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3화: 구석의 불청객과 첫 판매
스스스스...
창고 가장 깊숙한 구석, C구역 랙(Rack)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분명 그림자 늑대들의 발소리와는 달랐다. 네 발로 바닥을 긁는 짐승의 소리라기보다는, 무언가 마찰력 있는 가죽이 철제 선반에 쓸리는 듯한 끈적하고 불쾌한 소리였다.
강진은 검게 벼려진 [+1 야수 사냥꾼의 도끼]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날 끝에서 미약하게 일렁이는 푸른 마력광이 어두운 C구역 선반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한 대리님, 저기 뭐가 있는 건가요...?"
방금 전까지 셔터 구멍을 막기 위해 무거운 철제 드럼통을 나르던 남직원 박 대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 부장 역시 들고 있던 쇠지렛대를 꽉 쥔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침을 삼켰다.
"다들 제 뒤에 계십시오. 민지 씨는 저기 캐비닛 뒤로 가요."
강진은 조용히 지시하고는 천천히 C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도끼를 쥔 손에 들어가는 힘이 정교하게 조율되었다. 그의 정신력 '최상' 특성은 확실히 대단했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아른거림에도 뇌세포 하나하나가 극도로 맑게 깨어나 주변의 공기 흐름마저 포착해내고 있었다.
스스슥.
C구역의 가장 구석진 선반, 유통기한이 긴 통조림 상자들이 쌓여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강진은 걸음을 멈췄다.
붉은 빛줄기가 깨진 셔터 틈으로 기어들어 와 닿는 곳. 그곳에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키는 1미터 남짓으로 어린아이만 했지만, 겉가죽은 썩은 이끼 같은 칙칙한 초록색이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귀와 납작한 코, 그리고 입 밖으로 불규칙하게 돋아난 누런 이빨이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녀석은 통조림 박스 하나를 찢어발긴 채, 캔을 이빨로 씹어 찌그러뜨리며 안에 든 고기 조각을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있었다.
'고블린인가?'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보던 녹색 피부의 소인족. 녀석의 허리춤에는 넝마 같은 가죽 띠가 둘러져 있었고, 그 끝에는 날카롭게 갈아낸 동물의 뼈로 만든 조잡한 단검이 꽂혀 있었다.
"키익? 키에에엑!"
강진의 인기척을 느낀 고블린이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탁한 황색 눈동자가 강진을 발견하자마자 섬뜩한 살의로 물들었다. 녀석은 씹던 통조림 캔을 내던지며 허리춤에서 뼈 단검을 뽑아 들었다.
스윽.
고블린이 뼈 단검을 강진을 향해 겨누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겉보기에는 왜소해 보였지만, 단검을 쥔 손놀림이나 살기를 뿜어내는 기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사냥꾼 그 자체였다.
"키샤아아아!"
고블린이 바닥을 차고 튀어 올랐다. 어린아이만 한 크기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공중에서 뼈 단검이 강진의 안면을 향해 비스듬히 그어졌다.
채앵-!
강진은 소방 도끼의 자루 부분을 들어 올려 단검의 궤적을 튕겨냈다. 뼈로 만든 칼날임에도 철제 소방 도끼 자루에 불꽃을 튕길 정도로 단단했다.
하지만 반동은 고블린 쪽이 훨씬 컸다. 체중의 한계로 인해 녀석은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착지했다. 강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를 대각선 아래로 거칠게 내리쳤다.
스각-!
"키에에엑!"
예리하게 벼려진 [+1 야수 사냥꾼의 도끼]가 고블린의 어깨뼈를 사선으로 베고 지나갔다. 초록색의 걸쭉한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고, 고블린은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녀석은 질겼다. 피를 흘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남은 한 손으로 뼈 단검을 강진을 향해 힘껏 투척했다.
슝-!
회전하며 날아오는 뼈 단검. 강진은 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뼈 단검은 강진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뒤편의 나무 파레트에 푹 박혔다.
"끝이다."
강진이 차갑게 말하며 도끼를 고쳐 쥐었다. 무기를 잃은 고블린이 공포에 질려 뒤로 엉금엉금 물러섰지만, 강진의 도끼날은 자비가 없었다.
퍼억-!
바닥을 내리찍은 도끼가 고블린의 가슴 정중앙을 꿰뚫었다. 고블린의 황색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더니, 이내 초록색 피를 토해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고블린 정찰병(F급)을 처치했습니다.]
[20 SP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강진은 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내며 도끼를 뽑아냈다. 두 번의 전투를 거치고 나니 몸이 조금씩 싸움의 감각에 적응하는 듯했다. 도끼를 휘두를 때 힘을 싣는 요령이나 적의 공격을 예측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때, 나무 파레트에 박혀 있는 고블린의 뼈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백색 빛이 단검의 표면에서 맴돌고 있었다. 강진이 다가가 단검을 손에 쥐자, 눈앞에 새로운 안내창이 떠올랐다.
[고블린의 거친 뼈 단검 (일반 등급)]
- 획득한 전리품입니다.
- 시스템에 헌납(판매) 시 5 SP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인벤토리로 수집하겠습니까?
'판매 기능이 있었군.'
시스템이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자원을 회수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판매한다.'
[고블린의 거친 뼈 단검이 판매되었습니다. 5 SP가 적립됩니다.]
손에 쥐고 있던 뼈 단검이 은은한 빛의 입자로 조각나더니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그의 시스템 상태창의 SP 잔량이 업데이트되었다.
- 현재 보유 SP: 65 SP (남은 10 SP + 처치 20 SP + 판매 5 SP)
'좋아. 마수를 사냥하거나 그들이 쓰던 무기를 판매해서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어.'
이 정도 효율이라면 굳이 위험하게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창고를 방어하며 침입하는 괴수들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원을 비축할 수 있을 터였다.
강진이 고블린의 사체를 수습하는 동안, 저 멀리서 김 부장과 박 대리가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한 대리... 그 초록색 괴물은 또 뭐야? 저게 말로만 듣던 고블린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들 보셨다시피 셔터를 막아도 이런 작은 녀석들은 틈새나 환기구를 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한시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됩니다."
강진의 말에 김 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강진에게 핀잔을 듣고 위신이 깎였던 그는 어떻게든 주도권을 되찾고 싶어 입을 열었다.
"그래, 한 대리 말이 맞네. 그러니까 우리가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해. 내가 총책임자로서 이 창고의 배급과 경계 근무 조를..."
"부장님."
강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김 부장을 쏘아보았다.
"제가 아까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지시는 제가 내립니다. 부장님은 저기 박 대리님이랑 같이 창고 안쪽 환기구와 개구부들을 전부 찾아내서 상자로 막으십시오. 저는 민지 씨와 함께 보관 중인 식자재와 생수 수량을 파악하겠습니다."
"자, 자네...! 진짜 상하관계라는 걸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건가?"
김 부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하지만 강진의 손에 들린, 여전히 고블린의 초록색 피가 묻어 있는 살벌한 도끼날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직급이라는 종이 방패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박 대리, 가세..."
결국 김 부장은 씩씩거리며 박 대리를 데리고 창고 구석으로 향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민지 씨가 강진에게 다가왔다.
"대리님, 정말 감사해요. 대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벌써 저 괴물들한테..."
"감사 인사는 살아남고 난 뒤에 정식으로 받겠습니다.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요. 민지 씨, 창고 재고 대장을 가지고 계시죠?"
"아, 네! 여기 태블릿에 저장되어 있어요. 아까 네트워크가 끊기기 전에 다운로드받아 둔 파일이 있습니다."
전자기기는 망가졌지만 다행히 사전에 수동 출력해 둔 종이 재고 장부도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었다. 강진과 민지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손전등 역시 건전지식 아날로그라 다행히 작동했다) 식료품과 생수 재고를 확인해 나갔다.
생수 2리터들이 3,000묶음. 전투식량 대용이 될 수 있는 컵라면과 통조림류 수만 개. 쌀과 밀가루 포대 수백 자루.
이 정도면 이곳에 모인 대여섯 명의 인원이 몇 년 동안 먹고살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겠지.'
바깥세상은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류창고는 굶주린 생존자들과 약탈자들에게 가장 탐스러운 먹잇감이 될 게 뻔했다.
구구구궁...
그때였다. 창고 밖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야! 여기 대형 물류창고가 있어!"
"문 열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뒤에 괴물들이 쫓아와요!"
셔터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절박한 목소리들. 강진은 펜을 멈추고 굳게 닫힌 셔터 쪽을 응시했다.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시험대가 다시 한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