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완벽한 해체사

4화: 완벽한 해체사
탁.
지한이 해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숲의 정적 속에서 묵직하게 울렸다.
크리스와 궁수,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 전, 이 3레벨 스캐벤저 청년이 보여준 신들린 몸놀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정말 자네가 해체를 전담할 건가?"
크리스가 장검을 검집에 꽂으며 물었다. 목소리에는 아까의 무시와 멸시 대신, 은근한 경외심이 섞여 있었다.
지한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했잖습니까. 제가 쥐를 잡으며 연습했던 감각과 이 장비라면 절대 손상 없는 전리품을 약속드립니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블러드 울프의 사체 앞으로 다가갔다.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늑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붉은 모피 위로 피비린내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한은 보급형 해체 키트에서 작은 스프레이 병을 꺼냈다.
'특제 방부액 분무기.'
그는 늑대의 가죽 전체에 방부액을 골고루 분사했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액체가 모피에 스며들자, 뻣뻣했던 가죽이 눈에 띄게 부드럽고 유연해졌다. 가죽의 탄성을 높여 칼질 도중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이어서 지한은 예리하게 날이 선 '정밀 뼈칼'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수동 해체 개입."
스으으윽.
뼈칼의 칼날이 블러드 울프의 목덜미를 가르고 들어갔다. 지한의 시선은 늑대의 표피가 아니라, 가죽과 피하 지방 사이의 미세한 '결'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죽을 벗길 때 가장 중요한 건 칼의 각도다. 15도 각도를 유지한 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긁어내듯 밀어야 해.'
서서서석, 서각.
종이를 자르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안개 낀 숲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 파티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보통 사냥꾼들이 사냥을 마치고 하는 '자동 해체'는 시스템이 사체를 대충 스캔한 후 펑 하고 사라지며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늘 찢어지고 구멍 난 가죽뿐이었다.
그러나 지한의 손끝 아래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뼈칼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핏빛 모피가 마치 부드러운 이불처럼 스르륵 벗겨져 나갔다. 단 한 군데의 잔해나 핏물 고임도 없이, 분홍빛 속살이 깨끗하게 드러났다.
"말도 안 돼……."
궁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죽 면적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어. 저건…… 그냥 생가죽 통째를 그대로 벗겨내는 거잖아?"
지한은 뒤의 소음에는 반응하지 않은 채, 늑대의 머리 부분으로 뼈칼을 가져갔다.
다음 차례는 블러드 울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고가에 거래되는 '송곳니'였다. 늑대의 이빨은 턱뼈 깊숙이 박혀 있어서 강제로 펜치나 칼로 뽑으려 하면 치근이 부러져 가치가 크게 훼손된다.
지한은 턱뼈와 치근 사이의 단단한 연골막 조직을 유심히 살폈다.
'여기다.'
그는 해체 키트에서 갈고리 모양의 도구를 꺼내 턱뼈 틈새를 단단히 지지했다. 그리고 뼈칼을 관절 틈새로 부드럽게 밀어 넣고 나사못을 돌리듯 가볍게 스냅을 주었다.
툭.
경쾌한 소리와 함께, 성인 손가락만 한 굵기의 예리하고 거대한 송곳니가 뿌리째 뽑혀 나왔다. 치근 끝부분에 묻은 미세한 신경 조직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하나."
지한은 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세 개의 송곳니를 마저 뽑아냈다. 네 개의 송곳니가 카운터 위에 늘어놓듯 차례대로 늘어섰다.
마지막으로 지한은 늑대의 가슴팍을 정교하게 절개했다.
갈비뼈 안쪽 깊은 곳에서 뛰고 있던 심장. 늑대가 죽었음에도 여전히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는 핵심 기관이었다.
지한은 마력 도선들이 심장과 연결된 매듭을 하나씩 정밀하게 솎아냈다. 뼈칼의 끝날이 1밀리미터만 어긋나도 마력이 폭발해 가치가 상실될 수 있는 극도의 정밀 작업이었다.
스슥. 툭.
지한이 늑대의 심장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따스하고 강렬한 마력의 온기가 손바닥을 적셨다.
동시에 귀가 먹먹할 정도의 청명한 시스템 창들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띠링! 띠링! 띠링!
[경이로운 해체입니다!]
[변종 블러드 울프의 사체를 완벽한 정밀도로 완전 해체하셨습니다.]
[재료 보존율 142% 달성!]
[스캐벤저 직업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48.2% -> 95.7%)]
[스캐벤저 직업 1차 전직 한계에 임박했습니다.]
[획득한 전리품]
- 최상급 블러드 울프의 통가죽 (특상품) x 1
- 완벽한 블러드 울프의 송곳니 (특상품) x 4
- 상급 블러드 울프의 붉은 심장 (마법) x 1
- 블러드 울프의 뼈 조각 (상급) x 12
"특상품이 세 개에…… 마법 등급 심장?!"
크리스가 꽥 비명을 질렀다.
평소 같았으면 일반 가죽 두 장에 부러진 이빨 한두 개 건지는 것이 고작이었던 사냥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전리품들은 대도시의 명품 공방에 가져다 바쳐도 손색이 없을 최고급 재료들이었다.
"이봐, 스캐벤저…… 아니, 지한 형씨. 진짜 대단하군!"
궁수가 언제 비웃었냐는 듯 지한의 어깨를 툭 치며 아부를 해왔다. 지한은 묵묵히 재료들을 가방에 나누어 담으며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약속대로 이 물건들을 바르트의 잡화점에 납품하겠습니다. 크리스 씨 파티의 몫은 확실하게 떼어 드리죠."
"당연하지! 자네 덕분에 대박을 쳤네. 마을로 돌아가지!"
크리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지한의 앞을 엄호하듯 숲길을 나섰다.
라르크 마을의 바르트 잡화점.
바르트는 지한이 가방에서 꺼내놓는 전리품들을 볼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이 통가죽은 흠집이 단 하나도 없어! 가공하기도 전에 벌써 부드러운 윤기가 흐르는군. 송곳니도 치근까지 온전하고…… 그리고 이 심장! 마력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깃들어 있다니!"
바르트는 연신 침을 삼키며 주판을 튕겼다.
"통가죽 35실버, 송곳니 개당 5실버씩 20실버, 그리고 붉은 심장 30실버. 총 85실버네. 여기에 약속했던 120% 추가 가격을 적용하면…… 자그마치 102실버(1골드 2실버)일세!"
1골드 2실버.
초보자 구역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금화 한 닢이 바르트의 손에서 지한의 손으로 넘어왔다. 묵직하고 반짝이는 황금빛 동전의 무게가 지한의 손바닥에 얹혔다.
여기에 시스템의 알림이 더해졌다.
띠링!
[돌발 의뢰: 바르트의 은밀한 제안을 완수하셨습니다.]
[의뢰 보상 25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바르트의 우호도가 최고 단계인 '신뢰'로 상승했습니다.]
[사냥꾼 길드 평판이 150 상승했습니다.]
총수입 127실버.
지한은 크리스 파티와 사전에 약정했던 대로 60실버를 그들에게 떼어주었다. 전투를 전담한 대가치고도 평소 사냥 수익의 세 배가 넘는 액수였기에, 크리스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지한의 손을 맞잡았다.
"지한 형씨, 진짜 고맙네! 다음에 사냥할 때도 무조건 연락함세. 우리 파티 전용 해체사로 뛰어주지 않겠나?"
"기회가 되면 그러죠."
지한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과 헤어졌다.
그의 주머니에는 아직도 67실버의 은화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지한은 곧장 안전지대인 마을 광장 구석으로 가 시스템 메뉴를 열었다. 그리고 '환전 및 출금' 탭을 터치했다.
[현재 보유 재화: 67 실버 50 코퍼]
[출금 가능 금액: 67,500 원 (수수료 5% 제외 후 64,125 원)]
[현실 계좌로 출금하시겠습니까?]
지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예'를 눌렀다.
[출금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등록된 계좌로 이체가 진행됩니다.]
로그아웃을 한 것도 아니었다. 캡슐 안에서 시스템 알림과 동시에, 지한의 스마트폰에 등록된 주거래 은행의 입금 알림음이 뇌파를 통해 미세하게 들려왔다.
카톡-!
[KB국민은행 입금: 64,125원. 잔액: 68,430원]
하루 종일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 앞에 서서 땀을 흘리고, 손가락이 짓눌리는 고통을 참아가며 벌던 일당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걸 가상현실 게임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오직 자신의 '손재주'만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지한의 안구 가장자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할 수 있어. 진짜로…… 동생 병원비도, 그 지긋지긋한 빚도 다 갚을 수 있어!'
벼랑 끝에서 만난 마지막 동아줄이, 마침내 튼튼한 밧줄이 되어 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뺨에 생긴 작은 상처조차 잊은 채, 그의 시선은 라르크 마을 중심부에 있는 더 높은 레벨의 던전 입구를 향했다.
밑바닥 해체업자, 강지한의 진짜 레벨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