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황도에서 온 밀사

51화: 황도에서 온 밀사
검은 안개 숲에서의 폭풍 같은 전직 각성을 치르고 오르비스 성으로 귀환한 지한의 일상은 눈에 띄게 고요해졌지만, 내실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었다.
아스트라페 길드는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상부 채굴망을 가동하여 고순도 철강과 마도 광석을 오르비스 영주관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가 독점하며 오르비스의 피를 빨아먹던 상권은 완전히 아스트라페 길드의 양지 상단으로 빠르게 흡수 재편되었다.
[알림: 아스트라페 상단의 주간 누적 수익이 정산되었습니다.]
- 총 수익: 140골드 50실버
- 세금 및 영주 납부금 제외 순수입: 98골드 35실버
1골드가 현실 가치로 수백만 원에 육박하는 아르카디아의 현재 시세로 볼 때, 지한과 아스트라페 길드가 거머쥐는 부의 규모는 이미 지방의 소영주나 대형 상단 지부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지한은 펠릭스 백작과의 서약대로 광산 하부의 유실된 철혈 기지를 완벽히 비밀에 부쳤다. 길드의 최정예 신뢰 유저들만을 선별하여 철혈 기지의 기계 공업소에서 영웅 등급 부품과 고대 마도 회로를 분해 정제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았다. 이 모든 것은 황실 특무관의 치외법권 권한하에 극비리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평화는 생각보다 빨리 흔들렸다.
“지한 형님, 영주관의 펠릭스 백작이 긴급 소환장을 보냈습니다. 황도에서 황실의 밀사가 오늘 아침 일찍 오르비스 영주관에 직행해 도착했다고 합니다.”
크리스가 집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봉인된 양피지 서신을 지한에게 건넸다.
“황도의 밀사?”
지한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어 서신을 받아들었다. 서신의 표면에는 백작가의 인장 외에도 황실 직속 마탑인 ‘태양의 마탑’을 상징하는 황금빛 태양 문양이 붉은 왁스 위에 깊게 찍혀 있었다.
“밀사의 이름은 엘레나. 황태자의 총애를 받는 직속 마법사이자, 황실 특무관의 사찰 권한을 가진 고위 특사라고 합니다.”
“목적이 뭐라더냐?”
“겉으로는 골드 스파이더 상회의 몰락과 동부 국경 상권의 재편 상태를 점검하러 왔다고 하지만, 백작가의 첩보에 따르면 며칠 전 국경 숲 일대에서 감지된 ‘거대 고대 마력 방전 현상’을 조사하러 온 것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지한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거대 고대 마력 방전 현상.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지한이 고대 제단에서 2차 전직 에너지를 해체해 흡수할 때 발생한 마력의 폭풍을 뜻하는 것이었다. 황실 마탑의 광범위 마력 감지망에 그 흔적이 포착된 모양이었다.
“가봐야겠군. 크리스, 기지 근처의 경비 라인을 전원 철수시키고 광산 입구를 일반 채굴 모드로 고정해라. 조금의 빌미도 줘서는 안 된다.”
“네, 형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지한은 옷자락을 털고 일어나 오르비스 영주관으로 향했다.
2차 전직 ‘마도 철혈 해체사’로 전직한 이후 그의 걷는 태도나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은 대단히 정밀하게 제어되고 있었으나, 상대가 황도 마탑의 고위 마법사라면 방심할 수 없었다.
영주관 접견실.
백작이 앉던 상석 옆자리에 짙은 푸른색 마법 로브를 걸친 젊은 여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올린 그녀는, 차갑고 푸른 눈동자로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지한을 쏘아보았다.
[황실 밀사 - 엘레나 드 아르투아 (Lv.48) - 마도 법사]
- 설명: 황실 직속 태양의 마탑 소속 상급 마법사이자, 황태자 직속의 특무 사찰관입니다. 고대 마도 유물 감지 능력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48레벨. 지한보다 무려 8레벨이나 높은 강자였다. 게다가 그녀의 곁에는 은빛 플레이트 메일을 두른 45레벨의 황실 근위 기사 두 명이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근엄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오, 오게! 강 특무관. 이쪽은 황도에서 오신 특사 엘레나 님이시네.”
펠릭스 백작이 평소와 달리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지한을 소개했다.
지한은 가슴에 손을 얹어 제국 황실 특무관의 격식에 맞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제국 동부 특무관 강지한입니다. 황도의 존귀한 사절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엘레나는 대답 대신 찬바람이 쌩 부는 눈빛으로 지한의 전신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그녀의 시선이 지한의 왼팔, 로브 소매 아래로 언뜻 보이는 [철혈의 마도 공학 의수]에 닿는 순간 푸른 안광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 의수, 기묘하군요.”
엘레나가 맑고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침묵을 깼다.
“오르비스에서 상권을 장악한 ‘아스트라페’ 길드의 장이자 황실 특무관의 지위를 가졌다고 해서 어떤 호걸인가 했더니, 평범한 해체사 출신의 넝마주이였군요. 그런데 그 왼팔에 장착된 기계 장치는 제국의 일반적인 마도 공학 기술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파동을 내뿜고 있습니다.”
지한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제국의 변경 지대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해체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고대 잡철들을 조립해 만든 조잡한 보조 의수일 뿐입니다. 황도의 화려한 마탑 기준에는 그저 고철 조각으로 보이겠지요.”
“고철 조각이라.”
엘레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한에게 걸어왔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공기 중에 서늘한 얼음 마력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 고철 조각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파동은…… 며칠 전 검은 안개 숲 전체의 마력망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고대 에너지 해체 반응’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강 특무관, 숨길 생각 마십시오. 당신은 숲속에서 고대 철혈 기지의 잔해나 제단을 건드린 것이 아닙니까?”
접견실 내부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급강하했다. 백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둘의 눈치를 보았고, 황실 기사들의 손가락이 칼날 집을 움켜쥐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하지만 지한은 눈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엘레나의 푸른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특사님, 저는 제국 황실의 치외법권 권한을 위임받은 특무관입니다. 국경선 일대의 치안과 자원 회수 권한은 전적으로 제 책임하에 조율됩니다. 가령 제가 고대 유적의 잔해를 해체해 제국의 안전을 도모했다 한들, 그것이 황태자 전하의 밀명에 반하는 행위입니까?”
지한의 단호하고 논리적인 반박에 엘레나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특무관의 권한을 정면으로 걸고 넘어지는 지한의 태도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과연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군요, 강 특무관.”
엘레나는 지한에게서 반 보 물러서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공식적인 조사는 일단 접어두지요.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는 동부 국경의 고대 철혈 병기들의 행방에 대해 대단히 큰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만약 당신이 제국에 해가 되는 숨겨진 전력을 독점하려 한다면, 황도 마탑 전체가 당신의 적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접견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조만간 광산 내부를 직접 사찰할 테니 준비해 두십시오. 당신의 그 조잡한 고철 의수가 진짜 고철인지, 아니면 제국을 뒤흔들 반역의 불씨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어요.”
쾅-.
접견실 문이 닫히고 그녀의 차가운 마력이 사라지자, 백작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강 특무관…… 조심하게. 저 여자는 황도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개라네. 광산 하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게 맞겠지?”
지한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백작님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의 눈가 너머, 고글의 인터페이스 속에서 드론 아이리스가 수집한 엘레나의 마력 데이터 배선들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황도의 개입.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시기가 빨랐다.
하지만 2차 전직을 완성한 지한에게 황도의 사냥개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지를 지키고 황실 마탑의 기술을 거꾸로 해체해 흡수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지한은 소매 아래의 마도 공학 의수를 쓸어내리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