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23화: 영구 발전소와 다가오는 폭풍
마포대교의 거대 둥지가 파괴되자, 한강 이북 일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끈적한 붉은 밤안개가 소리 없이 걷히기 시작했다. 대기 중에 퍼져 있던 살벌한 마력 압박감도 한결 누그러졌고, 핏빛으로 물들었던 서울의 하늘 역시 희미하게나마 원래의 남색 기운을 되찾아갔다.
대아 캠프는 전례 없는 평화와 풍요로운 저녁을 맞이했다. 원정대가 1톤 트럭에 산더미처럼 실어 온 식료품 박스들과 의약품, 그리고 노획한 군용 장비들이 물류창고 랙 선반 위에 질서정연하게 분류되었다. 창고 구석에서는 소소한 축하 잔치가 벌어졌다. 멸망 이후 처음으로 맛보는 달콤한 황도 통조림과 따뜻하게 데워진 햄 조각에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인간다운 미소가 번졌다.
강진은 사람들이 한창 승전의 기쁨을 나누며 자원을 정리하는 사이, 홀로 창고 깊숙한 뒤편의 임시 발전기실로 향했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고, 마포대교 고치 핵에서 획득한 '심연의 마정핵 (D급)'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붉고 은은한 마력 열기를 뿜어내며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박동하는 마정핵을 쥐자, 그의 눈앞에 시스템 상점 3레벨의 특수 영지 인프라 탭이 환하게 활성화되었다.
[보급용 마력 영구 발전소 (Level 1)]
- 요구 자원: [심연의 마정핵 1개] + 600 SP
- 설명: 획득한 특수 마정핵을 시스템 발전 장치와 결합하여, 요새 내부에 영구적이고 소음과 매연이 전혀 없는 청정 전력망을 구축합니다. 반경 100미터 이내의 모든 전자기기와 방어 설비에 무한한 마 전력을 동시 송전합니다.
강진은 망설임 없이 승인 버튼을 눌렀다. 투자 없는 수익은 없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영구 발전소 구축 시작.'
[600 SP와 '심연의 마정핵 (D급) 1개'가 소모되었습니다. '보급용 마력 영구 발전소'가 즉시 설치됩니다.]
- 현재 남은 포인트: 461.5 SP
스스스스...
강진의 눈앞에 서려 있던 녹슬고 시끄러운 오토바이 개조 발전기가 순식간에 은빛 마력 격자 속으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높이 1미터 크기의 매끈한 검은색 합금 실린더 형태의 미래형 발전기 장치가 조용히 구현되었다. 장치의 정중앙 슬롯에 붉은 마정핵이 스르륵 탑재되자, 은은한 청색 불빛이 장치 외벽의 룬 라인을 따라 물결치듯 피어올랐다.
위이이이잉-.
귀청을 찌르는 엔진 굉음도, 매캐한 가솔린 매연도 없었다. 오직 잔잔한 나비 날갯짓 같은 미세한 마력 공명음만이 기분 좋게 흐를 뿐이었다.
파지직, 팟! 팟!
그와 동시에 창고 내부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대형 LED 전등과 형광등이 일시에 빛을 발하며 창고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밝혀냈다. 뿐만 아니었다. 먼지만 쌓여 있던 대형 산업용 환풍기들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창고의 공기를 정화하기 시작했고, 구석에 멈춰 서 있던 전기 지게차들의 충전기마다 녹색 완충 신호가 일제히 들어왔다. 창고 뒤편의 대형 냉장 및 냉동 비축고 역시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이제 식료품을 신선하게 장기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 이게 뭐야? 발전기 엔진 소리가 안 나는데 전기가 다 들어왔어!"
"지, 지게차 충전기도 켜졌잖아! 이 난리에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다고?!"
창고 안의 생존자들이 갑작스럽게 복구된 완벽한 전력망과 대낮처럼 밝아진 요새 내부를 보며 또다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소음도, 연료 공급도 없이 거대한 물류창고 전체가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다시 작동시키는 광경은 그들이 믿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조각내버렸다.
IT 개발자 정현우는 환호성을 지르며 전력이 공급된 대형 관제 컴퓨터 모니터 앞에 매달렸다.
"한 대리님! 전력이 무한정 공급되니까 시스템 복구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지금 마포구 일부 구역의 아날로그 가설 CCTV망 회로를 원격으로 복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쉘터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요!"
"화면을 메인 프로젝터로 띄워 보십시오."
강진이 다가가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치직, 치지직... 지직-!
희미한 기계식 노이즈 끝에, 모니터 화면 위로 마포대로 북단 사거리와 인근 대형 마트 주변의 도로 상황이 흑백으로 실시간 비춰졌다.
화면에 나타난 광경은 끔찍한 아수라장이었다.
어깨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식칼과 손도끼, 철망을 덧댄 야구배트 등으로 흉악하게 무장한 대규모 무법 집단—이 근방의 생존자 세력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철혈동맹'의 전초 약탈 부대 100여 명이 아파트 단지를 짓밟으며 행진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무력한 피난민들을 유희하듯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들이 지닌 소지품과 비상 식량을 강탈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나아가는 행렬의 끝자락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강진의 요새인 대아 제3물류창고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도망치던 서너 명의 피난민이 들개처럼 쫓아오는 약탈대원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맞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저... 저 악당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우리 창고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여직원 임민지가 모니터를 보며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몸을 떨었다. 다른 주민들 역시 방금까지의 승전 기분이 싹 가신 듯, 공포에 질려 강진의 눈치를 살폈다.
강진은 팔짱을 낀 채, 모니터 화면 속에서 붉은 완장을 차고 행진하는 무법 행렬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한 중위님. 군인 대원들을 캠프 경비대로 정식 편임하겠습니다. 방어막 생성기와 철벽 격벽이 있으니 정면 침공은 당분간 걱정 없습니다만... 저들이 우리 영역 앞마당까지 발을 들이면, 철저한 청소와 방위 작전이 필요하겠군요. 놈들은 괴수보다 더 질 나쁜 쓰레기들입니다."
한서준 중위는 마법 소총의 차가운 총열을 쓸어내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캠프 사수를 위해 수성전 배치를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놈들의 접근을 불허할 겁니다."
문명이 무너진 지 불과 열흘 만에, 괴수들의 위협 너머로 가장 잔인하고 조직적인 인간 무법 세력의 어두운 폭풍이 강진의 요새를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보급의 성역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인간 대 인간의 전면전이 예고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