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의 생계형 해체업자: 연산실의 틈새

151화: 연산실의 틈새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아틀라스 세계수. 그 최정상에 위치한 시스템 제어 연산실은 가상 대륙 아르카디아의 심장부와 다름없었다. 거대한 황금빛 나뭇가지들이 복잡한 전선처럼 뒤엉켜 하늘로 뻗어 있고, 그 중심에는 반투명한 푸른빛의 고대 마법 장막과 네오넷의 보안 바이너리 코드가 기묘하게 결합한 거대한 원형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한은 마법 공학 감지 고글을 지켜 올리며 그 문을 응시했다. 차가운 바람이 세계수 정상의 회랑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지한의 시선은 단 일 밀리미터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가 아르카디아의 핵심이군.’
지한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에 장착된 전설의 심연 동력 기계 의수가 희미한 기계음을 내며 동조율 100%의 진동을 시작했다. 지한의 뇌파와 신경망이 완벽하게 맞물린 의수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었다.
[고유 능력: '신의 해체 영역'을 발동합니다.]
[공간 내 모든 물질 및 마력 결합 구조의 투시를 개시합니다.]
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눈앞의 황금빛 문이 단순한 고체나 마력 장벽이 아닌, 수억 개의 연산식과 3차원 좌표의 결합체로 분해되어 지한의 시야에 들어왔다. 네오넷 본사가 강제로 밀어 넣은 보안 알고리즘과 아르카디아의 물리 엔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결’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시각, 네오넷 한국 본사 33층 메인 관제실.
“팀장님! 강지한 캐릭터의 위치가 세계수 최정상 시스템 연산실 입구로 확인되었습니다!”
“뭐라고? 거긴 아직 미개방 구역이잖아! 어떻게 거길 올라간 거야?”
네오넷의 운영 총괄 팀장 김성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모니터에는 지한의 캐릭터 정보와 연산실 주변의 마력 흐름이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점멸하고 있었다.
“강제 로그아웃 시켜! 빨리 계정 정지 처분 내리라고!”
“그게…… 안 됩니다! 지금 법무팀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아침 강지한 측 금융 로펌에서 접수한 ‘계정 임의 조작 및 강제 접속 차단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임의로 계정을 정지하거나 캐릭터 스펙을 하향 조정하면, 초당 1억 원의 간접강제금이 부과됩니다! 게다가 언론사 기밀 유출 건으로 소송까지 걸린 상태라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제길! 변호사 놈들이 법을 무기로 발목을 잡는단 말이야?”
김성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실에서의 100억 원 자산 인출과 대형 금융 로펌 선임. 지한은 이미 네오넷이 자신을 시스템적으로 격리하려 할 모든 경로를 법적으로 차단해 둔 상태였다.
“그럼 물리 엔진의 시스템 패치는? 긴급 패치로 연산실 문을 아예 삭제해 버려!”
“그건 불가능합니다! 세계수 연산 코어는 아르카디아 자체의 중력 엔진과 직결되어 있어서, 실시간으로 삭제하면 서버 전체의 물리 붕괴가 일어나 전 세계 사용자들의 접속이 끊어집니다!”
결국 네오넷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니터를 보며 동동 구르는 것뿐이었다.
다시 가상현실 속 아틀라스 세계수 최정상.
“아이리스, 주변 탐지 주파수 고정해라.”
지한의 명령에 어깨 위에 둥둥 떠 있던 소형 정밀 해체 드론 아이리스가 렌즈를 붉게 빛내며 삐빅 소리를 냈다.
“탐지 완료. 주변 500미터 내에 네오넷 보안 인공지능 호위병들이 접근 중입니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지한은 품에서 전설 등급의 뼈칼 [아스트라페 - 리레코드]를 꺼내 들었다. 심연의 동결 속성이 차갑게 서린 뼈칼 날이 허공을 갈랐다.
[고유 능력: '원격 공간 인장 해체'를 발동합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지한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에메랄드빛 해체 파동이 세계수의 황금빛 원형 문으로 날아가 박혔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공격이라면 반사되었겠지만, 지한의 기술은 ‘공격’이 아니라 존재의 ‘분해’였다.
직격당한 황금빛 장막의 한구석이 찌르르 소리를 내며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산 코드의 연결 고리가 뚝뚝 끊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네오넷 1급 보안 인장의 결합 구조가 15% 해체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네오넷 1급 보안 인장의 결합 구조가 42% 해체되었습니다.]
“어림없다.”
지한은 의수의 손가락을 튕겼다.
[특수 효과: '원격 마력 쇄도'가 발동합니다.]
[해체 대상의 마력 코어에 직접 강제 부하를 인가합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황금빛 문 자체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오넷이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근 보안 결계가, 지한이 주입한 초고압 마력 역류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파열하기 시작했다.
쾅! 콰아아아앙!
마침내 아르카디아 대륙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일컬어지던 세계수 제어실의 문이 한 장의 얇은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너머로 드러난 것은, 우주의 성운처럼용솟음치는 무한한 데이터의 소용돌이와 물리 엔진의 연산 코어였다.
“이제 시작이군.”
지한은 주저 없이 그 빛의용용 죽겠지 하는 연산실의 틈새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뒤로 보안 호위병들의 격렬한 경보음이 울렸지만, 지한의 영역 안에서는 그 어떤 보안 프로그램도 그저 해체되어 흩어질 고철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