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59화: 미끼와 신뢰의 붕괴
철혈동맹의 3성급 맹주 우건창마저 백색 뇌전의 불꽃 속에 격살당하며 요새 외곽의 처절했던 전투는 종식되었지만, 대아 캠프 요새 내부는 보이지 않는 첩보전의 짙은 냉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우건창의 품에서 노획한 암호 무전기와 처형당한 첩자 임한철의 장비를 통해 검출된 첩자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임한철은 단순히 지시를 전달받는 꼬리에 불과했고, 실제 요새 내부의 상세 설계 도면과 무장 배치 주파수, 그리고 탄약고의 기밀 좌표를 몰래 빼돌려 건네준 '진범 첩자'가 요새 최상층 지휘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강진의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특히 그 첩자가 내통한 배후 세력이 지하 방공호에 은거하고 있다는 정부군 잔존 세력, '네오 코리아' 특무부대라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인류 재건을 외치며 뒤로는 강진의 독점적인 보급력을 탈취하기 위해 요새를 안에서부터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진범은 요새의 모든 기밀 구역이나 정밀 설계 도면 보관소에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고위직이거나, 저와 대장님의 깊은 신뢰를 받는 자일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태훈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굳어 있었다. 강진은 묵묵히 '고급 보급 상점(B등급)'을 열어, 첩자를 유인할 예리한 미끼와 은밀한 탐지용 특수 장비를 구매했다. 상인은 배신당한 손해를 반드시 이자로 돌려받아야 했다.
[알림: 현재 보유 포인트: 2,953.5 SP]
[보급품 구매 완료: B등급 마력 추적 나노 위치 탐지액 (2성급 아티팩트) - 5개 세트]
- 설명: 중요 문서나 특정 기기 표면에 도포해 두는 투명한 특수 마력 액체입니다. 접촉한 대상의 고유 마력 서명을 나노 입자로 머금어, 실시간으로 대상의 위치를 3차원 입체 좌표로 투시 및 추적합니다.
- 가격: 총 500 SP
[보급품 구매 완료: B등급 마력 음성 녹음 및 주파수 도청기 (2성급) - 2기 세트]
- 설명: 특정 공간에 설치하여 반경 20미터 내의 모든 대화와 무선 신호를 선명하게 도청 및 녹음합니다.
- 가격: 총 200 SP
[알림: 총 700 SP가 소모되었습니다. 아이템들이 즉시 지급됩니다.]
- 현재 보유 SP: 2,253.5 SP (정산 완료)
강진은 투명한 나노 탐지액을 요새의 '신형 마력 레이저 캐논 작동 주파수 및 요새 배리어 내부 배선 설계 도면' 복사본 표면에 소리 없이 골고루 발라두었다. 그리고 그 도면을 자신의 튼튼한 철제 금고가 아닌, 집무실의 다소 허술해 보이는 서랍장 깊숙한 곳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집무실 구석 천장 환기구 아래에는 두 기의 마력 도청기를 장착했다. 진범 첩자가 미끼를 물 때까지 덫을 놓고 숨죽여 기다리는 영리한 늑대의 사냥 공식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새벽 3시, 여명이 채 밝기도 전이었다.
강진의 전술 헬멧 뷰파인더 전면에 삐이이익- 하는 날카로운 마력 감지 경보음이 조용히 깜빡이며 울렸다.
[알림: 2성급 나노 추적액 접촉 감지!]
- 고유 마력 서명 코드: 정예-B-072 (신원 조회 중……)
- 현재 이동 좌표: 캠프 남쪽 장벽 B구역 수색조 참모 전용 내실
강진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헬멧 센서에 표시된 코드의 주인공은 임한철 따위의 뜨내기 피난민이 아니었다. 대재앙 초기, 물류창고 요새화 단계에서부터 강진과 함께 고블린 군락을 도살하며 동고동락해 왔던 최고참 정예 수색조의 부대장이자, 강진의 오른팔과 같았던 '오창훈'이었다.
"오…… 오창훈 조장이 첩자라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한 대장님! 창훈 형은 대아 캠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수차례 원정을 다녀왔던 충직한 참모입니다!"
보고를 받은 태훈이 격양된 목소리로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강진은 대답 대신 묵묵히 집무실의 음성 도청기 녹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너머로 오창훈이 요새 북쪽 외곽 숲속에서 접선하기로 한 네오 코리아 특무부대 공작 요원과 주고받은 은밀한 암호 무전 대화 내용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요새의 최종 도면과 마력 레이저 캐논 주파수 정밀 분석 서류를 확보했다.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가?
유효하다. 서류를 우리에게 제출하는 즉시, 네오 코리아 관악 방공호 특별 안전 구역의 영주민증 3장과, 네 자식의 지병을 완벽히 치료해 줄 3성급 마력 항생제 백신 세트를 양도하겠다. 오늘 새벽 4시, 북쪽 폐쇄된 국도 주유소 뒤편 소나무 숲에서 접선한다. 오버.
녹음이 끝나자 강진의 집무실 내부에는 찢어지는 듯한 무거운 적막만이 남았다.
오창훈은 배신자가 맞았다. 그가 대아 캠프를 위해 피를 흘렸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병들어가는 자신의 자식과 지하 깊은 곳 문명 사회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결국 대아 캠프 식솔 전체의 목숨을 적들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가족이라는 핑계는 상인에게 통하지 않는 변명일 뿐이었다.
"신뢰를 저버린 상인의 물건에는 반드시 끔찍한 연체료가 따르는 법입니다. 태훈 씨."
강진의 가라앉은 서늘한 목소리에 태훈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쥐며 눈물을 삼켰다. 분노와 배신감이 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제가 직접 창훈 형을 잡아서 심판하겠습니다."
"아니요, 직접 나설 필요 없습니다. 1분대와 2분대를 소집해 접선 장소인 북쪽 주유소 주위를 조용히, 한 치의 틈도 없이 포위하십시오. 오창훈뿐만 아니라 놈과 거래하려던 네오 코리아 특무부대 공작 요원들까지 함께, 이 숲에서 영구히 매장해 버릴 것입니다. 거래는 파기되었습니다."
강진은 뇌전의 소방도끼를 낚아채듯 쥐고 문을 나섰다. 가장 신뢰했던 동료의 배신이라는 참담한 상처가 요새의 새벽 공기를 차갑게 얼렸지만, 만능 보급상인 한강진의 생존 법칙은 단 한 방울의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배신자 오창훈과 그 배후의 정부군 공작원들을 향한 잔혹한 야간 매복 습격 작전이, 여의도의 짙은 검은 안개 낀 숲속에서 조용히 그 피비린내 나는 서막을 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