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심연의 파동

180화: 심연의 파동
신대륙 노스가드 대륙의 공식 군주이자 대영주로 등극한 강지한은 크로노스 스파이어 최정상의 연산 제어실을 아스트라페 콘체른의 중앙 지휘 본부로 선포했다. 탑의 최정상부에서 은은하게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오로라 마막 덕분에, 노스가드 영토 전체는 기상이 이변 없이 제어되고 지하자원 채굴량이 날로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한은 이 평화로운 영지의 소유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 장착한 초전설 등급 고글 [아틀라스의 눈 - 리레코드]의 해상도를 최대로 끌어올려 대륙 지하 깊은 곳을 투시하기 시작했다. 고글 렌즈 안쪽에서 대륙 지하 5,000미터 지하 깊은 암반 아래가 거대한 붉은색 혈흔 모양으로 얽혀 끊임없이 대륙의 소스 코드를 갉아먹고 있는 최종적인 시스템 붕괴 징후가 실시간으로 드러났다.
[유적 분석: 최종 멸망의 차원 균열 - '카오스 게이트 (Chaos Gate)']
- 위험도: 측정 불가 (세계 붕괴 등급)
- 설명: 아르카디아 대륙 설계 초기 시절, 물리 엔진의 충돌 연산 찌꺼기들이 사방으로 압축되면서 발생한 가상 세계 최후의 영구 붕괴 균열. 그 너머에는 심연의 파괴 프로그램들과 파괴 마수들의 설계 코드가 웅크리고 있음.
- 봉인 상태: 스파이어의 중력 제어로 임시 억제 중이나, 균열의 중력 붕괴 에너지가 임계점인 95%에 도달해 있음.
“대지 지하에 숨겨진 최후의 종양이로군.”
지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카오스 게이트 주변에는, 균열을 사방으로 지지하며 아르카디아의 마력을 실시간으로 흡수해 소멸시키는 10개의 '심연의 에너지 노드(Abyssal Nodes)'들이 핏줄처럼 얽혀 있었다. 이 10개의 노드를 하나씩 찾아내어 완벽하게 해체하고 도려내지 못한다면, 결국 카오스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며 아르카디아 서버 자체가 영구 파손되어 폭발할 터였다.
그것은 지한이 장악한 네오넷 지분 51%와 그의 가상 세계 독점 서버 제국의 파멸을 뜻하기도 했다.
“형님, 현실에서 전해온 소식으로는 지수의 난치병 수술이 약 35% 진척되어 극도로 순조롭게 전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실의 걱정은 법무팀과 최민우 이사가 완벽히 수호하고 있으니, 이제 우리 앞의 마지막 장애물은 저 지하의 심연뿐입니다.”
크리스가 자신의 마도 공학 라이플에 새로 제련한 초전설 야철 주동 코어를 도킹시키며 비장한 어조로 보고했다.
“그래, 골칫거리들은 전부 깎아냈으니, 이제 세계의 마지막 썩은 살점을 수술해서 도려내 줄 차례다.”
지한은 [아스트라페 - 신의 해체자] 뼈칼을 꼬아 쥐며, 헬하임 요새 광장에 도열해 있는 수만 명의 아스트라페 개척단과 드워프 부족, 그리고 제국 연합 기사단을 향해 최종 진격 명령을 낭독했다.
“아스트라페 전 선단, 비공 비행 대열 정렬해라. 목적지는 북방 만년설 산맥 지하의 최종 차원 균열 '카오스 게이트'다. 대륙의 마지막 쓰레기를 해체하러 간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기가스 하이브에서 주조 완료된 초전설 헬하임 개척 장갑판과 크로노 엔진을 장착한 아스트라페의 주력 비공정 30여 척이, 웅장한 전격 비행 굉음과 함께 하늘 위로 일제히 날아올랐다. 비공정들의 장갑 프레임 끝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오로라 방막들이 하늘 전체를 은빛의 거대한 무지개 성막으로 가득 채웠다.
그 대열의 가장 최선두에는 30미터 크기의 초전설 기계 거신 아스트라페 기가스가 알바트로스 요새의 선수 아래로 공중 정박한 채 위엄을 뽐내며 돌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북방의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대지의 가장 깊숙하고 시커먼 균열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혹독한 지하 대협곡, ‘심연의 연도(Abyssal Fissure)’의 입구에 도달하여 하강 항해를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기는 거칠게 뒤틀렸고, 시스템 경고등이 밤하늘 전체에 붉은색 격자무늬로 지글거리며 점멸했다.
지한은 거신의 어깨에 기대어 뼈칼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수억 원의 빚쟁이 빚 청소부로 시작했던 강지한. 그는 이제 세계의 멸망마저 자신의 수술대 위에 올리고 해체용 칼날을 번뜩이는 가상과 현실의 절대 군주로서 최종 성전의 첫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