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6화: 함정과 불놀이
"괴, 괴물이 12마리나 왔다고요? 한 대리님, 그걸 어떻게 압니까? 밖은 철판으로 꽉 막혀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김 부장이 쇠파이프를 쥔 손을 바르르 떨며 물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강진은 대답 대신 격벽 우측에 작게 만들어진 보조 수동 철문에 손을 얹었다. 그의 시야 오른쪽 구석에서는 시스템의 붉은 점들이 격벽 바로 바깥 주차장 모퉁이를 서성이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만능 보급 시스템'이 제공하는 미세 마력 감지 기능은 벽 너머의 적들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저를 못 믿으시겠으면 나가서 확인해 보시든가요."
강진의 차가운 대꾸에 김 부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강진은 이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고블린 한 마리당 20 SP. 12마리를 모두 사냥한다면 무려 240 SP라는 거금이 굴러들어온다. 여기에 녀석들이 들고 있을 무기나 전리품을 회수해 판매하면 270 SP 이상을 만질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재화가 쌓이면 시스템 상점에서 한층 더 강력한 생존 무기나 고유 방어구를 해금할 수 있었다.
'문제는 12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내 체력에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강진의 신체 능력은 여전히 하(下) 등급이었다. 도끼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다수의 괴수에게 포위당해 난전이 벌어지면 허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각개격파가 절실했다.
강진은 빠르게 상점 창을 열어 스크롤을 내렸다.
[초급 화염병 주문서 [일회성]]
- 가격: 20 SP
- 설명: 주문을 활성화하면 마력으로 응축된 강력한 인화성 물질이 든 유리병을 소환합니다. 투척 시 반경 3m 이내를 강력한 불길로 뒤덮으며 지속 화염 피해를 줍니다.
"주문서 구매."
[20 SP가 소모되었습니다. '초급 화염병'이 인벤토리에 지급됩니다.]
- 남은 SP: 11.5 SP
강진의 손안에 끈적한 붉은 액체가 담긴 투명한 유리병이 조용히 쥐어졌다. 병 입구에는 마력으로 타오르는 불꽃 심지가 덧씌워져 있었다. 강진은 화염병을 인벤토리에 임시 보관한 뒤,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정현우 씨와 박 대리님은 지게차를 시동 걸어두고 대기하세요. 만약 제 신호가 떨어지면 지게차의 라이트를 켜서 밖을 조명하고, 쇠 지렛대로 고블린들의 주의를 끌어주십시오. 오 과장님과 김 부장님은 저기 랙 뒤에서 대기하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이 있으면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치십시오."
"우, 우리가 직접 싸워야 하는 건가?"
오태식이 겁에 질려 물었다.
"안전지대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밥값을 하셔야죠. 민지 씨와 소희 양은 구급상자를 챙겨서 가장 안쪽 쉘터 구역에 대기하세요. 자, 움직입니다."
강진의 카리스마에 눌려 생존자들은 서둘러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정현우는 물류용 지게차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 레버를 쥐었고, 박 대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쇠 지렛대를 고쳐 잡았다.
강진은 격벽 보조문의 수동 걸쇠를 잡았다.
'병목 작전이다.'
철벽을 통째로 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고블린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틈새만 열어 녀석들을 좁은 입구로 유인하는 것.
덜컥.
강진이 보조 철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한 뼘 정도 슬며시 열었다. 바깥의 차가운 아침 공기와 함께 고블린들의 불쾌한 체취가 훅 끼쳐왔다.
"키익...?"
격벽 바로 앞에서 서성거리던 고블린 한 마리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탁한 눈동자가 벌어진 틈새 속 강진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키에에엑! 키샤아아!"
녀석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주차장에 흩어져 있던 다른 고블린들을 불러 모았다. 주차장 구석구석에서 10여 마리의 녹색 괴수들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치켜든 채 일제히 보조 철문을 향해 떼를 지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강진은 냉정하게 녀석들이 입구로 밀집할 때까지 기다렸다.
두 걸음. 한 걸음.
첫 번째 고블린이 틈새로 손을 밀어 넣고 문을 억지로 열려던 바로 그 순간, 강진의 손에 불타는 유리병이 들려졌다.
"잘 가라."
강진은 문틈 너머로 화염병을 힘껏 내던졌다.
쨍그랑-!
유리병이 고블린 무리의 한가운데인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붉고 뜨거운 불길이 반경 3미터를 일시에 덮쳤다.
화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샤아아아!"
마력으로 강화된 불길은 고블린들의 빳빳한 가죽과 넝마 같은 가옷에 닿자마자 미친 듯이 타올랐다. 온몸에 불이 붙은 고블린 네 마리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아스팔트 바닥을 뒹굴었다. 주차장은 순식간에 불타는 괴수들의 지옥 같은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화염의 벽 뒤에서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는 남은 고블린들.
"지금입니다! 라이트 켜세요!"
강진이 소리치자 정현우가 지게차의 전면 서치라이트를 켰다.
번쩍-!
강력한 백색 광선이 불길과 연기 속을 가르며 주차장을 훤히 비췄다. 눈이 먼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하압!"
강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조 철문을 활짝 열며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1 야수 사냥꾼의 도끼]가 시퍼런 궤적을 그리며 횡으로 작렬했다.
스각-!
불길을 피해 도망치려던 고블린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강진은 탄력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키며 옆에 있던 또 다른 녀석의 허리를 사선으로 벴다. 관통 효과가 극대화된 도끼날은 뼈와 장기를 거침없이 절단해냈다.
[고블린 정찰병(F급)을 처치했습니다.]
[20 SP를 획득했습니다.]
[고블린 정찰병(F급)을 처치했습니다.]
[20 SP를 획득했습니다.]
"키이이이!"
불길 너머에서 정신을 차린 고블린 두 마리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강진의 양옆을 동시에 기습했다.
강진은 도끼자루로 왼쪽 녀석의 쇠파이프를 튕겨낸 뒤, 오른쪽 녀석의 몽둥이를 어깨로 받아냈다. 둔탁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강진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도끼 날로 오른쪽 고블린의 미간을 찍어 누른 뒤, 발로 왼쪽 녀석의 무릎을 걷어찼다.
꺾어지는 뼈 소리와 함께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강진은 쓰러진 녀석의 가슴에 도끼를 깊숙이 박아 넣었다.
[고블린 정찰병(F급)을 처치했습니다.]
[20 SP를 획득했습니다.]
[고블린 정찰병(F급)을 처치했습니다.]
[20 SP를 획득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8마리의 고블린이 불타 죽거나 강진의 도끼에 목숨을 잃었다.
주차장 바닥은 초록색 피와 불타는 괴수의 사체 탄내로 가득했다. 남은 고블린 4마리는 완전히 겁을 먹었다. 비록 지능이 낮은 몬스터였지만, 단 한 명의 인간이 자신들의 무리를 압도적으로 도륙하는 광경은 그들에게도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키익... 키사..."
녀석들이 무기를 버리고 주차장 담벼락 너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칠 수 없지."
강진의 눈에는 저 녀석들이 도망치는 80 SP로 보였다. 그는 주차장 아스팔트를 박차며 도망치는 고블린들의 뒤를 쫓았다.
도끼를 투척하듯 휘둘러 담을 넘으려던 고블린 한 마리의 등판을 쪼갰다. 녀석이 바닥으로 추락하자, 강진은 재빠르게 다가가 남은 세 마리의 고블린들의 숨통을 차례로 끊어놓았다.
마지막 고블린의 목을 도끼로 베어내자, 마침내 주차장에 정적이 찾아왔다.
[고블린 정찰병(F급) 12마리를 모두 처치했습니다.]
[총 240 SP를 획득했습니다.]
- 현재 보유 SP: 251.5 SP (남은 11.5 SP + 처치 240 SP)
강진은 피 묻은 도끼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격렬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전신에 고블린의 초록색 피가 튀어 기괴한 몰골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250 SP 돌파. 이제는 상점에서 대대적인 무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고블린들의 사체에서 조잡한 뼈 단검과 철제 무기들을 회수해 시스템에 판매하려던 순간.
부스럭.
주차장 건너편, 반쯤 무너진 소형 상가 건물의 깨진 쇼윈도 너머에서 기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강진의 고개가 그곳을 향했다.
어두운 상가 내부에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강진의 압도적인 학살 극을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