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38화: 고급 보급 상점 해금과 모체의 태동
철제 셔터가 날카롭게 삐걱거리는 비명 소리를 내며 천천히 위로 밀려 올라갔다.
손전등의 가느다란 불빛이 가리킨 2층 약국 구역은, 대재앙의 광풍 속에서도 기적처럼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1층이 화재와 괴수들의 난입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과 달리, 2층은 이중 방화 셔터와 강화 유리창으로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었던 덕분이었다.
먼지가 뿌옇게 쌓인 조제실 선반 위에는 고급 항생제, 멸균 소독제, 긴급 수혈용 팩, 외상용 스테플러, 그리고 일반적인 편의점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특수 통증 완화제 등 아포칼립스 시대에 목숨값보다 귀하게 거래되는 정밀 의약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심봤다……! 한 대장님, 이 정도 양이면 우리 캠프 식솔 70명이 1년은 쓰고도 남을 양입니다! 이건 약이 아니라 생명줄 그 자체예요!"
태훈이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약품 상자를 뜯으며 소리쳤다. 대원들 역시 가방마다 조심스럽게 약병과 멸균 주사기 세트를 신속하게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멸망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벅찬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강진은 조제대 중앙에 가득 쌓인 군용 특수 약품 상자들에 손을 얹었다. 그의 눈앞에 푸른색 시스템 홀로그램 알림창들이 쏟아져 나오며 인터페이스를 가득 메웠다.
[알림: 특수 의료 자원 군락을 정밀 감정합니다.]
- 등급: 2성급 정밀 의료 자원
- 헌납 시 예상 가치: 500 SP
- 특수 조건 충족 감지: 대량의 고가치 2성급 의료 자원을 시스템에 최초로 헌납합니다. 상점 등급 한계 돌파 조건을 만족합니다.
'지금이다. 지체할 이유가 없지.'
"시스템 헌납 실행."
스으으으…….
약품 상자 중 절반가량이 은빛 마력 입자로 분해되며 허공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강진의 머릿속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효과음과 함께 중후한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림: 시스템 제한 해제 완료! 만능 보급 시스템이 '고급 보급 상점 (B등급)'으로 진화합니다.]
- 업적 달성: '의료 혁명의 선구자'. 보상으로 500 SP가 즉시 지급됩니다.
- 신규 고급 보급 카테고리가 해금되었습니다.
- 현대식 군용 규격 소총 탄창 박스 (무제한 구매 가능 - 개당 5 SP)
- 고효율 응급 치료 주사기 (2성급 아티팩트 - 개당 150 SP)
- 마력 농축 대량 회복 포션 (2성급 - 개당 200 SP)
- 마력 교란 및 탐지 연막탄 (1성급 - 개당 50 SP)
[물품 헌납이 완료되었습니다. 총 1,000 SP(헌납+보상)가 성공적으로 적립되었습니다.]
- 현재 보유 SP: 5,453.5 SP (정산 완료)
강진의 가슴이 묵직하게 요동쳤다. 5,400 SP에 육박하는 막대한 자본금과 더불어, 무엇보다 '무제한 군용 탄약 공급'이라는 꿈같은 공급로가 열린 것이었다. 아포칼립스 시대에 화력의 제약이 사라진다는 것은 쉘터의 방어 범위와 공격력이 무한대로 확장된다는 의미와 같았다. 또한, 2성급 치료 주사기는 어떠한 치명적인 외상이라도 즉시 수복해 주는 신의 약물이었기에 대원들의 생존율도 이제는 확고하게 보장받게 되었다.
"남은 약품들은 전부 예비 가방에 넣고 퇴각을 서두릅니다. 목적을 200% 달성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며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습니다."
"예, 대장님! 즉시 이동하겠습니다!"
대원들이 남은 약품들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쿵-! 쿵-! 쿠구구구궁-!
마트 2층 안쪽 깊숙이 위치한 거대한 식품 저장고와 대형 냉동실 쪽 벽면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육중하고 끈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견고하던 조제실 선반들이 좌우로 요동치며 미처 챙기지 못한 약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났다.
"무슨 소리지……? 지반이 무너지는 건가?"
태훈이 소총을 견착하고 어두운 창고 쪽을 겨냥하며 자세를 낮췄다. 강진은 급히 헬멧의 투시 모드를 최대로 올렸다.
그의 시야 전체가 시뻘건 경고등처럼 명멸하기 시작했다. 식품 창고 안쪽 깊은 어둠 속에서 방출되는 마력 파동의 농도는, 지난번 삼십육빌딩에서 상대했던 심해의 감시자마저 아득히 능가할 정도로 농밀하고 불길했다.
쩍! 콰아아앙-!
식품 창고의 두꺼운 특수 방화 철문이 무언가에 눌린 듯 기괴하게 찌그러지더니, 이내 콘크리트 벽면과 함께 박살 나며 밖으로 터져 나왔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온 것은 거대한 살덩이의 산(山)이었다.
마트 내의 모든 거미줄과 고치들을 총지휘하고 괴수들을 끊임없이 산란해내던 이 구역의 진짜 모체, '고치 군락의 심장(2성급 네임드)'이 침입자들의 기척에 마침내 깨어난 것이었다.
길이 6미터가 넘는 거대한 애벌레의 형상이면서도, 온몸에 끈적한 보랏빛 점액질을 흘리는 수백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끔찍한 비주얼이었다. 놈의 몸체 곳곳에는 방금 터져 나온 듯한 고치 껍데기들이 훈장처럼 널려 있었고, 놈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녹색의 부식성 가스가 주변 매장 타일 바닥을 서서히 녹여가며 자욱하게 퍼졌다.
"키샤아아아아-!"
모체의 수많은 기문(氣門)에서 고막을 찢는 기괴한 비명이 흘러나왔고, 부서진 2층 바닥 틈새에서 수십 마리의 고치 괴수들이 모체를 호위하기 위해 좀비처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원 대열 유지! 원형 방어선 구축해라! 놈이 독가스를 살포하고 있다!"
강진이 뇌전의 소방도끼를 꽉 쥐며 서슬 퍼렇게 소리쳤다.
드디어 마트 전체를 지배하는 지옥의 모체와의 결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강진의 두 눈은 놈의 거대한 복부 중앙에서 박동하는 시퍼런 마력핵의 흐름을 날카롭게 쫓았다. 새로 해금한 '고급 보급 상점'의 위력을 시험해 보기에, 이보다 더 훌륭하고 거대한 제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