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쓰레기 더미 속의 기적

2화: 쓰레기 더미 속의 기적
"끼에에엑-!"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디르 래트가 바닥을 뒹굴었다. 지한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뼈칼을 거두었다. 벌써 다섯 마리째 사냥이었다.
초반에는 쥐들의 맹렬한 돌진에 당황해 어깨나 다리를 물리기도 했지만, 몸으로 겪으며 감각이 깨어나자 대처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99%의 가상현실 동조율은 단순히 통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어깨 근육이 수축하는 모양새, 무게중심의 이동 같은 미세한 시각적 정보가 현실처럼 뇌에 와닿았다.
"해체."
지한은 익숙하게 뼈칼을 쥐고 시체를 갈랐다. 가죽의 결을 타며 부드럽게 살을 분리해 내는 그의 칼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정교한 뼈칼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 같았다.
[정밀 해체를 완료했습니다.]
[재료 보존율 118%!]
[디르 래트의 온전한 가죽(상급) 1개, 꼬리(최상급) 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역시 직접 손으로 건드려야 최고 등급이 잘 나오는군."
지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전리품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그가 선택한 '스캐벤저' 직업의 전용 스킬인 '해체'는 단순히 몬스터의 시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시스템의 가이드에 따르면, 버려진 장비나 폐기된 마법 장치 등 아르카디아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잔해'가 스캐벤저의 사냥감이었다.
지한은 쥐들의 서식지를 벗어나 쓰레기 산의 더 깊숙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이곳은 라르크 영주 성에서 버려지는 온갖 연금술 폐기물과 부서진 기계 잔해들이 흘러드는 하수관의 종착지였다.
부서진 수레바퀴, 찌그러진 구리 솥, 깨진 시약병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는 광경 속에서 지한의 눈이 빛났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더미 속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스각, 스사삭.
녹슨 고철들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몇 분 동안 쓰레기더미를 헤집던 지한의 손끝에 묵직하고 차가운 감촉이 걸렸다.
"이건……?"
그는 흙더미 속에서 검게 그을린 청동제 몸체를 끌어냈다. 인간의 상반신 모양을 한, 높이 50센티미터 남짓한 소형 기계 인형의 잔해였다.
[부서진 청동 스팀 돌 (Steam Doll)의 잔해]
- 등급: 등급 외 (폐기물)
- 설명: 마법 공학 훈련용으로 쓰이다 마력로가 폭발해 폐기된 기계 인형입니다. 내부 부품의 대부분이 녹아내렸습니다.
일반적인 모험가들이라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칠 10코퍼짜리 쓰레기였다. 너무 무거워서 인벤토리만 차지하는 짐짝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지한의 시선은 스팀 돌의 가슴팍에 뚫린 작은 틈새에 고정되었다. 그을음으로 가득 찬 내부 깊숙한 곳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붉은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력로가 폭발했다고 했는데…… 동력로의 핵심 코어는 완전히 타지 않았어.'
지한은 공장에서 기계 설비를 분해하고 수리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과부하로 타버린 모터라 할지라도, 제어 칩이나 구리 코일의 일부는 멀쩡하게 살아남는 법이다. 아르카디아가 현실과 완벽히 닮은 물리 엔진을 가졌다면, 이 기계 인형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한은 뼈칼을 고쳐 쥐고 청동 인형 옆에 주저앉았다.
"수동 해체 개입."
[수동 해체를 시작합니다. 대상의 구조를 분석하십시오.]
지한은 청동 껍데기의 접합부에 나사못처럼 박혀 있는 구리 핀들을 발견했다. 세월이 흘러 굳어버린 핀을 뽑아내기 위해 뼈칼 끝을 밀어 넣고 지렛대의 원리로 힘을 주었다.
찌이익- 깡!
청동 핀이 퉁겨져 나가며 접합부가 벌어졌다. 지한은 그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날카로운 청동 조각에 손끝이 찢어져 붉은 피가 흘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집중력이 극에 달하자 주변의 소음조차 사라지고 오직 기계 내부의 구조만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피스톤 실린더가 코어를 압박하고 있어. 이걸 먼저 들어내지 않으면 코어가 파손된다.'
그는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길쭉한 쇠꼬챙이를 쐐기처럼 꽂아 실린더를 고정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력원과 연결된 가느다란 마력 배선들을 하나씩 차단해 나갔다. 배선에 미량의 전류가 남아 있었는지 손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툭, 투둑.
숨을 죽인 채 손가락 끝의 감각에만 의존하기를 10여 분.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청동 인형의 흉부가 완전히 갈라지며, 검은 그을음 속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붉은 결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한은 떨리는 손으로 결정체를 끄집어냈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맥박처럼 뛰는 마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눈앞에 찬란한 시스템 창이 쏟아져 내렸다.
띠링! 띠링! 띠링!
[경이로운 해체입니다!]
[폐기 등급의 기계 잔해에서 손실률 0%로 핵심 부품을 적출했습니다!]
[재료 보존율 150% 초과 달성!]
[업적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를 달성하셨습니다.]
- 효과: 등급 외 폐기물 해체 시 희귀 재료 적출 확률 5% 증가.
[히든 패시브 스킬 '기계 구조 인지 (Lv.1)'를 획득하셨습니다.]
- 설명: 기계공학 및 마법 공학 관련 대상 해체 시, 내부 약점과 핵심 동력원의 위치를 투시하듯 파악할 수 있습니다.
[획득한 전리품]
- 가동 중단된 초소형 마력 코어 (희귀) x 1
- 정제된 청동 조각 (상급) x 4
- 마력 도선 (일반) x 8
"가동 중단된 마력 코어…… 게다가 희귀 등급?!"
지한의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희귀(Rare) 등급. 아르카디아에서 아이템 등급은 일반(Common) - 마법(Magic) - 희귀(Rare) - 영웅(Heroic) - 전설(Legendary)로 나뉜다. 1레벨 사냥터인 튜토리얼 구역에서 희귀 등급의 부품이 나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까웠다.
[스캐벤저 직업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15.8% -> 48.2%)]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2 -> Lv.3)]
[근력과 민첩 능력치가 각각 1씩 상승합니다.]
몸 안으로 뜨거운 기운이 차오르며 어깨의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지한은 붉은빛을 발하는 마력 코어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옥탑방에서 느꼈던 절망감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길이 보여."
그는 서둘러 전리품들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며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이 가치 있는 물건들을 서둘러 돈으로 환전해야 했다.
튜토리얼 마을 '라르크'의 시장 골목.
진흙투성이 가죽옷을 입고 온몸에서 피비린내와 쓰레기 썩은 내를 풍기는 지한이 나타나자, 길을 가던 플레이어들이 코를 막으며 수군거렸다.
"우욱, 저 인간 냄새 좀 봐. 쓰레기장 청소부 직업인가 봐?"
"스캐벤저잖아. 초반에 저 구린 직업을 왜 선택한 거래? 파티도 못 낄 텐데."
멸시와 비웃음 섞인 시선들. 하지만 지한은 그들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들의 겉모습은 화려한 초보자용 강철 검과 깨끗한 천 옷으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지한의 눈에는 그들이 가진 장비의 가격이 빤히 보였다. 기껏해야 몇 십 코퍼짜리 기본 템들이다.
지한이 향한 곳은 시장 한구석에 위치한 '바르트의 잡화점'이었다.
딸랑-.
문이 열리며 낡은 종소리가 울렸다. 카운터 뒤에서 조용히 장부를 정리하던 대머리 NPC 바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허억, 이게 무슨 고약한 냄새야! 이봐, 모험가. 구걸하러 온 거라면 당장 나가게. 여긴 장사하는 곳이야."
NPC들의 인공지능 역시 매우 뛰어났다. 청결 상태가 엉망인 플레이어에게는 노골적인 불이익을 주거나 대화를 거부하곤 했다.
지한은 말없이 등 뒤의 가방을 열어 카운터 위에 쿵 내려놓았다.
"물건 처분하러 왔습니다."
"처분? 쯧쯧, 쓰레기장에서 주운 고철 몇 조각이나 시궁쥐 가죽이나 가져왔겠지. 그런 건 몇 코퍼도 안……."
불평을 터뜨리며 가방을 들여다보던 바르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의 돋보기안경이 흘러내릴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바르트가 가방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올린 것은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게 결이 살아있는 디르 래트의 가죽이었다.
"어떻게 1레벨 시궁쥐 가죽이 이렇게 완벽하게 벗겨질 수가 있지? 칼질 흔적이 단 하나도 없어! 게다가 이 쓸개는 수분이 조금도 증발하지 않았군. 약재상들이 눈 뒤집고 달려들 물건이야."
흥분한 늙은 잡화점 주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한이 품속에서 붉은빛의 마력 코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자, 바르트는 급기야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초소형 마력 코어?! 그것도 코어 가동 제어선이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잖아! 이걸 자네가 해체했다고? 직접?"
"그렇습니다."
지한이 덤덤하게 답했다.
바르트는 침을 꿀꺽 삼키며 태도를 싹 바꾸었다. 눈앞의 더럽고 냄새나는 청년이 평범한 넝마주이가 아니라, 신들린 손재주를 가진 '일류 해체사'임을 깨달은 것이다.
"조, 좋네! 내가 시장 최고가로 쳐주지. 이 가죽들과 쓸개, 그리고 마력 코어까지 해서…… 모두 30실버를 주겠네!"
30실버. 1실버가 100코퍼이고, 초보자 사냥터에서 몇 시간을 사냥해도 겨우 10~20코퍼를 벌까 말까 한 시기였다. 30실버는 초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거금이었다.
하지만 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르트를 응시했다. 그는 이미 캡슐을 사기 전 아르카디아의 공식 포럼에서 제작용 재료의 시세를 철저히 분석하고 왔다.
"마력 코어는 마법 공학 훈련용 돌을 제작할 때 들어가는 필수 재료입니다. 경매장 최저가가 40실버 선이고, 제 코어처럼 보존율이 100%인 특상품은 연금술사들이 웃돈을 얹어 삽니다. 거기에 가죽과 쓸개까지 합치면 아무리 못해도 45실버는 나와야 할 텐데요."
지한의 조목조목한 반박에 바르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NPC라 할지라도 시스템 법률 안에서 유저와 흥정을 벌이고, 이득을 취하려는 성향이 코딩되어 있었다.
"으, 으음…… 하지만 여긴 시골 마을 라르크가 아닌가. 대도시로 물건을 운송하는 비용도 생각해야지……."
"그럼 대도시로 직접 가서 팔겠습니다. 마침 포털을 탈 비용은 방금 번 돈으로 충분하니까요."
지한이 물건을 다시 가방에 담으려는 시늉을 하자, 바르트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기, 기다리게! 내 패배네. 35실버 50코퍼! 더 이상의 양보는 없네. 내 마진을 거의 다 포기하는 걸세!"
[잡화점 주인 '바르트'와의 거래 협상에 성공했습니다.]
[협상 결과: 판매 대금 18% 증가.]
[우호도가 상승했습니다.]
지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좋습니다. 거래하죠."
바르트가 카운터 밑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동전 서른다섯 개와 구리 동전 쉰 개를 내주었다. 묵직한 가죽 주머니가 지한의 손에 쥐어졌다. 현실로 치면 약 3만 원 돈이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벌어들인 액수치고는 엄청난 효율이었다.
'됐다. 정말로 가상현실 속에서 돈을 벌 수 있어.'
지한은 돈주머니를 꽉 쥐었다. 옥탑방의 차가운 냉기가 이 동전들의 무게감 덕에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그는 잡화점 내부의 장비 진열대로 시선을 돌렸다.
성공적인 해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본 지급된 녹슨 뼈칼로는 한계가 있었다. 더 정밀하고 날카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지한의 눈길이 한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진열된 검은색 가죽 도구 상자에 멈추었다.
"저 도구 세트, 얼마입니까?"
본격적인 랭킹 진입을 위한 사냥이, 지한의 손끝에서 서서히 준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