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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108화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08화: 붉은 동맹과 주도권의 저울

대아 자유무역 자치구의 중앙 회의실은 바깥의 지옥 같은 붉은 안개와 완전히 차단된 채, 쾌적하고 서늘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환기구에서는 나노 마도 필터가 걸러낸 무취의 깨끗한 바람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실내의 온도를 완벽하게 조절했다.

테이블 너머에 앉은 네오 코리아 측 협상단원들은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임시 정부의 군부를 대표해 참석한 임태수 대령과 군사 고문들의 몰골은 말 그대로 말이 아니었다. 비록 방공호의 최하층까지 퍼졌던 포자 독소는 한강진이 인도주의적 차원을 가장해 보내준 해독제 덕분에 해소되었지만, 그들의 야윈 얼굴과 붉게 충혈된 눈은 그동안 겪은 생사의 기로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씻지 못해 꾀죄죄한 군복에서는 희미한 포자의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풍겼다.

반면, 상점의 주인인 한강진은 가볍게 티스푼으로 찻잔을 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마시는 고급 홍차의 향긋한 냄새가 회의실 가득 퍼질 때마다, 며칠 동안 썩은 보리밥과 흙탕물로 연명하던 군부 인사들의 코끝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탁자 중앙에는 대아 자치구의 풍요로움을 자랑이라도 하듯 갓 구워낸 빵과 신선한 버터, 그리고 얼음이 가득 담긴 주전자와 투명한 유리잔들이 놓여 있었다. 협상단원들은 그것들을 뻔히 보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것이 제가 제안하는 새로운 무역 및 동맹 조약서입니다.”

강진이 서류 한 장을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냈다. 서류의 제목은 단순했다.

[대아 자치구-네오 코리아 특별 생존 및 보급 협약서]

임태수 대령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집어 들어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참모들과 고문들도 고개를 모으고 서류의 조항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채 넘기기도 전에, 임 대령의 이마에 굵은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 소장님. 이건 단순한 협약서라기보다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편향된 굴종 조약에 가깝습니다. 네오 코리아가 채굴하거나 획득하는 마정석과 괴수 부산물의 60%를 대아 측에 우선적으로 헌납하고, 지하철 노선을 포함한 모든 물류 루트의 통제권을 대아 자유무역 자치구에 완전히 귀속시킨다니요. 게다가 임시 정부는 자치구의 내정과 경제 활동에 일절 관여할 수 없으며 독점 보급권에 대한 세금 징수 권한도 영구 포기한다는 조항은 너무 가혹합니다.”

군사 고문 중 한 명이 결국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격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보급이 급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엄연히 국가의 존립을 수호하는 유일한 정통 군부요! 민간 자치구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가는 것 같은 이 따위 조약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소! 국가의 자존심이 있지, 우리를 아주 거렁뱅이 취급하시는구려!”

강진은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작은 소리였지만, 순간 회의실 전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강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회의실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군 고문님.”

강진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안광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저는 당신들에게 동맹을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이 조약은 제가 베푸는 마지막 생존권의 판매 계약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껍데기 아래에서 군복을 입고 계신다고 해서, 여전히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군복의 가치는 그 군복을 지탱할 시스템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강진은 손가락으로 강화유리 너머의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에는 붉은 포자 안개가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며 푸른색 대형 방어막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안개 속에 나가면 당신들은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폐가 녹아내려 피를 토하며 죽습니다. 방공호의 정화 필터는 이틀이면 완전히 부식되어 무용지물이 될 테고, 지하 식수는 독극물로 변하겠죠. 저 포자 차단 장벽을 유지하고, 필터를 정기적으로 공급하고,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나노 아티팩트를 소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저 한강진 하나뿐입니다. 저를 적으로 돌리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건 방공호 안에서 천천히 말라 죽는 것뿐입니다.”

강진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그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제가 보급을 끊으면, 네오 코리아는 일주일 안에 스스로 붕괴합니다. 반대로 제가 당신들을 돕는다면, 당신들은 이 지옥 속에서도 살아남아 문명을 재건할 기회를 얻겠죠. 자, 60%의 마정석이 아깝습니까, 아니면 수천 명의 부하들과 자신들의 목숨이 아깝습니까? 상인으로서 묻는 겁니다. 목숨의 가치를 마정석보다 낮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협상단원들의 입이 굳게 닫혔다.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들이 가진 소총과 포탄, 수만 명의 군사력은 이 보이지 않는 미세한 포자 안개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오직 한강진의 시스템 보급력만이 그들을 구원할 유일한 밧줄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자치구 영내의 지진 감지 경보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토해냈다. 회의실 벽면에 설치된 전술 모니터가 붉은색 경보 화면으로 전환되며 지상의 상황을 비추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붉은 안개를 헤치며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끔찍한 형상의 마수들이 보였다. 온몸이 붉은 곰팡이와 뾰족한 가시 같은 버섯으로 뒤덮인 늑대와 곰 형상의 괴수들이었다. 포자의 영향으로 기존 괴수들보다 근력이 몇 배는 강화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위험한 변종들이었다.

“포자 괴수라니……! 저런 끔찍한 놈들이 벌써 지상에 저렇게 많이 깔렸단 말인가!”

네오 코리아 고문들이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방공호 순찰대도 지상에 나갔다가 저런 변종 한두 마리를 만나 전멸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300마리가 넘는 군단이라니, 지상 방어선이 뚫린다면 지하 공장마저 안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진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태연하게 무전기를 들었다.

“방어벽 가동하십시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비밀 군수 공장 시스템을 통해 생산한 ‘화염 강화 탄약’의 위력을 테스트할 좋은 기회군요. 1분대, 사격 개시하세요.”

콰아아아아아앙-!

지상의 방어탑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포성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포탄이 아니었다. 하늘을 가른 포탄이 허공에서 파열하자, 백색의 고열 마법이 융합된 화학 화염 장벽이 지상 전역을 뒤덮었다. 포자에 취약한 마수들의 신체에 특화된, 시스템 커스텀 탄환의 위력이었다.

끼에에에엑-!

포자 괴수들이 화염에 휩싸여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불길 속에서도 광포하게 돌진하려 했으나, 대아 자치구 방위 대원들이 쥔 소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탄의 위력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타타타타탕-!

보통의 탄환이라면 튕겨 나갔을 괴수들의 두꺼운 마력 가죽이, 푸른 마력이 깃든 강화 탄환에 빗방울 맞듯 뚫려 나갔다. 탄환이 몸에 박힐 때마다 소형 마력 폭발이 일어나며 괴수들의 신체를 내부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단 3분이었다.

밀려들던 300여 마리의 변종 마수 집단은 대아 자치구의 압도적인 화력 보급 앞에 단 한 마리도 방어막 근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완전히 재가 되어 지상에서 사라졌다.

감시 화면을 지켜보던 임태수 대령과 군인들의 눈에 극도의 경외감과 공포가 서렸다. 저들이 가진 무기는 네오 코리아가 보유한 구시대적 재래식 무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마도 문명’의 정수였다. 만약 지난번 갈등 때 한강진이 정말로 마음을 먹고 방공호를 공격했다면, 네오 코리아는 흔적도 없이 지도에서 지워졌을 것이 분명했다.

강진은 무전기를 내려놓고, 다시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보시다시피, 대아 자치구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고, 아울러 동맹에게 이 엄청난 무기와 탄약을 무한정 공급할 능력도 있습니다. 물론, 제 규칙에 따르는 동맹에게만 말이죠.”

강진은 미소를 거두고 조약서와 펜을 임 대령 앞으로 완전히 밀어주었다.

“서명하시겠습니까, 대령님? 아니면 방공호로 돌아가 포자 섞인 물을 마시며 애국가를 부르시겠습니까?”

임태수 대령은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펜을 쥐고 조약서 하단에 자신의 이름과 네오 코리아 군사 사령부의 직인을 거칠게 찍었다.

서걱. 서걱.

“……동맹 조약은 성립되었습니다. 대아 자치구의 모든 거래 규칙을 준수하겠습니다, 한 소장님. 부디 저희 국민들과 병사들을 지켜주십시오.”

“현명한 선택입니다. 약속드리죠. 대가를 지불하는 한, 당신들은 절대 굶주리거나 질식하지 않을 겁니다.”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임 대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이 마주 잡혔다.

[대아 자치구와 네오 코리아 임시 정부의 종속적 무역 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보급으로 세상을 쥐고 흔드는 상인의 권력이, 마침내 구시대의 국가 권력을 완전히 집어삼킨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강진의 눈동자 너머로 다가올 2차 대재앙의 폭풍을 헤쳐 나갈 새로운 판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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