덫이, 어두운 숲속에서 조용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