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11화: 심연의 어둠 속으로
지하 7층의 균열은 마치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발겨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면과 철근 구조물들은 보랏빛 광기를 띤 마력 액체에 녹아내려 기괴한 동굴 입구처럼 변해 있었고, 그 균열의 끝을 알 수 없는 지하 어둠 속에서는 기분 나쁜 보랏빛 인광과 함께 자욱한 포자 먼지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아 자치구의 정예 전사인 태훈과 한종학 사령관이 이끄는 네오 코리아의 최정예 수색대원 5명이 균열 가장자리에 섰다. 그들은 모두 한강진이 특별히 소환해 지급한 신형 장비들로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한강진은 대원들의 장비 상태를 훑어보며 마지막 보급품 패키지를 건넸다.
“이것이 이번 심연 탐사에 사용할 ‘심연 환경 전용 탐사 키트’입니다.”
[심연 환경 전용 탐사 키트 (C등급)를 소환 및 보급합니다.]
- 구성품: 마력 필터 밀폐형 방호복, 정신 간섭 방지 마도 고글, 압축 산소 탱크 및 마력 안정화 팩.
- 효과: 지하의 마력 이상 흐름과 독성 포자를 100% 차단하며, 어둠 속에서도 마력의 파동을 실시간 열선 형태로 감지하여 시야를 확보함.
- 가격: 세트당 50 SP (총 7세트 소모: 350 SP)
“오오…… 고글을 쓰니까 앞이 훤히 보이는군. 포자 안개 속에서도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게 잡힙니다.”
태훈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고글을 매만졌다. 이 특수 고글은 단순한 야간 투시경을 넘어, 공기 중에 흐르는 마력의 왜곡 현상과 생명체의 마력 코어를 붉은색 실루엣으로 하이라이트해 주는 최첨단 마도 장비였다.
“모두 긴장 풀지 마십시오. 저 아래는 지상과는 마력 법칙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 세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지옥이니까요. 보급은 제가 실시간으로 지원할 테니, 지시에만 따르세요.”
한강진의 경고에 대원들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진은 자치구 보안팀의 백업 신호를 확인한 뒤, 먼저 줄을 타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
로프를 타고 내려간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의 발끝이 차가운 흙바닥에 닿았다.
바닥에 내려선 대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숨을 들이켰다. 그곳은 좁은 동굴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지하 공동(Subterranean Cavern)이 끝없이 뻗어 있었다.
천장과 벽면에는 거대한 종유석 대신, 보랏빛과 청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결정체들이 가득 돋아나 있었다. 그것들은 심연의 마력이 결정화된 마정석 광맥들이었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지하에 옮겨다 놓은 듯한 몽환적인 광경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뼛속까지 시려오는 음산한 한기와 기괴한 파동이 요동치고 있었다.
“세상에…… 지하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니.”
한 사령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스스스스스-!
천장에서 기분 나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마도 고글을 쓴 강진의 시야에,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붉은 마력 반응들이 일제히 요동치는 것이 잡혔다.
“포자 박쥐 무리입니다! 천장 조준, 사격 개시!”
강진의 명령과 함께 대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타타타타탕! 콰아앙!
플라즈마 탄환과 마도 소총의 빛줄기가 어두운 공동을 가르며 날아갔다. 날개 폭만 2미터에 달하고 온몸에 붉은 곰팡이가 피어난 기괴한 포자 박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한 박쥐들은 검은 액체로 녹아내려 먼지가 되었다. 대원들은 강진의 지휘 하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형을 유지하며 지하 안쪽으로 나아갔다.
강진은 탐사하는 동안 끊임없이 주변을 스캔하며 시스템 창을 띄웠다.
[시스템 레이더 가동 - 특이 마력 반응 탐색]
- 방향: 전방 300미터 지점
- 감지 대상: 고농도 고대 혼돈의 마정석 광맥 및 대규모 인공 구조물 반응.
- 알림: 대재앙 발발 초기, 지각 변동으로 인해 지하로 가라앉은 군부의 특수 철통 쉘터 혹은 고대 유적이 감지되었습니다.
“인공 구조물 반응이 잡히는군요.”
한강진의 말에 한 사령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인공 구조물이라니? 이 아래에 사람이 지은 건물이 있다는 말인가?”
“대재앙 당시에 통째로 지하로 침하된 구시대의 철통 보안 시설이거나,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유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쪽이든 쓸 만한 무기 설계도나 마력 코어가 잠들어 있을 확률이 높죠. 상인에게는 노다지나 다름없습니다.”
한강진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반짝였다. 시스템의 최고급 아티팩트를 제작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정밀한 기술 자재와 순도 높은 혼돈의 마정석이 필수적이었다. 이 깊은 심연은 위험만큼이나 엄청난 이권을 품고 있는 보물창고였다.
대원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광맥 지대를 통과했다. 마침내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절벽과 그 절벽의 안쪽 벽에 반쯤 파묻힌 채 굳건히 버티고 있는 강철 격납고 문이었다. 문에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낡은 마크와 함께 비상용 통제 문양이 찍혀 있었다. 대재앙 당시 지상에서 침하된 네오 코리아의 극비 군사 시설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저건…… 우리 군의 지하 비밀 병기 연구소의 외곽 격납고가 맞네! 여기에 묻혀 있었을 줄이야!”
한 사령관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문으로 다가가려 했다.
쿵! 쿵! 쿵! 쿵!
하지만 그들이 격납고에 접근하기도 전에, 격납고 문 앞의 거대한 마정석 기둥들 사이에서 묵직한 지진 같은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바위 조각들과 보랏빛 마정석 결정들이 뭉치며, 높이 5미터가 넘는 거대한 인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바위 틈새마다 굵은 줄기 같은 붉은 이끼와 포자들이 덩굴처럼 얽혀 있는 기괴한 수호자였다.
쿠오오오오오오-!
바위 거인이 붉은 마력의 안광을 번뜩이며 대기를 흔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경고! 심연의 파수꾼 - ‘포자 마정 골렘’(C+ 등급)이 출현했습니다.]
- 특징: 외부 충격을 80% 이상 흡수하는 단단한 마정석 장갑을 가졌으며, 주변의 심연 마력을 흡수해 끊임없이 자가 수복합니다.
“바위 골렘이라니……! 총탄이 박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태훈이 당황해 외치며 소총을 굳게 쥐었다. 골렘의 거대한 바위 주먹이 그들을 내리치기 위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한강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금 시스템 상점을 열어 젖혔다.
“단단하다면, 껍질을 녹여버릴 보급품을 꺼내면 그만입니다.”
강진의 손끝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장비의 해금 코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