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보이지 않는 덫

52화: 보이지 않는 덫
황도의 밀사 엘레나가 선포한 광산 사찰 시한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지한은 곧바로 아스트라페 길드의 최정예 요원들을 이끌고 그레이 아이언 광산 하부의 철혈 기지로 내려갔다. 광산 입구와 기지를 연결하는 수직 갱도의 차단벽 앞.
“지한 형님, 황도 태양의 마탑 소속 마법사들은 미세한 마력 파동조차 역추적하는 ‘마력 나침반’을 들고 다닙니다. 일반적인 물리 벽으로는 기지의 입구를 숨길 수 없습니다.”
크리스가 땀을 흘리며 복잡한 마법 차단 스크롤들을 바닥에 깔아두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한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런 일회성 마법 스크롤들은 오히려 태양의 마탑 법사들의 의심을 사기에 딱 좋다. 인위적으로 마력을 차단한 흔적을 그들이 놓칠 리 없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가장 완벽한 은폐는, 그들이 쏘아 보낸 탐지 마력을 자연스럽게 ‘일반 흙과 바위’의 주파수로 동화시켜 소멸시키는 것이다.”
지한은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단단히 봉인된 수직 갱도 입구의 암반 벽면에 손을 얹었다. 2차 전직으로 획득한 전설 등급의 권능이 그의 손끝에서 맥동하기 시작했다.
“철혈의 해체 영역 (Iron-Blood Dismantling Territory) 가동.”
위이이잉-.
지한을 중심으로 투명한 마력의 구체가 반경 20미터 영역을 뒤덮었다. 영역 내에 존재하는 암벽의 성분 분포도와 균열 상태, 그리고 공기 중을 떠도는 기계 장치들의 잔류 전자기 주파수들이 지한의 [마법 공학 감지 고글]에 실시간 와이어프레임 구조로 드러났다.
“이 영역 내부의 모든 기계적 신호를 ‘해체 조율’한다.”
지한은 의수의 제어 다이얼을 꺾고 미세한 마력 간섭 파동을 내뿜었다.
철혈 기지 통제 패널에서 새어 나오는 모든 강력한 에너지가 지한의 해체 영역 벽면에 닿는 순간, 파동이 미세하게 쪼개지고 흩어지며 완벽한 무취, 무음의 자연 마나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외부에서 감지하기에는 그저 기압이 약간 높은 지하 공동(空洞)의 자연적인 마나 흐름에 불과하게 조작한 것이다.
“준비는 끝났다. 다들 광산 상부로 올라가 평소처럼 광석을 채굴해라.”
“네, 형님!”
다음 날 아침.
오르비스 북부 산맥의 차가운 안개를 뚫고, 엘레나가 이끄는 황실 사찰단이 마침내 그레이 아이언 광산 초입에 도착했다.
엘레나는 여전히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인상을 유지한 채, 한 손에 정교하게 가공된 황동제 나침반을 들고 있었다. 나침반의 정중앙에 박힌 둥근 마법 수정이 미세하게 회전하며 사방의 마력 농도를 계측하고 있었다.
“광산 안쪽으로 안내하시지요, 강 특무관.”
엘레나가 차가운 푸른 눈동자로 지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은빛 강철 대검을 멘 황실 근위 기사 두 명과, 로브를 깊게 눌러쓴 세 명의 하급 사찰 법사들이 마법 지팡이를 든 채 대기하고 있었다.
“영광입니다. 안내해 드리지요.”
지한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사찰단을 이끌고 어두운 갱도 내부로 들어섰다.
갱도 내부에는 수십 명의 광부 유저와 백작가가 파견한 인부들이 먼지를 날리며 그레이 아이언 광석을 캐내어 수레에 싣는 활기찬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깡! 깡! 깡!
곡괭이 소리가 동굴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엘레나는 갱도 벽면에 노출된 회색빛 광석들을 유심히 살피며 마력 나침반의 눈금을 수시로 점검했다. 하지만 상부 구역은 말 그대로 지한이 손을 대지 않은 일반 광산 구역이었기에 특이점은 잡히지 않았다.
“이곳까지는 평범한 마도 광산이군요. 하지만 골드 스파이더 상회가 굳이 이 정도 광산의 입구를 마도 장벽으로 꽁꽁 묶어 두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더 깊은 곳이 있겠지요?”
엘레나의 예리한 유도 질문에 지한은 담담하게 수직 갱도 차단벽이 위치한 광산의 가장 깊숙한 막다른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회의 대행수 마르쿠스는 탐욕스러운 자였습니다. 광산의 채굴권 지분을 독점하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스스로 장벽을 친 것에 불과합니다.”
마침내 도착한 갱도의 밑바닥.
그곳은 거대한 암반 벽으로 가로막힌 막다른 통로였다. 이 암벽 너머 10미터 뒤에 바로 고대 철혈 기지로 통하는 수직 하강 로프와 강철 격문이 숨겨져 있었다.
엘레나가 멈춰 서서 황동 나침반을 굳게 쥐었다. 나침반 속의 수정 바늘이 갑자기 미세하게 떨리며 붉은색 경고 빛을 한 톨 깜빡였다.
“……여기군요.”
엘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암반 벽 너머에서 미약하지만 극도로 밀도가 높은 고대 제국의 금속 마력 주파수가 느껴집니다. 숨겨진 공동이 있는 게 분명해요.”
그녀가 손을 들어 지팡이를 치켜세우자,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 끝의 마나를 활성화했다.
“태양의 감지 파동 (Solar Detection Wave)!”
징-! 징-! 징-!
세 가닥의 붉은 마법 탐지 광선이 암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광선이 바위에 닿는 순간, 마력의 메아리가 되돌아오며 벽 뒤의 구조적 빈 공간과 철제 격문을 강제로 스캔해 낼 터였다.
지한은 소매 아래로 오른손 가락을 살짝 퉁겼다.
‘지금이다.’
“원격 마력 쇄도 (Remote Mana Surge).”
지한의 전신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번개 전자기 기류가 소리도 없이 방출되어, 암벽을 향해 뻗어 나가던 세 가닥의 탐지 광선 끝자락에 정확하게 간섭해 들어갔다.
스으으으-.
지한이 사전에 쳐 둔 ‘철혈의 해체 영역’ 내부에서, 지한의 원격 마력은 엘레나 일행이 방출한 탐지 마법의 주파수 파형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쪼개 버렸다. 탐지 파동이 바위 뒤의 격문에 부딪혀 되돌아오기도 전에, 그 전자기적 울림을 ‘일반 진흙과 물이 가득 찬 습한 지하 암반층’의 신호 파형으로 왜곡하여 분해 재조립한 것이다.
피이이잉-.
다시 되돌아와 엘레나의 황동 나침반에 수신된 마법 메아리의 결과값은 전혀 달랐다.
[마력 나침반 수신 데이터:]
- 대상 벽 뒤: 100% 일반 조밀 암반 및 지하 지하수맥.
- 잔류 마도 반응: 0.01%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잡 마나)
“……어?”
엘레나의 나침반 수정 바늘이 완전히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탐지 파동을 쏘아 보냈던 법사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특사님, 벽 뒤에는 아무런 공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꽉 막힌 거대한 지하 암석 지층과 지하수맥뿐입니다.”
하급 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보고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이 근처에서 고대 마도 유물의 잔류 진동이 잡혔었는데.”
엘레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황동 나침반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나침반의 결과는 완벽하게 정적인 ‘일반 바위’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한은 엘레나를 쳐다보며 예의 바르지만 다소 냉소적인 조소를 흘렸다.
“이곳 동부 국경 산맥은 고대부터 잡다한 저급 마법 광물들이 넓게 퍼져 있어, 황도의 정밀한 기기들이 종종 오작동을 일으키는 오염 영역입니다. 특사님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 나침반의 제어 룬이 뒤틀린 모양이군요.”
엘레나는 지한의 조롱 섞인 해명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강한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지만, 제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태양의 마탑 공식 탐지 마법이 ‘일반 바위’라는 판정을 완벽하게 내려준 이상 강제로 벽을 부수고 영주 영토의 광산을 파헤칠 명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확실히 변경 지대의 마력 기류는 기분 나쁘게 뒤틀려 있군요.”
엘레나는 지팡이를 거두며 몸을 돌렸다.
“사찰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강 특무관. 나는 황도로 돌아가 특무 사찰 보고서를 작성할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거지는 계속해서 감시받을 테니까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특사님.”
지한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지한은 가슴속 깊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승리의 미소를 가볍게 띠었다. 제아무리 황도 마탑의 예리한 사냥개라 할지라도, 모든 마력과 구조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분해하는 전설적인 마도 철혈 해체사의 은폐 덫 앞에서는 한낱 눈먼 소경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