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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5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5화: 카페의 비밀 주주

아침 햇빛이 라 보나의 부서진 문턱을 비추고 있었다.

엘리제는 카운터 위의 은화를 천으로 덮었다. 날개를 편 사자와 왕관은 천 사이로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걸 왜 아직도 여기 두십니까?”

베른은 문짝의 금을 살피던 목수를 향해 손짓했다.

“황실 문장이 찍힌 물건입니다. 별저 금고에 넣고 공작 각하께 보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주인이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 손님 물건을 멋대로 금고에 넣으면 분실 처리부터 해야 하잖아요.”

“손님이라고 부르기에는 문 하나를 부수고 갔습니다.”

“그래서 수리 견적도 적어 두었죠.”

엘리제는 장부를 펼쳤다. 문짝 교체, 안정석 보수, 밤새 녹인 바닥 마력 잔재 처리까지. 은화 한 닢으로는 모자랐고 그 사실을 모를 손님도 아니었다.

로딘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가씨. 황실 물건은 들이는 순간부터 평범한 장사가 아닙니다. 사교계를 떠나겠다고 하신 뜻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엘리제가 피하고 싶은 것은 초대장과 소문, 누군가의 호의에 매달리는 삶이었다. 황실의 사자 문장은 그 모든 것보다 더 무거운 초대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문밖에 세워 놓고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먼저 규칙을 만들 거예요.”

엘리제는 새 종이를 꺼내 굵은 글씨로 적었다.

예약 없는 방문 금지. 무기 반입 금지. 치료는 점주의 판단에 따른다. 기물 파손은 선배상.

마리가 마지막 줄을 읽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상이요?”

“먼저 내는 배상금이요. 문을 부수는 분에게는 특히 필요하죠.”

베른의 미간이 아주 조금 풀렸다. 엘리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부터 치료용 타르트는 따로 기록할 거예요.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와 마력 반응을 남겨야 다음 배합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창밖으로 검은 마차가 멈췄다.

마차에는 문장이 없었다. 대신 마부와 수행원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갑옷도 검도 보이지 않았지만 발걸음마다 훈련된 경계가 묻어났다.

마리가 속삭였다.

“어젯밤 그분이 오신 걸까요?”

엘리제는 천으로 덮은 은화를 서랍에 넣었다.

“손님이면 문으로 들어오겠죠.”

라 보나의 새 문이 조용히 열렸다.

회색 머리의 남자가 먼저 들어왔다. 단정한 검은 연미복을 입은 그는 카운터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밸류어 공녀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에드윈입니다. 황실의 위임을 받아 왔습니다.”

그 뒤로 검은 망토의 남자가 들어왔다. 오늘도 얼굴 절반을 가렸지만 어젯밤처럼 걸음을 끌지는 않았다. 푸른 눈은 여전히 차갑고 피곤했다.

엘리제는 그가 새 문을 잠시 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문은 잘 열리네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드윈이 작은 나무 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상자 안에는 두 장의 문서와 금화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문서에는 왕실 면허장이라는 제목이, 두 번째 문서에는 금액이 비어 있는 지급 증서가 적혀 있었다.

베른의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라 보나에 비밀 출자를 제안드립니다.”

에드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출자자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시설 보수와 재료 확보 비용은 황실에서 부담합니다. 대신 라 보나를 황실 비밀 감찰단의 보급 거점으로 지정해 주십시오.”

“우선 공급이 어느 정도죠?”

“요청이 있을 때마다.”

“그건 답이 아니에요.”

엘리제는 면허장을 집어 들었다. 종이는 훌륭했고 인장도 진짜였다. 그런데 마지막 조항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황실의 긴급 요청 시 시설과 재고를 우선 징발할 수 있다. 보급 대상의 신원과 이용 기록은 황실이 열람한다.

그녀는 면허장을 도로 내려놓았다.

“이건 비밀 주주가 되는 계약이 아니라 가게를 넘기라는 문서네요.”

에드윈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황실의 긴급권은 형식적인 조항입니다.”

“형식적인 조항은 지우면 되겠네요.”

베른이 작게 헛기침했다. 로딘은 아무 말 없이 문가를 지켰다. 마리는 쿠키 집게를 든 채 엘리제의 뒤에 섰다.

에드윈이 낮게 말했다.

“감찰단의 일은 공개될 수 없습니다. 장기 잠복과 마력 사용으로 몸이 상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안정식이 필요합니다.”

“그분들에게 필요한 게 치료라면 더더욱 기록을 뺏으면 안 되죠. 누가 무엇에 반응했는지는 제 처방 기록입니다.”

엘리제는 문서의 두 조항에 선을 그었다.

“손님 이름은 가명으로 적겠습니다. 증상과 섭취량만 기록할 거예요. 원한다면 봉인해서 보관할 수는 있지만 황실도 마음대로 열람하지 못합니다.”

“공녀 전하.”

“그리고 우선 공급은 하루 여섯 명까지예요. 그 이상은 제가 만들 수 없어요. 무리해서 만든 타르트는 약이 아니라 사고가 됩니다.”

검은 망토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섯이면 충분하다.”

에드윈이 그를 돌아보았다.

“전하, 감찰단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짧은 말에 매장 공기가 가라앉았다. 엘리제는 그 호칭을 들었지만 곧바로 신분을 묻지 않았다. 황실의 높은 사람이란 사실만으로도 가게에 드나드는 위험은 충분했다.

대신 그녀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젯밤처럼 급하면요?”

“내가 통제한다.”

“그 말은 믿기 어렵네요. 당신도 어제 통제하지 못했잖아요.”

푸른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베른은 금방이라도 장부를 방패처럼 들 것 같았다.

엘리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긴급 환자는 받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제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무기는 입구 보관함에 맡기고 환자가 거부하면 치료도 하지 않아요. 치료 효능을 핑계로 누군가를 붙잡아 두는 일도 안 됩니다.”

한참 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비는 두 배로 지급한다. 출자금은 네가 정한 금액을 적어라. 레시피는 묻지 않겠다.”

에드윈이 숨을 들이켰다.

엘리제는 새 종이를 끌어왔다. 손이 빨라졌다.

황실 비밀 감찰단 전용 예약 시간은 해 질 무렵 한 시간. 하루 여섯 명. 일반 손님 영업을 침해하지 않는다. 무기 보관과 치료 동의는 필수. 레시피와 처방 기록은 라 보나의 소유. 시설 수리비와 재료비는 선지급. 계약을 어기면 라 보나는 황실 면허 사용과 보급을 중단할 수 있다.

“마지막 조항은 황실 면허를 무효로 만든다는 뜻입니까?” 에드윈이 물었다.

“아니요. 계약을 깨면 제가 그 면허를 쓰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면허보다 제 가게가 먼저니까요.”

남자의 입매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좋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손등의 푸른 마력선은 전보다 옅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손으로 계약서 하단에 짧은 서명을 남겼다.

카일레온.

엘리제는 이름을 소리 없이 읽었다.

“성은요?”

“필요한가.”

“예약 장부에는 필요해요.”

카일레온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로젠버그.”

엘리제는 펜을 멈췄다. 황실 문장과 같은 성이었다. 하지만 이미 문서에는 황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제 와서 놀랄 이유는 없었다.

“카일레온 로젠버그. 다음 치료는 이틀 뒤 해 질 무렵이에요. 마력 사용량을 적어 오세요. 검을 쓴 시간과 통증이 시작된 시각도요.”

“내 기록을 보겠다는 건가.”

“당신 몸의 반응을 보겠다는 거죠. 치료를 계속 받고 싶다면요.”

카일레온은 대답 대신 계약서 사본을 접었다. 그러다 품 안쪽에서 얇은 금속판 하나를 꺼내 에드윈에게 건넸다.

“감찰단의 기록 형식이다. 필요한 항목만 베껴 써라. 원본은 네게 주지 않는다.”

엘리제는 금속판에 줄지어 적힌 날짜와 마력 사용 시간을 훑었다. 적어도 자기 몸을 숨긴 채 치료만 요구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원본은 필요 없어요. 치료에 필요한 수치만 있으면 됩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수행원 하나가 벽에 손을 짚고 주저앉아 있었다. 검은 장갑 아래 손가락이 떨렸고 목덜미에는 옅은 보랏빛 마력선이 떠올랐다.

에드윈이 급히 다가갔다.

“레온. 정신 차려라.”

남자는 억지로 일어나려다 헛구역질했다. 카일레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안으로 들여.”

엘리제가 손을 들었다.

“잠깐요. 오늘은 보급 첫날도 아니에요.”

“그가 쓰러지고 있다.”

“그래서 더 함부로 타르트를 먹이면 안 돼요. 증상도 모르는데 고농도 정화식을 쓰면 반대 반응이 날 수 있어요.”

카일레온의 시선이 얼음처럼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명령하지 않았다.

엘리제는 마리에게 말했다.

“카모마일 쿠키 두 개와 미지근한 물. 향이 너무 강한 건 빼고요.”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에드윈이 물었다.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응급으로 호흡을 안정시키는 거예요. 정식 치료는 내일 아침 첫 예약으로 잡죠.”

그녀는 수행원의 손목에 손가락을 댔다. 맥은 빠르지만 끊기지는 않았다. 마력선은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대신 안쪽에서 매듭져 있었다.

“마력 과부하가 아니라 잠을 못 잔 쪽에 가까워요. 세 시간 안에 강한 마력을 쓴 적 있죠?”

수행원의 눈이 흔들렸다. 에드윈이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카일레온이 짧게 말했다.

“있다.”

엘리제는 쿠키를 반으로 나누어 건넸다.

“한 조각만 드세요. 다 드시면 속이 더 울렁거릴 수 있어요.”

수행원은 떨리는 손으로 쿠키를 받아 들었다. 몇 번 씹고 물을 마시자 어깨의 경련이 조금 잦아들었다.

엘리제는 카일레온에게 계약서를 가리켰다.

“이게 제가 수를 제한한 이유예요. 여기는 병영도 약방도 아니에요. 한 사람씩 보고 맞춰야 합니다.”

카일레온은 잠시 쓰러진 수행원을 보았다. 그러고는 예상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첫 시간으로 잡아라.”

“이름은 가명으로요.”

“레온으로 적어라.”

엘리제는 장부에 적었다. 레온. 마력 수면 고갈 의심. 카모마일 쿠키 반 개. 내일 오전 재진.

마차가 떠날 때 카일레온은 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카페의 비밀 주주가 된 기분은 어떤가.”

엘리제는 그의 서명이 든 계약서를 들어 보였다.

“주주는 이익만 가져가면 안 돼요. 문도 고치고 환자도 예약시켜야죠.”

카일레온의 눈에 아주 옅은 웃음이 스쳤다.

“다음에는 문으로 들어오겠다.”

검은 마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그 뒤에서 마리가 진열장을 닦다가 숨을 삼켰다.

유리창 밖에 낡은 망토를 쓴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마카롱이 담긴 유리 상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제가 문을 열자 소녀가 화들짝 물러났다.

“저기…… 돈은 없는데요.”

소녀의 시선이 분홍색 마카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거 하나만 냄새 맡아 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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