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4화: 요새 방어막과 거대한 징후
지하 기계실의 습하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강진은 손전등 불빛을 바삐 움직이며 보물 더미를 훑어 나갔다.
그가 발견한 것은 약탈자들이 마포구 일대의 잔해 속에서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세상의 온갖 문명 잡동사니들이었다. 백화점 보석 매장의 쇼케이스에서 통째로 뜯어온 듯한 순금 목걸이와 팔찌,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 명품 수입 시계들, 그리고 기판 속에 백금과 은이 다량 함유된 고가의 고장 난 전자기기들이 사과 박스 안에 뭉텅이로 쏟아져 들어 있었다. 문명 시대였다면 빌딩 한 채 값은 족히 넘을 보물들이었지만, 지금 이 아수라장 속에서 이것들은 그저 부피만 차지하는 무거운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진에게는 달랐다.
강진은 다른 생존자들의 시선을 피해 상자 더미를 쓸어내리며 마음속으로 시스템 판매 창을 활성화했다.
'전부 헌납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귀금속 및 희귀 원자재 무더기를 정밀 감정합니다.]
- 백금 및 순금 장신구 세트(2.5kg): 헌납 시 180 SP 획득 가능
- 명품 시계 및 고가 잡품류 40점: 헌납 시 80 SP 획득 가능
- 고농도 아날로그 반도체 및 특수 회로 부품: 헌납 시 60 SP 획득 가능
- 총 헌납 가치: 320 SP
슉-! 슉-!
강진의 가죽 코트 자락 안에서 차가운 은빛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귀금속이 가득 담겨 있던 묵직한 박스 두 개가 순식간에 모래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부피가 큰 전자제품들도 빛의 입자로 조각나며 시스템의 가상 창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품 헌납이 완료되었습니다. 총 320 SP가 성공적으로 적립되었습니다.]
- 현재 보유 SP: 871.5 SP (기존 551.5 + 헌납 320)
보유 포인트가 아득히 상승하여 마침내 870 포인트를 돌파했다. 보급상인으로서의 자본금이 넉넉해지자 강진의 가슴 한구석이 든든하게 차올랐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상점 창 하단의 '성장' 버튼을 눌러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단행했다.
"상점 시스템, Level 3 등급 업그레이드 실행."
[250 SP가 소모되었습니다. '만능 보급 상점'이 Level 3 등급으로 성장합니다!]
- 상점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이제 고성능 소모품뿐만 아니라 신규 무기 및 '영지 방어 설비'가 새롭게 개방됩니다.
- 신규 개방 품목:
- 보급용 마력 방어막 생성기 [영구 설치형] (400 SP)
- 마력 강화 전술 단검 (150 SP)
- 중급 상처 치료 약물 및 수술 키트 (45 SP)
- 야간 투시용 마도 고글 (80 SP)
강진의 시선이 첫 번째 항목인 '보급용 마력 방어막 생성기'에 고정되었다. 영구적인 마력 격벽으로 캠프 반경 50미터를 통째로 덮어주는 특수 장비였다. 이 장비만 있다면 더 이상 괴수의 야간 습격이나 굶주린 인간 무법자들의 침입을 전전긍긍하며 밤새 경계 서지 않아도 되었다. 쉘터의 '안보'를 돈으로 사는 셈이었다.
"방어막 생성기 구매."
[400 SP가 소모되었습니다. '보급용 마력 방어막 생성기'가 인벤토리에 지급되었습니다.]
- 남은 SP: 221.5 SP
강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장비를 인벤토리에 고이 수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곳의 자원을 안전하게 본진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는 기계실 밖으로 나와, 바닥에 손을 묶인 채 꿇어앉아 있는 들개파 조직원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당신들에게 마지막 살길을 제시하죠. 이 기계실에 보관 중인 식료품 상자들과 생수 박스들을 전부 들고 우리 본진—대아 제3물류창고로 나르는 운송 작업을 지원하십시오. 얌전히 내 통제 하에 노역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따뜻한 스프와 안전한 잠자리를 보장하겠지만, 만에 하나 물자를 훔치거나 도망치려 든다면..."
강진이 다리가 날아가 바닥에서 신음하는 행동대장 배동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다음 총탄은 다리가 아니라 당신들 미간에 정확히 박힐 겁니다. 시신은 저기 트럭처럼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 드리죠. 이해했습니까?"
포로들은 이빨을 덜덜 떨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강진은 이제 단순한 적이 아니라, 생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공포의 화신이었다.
"하겠습니다! 뭐든 나르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들개파의 포로들은 순식간에 든든한 상하차 노동력 및 자원 운반 부대로 탈바꿈했다. 강진 일행은 그들의 뒤에서 무기를 쥔 채 매서운 눈빛으로 감시하며, 확보한 수백 박스의 스팸, 통조림, 구급약품을 짊어지고 무사히 대아 캠프로 복귀했다.
그들이 캠프의 견고한 검은 격벽을 열고 복귀했을 때, 창고 안에 남아 있던 생존자들은 산더미처럼 들어오는 식료품 박스들의 행렬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강진이 가져온 방대한 자원과, 그를 살아있는 신처럼 경외하며 짐을 나르는 들개파 포로들의 굴종적인 태도를 목격한 대아 캠프 주민들은 이제 강진의 말 한마디를 멸망한 행성의 유일한 법률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자 강진은 최덕팔과 박 대리를 데리고 창고 중앙의 철골 지붕 밑으로 올라갔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가로세로 50센티미터 크기의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매끈한 은색 장치—마력 방어막 생성기를 꺼내어 천장 철골의 정중앙에 설치했다.
웅웅웅웅-!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하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푸른빛의 격자무늬 방어막이 지붕을 기점으로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빠르게 뻗어 나갔다. 이윽고 대아 물류창고 외벽 주변 반경 50미터 영역을 완벽하게 뒤덮는 반투명한 푸른 돔 형태의 보호막이 활성화되었다가, 서서히 공기 중으로 투명하게 스며들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알림: 영지 방어막 활성화 완료.]
- 물리 및 마법적 침입 저항률 +80%.
- 탐색 차단 필터 적용: 외부에서 요새 내부의 빛과 소음, 열기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걸로 한숨 돌렸군. 이제 밤에도 마음 놓고 발전기를 돌릴 수 있겠어."
강진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방어막 덕분에 창고 내부에서 발전기를 마음껏 돌려 전등을 켜고 컴퓨터를 작동시켜도, 외부의 괴수나 약탈자들에게 빛과 소음이 노출되지 않는 완벽한 '유령 구역'이 된 것이다.
그가 만족하며 아래로 내려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대리님! 대리님, 큰일 났습니다! 무전에 이상한 게 잡혀요!"
전력 복구기와 간이 무전 수신기를 지키고 있던 정현우가 헤드폰을 거칠게 벗어 던지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현우 씨? 진정하고 말하세요."
"방금... 방금 군부대용 비상 주파수에서 구조 요청 무전이 수신되었습니다! 마포대교 한가운데 점거하고 있던 거대 '괴수 고치'들이 일제히 부화하기 시작했답니다! 대교 초소를 지키던 군부대 수비대가 순식간에 몰살당했고, 지금 그 부화한 비행 마수 무리가 대로변을 따라 이쪽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놈들의 숫자가... 숫자가 셀 수도 없을 정도랍니다!"
마포대교 위에 형성되었던 흉측한 괴수의 고치와 알들의 부화.
강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올 것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대재앙의 본격적인 2차 진화—'대량 학살'의 물결이 대아 캠프의 문턱 앞까지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