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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3화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3화: 태업은 계획적으로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로잘린은 이불 밖으로 손가락 하나 내놓지 않았다.

명령서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치료 기간 중 정오 이전 대면 보고 금지.

황제가 만든 법보다 황제의 도장이 찍힌 문장이 더 무서운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문장을 사랑해야 했다.

문밖에서 마르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보좌관님. 감찰단 관련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정오 전입니다."

"아직 열두 시는 아닙니다만 폐하께서 긴급하다고 하셨습니다."

"긴급의 정의가 명령서에 있습니까?"

문밖이 조용해졌다.

로잘린은 베개에 뺨을 더 깊이 묻었다. 이 작은 승리가 감격스러웠다. 전생에는 병가 중에도 메신저 알림을 끌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황제를 상대로 업무 시간을 협상했다.

물론 그 대가가 황제 직속 특별 행정 감찰단장이라는 사실은 잠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뒤 문밖에서 아주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럼 정오에 다시 오겠습니다."

"식사도 함께 가져오세요. 식사 시간 별도 보장 조항도 있으니까요."

"이미 준비했습니다."

마르셀의 대답은 지나치게 빨랐다.

로잘린은 눈을 떴다. 황제는 명령서의 세 조항을 전부 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쉬는 시간까지 관리하려는 집착은 소름 끼쳤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쓸모가 있었다.

종이 열두 번 울리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마르셀은 문서 상자 두 개와 은쟁반 하나를 이끌고 들어왔다. 은쟁반 위에는 따뜻한 죽과 과일 그리고 물병이 놓여 있었다.

"서류보다 식사부터 하시라는 폐하의 명입니다."

로잘린은 수상한 눈으로 쟁반을 보았다.

"독이 든 건 아니겠죠?"

"폐하께서 직접 부엌을 뒤집으셨습니다. 독이 있다면 요리장이 먼저 쓰러졌을 겁니다."

그 말은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다만 죽은 먹기 좋을 만큼 묽었고 로잘린은 배가 고팠다.

마르셀은 그녀가 반 그릇을 비우는 동안 상자를 열었다. 감찰단 인장, 임시 보조관 명단, 각 부처의 최근 결재 지연 보고가 침대 옆 탁자에 차례로 쌓였다.

로잘린은 숟가락을 멈췄다.

"이게 전부 뭡니까?"

"의무실이 오늘부터 감찰단 임시 사무실로 지정되었습니다."

"누가요?"

"폐하께서요."

"환자 침대가 사무실로 적합하다는 규정도 새로 만드셨습니까?"

마르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죄 없는 감찰단 인장을 바라보았다.

로잘린은 죽 그릇을 내려놓았다. 칼릭스는 자신을 쉬게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쉬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래서 침대 곁에 일을 놓는다. 손목을 묶지 않고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좋아. 그러면 이 일부터 망쳐 주지.'

그녀는 식사 쟁반을 한쪽으로 밀었다. 마르셀이 얼른 작은 접이식 책상을 침대 앞으로 당겨 왔다. 그 동작이 너무 익숙해서 로잘린은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준비하셨군요."

"보좌관님께서 문서를 보면 가만히 계시지 못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건 편견입니다."

"어제 침상에서 열두 장짜리 지침을 쓰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로잘린은 반박하지 못했다. 어제의 자신은 분명 과로로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업 계획 첫 장에 평가 항목을 열두 개나 붙일 리 없었다.

그녀는 새 종이를 꺼냈다.

특별 행정 감찰단 운영 지침.

제목부터 너무 성실했다. 로잘린은 이를 악물고 첫 줄을 적었다.

각 부처는 알아서 잘할 것.

완벽했다.

책임 소재도 없고 성과 기준도 없고 회의만 백 번 열릴 문장이다. 부처장들은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다 지칠 것이고 감찰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태업이었다.

로잘린은 만족스럽게 펜을 놓았다.

그리고 열다섯 초 뒤 다시 집었다.

알아서 잘하라는 말 아래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야근이 숨어 있었다. 업무가 밀리면 가장 말단 문서관이 밤새 장부를 맞출 것이다. 책임자는 보고서 맨 끝에 사과 한 줄을 쓰고 넘어갈 테고.

그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린 순간 손이 움직였다.

단, 부처별 결재 지연률과 보고 누락 건수를 월별로 공개한다.

"……이건 아닙니다."

로잘린은 문장을 그었다.

하지만 지워진 자리 옆에 더 정확한 문장이 떠올랐다. 결재권자가 부재할 때 대리권자가 누구인지. 비상 보고는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담당자가 병상에 누웠을 때 서류함 열쇠를 누가 받는지.

현행 제국 행정은 사람이 하나 쓰러지면 일이 멈췄다. 로잘린이 지금까지 버틴 이유도 그 구조 때문이었다. 그녀가 멈추면 칼릭스의 명령은 부처마다 다른 방향으로 튀고 그 뒤를 수습할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더 손이 갔다.

로잘린은 대리 결재 권한을 세 단계로 나눴다. 예산 변경은 차관급 이상, 인사 이동은 담당 국장과 감찰단의 공동 확인, 긴급 명령은 시간과 사유를 남겨 다음 날 반드시 재검토.

그녀는 야간 호출 기준도 적었다. 전쟁, 재난, 황궁 경비의 즉시 위험. 그 외의 사안은 다음 날 정오 이후 보고.

황제의 기분 변화는 긴급 사유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 문장에서 로잘린의 펜이 멈췄다.

마르셀이 조용히 기침했다.

"그 문구는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까?"

"폐하께서 읽으시면 감찰단의 첫 업무가 장례 절차가 될 수 있습니다."

로잘린은 한숨을 쉬며 문장을 고쳤다.

개인적 감정의 급변은 긴급 사유로 보지 않는다.

"아주 순화했군요."

"제가 그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오후 햇살이 창문을 건너 반대편 벽에 닿을 무렵 종이는 한 장에서 열 장으로 늘어났다. 대리 결재 권한표, 인수인계 목록, 야간 긴급 호출 기준, 감찰단 보조관의 책임 범위, 부처별 점검 양식까지.

로잘린은 마지막 표를 보며 멍해졌다.

"저는 대충 하려고 했는데요."

마르셀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무슨 뜻이죠?"

"보좌관님께서는 대충 하셔도 남들이 목숨 걸고 만든 문서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칭찬은 때때로 모욕보다 아팠다.

그때 문밖에서 가벼운 노크가 들렸다. 젊은 문서관 보조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결재 대기 장부가 들려 있었다.

"보좌관님. 재무부에서 대리 결재자를 누구로 정해야 할지 묻습니다."

"아직 초안입니다."

"그럼 초안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까? 지난달에도 차관께서 사흘 동안 열병으로 누우셔서 급여 지급 결재가 밀렸습니다."

로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흘 밀린 급여는 누군가에게는 사흘치 식량이었다. 태업이라는 말은 그 사람들에게 너무 사치스러웠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재무부 차관의 대리권자는 수석 서기관으로 지정하세요. 단, 지출 한도는 기존 예산의 십분의 일까지입니다. 초과분은 감찰단에 기록을 남기고요."

보조관은 곧장 받아 적었다.

"예."

"그리고 초안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미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로잘린의 시선이 천천히 마르셀에게 향했다.

마르셀은 미소도 변명도 없이 고개만 숙였다. 충성스러운 시종장은 아주 효율적인 배신자이기도 했다.

문이 열렸다.

마르셀이 물러난 자리로 칼릭스가 들어왔다. 검은 제복 끝에는 바깥의 찬 공기가 묻어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의무실은 순식간에 그의 집무실이 된 듯 답답해졌다.

그는 탁자 위 문서를 읽었다. 눈동자가 한 줄씩 움직일수록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대리 결재 권한을 등급별로 나눴군."

"업무가 멈추면 곤란하니까요."

"네가 없어도 멈추지 않게."

로잘린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칼릭스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러나 종이를 쥔 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게 감찰단의 목적 아닙니까?"

"목적은 네가 다시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없어도 굴러갈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네가 없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라."

짧은 한마디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탁자 위 유리컵이 미세하게 울렸다.

로잘린은 침대보 아래에서 손을 쥐었다. 그가 겁내는 것은 행정 공백이 아니었다. 빈자리 자체였다. 하지만 그 공포가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지는 않았다.

"저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퇴사하는 겁니다. 절차에 따른 이동이고요."

"그 절차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단장을 뽑는 겁니다."

칼릭스는 문서를 덮었다. 잠시 뒤 그는 마르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지침을 공문으로 만들어 각 부처에 보내라. 오늘 안에 대리 결재자 명단을 받겠다."

"잠깐만요."

로잘린이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움이 밀려왔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초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방금 재무부에 적용했다."

"그건 급여가 걸린 사안이었고요."

"그렇다면 더더욱 미룰 이유가 없군."

칼릭스는 아주 논리적인 표정이었다. 로잘린은 그 논리가 싫었다. 자신이 망치려던 문서가 제국 전체에 배포되는 순간 태업은 공식적으로 사망했다.

"후보들은 내일 정오에 모인다. 네가 시험해라."

"제가 가장 쉽게 내겠습니다."

"쉽게?"

"이름과 소속만 쓰게 할 겁니다. 운 좋으면 합격이고요."

칼릭스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네 곁에 둘 사람이다."

"제 곁에 두는 게 아니라 제 자리를 넘겨줄 사람입니다."

그의 마력이 창문 유리를 가늘게 울렸다. 로잘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물러서면 다시 새벽 세 시 호출로 돌아갈 것이었다.

칼릭스는 한참 뒤 말했다.

"네가 고른다. 다만 네가 고른 자가 네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 책임도 네게 있다."

"그건 이미 제 전문 분야입니다."

그가 돌아섰다. 문턱을 넘기 전 칼릭스가 멈췄다.

"오늘은 더 쓰지 마라."

"폐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고 나갔다.

로잘린은 한동안 닫힌 문을 보았다. 이 남자는 통제를 배려라고 부르고 불안을 명령으로 번역한다.

그래도 방금 얻은 것은 분명했다.

시험권.

마르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이름과 소속만 묻는 시험을 내실 겁니까?"

"물론이죠."

로잘린은 새 종이를 펼쳤다.

부단장 후보 간이 평가.

이번에는 정말 쉬울 것이다. 한 문제. 서술형도 아니다.

로잘린이 첫 문장을 쓰려는 순간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원작 진행에서 유의미한 이탈이 감지되었습니다.]

[경고: ‘칼릭스’의 집착 수치가 안전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권고: 원작의 주인공과 조우하기 전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십시오.]


로잘린은 펜끝을 멈췄다.

원작에서 칼릭스는 보좌관이 아니라 감금된 성녀에게 집착했다. 특별 감찰단도 없었고 대리 결재표도 없었다. 자신이 문서 몇 장을 고친 사이 이야기는 분명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시스템의 경고가 떠오른다는 것은 그 변화가 사소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원작대로 돌아가려면 그녀는 칼릭스 곁에서 또 갈려 나가야 했다. 그가 원작의 궤도에 돌아가도록 기다리는 동안 새벽 호출을 받고 그의 분노를 받아 내야 했다.

그 선택지는 없었다.

로잘린은 알림창을 손등으로 밀어냈다.

"보좌관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험지를 만들고 있었어요."

문항 1. 담당자가 쓰러진 뒤에도 업무를 멈추지 않게 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마르셀이 문장을 읽고 입을 다물었다.

"아주 쉽군요."

"그렇죠?"

"아닙니다."

로잘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르셀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권한과 책임 그리고 인수인계 위치를 전부 아는 사람만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로잘린은 한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한 문제뿐이었다.

아주 쉬운 문제였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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