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89화: 덫의 가동과 포위
“대아 요새의 정수 탱크 오염 성공. 현재 한강진을 비롯한 수호대 수뇌부 전원이 심각한 신경 마비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음. 요새 내부 통제력 완전 상실.”
이중 스파이 박성민이 전송한 짤막하고 명확한 비밀 보고를 받은 오태섭 민정수석비서관은 집무실에서 호쾌한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결국 상인 놈은 상인 놈일 뿐이었군. 아무리 뛰어난 보급품을 소환한들, 쥐새끼 한 마리의 독약에 무너지는 허술한 유치원생 집단이었어!”
오태섭은 군부의 한종학 대장에게 이 보고를 철저히 비밀로 유지했다.
자치구를 점거하고 보급 시스템의 권능을 차지하는 공은 온전히 자신과 행정 관료 세력의 차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태섭은 즉시 자신이 정부 비자금과 특수 장비를 쏟아부어 비밀리에 창설하고 육성한 최정예 무력 집단, ‘블랙 스쿼드’ 30명을 긴급 투입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혼란에 빠진 대아 요새를 점거하고 한강진을 생포하여 보급 기술의 단서를 강탈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대아 자치구 요새.
낮 동안 요새 성벽의 풍경은 묘하게 산만하고 흐트러져 있었다. 경비병들은 성벽 위에서 쉴 새 없이 마른기침을 하며 비틀거렸고, 요새를 든든하게 감싸 안고 있던 푸른색 마력 배리어 돔은 출력이 급격히 저하된 듯 희미하게 깜빡거리며 불안정하게 명멸했다.
주민들은 약국과 병원 건물 주변으로 모여들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전형적인 독극물 오염에 의한 공황 상태의 묘사였다.
하지만 이 모든 혼란의 중심인 사령실 내부의 분위기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강진은 감시 모니터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요새 외곽의 위성 경보 장치를 주시하고 있었고, 경비대원들은 멀쩡한 표정으로 전투식량을 씹으며 총기를 정비하고 있었다.
“대장님, 오태섭의 직속 특무대인 ‘블랙 스쿼드’의 장갑 차량 3대가 요새 동쪽의 허술해진 경계벽 인근 도로에 정차했습니다.”
수호대장 임대수의 보고에 강진은 컵을 내려놓으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연기 치료를 받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연병장에 쥐새끼들이 완전히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십시오. 적들이 자신들이 사냥꾼이라 믿게 만드는 것이 사냥의 기본이니까요.”
어둠이 짙어진 자정 무렵.
검은색 차단 슈트를 입고 무소음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블랙 스쿼드 요원 30명이 무너진 동쪽 장벽의 틈새를 뚫고 요새 내부로 은밀하게 침투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오태섭의 가장 신뢰받는 무력 심복이자 블랙 스쿼드의 대장인 사도현이 서 있었다.
사도현은 경계용 전술 고글을 활성화하여 요새 내부를 살폈다. 복도와 연병장 곳곳에 경비대원들이 총을 쥔 채 쓰러져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 열화상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포착되었다.
“보고대로군. 경비 부대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저항 세력은 없다.”
사도현은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1조와 2조는 신속하게 중앙 사령실을 제압하고 한강진을 생포한다. 3조는 보급 창고를 점거해 모든 물자를 확보하라. 저항하는 자는 즉시 사살한다.”
“예!”
블랙 스쿼드 요원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요새 중앙 연병장 한복판으로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들이 연병장 중앙의 분수대 광장을 지나 사령실 건물 계단 밑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익-! 쿵!
갑자기 요새 전체에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리더니, 공중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던 푸른 배리어 돔이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은빛 광채를 내뿜으며 100% 출력으로 복구되었다. 동시에 요새 외곽의 모든 강철 차단벽들이 굉음을 내며 내려앉아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다.
“?! 퇴로 차단! 배리어가 복구되었다!”
사도현이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마비 증세를 연기하던 대아 수호대원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들은 슈트 안쪽에 숨겨두었던 3성급 유물 방패의 푸른 배리어를 작동시키며 블랙 스쿼드의 전후좌우를 촘촘하게 에워쌌다.
성벽 위 어둠 속에서도 수십 명의 수호대 사수들이 돌격소총의 총구를 일제히 아래로 겨누며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모퉁이 포트가 열리며 지하에서 거치된 두 대의 자동 번개 터렛이 윙 소리를 내며 사도현의 머리를 조준했다.
완벽한 포위망.
블랙 스쿼드가 자랑하는 최첨단 은신 슈트와 전술 무기들이 무색해질 정도의 압도적인 함정이었다.
중앙 사령실의 거대한 강철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강진이 한 손에 황금빛 번개가 요동치는 벼락의 도끼를 얹은 채 유유히 걸어 나왔다. 강진의 눈빛에는 사냥감을 덫에 몰아넣은 사냥꾼의 짙은 여유가 묻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네오 코리아의 귀한 손님들. 대아 자치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강진을 쳐다보았다.
“한강진…… 독극물 오염은 전부 조작이었단 말인가?”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입니다. 물 정화 시설의 위생 상태는 언제나 최고 등급으로 유지되어야지요. 그런 허술한 독약에 내 요새가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니, 오태섭 수석의 지능 수준도 참 안타깝습니다.”
강진은 도끼를 앞으로 겨누며 차갑게 선언했다.
“이번 특별 공급품은 당신들의 목숨입니다. 대금은 이미 오태섭에게 충분히 뜯어냈으니, 사양 말고 받아 가십시오.”
사도현은 자신이 철저하게 속았음을 깨닫고 이빨을 악물었다.
“전원 사격! 사령실 내부로 돌파한다! 한강진의 목만 따면 우리가 이긴다!”
탕! 타타타탕! 콰아아앙!
블랙 스쿼드 요원들이 일제히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최후의 저항을 시작했고, 요새 연병장 한복판에서 붉은 총성과 함께 피바람이 부는 격렬한 격돌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