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107화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07화: 끊겨버린 생명줄과 생존의 가격

대아 자유무역 자치구가 네오 코리아 임시 정부로 향하는 모든 송수관과 보급로를 차단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지하 방공호 지하 3층 사령부 구역은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상에서 들이닥친 붉은 포자 안개는 상상 이상으로 끈질기고 치명적이었다. 방공호 자체 정화 필터는 이미 한계를 초과하여 붉은 미세 먼지 같은 분진을 걸러내지 못했고, 공기 순환 통로를 통해 흡입된 포자가 복도마다 옅은 안개처럼 깔렸다.

콜록! 콜록!

방공호 곳곳에서 피 섞인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포자가 폐로 들어가 호흡기를 손상시키고 마력 중독 증세를 유발하는 탓이었다. 식수 오염도 심각했다. 지하수 펌프실 주변 토양으로 붉은 포자가 침투하면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서는 비린 피 냄새와 함께 미세한 붉은 앙금이 섞여 나왔다.

“보고 드립니다! 공기 정화율이 기존 대비 30%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내일 아침이 되기 전에 방공호 거주 인원의 절반 이상이 중증 호흡기 중독에 빠질 겁니다!”

“식수 공급도 중단해야 합니다! 정수 필터가 포자에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상황실의 장교들이 절박하게 외쳤다. 그러나 의장석에 앉은 김재현 총무처장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으면서도 고집스러운 노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닥쳐라! 감히 일개 상인 놈이 국가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 해? 한종학 대장! 자네의 그 헐렁한 태도 때문에 한강진 그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다!”

김 처장은 상황실 한구석에 서 있던 한종학 대장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한 사령관은 붉은 안개 속에서도 강진이 미리 챙겨준 정화 마스크 덕분에 멀쩡한 상태였기에, 김 처장의 눈에는 그것마저 눈엣가시로 보였다.

“총무처장님, 한 소장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지하 문명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보급의 근원입니다. 당장 사과하고 거래를 재개해야 합니다.”

“입 다물어! 국가의 법과 질서를 거역하는 반역자에게 굴복하란 말인가? 당장 임태수 대령의 강습 연대를 출동시켜 군수 공장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한강진을 체포해 와라!”

김 처장의 광기 어린 명령에, 상황실 문이 열리며 완전 군장을 한 임태수 대령이 들어섰다. 하지만 그의 안색 역시 극도로 파리했다. 방공호 내부에 퍼진 포자 독소에 노출된 탓에, 그의 부하들 중 벌써 3분의 1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출동은 불가능합니다, 처장님.”

임 대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감히 군인이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거부가 아니라 현실적인 불능입니다. 공장으로 가는 지하철 통로는 이미 대아 자치구 측에서 설치한 마도 차단벽으로 완전히 봉쇄되었습니다. 지상으로 우회하려 해도, 밖은 포자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병사들의 정화 필터가 버티지 못합니다. 출동하는 순간 우리 연대는 공장에 닿기도 전에 지상에서 몰살당할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황실 모니터 화면 중 하나가 번쩍이며 켜졌다. 그것은 대아 자치구의 군수 공장 입구와 자치구 영내를 비추는 외부 감시 카메라 화면이었다.

화면 속의 대아 자치구는 네오 코리아와는 완전히 딴판인 평화로운 세계였다.

거대한 반구형의 푸른 반투명 마력 방어막(SP로 구매한 대형 방어막 생성기)이 자치구 전체를 감싸고 있어, 몰아치는 붉은 안개를 완벽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방어막 내부의 생존자들은 정화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깨끗한 물을 마시며 태연하게 물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대비되는 모습은 방공호 수뇌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박탈감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자신들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낙원에 사는 듯했다.

“저, 저런 천인공노할 놈들을 봤나……! 우리를 말려 죽이겠다는 속셈이구나!”

김 처장이 부들부들 떨며 책상을 내리쳤다. 하지만 상황실의 그 누구도 그의 분노에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 깨끗한 방어막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만이 그들의 눈동자에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그때, 통신 모니터 중앙에 한강진의 얼굴이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구김 하나 없는 셔츠 차림. 그의 뒤편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 잔이 보였다.

강진의 담담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김 처장이 모니터를 향해 꿱 비명을 질렀다.

강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강진의 시선이 김 처장을 지나 뒤쪽에 서 있는 한종학 대장과 임태수 대령에게로 향했다.

“썩은 가지라니? 네놈이 감히 누구더러……!”

김 처장이 발악하려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철컥-!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임태수 대령의 권총 총구가 김 처장의 관자놀이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상황실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임, 임 대령? 미쳤나! 지금 무슨 짓을……!”

“나라를 구하는 짓입니다, 처장님.”

임 대령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차가웠다.

“처장님의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방공호 내부의 수천 명의 국민들과 군인들을 질식사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오시죠.”

상황실을 지키던 경비 병력들 역시 임 대령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살고 싶었기에, 묵인하며 고개를 돌렸다. 권력의 힘은 문명이 작동할 때나 유효한 법이었다. 보급이 끊긴 지 단 반나절 만에, 법적 정통성을 부르짖던 관료의 권력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임 대령은 처장을 무장 해제해 끌어내도록 부하들에게 지시한 뒤, 모니터 속 한강진을 바라보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한 소장님. 네오 코리아 방공호 사령부는 현 시간부로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체하고, 군부 임시 통제 체제로 전환합니다.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정식으로…… 거래를 요청합니다.”

모니터 속의 한강진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임 대령님. 그럼 새로운 무역 조약의 문서를 보내드릴 테니 서명 준비나 하시죠. 가격은 이전보다 조금 비싸질 겁니다. 연체 이자와 위험 수당이 붙었으니까요.”

진정한 갑(甲)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준, 완벽한 승리였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