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검은 안개 속의 조율

48화: 검은 안개 속의 조율
제국 오르비스 성벽의 북쪽 관문인 ‘강철의 문’ 너머로 발을 내딛자, 세상의 색조가 돌연 잿빛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스스스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검은 안개가 사방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2미터 앞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최악의 환경. 이곳이 바로 대륙의 기피 사냥터 중 하나이자 40레벨대 마수들의 영역, ‘검은 안개 숲’이었다.
“으스스하네요. 기사들의 횃불도 이 안개 속에서는 웅덩이에 던져진 불꽃마냥 힘을 쓰지 못합니다.”
크리스가 칼자루를 꽉 쥐며 주위를 경계했다. 방패병들은 방패를 둥글게 맞댄 원형 진형을 구축한 채 극도로 긴장한 걸음걸이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숲의 깊은 곳에서는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와 짐승의 젖은 호흡 소리가 기분 나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등 뒤는 든든하니까.”
지한은 차분하게 어깨 위의 소형 드론 ‘아이리스’를 가동했다.
잉-!
지한의 어깨 위에서 둥둥 떠오른 은빛 원반 아이리스의 외눈 카메라가 푸른 빛을 발하며 검은 안개 속으로 솟구쳤다.
[소형 해체 드론: 아이리스 링크 가온.]
- 검은 안개 필터링 프로토콜 가동.
- 주변 30미터 영역의 3D 실시간 마력 맵핑이 [마법 공학 감지 고글]에 동기화됩니다.
지한의 시야 전체가 녹색과 붉은색 격자선으로 채워지며, 검은 안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명하게 정화되었다. 안개 속에 숨어 은밀하게 접근해 오던 마수들의 형체가 붉은색의 윤곽선(Outline)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크리스, 11시 방향 고목 뒤에 세 마리. 3시 방향 가시 덤불 속에 두 마리. 녀석들은 안개늑대(Lv.38)다. 덮치기 공격을 준비 중이니 전방 탱커들은 방패 각도를 11시로 틀어.”
“예?! 아, 예! 방패병들! 11시 방향 철저히 대비해!”
크리스가 다급히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11시 방향의 검은 안개를 찢으며 세 마리의 안개늑대가 사납게 튀어 올랐다.
쾅- 깡-!
이미 대비하고 있던 방패병들의 두꺼운 철갑 방패에 가로막힌 늑대들은 바닥으로 비틀거리며 뒹굴었다.
“마법사들, 3시 방향 덤불에 광역 빙결 수류 스크롤 투척! 딜러들은 11시 늑대들의 목덜미를 찔러라!”
지한의 지시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떨어졌다.
안개 속에서 시야가 차단되어 갈팡질팡해야 할 파티원들은, 지한이 브리핑해 주는 적들의 실시간 동선 덕분에 마치 안방에서 훤히 들여다보며 사냥하듯 유연하게 움직였다.
카아앙! 퍼억!
단 1분의 전투 끝에 다섯 마리의 안개늑대들이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하게 소탕되었다.
“와…… 형님, 이건 핵(Hack) 수준인데요? 안개가 아예 안 보이시는 겁니까?”
크리스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아이리스가 안개의 전자기 굴절률을 역산해서 고글에 투사해 주는 덕분이지. 서둘러라. 잔당들을 해체하며 전진한다.”
지한은 안개늑대들의 사체로 다가갔다.
“마력 해체.”
[안개늑대 사체 해체 완료!]
- ‘안개 서린 모피’ 5개 획득!
- ‘마수의 날카로운 송곳니’ 10개 획득!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Lv.37 [12%])
레벨업 속도는 무척 빨랐다. 기지의 정밀 장비와 아이리스의 연동으로 인해 지한의 사냥 효율은 오르비스 성 장벽 안쪽의 일반 유저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한의 진짜 목표는 잡몹 사냥이 아니었다. 2차 전직의 첫 번째 시련. 40레벨 이상 정예 몬스터의 코어를 ‘무손실율 100%’로 분해해내는 작업이었다.
쿠구구구-.
지한이 늑대들의 모피를 정리해 인벤토리에 넣은 순간, 숲 바닥의 흙이 거대하게 솟구치며 굵직한 나무뿌리들이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크아악!”
방패 라인 뒤에 서 있던 딜러 한 명이 갑자기 바닥에서 솟구친 가시 넝쿨에 발목이 감겨 허공으로 끌려 올라갔다.
“가시 넝쿨이다! 힐러 정화 장전!”
크리스가 검을 휘둘러 넝쿨을 베어내려 했지만, 고철보다 단단한 목질 가시에 검날이 튕겨 나갔다.
팅-!
동시에 안개 속에서 거대한 아파트 3층 높이의 잿빛 덩굴 뭉치들이 뭉쳐지며, 거대한 나무 인간 형상의 괴수가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어둠 덩굴 가시 괴수 (Dark-Vine Thorn Beast) - Lv.41]
- 등급: 정예 (Elite)
- 특수 장막: ‘어둠의 안개 배리어’ (모든 마법 및 물리 피해를 50% 감쇄시키며, 3초마다 내구도를 자가 회복함)
“41레벨 정예 몬스터……! 게다가 자체 배리어까지 두르고 있습니다!”
크리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한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목표물이 나타난 것이다.
“어둠의 배리어라. 내 폭탄의 좋은 마루타가 되겠군.”
지한은 허리벨트에서 은빛 실린더 모양의 [전자기 역장 해체 폭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도약하며 괴수의 몸체를 향해 폭탄을 힘껏 투척했다.
타악-.
괴수의 가슴 장막에 닿은 폭탄이 철컥하는 기계음과 함께 3조각으로 분리되더니, 이내 극도의 번개 에너지 폭풍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파지지지지지직-! 콰아아앙-!
강렬한 백색 전자기 역장이 숲을 밝히며 괴수를 휘감았다. 괴수가 두르고 있던 검은 장막이 마치 비누방울이 터지듯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크오오오오!”
[전자기 역장 해체 폭탄 가동 성공!]
- 대상의 ‘어둠의 안개 배리어’를 강제로 해제시켰습니다!
- 대상이 5초 동안 강력한 과부하 ‘전자기 감전(Stun)’ 상태에 빠집니다.
“아이리스, 약점 스캔 배율 최대치 조율.”
지한의 명령에 아이리스가 붉은 레이저를 괴수의 목덜미에 쏘아 보냈다. 지한의 시야에 괴수의 목뼈 역할을 하는 거대 마도 목질 코어와, 그 주변을 지탱하는 미세한 영양 공급선 12개가 붉은 결(Flow)로 선명하게 정렬되었다.
‘저 목질 코어를 상처 하나 없이 뽑아내야 100% 무손실 해체다.’
지한은 공중에서 아스트라페 뼈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서리 파괴의 차가운 광풍이 날 끝에서 일어나 한 자루의 거대한 은백색 서리 칼날을 형성했다.
“결 해체 (Flow Disassembly).”
스으으윽-!
지한은 허공을 가르며 괴수의 목덜미 틈새로 미끄러지듯 침투했다.
뼈칼의 칼끝이 목뼈 주위를 감싸던 12개의 마력선 유기체 배선들을 단 한 번의 회전 참격으로 스치듯 긁어 베었다. 어떠한 저항도 없이, 칼끝이 지나간 자리의 마력선들이 차갑게 얼어붙으며 툭툭 끊어졌다.
툭. 철컥.
마치 퍼즐 조각의 열쇠를 맞추듯, 괴수의 거대한 본체와 목덜미 코어를 잇는 모든 연결 회로가 단 0.1초 만에 완벽하게 분리되어 떨어졌다.
바스스스스-.
거대한 41레벨 정예 괴수의 몸체가 흙더미로 화해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 흙먼지 한가운데에서 찬란한 잿빛 마도 광채를 뿜어내는 손바닥 크기의 나무 심장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지한은 가볍게 착지하며 허공에 뜬 심장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정예 몬스터 핵심 코어 해체 성공!]
- 무손실율: 100.00% (Perfect)
- 전리품: ‘어둠 덩굴 가시 괴수의 손상 없는 코어 (영웅)’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전직 퀘스트 - 시련 1 달성 완료!]
- Lv.40 이상의 몬스터 핵심 코어 무손실율 100% 해체 완수.
“진짜로…… 100% 무손실 해체를 현장에서 단번에 해내시다니.”
크리스가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보통 해체사나 스캐벤저 클래스가 40레벨대 정예 몬스터를 해체하면 도중에 코어가 깨지거나 부품이 손상되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지한의 사전 약점 정밀 투시와 전자기 무력화 조합 앞에서는 보스조차 완벽한 해체 실습대에 불과했다.
지한은 잿빛 코어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고글을 만졌다.
“이제 시련은 하나만 남았다. 깊은 숲속의 고대 제단으로 간다.”
그의 레벨 게이지 역시 41레벨 정예 몬스터의 막대한 경험치를 받아 Lv.37 [58%]로 가파르게 솟구치고 있었다. 전설의 2차 전직 완성을 향해, 지한은 검은 안개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