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22화: 심연의 격발과 지맥의 고동
알프하 비룡이 격추된 한강 물가 주변으로, 푸른빛의 정화 결계가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포병대와 중장비팀, 신속히 전방으로! 마도 굴착 코어 대포 조립을 가동한다!”
강진의 추상같은 지시 아래, 연합군의 대형 수송차량 두 대가 모래사장 위로 미끄러지듯 들이닥쳤다. 수송차량 적재함이 열리며, 검은색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거대한 삼각대 받침대와 포신 폭만 3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모양의 ‘마도 굴착 코어 대포’의 부품들이 소환된 인부들과 크레인에 의해 빠르게 결합되기 시작했다.
이 대포는 단순히 화약을 터뜨려 포탄을 날리는 구시대의 무기가 아니었다. 강진의 시스템을 매개로 초고밀도 마도 에너지를 회전 드릴 형태로 뭉쳐 쏘아 보내는, 지맥 관통 전용 파괴 병기였다.
조립이 진행되는 동안, 발밑의 대지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분 나쁜 박동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쿵! 쿵!
마치 거대한 거인의 심장이 한강 깊은 바닥 아래에서 뛰고 있는 듯한 규칙적인 땅울림이었다. 동시에 검붉은 안개 속에서 한강 강물이 펄펄 끓어오르며 피처럼 검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강물 표면 위로 붉은색 스팀이 자욱하게 솟구치며 비릿한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지하에 잠든 파멸의 용이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살기를 감지하고 경고를 보내는 것이 분명했다.
“의장님! 강바닥 균열 구역에서 적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수중에서 마수들이 떼를 지어 기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관측병의 다급한 비명 소리와 함께, 끓어오르는 붉은 한강 강물 속에서 끔찍한 형상의 기어 다니는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붉은 수정 가시가 돋아난 비대칭적인 거대한 바위 근육의 ‘포자 거인’들과, 네 발로 선로를 타듯 맹렬한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돌진해 오는 ‘결정형 구울’ 무리였다. 그 숫자는 수백, 수천에 달해 강변 모래사장을 순식간에 까맣게 뒤덮을 기세였다.
“대포가 완성될 때까지 방어선을 사수해라! 장갑차, 전방 100미터 지점에 화망을 형성하라!”
임태수 대령이 권총을 연사하며 소리쳤다.
두 대의 개조 장갑차가 강가를 향해 포탑을 꺾었다.
콰아아아아앙-! 콰콰콰콰!
장갑차 상단의 플라즈마 파쇄 포탑에서 연속 발사된 청백색의 고열 열선들이 모래사장을 강타했다. 열선이 닿는 곳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돌진하던 결정형 구울들의 다리와 몸체가 수수깡처럼 부러지며 재가 되어 날아갔다. 대원들 역시 모래언덕 뒤에 호를 파고 엎드려 마도 소총을 연사했다.
타타타타탕!
“거인 놈들이 온다! 집중 사격해!”
높이가 4미터가 넘는 포자 거인들이 플라즈마 포격을 맞으면서도 무식한 맷집으로 방어선 돌파를 시도했다. 그들이 휘두른 거대한 주먹에 장갑차 한 대의 푸른 장막이 파르르 떨리며 튕겨 나갔다.
강진은 조립 중인 대포의 조절 패널 앞에 선 채, 시스템 장막을 요새화하여 대포 주변의 안전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드릴 라이플 사수들, 거인들의 무릎 관절을 무너뜨리십시오. 대포 충전율 95%입니다.”
강진의 냉정하고 침착한 보이스 오더가 무전기를 통해 전 대원들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지휘관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에, 괴수들의 코앞에서 싸우던 병사들의 흔들리던 눈빛이 다시금 차분하게 굳어졌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괴수들의 무릎과 관절을 저격하여 진격을 늦췄다.
마침내, 마도 굴착 대포의 메인 코어 슬롯에 푸른빛 광원이 가득 차며 충전이 완료되었다.
찌이이이이이잉-!
대포의 포구 전면에 소용돌이치는 마력 전자기막이 사납게 불꽃을 튕기기 시작했다.
“굴착 포, 격발.”
강진이 격발 버튼을 내리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울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지막지한 폭음이 강변에 내리쳤다. 대포의 포구에서 발사된 것은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 푸른색의 거대한 마력 드릴 창이었다.
빛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마도 드릴은 끓어오르는 한강 물을 양옆으로 가르며 강바닥 정중앙의 균열 구역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콰콰콰콰콰콰콰-!
강바닥 바위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무시무시한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드릴은 바위를 뚫고 지하 2천 미터 아래에 깊숙이 잠겨 있던 용의 지맥 보관실까지 단숨에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불과 10초 뒤.
지하 저편에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거대한 지하 폭발이 일어났다.
쿠르르르르릉! 콰아아앙!
한강 한가운데의 지반이 완전히 무너지며, 거대한 소용돌이 구멍(Maelstrom)이 형성되었다. 강물이 순식간에 지하 균열 속으로 말려 들어갔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부에서 대지 전체를 물리적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한 파멸적인 드래곤 로어(Dragon Roar)가 터져 나왔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그것은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듣는 이의 영혼을 얼어붙게 만드는 절망의 파동이었다.
지하 구멍을 뚫고, 마침내 2차 대재앙의 절대적인 군주이자 세상을 종말로 이끌 본체, ‘심연의 용(Spore Dragon)’이 서울 하늘 위로 거대하게 솟구쳐 올랐다.
길이가 100미터에 달하고 전신이 온통 날카롭고 붉은 마정석 결정들로 덮여 있는 거대하고 음산한 서양식 용의 형상. 놈이 등 뒤의 거대한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치자, 날개 틈새로 뿜어져 나온 붉은 결정 가루들이 하늘의 검은 구름을 물들였다.
용이 마침내 지상 위로 그 완전한 강림을 이룩한 것이었다.
강진은 불어오는 폭풍 속에서 레일건을 치켜세우며, 하늘을 가득 메운 절대적인 파멸의 실루엣을 향해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대상을 지상으로 낚아 올렸군. 사냥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