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83화: 하저 터널의 약탈자
쿠오오오오-!
연옥의 화염 방사포가 뿜어내는 오렌지빛 화염의 해일이 어둡고 축축한 지하 5호선 터널 내부를 붉게 물들였다.
사납게 짖어대며 달려들던 심연의 포자견 무리는 불길이 닿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갔다. 살이 타는 비린내와 함께 터널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 심장처럼 뛰던 붉은 가죽 고치들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펑,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화염 방사포의 화력이 유지되는 동안 신속하게 전진한다!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강진의 묵직한 호령에 대아 자치구의 수호대원들과 네오 코리아 소탕병들이 발맞추어 움직였다.
전방에는 3성급 유물 방패의 육각형 푸른 배리어가 든든하게 장벽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뒤로 소총수들이 방수 및 오염 방지 코팅이 적용된 탄환을 쉴 새 없이 퍼부었다.
하지만 여의나루역 승강장을 지나 한강 밑을 가로지르는 하저 터널 구간에 들어서자, 터널 내부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뚝, 뚝-.
천장 콘크리트 균열 사이로 흘러내리는 강물이 붉은 점액질과 뒤섞여 피처럼 뚝뚝 떨어졌다. 오염의 농도가 너무 짙은 탓에 터널 내부의 온도는 영하로 급강하해 있었고, 바닥에 고인 물은 시뻘건 얼음 결정이 되어 징그럽게 굳어 있었다.
붉은 안개가 너무 자욱해 B등급 전술 마스크를 썼음에도 시야가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졌다.
“대장님, 이상합니다. 적외선 고글에 감지되는 마력 반응의 크기가 이전과는 다릅니다. 이 거대한 에너지는 대체…….”
투시 헬멧을 쓴 강태훈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강 아래를 지나는 하저 터널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거대한 진동이 일어났다.
쿵! 쿠구구궁-!
터널 천장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우두두 떨어져 내리며, 짙은 붉은 안개를 찢고 거대한 실루엣이 내려앉았다.
“키샤아아아악-!”
고막을 찢는 듯한 불쾌한 괴성이 어두운 터널 내부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거대한 게의 집게발 같은 비대칭적인 갑각 부속지와, 문어의 빨판처럼 붉은 반점이 돋아난 질긴 촉수 수십 개가 기괴하게 뒤섞인 형태의 거대 괴수였다. 녀석의 온몸은 흘러내리는 붉은 점액질로 코팅되어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등껍질 밑에는 푸른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경보! 4성급 변종 마물 '심연의 정수 약탈자'가 출현했습니다.]
- 특성: 마력 침식 및 흡수 (주변의 마력 파동을 흡수하여 자신의 갑각을 경화시키고 상처를 급속 치유합니다.)
“4성급이라고?”
강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3막의 일반적인 영역 전투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한 개체였다. 2차 대재앙의 영향으로 심연의 용의 알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마물의 생태계가 한 단계 진화했음이 틀림없었다.
“전원 사격! 녀석의 접근을 막아라!”
네오 코리아의 돌격 대장 강민혁의 지시에 따라 군인들이 일제히 화력을 집중했다.
타타타탕! 콰아아앙!
하지만 괴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껍질에 있는 푸른 눈동자들을 번뜩이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스우우우우-!
순간 괴수의 몸 주변으로 강력한 인력 마동이 형성되더니, 날아오던 철갑탄들의 궤적이 휘어지며 괴수의 단단한 껍질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듯 튕겨 나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원들을 보호하고 있던 푸른 마력 배리어였다. 3성급 유물 방패가 뿜어내던 육각형의 푸른 에너지 막이 실타래처럼 풀리며 괴수의 구강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빛을 흡수할 때마다 괴수의 붉은 갑각은 강철보다 더 짙은 검은빛으로 단단하게 물들었고, 이전 전투에서 입었던 자잘한 상처들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안 됩니다! 우리 방패의 마력을 흡수해서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총탄도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배리어가 유지될수록 적은 더 강해지고 아군의 에너지는 고갈되는 최악의 상성(相性)이었다.
“전원, 유물 방패의 보호막을 즉시 해제해라! 사격도 중지한다!”
강진의 단호한 명령에 푸른 배리어 쉴드가 순식간에 걷혔다.
배리어가 사라지자 괴수는 불만스러운 듯 끄르륵 소리를 내며 거대한 집게발을 휘둘러 방벽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콘크리트 파편이 비산하며 대원 몇 명이 비명을 지르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괴수의 촉수들이 쓰러진 대원들을 덮치려던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강진은 즉시 머릿속의 보급 상점을 열었다.
‘마력을 흡수하고 정제하는 회로를 가졌다면, 그 회로 자체를 과부하로 폭주시키는 수밖에 없다.’
강진의 손가락이 B등급 상점의 특수 폭탄 카테고리를 빠르게 훑었다.
[구매 아이템: B등급 마력 역전 과부하 폭탄 (B등급 - 레어)]
- 설명: 폭발 시 주변의 마력 흐름을 일시적으로 강제 역방향으로 왜곡시키는 파동을 일으킵니다. 마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하거나 제어하는 마물의 내부 순환 회로를 폭주시켜 치명적인 자폭 피해를 유도합니다.
- 가격: 800 SP
[800 SP가 소모되었습니다.]
- 현재 보유 SP: 2,303.5 SP
치이이익-.
강진의 손바닥 위로 톱니바퀴와 붉은 마력 도선이 정밀하게 얽힌 원통형의 금속 폭탄이 소환되었다. 강진은 오버차지 코어가 장착된 벼락의 도끼를 고쳐 쥐며, 괴수가 날뛰는 중심부를 향해 폭탄의 신호 핀을 뽑고 힘껏 던졌다.
“다들 엎드려!”
슈우우웅-.
던져진 폭탄은 괴수의 아가리 바로 앞까지 날아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일반적인 화염이나 파편 폭풍 대신, 보랏빛의 기하학적인 마력 파동이 도넛 모양으로 웅장하게 퍼져나갔다.
그 파동이 괴수의 몸에 닿는 순간, 주변의 푸른 마력을 흡수하며 기고만장하던 괴수의 등껍질 눈동자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기샤아아아악! 끄르르륵!”
괴수의 몸속에서 기괴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부 에너지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흡수한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괴수의 심장이 이를 강제로 누르려 하면서 내부 회로가 완전히 꼬여버린 것이다.
펑! 퍼버벙!
괴수의 등껍질 곳곳에서 시뻘건 핏물과 함께 마력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단단하던 검은 갑각이 쩍쩍 갈라지며 그 틈으로 붉고 여린 속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지금이다.”
강진은 갈라진 붉은 안개를 뚫고 도약했다.
그의 손에 들린 3성급 벼락의 도끼가 극렬한 황금빛 번개를 내뿜으며 회전했다. 도끼날에 박힌 오버차지 코어가 한계까지 울부짖었다.
쿠르르릉!
강진은 중력의 가속도를 더해 괴수의 갈라진 등껍질 중앙 틈새를 향해 도끼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콰지지지직! 쾅!
황금빛 번개 줄기 수십 개가 괴수의 껍질 틈새를 뚫고 들어가 내부 장기와 뼈대를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강렬한 벼락의 전도에 괴수의 온몸이 푸들푸들 떨리더니, 이윽고 거대한 집게발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터널 내부가 번갯빛의 잔상으로 환하게 밝혀진 후,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4성급 변종 마물 '심연의 정수 약탈자'를 처치했습니다.]
- 획득 SP: +500 SP
- 현재 보유 SP: 2,803.5 SP
강진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끼날을 회수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네오 코리아의 군인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거대 마수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그토록 고전하던 4성급의 괴수를, 강진은 단 한 번의 기발한 도구 활용과 압도적인 일격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대단하군…….”
강민혁 소령은 경외감에 가득 찬 눈으로 강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군부의 돌격 대원들에게 한강진은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닌, 전장에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위대한 전술 지휘관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강진은 바닥에 굳어 있던 붉은 얼음 결정들을 향해 남은 정화 성수를 부었다. 얼음들이 녹아내리며 하저 터널의 입구가 마침내 깨끗하게 정화되었다.
“제1 거점 확보는 완료되었습니다. 서두릅시다. 아직 지하철 선로 깊은 곳에 가득 찬 적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강진의 지휘 하에, 소탕대는 더 깊은 지하의 어둠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