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비밀

43화: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비밀
오르비스 상권을 주무르던 골드 스파이더 상회의 몰락은 바람보다 빠르게 제국 국경지대로 퍼져나갔다. 대행수 마르쿠스의 급작스러운 처단과 상단 금고의 완전한 해체. 오르비스의 영주인 펠릭스 백작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르쿠스가 불법적으로 축재한 재산의 상당수는 백작가의 감시하에 동결되었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다름 아닌 신흥 길드 ‘아스트라페’였다.
하지만 지한에게 가장 중요한 전리품은 금화 자루만이 아니었다.
[그레이 아이언 광산 소유권 증서 (황실 공인)]
- 등급: 유일 (Quest Item)
- 설명: 오르비스 북부 산맥에 위치한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영구 독점 채굴권 및 관리 권한을 증명하는 황실 서신입니다. 해당 광산의 관리자는 제국 황실 특무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광산 내부의 모든 치안 및 자원 처분권을 가집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군.”
지한은 차갑게 반짝이는 소유권 증서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를 무너뜨리고 오르비스의 상권을 장악한 뒤,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지한은 수많은 고난도 던전을 해체하며 레벨을 30대 중반까지 끌어올렸고, 현실의 빚은 이미 모두 청산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던 억대의 빚 독촉 문자와 동생의 병원비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된 지금, 지한의 시야는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게임 아르카디아에서의 성장은 곧 현실에서의 막대한 부와 명예로 직결된다. 그리고 그 성장의 발판이 될 핵심 기지가 바로 이 그레이 아이언 광산이었다.
광산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오르비스 상업 지구를 벗어나 북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자, 거대한 침엽수림 사이로 잿빛 암석들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험준한 산악 지대가 나타났다.
“지한 형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레이 아이언 광산은 최근 광부들 사이에서 ‘악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광산 입구가 폐쇄된 곳입니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 녀석들이 광산을 통제하고 있었을 때도, 가장 깊은 심부 구역은 손도 대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뒤를 따르던 크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의 곁에는 방패를 고쳐 잡은 단단한 체구의 전사들과 마법사들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해체해야 할 대상일 뿐이야. 골드 스파이더 녀석들이 손을 못 댄 건, 능력이 없어서였겠지.”
지한은 펠릭스 백작가의 지원으로 얻은 최고급 군마의 고삐를 당기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마도 해체사. 아르카디아의 수많은 유저들이 쓰레기 기피 직업이라 부르던 그 클래스는, 구조를 보고 틈을 베어내는 지한의 손에서 절대적인 효율을 자랑하는 사기적인 직업으로 진화해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초입.
거대한 암벽에 뚫린 갱도는 어두컴컴한 심연의 아가리처럼 아스트라페 길드원들을 맞이했다. 입구에는 두꺼운 강철판과 마법 진흙으로 빚어진 거대한 봉인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가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 둔 마도 봉인 장벽이었다.
“이거 골치 아프겠는데요. 펠릭스 백작가의 마법사들을 불러서 봉인을 해제하려면 적어도 사흘은 걸릴 텐데요.”
크리스가 혀를 내두르며 봉인벽을 만져보려 하자, 지한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비켜봐.”
지한은 말에서 내려 천천히 장벽 앞으로 걸어갔다. 눈가에 착용한 [마법 공학 감지 고글]의 렌즈를 가볍게 톡 두드렸다.
잉-!
고글의 격자선이 회전하며 봉인 장벽의 내부 구조를 투시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눈에는 그저 복잡하게 뒤엉킨 마력의 덩어리로 보이겠지만, 지한의 시야에는 장벽을 유지하는 마도 회로와 에너지 흐름의 연결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조 정밀 투시 발동.]
- 대상: 골드 스파이더 상회 제어식 마도 봉인 장벽 (Lv.40 장벽)
- 분석 진행도: 10%... 40%... 80%... 100%
- 약점 도출: 중앙 제어 마력 코어와 우측 상단의 흐름 연결부(Flow Node) 세 곳.
“생각보다 허술하군. 레벨만 높았지, 기초적인 마법 도식을 반복해서 덧댄 것에 불과해.”
지한은 허리춤에서 영웅 등급의 해체 뼈칼 [아스트라페]를 뽑아 들었다. 뼈칼의 푸른 칼날이 어두운 광산 입구를 은은하게 밝히며 서리 파괴 속성의 한기를 뿜어냈다.
스으으-.
지한이 뼈칼의 날 끝을 봉인 장벽의 우측 상단,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교차하는 미세한 틈새에 밀어 넣었다.
“결 해체 (Flow Disassembly).”
지한의 손끝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마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의 결을 따라 뼈칼을 부드럽게 미끄러뜨렸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해체사의 칼질이었다.
지잉-! 쩌적!
장벽 표면에 흐르던 붉은 마도 문양들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더니,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 어……?”
크리스와 길드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작가 마법사들이 사흘 밤낮을 매달려야 한다던 최고 등급의 상회 봉인이, 단 몇 초 만에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장벽이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시스템 메시지가 지한의 시야에 떠올랐다.
[Lv.40 마도 봉인 장벽 해체에 성공하였습니다!]
[경험치 15,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 해체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봉인의 잔해에서 ‘정제된 마력의 결정’ 3개를 추출하였습니다.]
“들어가자.”
지한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갱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갱도 내부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따뜻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벽면 곳곳에 박힌 회색빛 광석들이 은은한 마력을 뿜어내며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도 공학 장비의 핵심 재료가 되는 ‘그레이 아이언(잿빛 강철)’ 광석이었다.
하지만 지한의 시선은 광석이 아닌, 바닥에 찍힌 기묘한 흔적에 머물렀다.
거대한 거미의 다리 자국 같기도 하고, 무거운 기계 장치가 쓸고 지나간 것 같기도 한 궤적. 게다가 공기 중에 미세하게 섞여 있는 녹슨 철 냄새와 마력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 녀석들이 왜 이 광산의 심부를 봉인하고 방치했는지 알겠군.’
지한은 고글의 감지 범위를 최대치로 넓혔다. 광산 깊은 곳에서 거대하고 불규칙한 마력 반응들이 감지되고 있었다. 단순한 몬스터의 반응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통제력을 잃어버린 마도 공학 병기들의 파동이었다.
쿠구구구-.
발밑의 대지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갱도 저편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안광이 어스름하게 켜졌다. 거대한 철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증기를 뿜어내며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광산 수호 골렘 (Ancient Mine Guardian Goelm) - Lv.38]
- 등급: 엘리트 (Elite)
- 설명: 고대 마도 문명 시절 광산의 치안과 노역을 위해 제작되었으나, 마력 회로가 오염되어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는 기계 괴수입니다. 온몸이 고밀도 그레이 아이언 장갑판으로 둘러싸여 있어 물리 및 마법 저항력이 극도로 높습니다.
“지한 형님! 38레벨 엘리트 몬스터입니다! 방패병들, 대열 유지해! 마법사들은 빙결 주문 장전!”
크리스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장검을 뽑아 들었다.
38레벨 엘리트 몬스터는 대형 길드의 레이드 파티가 덤벼야 겨우 잡을 수 있는 강적이었다. 특히 고밀도 강철 장갑으로 무장한 골렘 계열은 방어력이 너무 높아 딜러들의 무기가 부러지기 일쑤였다.
골렘이 거대한 철퇴 같은 주먹을 치켜들며 지한 일행을 향해 돌진했다.
쿠쾅! 쿠쾅! 쿠쾅!
동굴 천장에서 흙먼지와 바위 파편들이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골렘의 주먹이 내리쳐지면 아스트라페 길드의 방패병 라인은 단숨에 무너질 것이 뻔했다.
“다들 물러서. 방패병들은 방어선만 유지해.”
지한이 앞장서며 나섰다. 그의 왼팔, [파멸의 마법 공학 의수]가 웅장한 기계음을 내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철컥! 지이이잉-!
“공성포로 기선을 제압한다.”
1.5초. 2차 개조로 단축된 충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한의 손바닥 동력로에서 한 줄기 파괴적인 적색 광선이 뿜어져 나갔다.
“마법 공학 공성포 (Mana Cannon)!”
콰아아아앙-!
빛의 폭풍이 좁은 갱도를 휩쓸며 골렘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골렘의 거대한 몸집이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다. 가슴에 장착되어 있던 두꺼운 그레이 아이언 장갑판이 붉게 달아오르며 쩍쩍 갈라졌다.
“크오오오오!”
골렘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비록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녀석의 튼튼한 장갑판에 확실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지금이다.”
지한은 주저 없이 골렘의 품 안으로 도약했다.
[마법 공학 감지 고글]을 통해 골렘의 내부 설계도가 머릿속에 3D 그래픽처럼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공성포의 타격으로 균열이 간 가슴 장갑 안쪽,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톱니바퀴 동력원과 세 가닥의 마력 공급선이 붉게 깜빡였다.
‘저기가 결(Flow)이다.’
지한은 공중에서 아스트라페 뼈칼을 역수로 쥐었다. 뼈칼의 은백색 날에 서리 파괴의 냉기가 극대화되어 서려 들었다.
“결 해체.”
골렘이 휘두르는 거대한 강철 팔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지한이, 골렘의 가슴 균열 틈새로 아스트라페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레버를 내리누르듯 뼈칼을 그어 내렸다.
서거억-!
마치 두꺼운 가죽을 가르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지한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뼈칼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서리 폭발의 한기가 골렘의 내부 마력로로 급속도로 침투해 들어갔다. 맹렬하게 돌아가던 톱니바퀴들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비명 같은 마찰음을 냈다.
끼이이이익-!
[결 해체 효과 발동! 대상의 물리 방어력을 100% 무시합니다!]
[서리 파괴 속성: 동결 폭발 가동!]
콰콰쾅-!
골렘의 가슴 안쪽에서 푸른 한기의 폭발이 일어나며, 녀석을 지탱하던 마력 엔진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붉게 빛나던 골렘의 안광이 힘없이 꺼져갔다.
쿵-.
38레벨 엘리트 골렘이 단 두 번의 합 만에 차가운 고철 더미가 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크리스와 길드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괴물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기계 골렘을 이토록 정교하고 빠르게 도륙할 수 있는 존재는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를 통틀어 오직 강지한 한 명뿐일 것이다.
[Lv.38 고대 광산 수호 골렘 해체에 성공하였습니다!]
[경험치 42,000을 획득하였습니다.]
[골드 1골드 50실버를 획득하였습니다.]
[전리품: ‘고밀도 그레이 아이언 주괴’ 5개, ‘손상된 마도 동력 핵’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지한은 골렘의 시체 위로 엎드려 아스트라페 뼈칼을 다시금 놀렸다. 해체사에게 몬스터의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작업의 시작이었다.
“마력 해체 (Mana Disassembly).”
지한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골렘의 거대한 기계 몸체에서 마법 공학 부품들과 희귀 광물들이 완벽한 형태로 분리되어 지한의 인벤토리로 흡수되었다.
[엘리트 몬스터 정밀 해체 완료!]
[‘오염된 고대 마도 회로’ 3개 획득!]
[‘그레이 아이언 파편’ 20개 획득!]
“지한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기세라면 광산 전체를 하루 만에 쓸어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크리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지한은 수확한 부품들을 정리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방심하기 일러. 고글에 잡히는 반응을 보니, 이건 시작에 불과해. 저 아래쪽에…… 훨씬 더 거대한 녀석이 잠들어 있다.”
지한의 시선이 어두운 갱도 아래쪽, 끝도 없이 깊어 보이는 수직 갱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은 방금 잡은 수호 골렘의 수십 배에 달했다. 골드 스파이더 상회가 목숨을 걸고 입구를 봉인했던 진짜 이유가 바로 그 밑바닥에 숨겨져 있었다.
지한은 뼈칼을 가볍게 털어 손목의 칼날 집에 넣었다.
현실의 걱정이 사라진 지금, 그는 순수한 모험가이자 아르카디아의 절대적인 포식자로서 깊은 심연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었다.
“내려간다. 다들 무기 꽉 쥐어.”
그레이 아이언 광산의 심부. 그곳에는 지한이 한 단계 더 높은 전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대한 열쇠와, 제국 전체를 뒤흔들 마도 공학의 잃어버린 유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