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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106화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아포칼립스의 만능 보급상인

106화: 붉은 안개의 서막과 첫 번째 경고

서울 하늘을 가로지른 거대한 차원의 균열. 그 틈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붉은 안개는 지상으로 내려앉기가 무섭게 무서운 기세로 팽창했다.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괴한 마력 반응을 품은 미세한 포자들의 집합체였다. 안개가 닿는 곳마다 콘크리트 벽면이 산화된 것처럼 붉게 물들었고, 지상의 마른 잡초들은 시커멓게 말라 죽었다. 무엇보다 대기 중에 흩뿌려진 미세한 유독성 물질들이 생명체의 호흡기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지하 100미터 아래의 비밀 군수 공장 역시 경보음으로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공기 정화 장치 풀 가동해! 필터 잔류 수치 확인하고 마도 가열로 출력 최대로 올려!”

대아 자치구의 방위 대원들과 기술자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공장의 외곽 환풍구를 통해 유입된 미세한 붉은 분진이 공기 흡입구를 막아버리기 시작했다. 공장 안의 조명이 깜빡였고, 기계들이 삐걱거리는 비명 소리를 냈다.

“대장님! 환기 시스템의 일반 필터로는 이 붉은 포자를 걸러낼 수 없습니다! 필터 섬유가 화학적으로 부식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30분도 안 돼서 공장 내부 전체가 포자로 오염됩니다!”

기술 팀장의 절박한 외침에, 현장을 지휘하던 한종학 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이 가진 기존 과학 기술과 어설픈 마도 공학 수준으로는 이 전대미문의 재앙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한강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하다 못해 냉정했다.

“비키세요. 제가 처리하죠.”

강진은 공장 중앙 공조 시스템의 핵심 제어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공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을 띄웠다.

[만능 보급 상점 (등급: EX) - 필터 및 정화 카테고리]

현재 그의 보유 SP는 오태섭 잔당의 마도 무기와 장갑차를 헌납해 확보한 3,753.5 SP. 자금은 차고 넘쳤다.

“시스템, 나노 마도 정화 필터 대량 구매. 총 100개.”

[1,500 SP를 소모하여 ‘나노 마도 공기 정화 필터’ 100개를 구매합니다.]

강진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마력 보석들이 박힌 육각형 모양의 금속 필터들이 줄지어 소환되었다. 그는 곧바로 공조 제어 장치에 특수 필터들을 장착하고 시스템 마력을 동기화시켰다.

위이이이잉-!

공장을 짓누르던 퀴퀴하고 매캐한 탄내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서늘하고 깨끗한 공기가 넓은 격납고 내부로 뿜어져 나왔다. 필터를 교체한 지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얻은 결과였다. 경보등의 붉은 불빛이 초록색의 안전 신호로 바뀌자, 숨을 몰아쉬던 대원들이 경탄 어린 눈으로 강진을 바라보았다.

“역시 한 소장님이야. 이 정도 보급력과 즉각적인 대응 능력이 없었다면 우린 진작에 몰살당했을 거다.”

한종학 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만 강진의 시선은 이미 그 너머, 즉 지상의 상황으로 향해 있었다.

“방공호 본부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진의 질문에 한 사령관의 안색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말도 마시게. 네오 코리아 본부 지하 쉘터는 우리 공장보다 환기 시설 규모가 몇 배는 더 크네. 그 말은 유입되는 포자의 양도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지. 그곳의 일반 정화 장치들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네. 사령부와 임시 정부 인사들이 대피한 최하층 구역까지 붉은 안개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더군.”

“그렇겠군요.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아포칼립스는 매 순간이 통곡의 벽일 뿐이니까요.”

강진이 차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찰나, 공장의 통신용 마도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수신음과 함께 낯선 중년 남성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재현 처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동시에 특유의 관료적인 오만함이 묻어 있었다.

명령. 법적 의무.
멸망해 버린 세계에서 여전히 과거의 권력에 취해 있는 자들이 즐겨 쓰는 단어들이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억지스러운 요구에 한종학 대장을 비롯한 현장의 대아 자치구 소속 대원들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요청을 돕는 것과, 일방적인 명령을 받들어 자신들의 귀중한 자원을 강탈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한강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입가에 차분하고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마도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김재현 처장님. 법적 의무라니,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지금 밖을 한번 보시죠. 법을 집행할 경찰도, 사법부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대체 무슨 권리로 타인의 정당한 재산을 강탈하겠다는 겁니까?”

김 처장의 목소리가 거칠게 톤을 높였다.

무전기를 든 한종학 대장의 손이 잘게 떨렸다.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실질적인 생존의 은인인 한강진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진은 오히려 한 사령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안심시킨 뒤, 무전기를 향해 선언하듯 내뱉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상인으로서의 규칙을 적용할 수밖에 없겠군요.”

“지금 이 순간부로, 대아 자유무역 자치구는 네오 코리아 임시 정부 측과의 모든 거래를 전면 중단합니다. 또한, 방공호 내부로 공급되던 생수와 식량, 그리고 탄약 보급로를 즉시 폐쇄하겠습니다.”

“글쎄요. 붉은 안개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할 군대가 과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방금 공장에 인접한 정부 송수관 밸브를 잠갔습니다. 마도 필터도 더는 공급되지 않을 겁니다. 강제 수용을 하러 오시든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단, 그전에 포자를 마시고 숨이 붙어 있다면 말이죠.”

강진은 김 처장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가차 없이 무전기 전원을 차단했다.

그리고 공장의 보급 제어 단말기를 조작해 정부 방공호 구역으로 이어지는 자원 송출 파이프라인의 차단 밸브를 영구 잠금 상태로 설정했다.

탁-!

철저하고도 완벽한 단절이었다.

공장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종학 대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진을 바라보았다.

“한 소장, 정말 괜찮겠나? 정부 쉘터 내부에는 수천 명의 군인들과 생존자들이 있네. 그들이 폭도로 변해 이 공장을 향해 총구를 돌릴지도 모르네.”

“그들은 총을 쏠 힘조차 잃게 될 겁니다.”

강진의 눈동자가 깊고 차가운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보급을 쥐고 있는 상인이 갑(甲)이라는 사실을, 저들은 문명이 무너진 지 오래인데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칼자루를 쥔 쪽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뼈에 새겨줄 때가 되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3일 안에 저들은 우리 발밑으로 기어 와 협상을 구걸하게 될 테니까요.”

붉은 포자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바깥세상 속에서, 한강진은 독점적 보급 권능이 지닌 진짜 무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장기판의 첫 번째 말을 차갑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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