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아스트라페의 위력

21화: 아스트라페의 위력
칠흑 같은 검은색 뼈칼 자루 위로 영롱한 금빛 마력선들이 호흡하듯 불타올랐다.
뼈칼의 끝날에서는 태양의 은은한 화염과 서리의 차가운 냉기가 스팀의 아지랑이가 되어 은빛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아스트라페 (Astrapē).]
지한은 뼈칼을 쥐고 공방을 나섰다.
뼈칼을 쥐자마자 눈앞에 신기한 시각적 변화가 일어났다. 오르비스의 대리석 기둥들, 도로의 청동 가로등, 심지어 가던 사람들의 어깨 장갑 등 세상 모든 물질들의 유기적인 '결(Flow)'이 가느다란 백색 실선처럼 공중에 아지랑이 치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영웅 등급 무기의 힘인가.'
마치 온 세상이 정밀 분해를 기다리는 해체 테이블처럼 보였다.
그때, 펠릭스로부터 급박한 마법 전음이 다시 도착했다.
[펠릭스: 지한 군! 오르비스 남쪽의 고대 유적 외곽 구역인 '강철 정원 (Steel Garden)'에서 고대 드워프의 전투용 기계병들이 대거 기동하여 기사단이 진입에 곤경을 겪고 있네! 부디 힘을 보태주게!]
지한은 지체하지 않고 남쪽 유적지로 향했다.
도착한 강철 정원은 녹슨 태엽 톱니바퀴들로 조립된 식물 조각상들이 가득한 몽환적인 정원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 무시무시한 전투 소음이 울리고 있었다.
은빛 판갑의 마도 기사단원들이 강철 문 앞을 굳게 지키고 있는 세 마리의 거대한 적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대 기계 병사 (Ancient Clockwork Soldier) - Lv.22]
- 설명: 고대 드워프의 방어용 강철 인형입니다. 전신이 무거운 기계 합금 장갑으로 덮여 있고, 1.5미터 크기의 거대 대형 방패와 고열 전동 도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22레벨의 정예 기계 몬스터들.
기사들이 칼을 휘두르고 찌름을 가해도, 녀석들은 거대한 강철 방패를 앞세워 빈틈없는 방어 전술을 펼치며 기사들의 검을 불꽃과 함께 퉁겨냈다.
"방패가 너무 묵직해! 일반 참격으로는 방패에 흠집조차 낼 수 없다!"
휴고 기사단장이 대검을 휘둘러 기계 병사의 어깨를 내리쳤으나, 기계 병사는 유연하게 방패로 각도를 맞춰 대검의 운동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오히려 흘러내린 기사단의 진형 틈새로 고열 전동 도끼가 날카롭게 호선을 그리며 들이닥쳤다.
"방패 보강해! 밀리지 마라!"
기사단이 밀리기 시작한 절체절명의 형국.
지한은 고글을 밀어 내린 채 복도 입구에서 사태를 주시했다. 아스트라페를 쥔 그의 시야 속에, 돌진하는 기계 병사가 들고 있는 거대한 강철 방패 정중앙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하얀 마력 결(Flow)의 흐름이 선처럼 선명하게 깜빡였다.
'저 강철 방패는 순수 금속이 아니야. 마력 배선을 수직으로 흘려 강도를 수십 배 보강하는 마법 공학 특수 장갑이다. 저 수직의 마력 결을 베어 넘기면 방패의 하중 지지력이 통째로 붕괴한다.'
지한은 품속에서 아스트라페를 고쳐 쥐고, 기사단의 방어 벽 틈새를 뚫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한 경?! 위험하오! 나오지 마시오!"
선두에서 고전하던 휴고가 지한이 나서는 것을 보고 경악하여 소리쳤다.
전투원도 아닌 5레벨의 해체사가, 22레벨 정예병의 고열 도끼 사정거리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끼이이이익-!
지한을 발견한 기계 병사 한 마리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거대한 전동 도끼를 번쩍 들어 올려 지한의 머리를 향해 짓쳐내려 왔다.
바람을 찢는 위협적인 전동 도끼의 쇳소리.
하지만 지한의 시야에서는 그 궤적이 너무나도 느리고 명확하게 보였다.
스슥.
지한은 몸을 극도로 낮추며 전동 도끼의 궤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슬라이딩해 피해냈다. 도끼가 바닥을 내리쳐 돌 바닥이 폭발하듯 퉁겨 나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그는 하체의 미끄러짐을 이용해 기계 병사의 거대 방패 바로 밑바닥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의 아스트라페를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결 해체 (Flow Disassembly)."
스으으으-!
아스트라페의 칼날 끝에서 금빛 오라가 눈부시게 불타올랐다.
지한의 칼날이 방패 정중앙에서 깜빡이던 하얀 마력 결의 실선을 가볍게 긁고 올라갔다. 은빛 칼날과 강철 방패가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대신 젖은 종이를 매끄럽게 가르는 듯한 기묘한 절삭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서어어억-!
"……?"
다음 순간, 기계 병사가 쥐고 있던 22레벨의 절대 파괴 불가능해 보였던 두꺼운 합금 강철 방패가 지한의 뼈칼 궤적을 따라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나며 양옆으로 스르륵 갈라져 바닥으로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액티브 스킬 '결 해체'가 발동했습니다!]
[대상의 마법 공학 물리 장갑 방어력을 100% 무시합니다!]
[대상의 장비에 150%의 고정 영구 파괴 피해를 입힙니다!]
방패 내부에 흐르던 100여 개의 구리 배선들이 완벽하게 이등분되어 검은 기름과 파란 스파크를 미친 듯이 뿜어댔다. 방패의 중심을 잃은 기계 병사의 상반신이 쇼크로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지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틀거리는 기계 병사의 목덜미 틈새, 동력 관절 파이프 사이로 아스트라페의 예리한 칼날 끝을 깊숙이 쑤셔 넣었다.
서걱! 콰지직.
"끼이이이잉-!"
기계 병사의 붉은 안광이 일순간 투둑 꺼지며 거대한 쇳덩이가 지한의 발밑에 그대로 폭삭 무너져 주저앉았다.
단 5레벨의 해체사가, 영웅 뼈칼 한 자루로 22레벨 정예 방패병을 단 3초 만에 두 동강 내 무력화시킨 것이다.
"……어?"
뒤에서 지원을 가려던 마도 기사단 전체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기사단장 휴고는 들고 있던 대검을 쥔 채 턱을 덜덜 떨며 지한을 바라보았다. 대도시 오르비스의 기사단장으로서 평생 수많은 전투를 겪어왔지만, 이런 어처구니없고 압도적인 파괴력의 '절단'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지였다.
"저게…… 저게 정녕 해체사의 도구란 말인가? 저건 신의 심판검이 아닌가?!"
지한은 아스트라페 끝날에 묻은 기름때를 슥 털어내고, 붉은 눈으로 덤벼들려던 나머지 두 마리의 기계 병사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결이 보이면, 베어집니다."
지한의 단호한 외침에 기사단의 사기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기사단, 돌격하라! 적의 방패가 깨졌다!"
지한의 은빛 뼈칼 궤적이, 강철 정원의 어둠을 눈부신 승리의 서광으로 갈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