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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88화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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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이중 첩자와 역정보

대아 자치구의 공급 단가 2배 인상 선언은 네오 코리아 최고 사령부 방공호의 행정 재정에 치명적인 핵탄두를 떨어뜨린 것과 다름없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가격이 두 배로 폭등하자 방공호 하층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한종학 대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매일 공동 수송 열차를 통해 고농축 마정석과 정밀 무기용 자재들을 대아 요새로 송금해야 했다.

방공호 내부의 긴장이 고조되는 틈을 타, 오태섭 민정수석비서관을 비롯한 행정 관료 세력은 군부의 ‘무능한 외교력’을 매섭게 질타하며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하지만 오태섭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한강진의 목줄을 쥐고 대아 자치구의 공급망을 강탈하기 위해,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극비 고정간첩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깊은 밤, 대아 자치구 요새의 지하 수자원 정화실.

요새 내부의 모든 식수와 정화수를 공급하는 거대한 강철 정화 탱크들이 증기를 뿜어내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어두운 정화실 내부의 철문이 삐익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열렸다.

검은색 배달부 점퍼를 입은 한 남자가 소리 없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대아 캠프 초창기부터 궂은일을 도맡으며 주민들 사이에서 두터운 신망을 쌓아온 이주민이자 물류 배송 요원, 박성민이었다.

하지만 박성민의 눈동자는 깊은 절망과 죄책감으로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부모와 어린 여동생이 네오 코리아 지하 방공호 3층 구역에 감금된 채 오태섭의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간첩의 길을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박성민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점퍼 안주머니에서 검은색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오태섭의 수하가 비밀 접선을 통해 건네준 B등급 화학 마도 오염 물질, ‘지체식 신경 독성 마약 포자’였다. 이것을 메인 정화수 탱크에 주입하면, 물을 마신 자치구 주민들은 며칠 내로 신경 마비와 호흡 곤란을 일으켜 거대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터였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 부모님과 민지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어요…….”

박성민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정화 밸브의 안전 캡을 열었다. 그리고 독약 병의 마개를 따고 정화 필터 주입구에 액체를 들이부으려는 순간이었다.

찰칵-.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머리 위 천장의 환한 조명들이 일제히 켜지며 정화실 내부를 대낮처럼 밝혀버렸다.

“아!”

박성민은 비명을 지르며 독약 병을 움켜쥔 채 뒤로 넘어졌다.

빛이 쏟아지는 정화실 중앙 통로 끝에서, 검은색 코트를 입은 한강진이 도끼를 바닥에 짚은 채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진의 옆에는 수호대장 임대수가 돌격소총의 총구를 박성민의 이마에 정확히 겨누고 서 있었다.

강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다른 요새 주민 수천 명을 독살하겠다는 결정은, 상인인 내 관점에서 보면 아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거래인데 말이지.”

박성민은 멍하니 강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서 독약 병이 바닥으로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대장님……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간첩이 맞습니다. 하지만 방공호에 있는 제 부모님과 여동생이…….”

박성민은 얼굴을 감싸 안고 바닥에 엎드려 서러운 눈물을 터뜨렸다. 동료들을 배신해야 했던 고통과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강진은 천천히 걸어와 바닥에 떨어진 독약 병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박성민의 앞에 서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성민 씨, 울지 마십시오. 네오 코리아에 있는 당신 가족들은 안전합니다.”

“……네?”

박성민이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강진을 올려다보았다.

강진은 주머니에서 개인 단말기를 꺼내 박성민의 앞에 띄웠다. 화면 속에는 대아 자치구 내벽의 안전한 이주민 구역 가옥 내부가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박성민의 늙은 부모와 어린 여동생 민지가 깨끗한 옷을 입고 따뜻한 수프를 먹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 어떻게…… 부모님이 어떻게 여기에……?”

“세 시간 전, 네오 코리아에서 출발한 공동 교역 열차의 특별 격실을 통해 무사히 탈출시켰습니다. 내 밑에서 일하는 네오 코리아 내부의 군부 협력 요원들이 손을 썼지요. 지금은 대아 자치구의 특별 보호를 받으며 이주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강진은 이미 요새 주민들에게 지급한 시민권 아티팩트의 위치 추적망과, 시스템 감시 카메라의 동선 이상 감지 장치를 통해 박성민이 고정간첩이라는 사실을 아주 예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강진은 그가 배신을 결행하기 전에, 네오 코리아 내부의 군부 라인을 활용해 그의 가족들을 먼저 구출하여 오태섭의 인질 카드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박성민은 강진의 압도적인 정보력과 치밀한 준비성에 온몸이 마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강진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장님! 이 은혜는 평생 목숨을 바쳐 갚겠습니다!”

강진은 그런 박성민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일으켰다.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상인은 공짜 거래를 하지 않으니까요. 가족을 구출해 준 대가는 지금부터 치러야 합니다.”

강진의 입가에 뱀처럼 잔인하고 영리한 미소가 서렸다.

“당신은 이제 네오 코리아의 첩자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오태섭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보내는 이중 첩자(Double Agent)로 일해야 합니다.”

“이중 첩자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오태섭에게 즉시 비밀 통신을 보내십시오. ‘정화수 정독 작전에 완벽히 성공하여 대아 요새 내부에 심각한 역병과 호흡 곤란 증세가 확산되고 있으며, 한강진과 수호대가 공황 상태에 빠져 요새의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라고 보고하십시오.”

강진은 오태섭이 자치구의 공황을 기회 삼아 군사를 움직이거나 무리한 공작을 감행하도록 유도할, 거대하고 치밀한 역정보의 덫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박성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장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두운 수자원 정화실 속에서, 네오 코리아의 숨통을 옥죄고 오태섭의 세력을 통째로 구렁텅이에 처박아버릴 영리한 상인의 덫이 조용히 작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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