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4화: 마력 정화 에그타르트
십오 분.
엘리제는 휴대용 연금 가마의 옆면에 새겨진 눈금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마 안에서 커스터드가 부풀 때마다 금빛 거품이 한 번씩 꺼졌다.
문제는 온도만이 아니었다.
검은 망토의 남자에게서 새어 나온 냉기가 매장 바닥을 타고 주방까지 밀려왔다. 벽에 박힌 안정석은 원래의 연한 노란빛을 잃고 푸르게 점멸했다. 화덕의 불씨는 뜨거워지려다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열원은 흔들리고 배출 경로는 막혀 있어.’
엘리제는 가마 아래에 그린 원형 서클을 손바닥으로 지웠다. 원은 한꺼번에 열을 끌어올리는 데는 편하지만 지금처럼 외부 마력 간섭이 큰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가마를 감싸는 가느다란 나선을 세 겹 그렸다.
“마리. 카모마일은 전부 갈지 말고 반만 남겨 둬. 블루민트는 잎 세 장이 끝이야.”
“더 넣으면 향이 세져서 좋은 것 아닌가요?”
“평소 손님이라면 그렇지. 저분은 감각이 꺼진 게 아니라 막혀 있어. 너무 강하게 건드리면 막힌 데가 터질 수 있어.”
마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절구를 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곱게 찧은 카모마일 가루가 우유 위에 눈처럼 내려앉았다.
엘리제는 버터를 녹여 틀 가장자리에 발랐다. 카모마일의 부드러운 향이 먼저 올라오고 뒤늦게 블루민트의 차가운 향이 따라붙었다. 두 향이 섞이는 순간 가마의 금빛 불꽃이 낮게 숨을 쉬었다.
주방 입구에서 베른이 다급하게 말했다.
“전하. 저자가 또 움직입니다.”
엘리제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경비한테 창을 내리라고 하세요.”
“지금 저자를 막을 수 있는 건 경비뿐입니다.”
“아니요. 지금 저분에게 창끝을 보이면 저분 몸 안의 마력이 먼저 반응해요. 밖에서 찌르든 안에서 터지든 이 가게가 무너지는 건 똑같습니다.”
베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부서진 문 하나와 공방 전체를 잃는 비용이 같지 않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잠시 뒤 베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매장 쪽에 외쳤다.
“창을 거두십시오. 공녀 전하의 지시입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엘리제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카운터 끝을 붙잡고 서 있었다. 손등을 타고 오른 푸른 마력선이 팔목을 지나 팔꿈치까지 갈라져 있었다. 손가락은 검집 위에 걸쳐 있었다.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하지만 힘이 조금만 더 들어가면 검집이 부서질 만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얼마나 더 걸리지.”
“칠 분.”
“길군.”
“그럼 문도 안 부수고 일찍 오셨어야죠.”
남자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벽의 안정석 하나가 파직 소리를 내며 빛을 잃었다. 마리가 숨을 삼키자 엘리제는 커스터드를 젓던 손을 멈췄다.
“검에서 손 떼세요.”
“명령인가.”
“요청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기도 해요.”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약속한 적이 있나.”
“라 보나 안에서는 무기를 쓰지 않기로 했잖아요. 방금 전에는 고개를 끄덕이셨고요.”
그의 시선이 엘리제에게 박혔다. 그 안에는 짜증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피로였다. 너무 오래 견딘 사람이 마지막으로 붙드는 표정이었다.
엘리제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전 당신을 믿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지금 검을 뽑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편이 당신에게도 이득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남자의 손가락이 검집에서 떨어졌다.
그 짧은 움직임과 함께 얼어붙었던 바닥의 성에가 더 번지지 않았다.
엘리제는 다시 가마로 돌아왔다. 노른자를 풀어 체에 내리고 우유와 섞었다. 카모마일 가루는 한 번에 넣지 않았다. 크림에 먼저 우린 뒤 남은 가루를 마지막에 얇게 뿌렸다.
마력 가루도 마찬가지였다.
‘정화는 제거가 아니야. 엉긴 걸 풀고 흘러갈 길을 만드는 거지.’
그녀는 남자의 마력 파동을 느낄 때마다 가마 가장자리의 나선을 하나씩 눌렀다. 금빛 열이 커스터드 안쪽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벽의 안정석도 그 열을 받아 푸른빛과 노란빛을 번갈아 토해 냈다.
가마가 낮게 울었다.
화아아앙.
버터의 고소한 향이 매장으로 퍼졌다. 그 뒤를 카모마일의 달콤한 풀 향이 감쌌다. 블루민트는 맨 끝에서 겨우 차가운 숨결만 남겼다.
남자의 몸이 굳었다.
“그 냄새.”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었다. 낮은 목소리 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엘리제는 식힘망을 꺼냈다. 가마에서 나온 타르트의 표면은 옅은 갈색이었다. 가장자리는 바삭하게 부풀었고 중앙의 커스터드는 숟가락으로 눌러도 천천히 되돌아왔다.
“아직입니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지금 줘.”
“뜨거운 걸 드시면 감각이 다시 과하게 튈 수 있어요. 두 분만 더 기다리세요.”
“나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건 보여 주셨죠.”
엘리제는 부채를 들어 타르트 위로 바람을 보냈다. 손이 떨리지 않도록 손목을 단단히 고정했다. 구운 것의 온도가 내려가는 이 짧은 시간이 오늘의 성패를 가를지도 몰랐다.
매장 쪽에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력선이 팔을 타고 목덜미까지 솟구쳤다. 푸른 빛이 그의 귀 뒤에서 번쩍일 때마다 금이 간 찻잔이 흔들렸다.
경비 하나가 반사적으로 창을 들었다.
“물러나세요!”
엘리제가 날카롭게 외쳤다.
그녀는 식힘망을 든 채 남자에게 다가갔다. 차가운 기운이 뺨을 베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남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제 말 들리세요?”
“가라.”
“싫어요. 여기서 터지면 제 가게가 사라지거든요.”
엘리제는 타르트를 반으로 잘랐다. 속에서 옅은 금빛 김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가장 작은 조각을 접시에 올리고 남자 앞에 내밀었다.
“한 입만 드세요. 씹지 말고 혀 위에서 천천히 녹이세요.”
남자는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가 타르트와 엘리제를 번갈아 보았다.
“독이면.”
“독을 먹일 생각이면 이렇게 비싼 재료를 쓰지 않았어요.”
베른이 뒤에서 낮게 신음했다. 마리는 입술을 깨물고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남자는 접시를 받아 들었다. 떨리는 손끝이 타르트 조각을 집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입에 넣었다.
첫 반응은 고통이었다.
남자의 어깨가 세게 들썩였다. 푸른 마력선이 손목에서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와 팔 전체를 물들였다. 창문에 낀 성에가 순식간에 두꺼워졌다.
엘리제는 숨을 들이켰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 반응은 훨씬 거칠었다.
‘막힌 관에 압력을 준 거야. 지금은 넘기면 안 돼.’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가마의 보조 서클에 댔다. 남자의 파동이 가장 높아지는 박자에 맞춰 나선 하나를 열었다.
금빛 열이 바닥의 문양을 타고 퍼졌다.
지직.
남자의 발밑에서 푸른 빛이 갈라졌다. 날카롭게 솟구치던 마력은 바닥의 안정석 쪽으로 조금씩 흘러들었다. 안정석 하나가 탁한 소리를 내며 금이 갔지만 곧 빛을 삼켰다.
“호흡하세요.”
엘리제는 남자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들이쉬고 넷까지 세요. 그다음 천천히 내쉬세요. 이건 명령이 아니라 치료 과정이에요.”
남자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하나. 둘. 셋. 넷.
그가 내쉰 숨에 섞여 서리가 옅어졌다.
두 번째 숨이 이어질 무렵 푸른 마력선의 끝이 흐려졌다. 손등의 균열도 더는 위로 오르지 않았다. 매장 천장에 매달린 문종이 아주 약하게 울렸다.
남자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들어 자기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프지 않나?”
엘리제가 되물었다.
“아프다.”
그는 숨을 골랐다.
“하지만 전처럼 온몸을 찌르지는 않는다.”
엘리제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그래도 과포화된 마력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 그가 자기 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검을 뽑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맛은요?”
남자는 입 안에 남은 것을 천천히 삼켰다. 마치 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따뜻하다.”
엘리제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버터 맛이 난다.”
그가 다시 말했다.
“끝에는 풀 냄새가 있다. 달고…… 조금 쓰다.”
마리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베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와 타르트를 번갈아 보았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모마일과 블루민트예요. 감각이 돌아온 건 아니고 잠깐 길이 열린 겁니다. 오늘 밤은 자극적인 마력 사용을 피하세요. 검도 마찬가지고요.”
“내게 지시하는군.”
“손님 관리입니다.”
남자의 입매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에 가까웠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남은 타르트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더 먹으면?”
“오늘은 안 돼요. 너무 많이 먹으면 풀린 마력이 다시 엉킬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다음에도 와서 먹고 싶으세요?”
남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부서진 문과 얼어붙은 마룻바닥이 있었다.
“필요하다.”
엘리제는 그 한마디를 듣고 속으로 계산했다. 재료비. 안정석 수리비. 위험 수당. 그리고 마음대로 문을 부수는 손님에게 받아야 할 보증금.
“그럼 규칙부터 지키세요. 영업시간에 오기. 예약 없이 문 부수지 않기. 무기 반입 금지. 치료 중에는 제 지시에 따르기.”
“대가는.”
“문값과 치료비를 선불로요.”
베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 대신 희미한 안도와 업무 의욕이 섞여 있었다.
남자는 망토 안쪽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 카운터에 올렸다. 두꺼운 은화 중앙에는 날개를 펼친 사자와 왕관이 정교하게 찍혀 있었다.
“보증금이다.”
엘리제가 은화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귀족의 문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걸로는 문 하나 값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내일 가져오겠다.”
“내일은 예약부터 하세요.”
남자는 문턱으로 향했다. 경비 둘은 길을 막지 못하고 양옆으로 물러섰다. 그는 부서진 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이름은.”
“엘리제 드 밸류어입니다.”
푸른 눈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기억해 두지.”
검은 망토가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기운도 그 발걸음과 함께 서서히 옅어졌다.
한참 뒤에야 경비 하나가 카운터 위 은화를 살폈다. 그는 문장을 보자마자 두 손으로 동전을 받쳐 들었다.
“공녀 전하. 이건 황실의 사자 문장입니다.”
엘리제는 손에 남은 따뜻한 타르트 향을 맡았다.
파멸을 피하려고 연 카페에 황실과 얽힌 손님이 찾아왔다.
그 사실이 반갑지 않은데도 다음 예약 장부를 펼쳐야 한다는 생각부터 드는 자신이 조금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