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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4화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4화: 가장 쉬운 시험

정오가 되자 의무실 옆 회의실에는 후보 다섯 명이 모였다.

로잘린은 아직 창백한 얼굴로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침상에서 회의실까지 고작 스무 걸음이었다. 그 스무 걸음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그녀는 등받이에 기대는 대신 서류를 똑바로 맞췄다.

오늘만 잘 넘기면 된다.

부단장을 하나 뽑고 그에게 결재 대기 문서 절반을 떠넘긴다. 그러면 자신은 사표를 쓸 시간을 벌 수 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문제는 그 계획의 첫 과정이 시험이라는 점이었다.

시험을 대충 내면 된다. 이름과 소속만 적게 하면 된다. 누가 붙든 상관없다.

로잘린은 그렇게 다짐하며 후보들 앞에 빈 인수인계 서식 다섯 장을 놓았다.

오른쪽 끝에는 비단 제복을 차려입은 귀족 자제 둘이 앉아 있었다. 황제 직속 조직의 자리를 얻으러 왔다는 자신감이 얼굴에 넘쳤다. 왼쪽에는 재무부와 병참부에서 올라온 실무 관료 둘이 있었고 가장 끝자리에는 낡은 서류 가방을 든 청년 하나가 앉아 있었다.

마르셀이 후보 명단을 읽었다.

"재무부 문서관 이안 레이너."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손등에는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새 제복도 아니고 장식도 없었다.

로잘린은 그를 오래 보지 않았다. 들러리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미리 기대하는 일은 피곤했다.

"문제는 하나입니다."

그녀는 종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담당자가 쓰러진 뒤에도 업무를 멈추지 않게 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확인해야 합니까? 답은 이 서식에 적으세요."

후보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예상했던 충성 맹세나 법 조항 암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검은 제복의 젊은 귀족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황제 폐하께 즉시 보고해 새 명령을 받겠습니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열렸다.

후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칼릭스는 검은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 문가에 섰다. 그의 시선이 회의실을 훑자 방금 전까지 속삭이던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앉아라. 계속해."

로잘린은 눈썹을 찌푸렸다.

"시험은 감찰단장 권한입니다."

"알고 있다. 네가 고를 사람을 보러 왔다."

그 말은 허락처럼 들렸지만 감시에 가까웠다. 칼릭스는 창가로 가서 팔짱을 꼈다.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로잘린은 한숨을 삼켰다.

"답변을 이어 가세요."

귀족 후보는 황제가 듣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심한 얼굴이었다.

"폐하의 명령이 가장 빠른 해결책입니다. 대리권자를 새로 지정하면 혼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사이 급여 결재가 밀리면 누가 책임집니까?"

"그건 담당 부처가……"

"담당자는 쓰러졌습니다."

후보의 입이 다물렸다.

로잘린은 서식의 첫 칸을 가리켰다. 대리 권한자.

"그 사람이 부재한 상황에서 ‘담당 부처’는 답이 아닙니다. 이름을 적으세요. 어느 직급의 누가 어디까지 결재할 수 있는지요."

후보는 펜을 들었지만 끝내 첫 줄을 채우지 못했다.

두 번째 후보는 법전을 인용했다. 세 번째 후보는 인원을 추가로 뽑아야 한다고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쓰러진 사람의 책상 위에 쌓인 서류를 누가 열어 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로잘린의 피로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역시 이름과 소속만 물었어야 했다. 왜 첫 문항부터 이런 질문을 썼을까.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 후보에게 멈췄다.

"이안 레이너 문서관."

이안은 서식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리권자와 문서 위치 그리고 마감 시각을 확인합니다."

"순서는요?"

"권한이 먼저입니다. 권한이 없으면 문서를 찾아도 결재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은 마감 시각입니다. 급여나 난방처럼 늦으면 피해가 생기는 일을 먼저 가려야 합니다."

로잘린은 무심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문서 위치는 왜 세 번째입니까?"

"열쇠나 장부가 사라진 경우는 기록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한과 마감 시각을 확인하지 못하면 누가 일을 이어받아야 하는지도 정할 수 없습니다."

답은 지나치게 정확했다.

로잘린은 빈 서식 하나를 그에게 밀었다.

"상황을 드리죠. 야간에 난방 연료 지급이 막혔습니다. 차관은 의식이 없고 감찰단장도 연락되지 않습니다. 기존 예산으로 처리할 수는 있지만 서명권자는 없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안은 펜을 들었다. 망설임 없이 세 줄을 적은 뒤 서식을 돌려 보였다.

수석 서기관이 기존 예산의 십분의 일 한도에서 대리 결재.

지급 대상과 사유, 지출액을 즉시 기록.

다음 날 정오까지 감찰단에 인수인계 보고.

로잘린은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한도를 넘으면요?"

"지급을 나눕니다. 우선 동결 위험이 있는 구역부터 처리하고 경비대 비상 물자를 요청합니다. 그 요청도 기록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이안의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예전에 그 절차가 없었습니다."

회의실 안의 눈길이 그에게 모였다. 이안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연료 장부 열쇠를 가진 서기관이 사흘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창고는 잠겼고 외곽 숙소 아이들이 추위에 떨었습니다. 보고서는 나중에 완성됐습니다. 책임자도 문책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필요한 건 보고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짧게 숨을 골랐다.

"열쇠를 넘겨받을 사람과 결재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로잘린은 펜을 내려놓았다.

이안은 정답을 외운 사람이 아니었다. 멈춘 업무가 누구에게 닿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때 창가에서 칼릭스가 말했다.

"친위대에서 한 명을 더 보내겠다."

회색 눈동자가 이안에게 향했다. 후보들은 다시 숨을 죽였다.

"폐하의 사람이면 명령 전달도 빠르고 충성도 확실하다."

로잘린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시험 대상은 다섯 명입니다."

"그는 믿을 수 있다."

"부단장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넘겨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칼릭스의 마력이 바닥을 차갑게 훑었다. 유리창이 가늘게 울리고 한 후보가 펜을 떨어뜨렸다.

로잘린은 떨리는 손을 탁자 아래에서 맞잡았다. 몸은 쉬어야 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감찰단은 황제의 눈과 귀가 될 뿐이었다. 자신의 공백을 줄이는 조직이 아니라 자신을 더 촘촘히 묶는 조직이 된다.

"평가 기준은 기록하겠습니다."

그녀는 마르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권한 확인, 마감 판단, 인수인계 기록, 책임 소재. 네 항목입니다. 합격과 탈락 사유를 전부 남기고 각 부처에도 보낼 겁니다."

마르셀이 곧장 새 장부를 펼쳤다.

칼릭스의 시선이 로잘린에게 내려앉았다.

"내 추천도 기록하겠다는 뜻인가."

"추천은 기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준 밖의 합격은 기록할 수 없습니다."

"네가 고르면 그 결과도 네 책임이다."

"네. 그래서 제가 고릅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칼릭스의 손끝이 장갑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그는 후보들보다 로잘린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자신의 명령을 받아 적던 사람이 이제는 명령을 구조 안에 넣고 있었다.

"좋다. 기록해라."

명령은 낮았지만 회의실의 공기가 풀렸다.

로잘린은 평가를 끝까지 진행했다. 세 번째 후보는 비상 상황에서 부서장의 서명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네 번째 후보는 책임을 피하려 모든 사안을 황궁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둘 다 훌륭하게 일을 멈추는 방법이었다.

이안만이 빈칸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대리권자 옆에 반드시 권한의 한도를 적었다. 인수인계란에는 문서뿐 아니라 열쇠와 인장, 진행 중인 민원까지 포함했다. 마지막 칸에는 이렇게 썼다.

업무를 이어받은 자는 전임자의 부재를 숨기지 않는다.

로잘린은 그 문장을 보자마자 이유를 알았다.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감추고 혼자 버티게 만드는 조직은 결국 또 다른 사람을 쓰러뜨린다. 자신이 살던 자리도 그랬다.

"이안 레이너 문서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별 행정 감찰단 부단장으로 임명합니다."

이안의 눈이 커졌다. 귀족 후보 중 하나가 작게 숨을 들이켰지만 로잘린은 평가 장부를 덮었다.

"첫 임무를 받으세요."

"명하십시오."

오후가 되면 보고서가 쏟아질 것이다. 원래라면 로잘린은 침상에 누운 채로도 전부 읽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문장 하나가 어긋나면 못 본 척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는 그 익숙한 충동을 꾹 눌렀다.

"오늘 오후 보고는 부단장이 먼저 분류합니다. 긴급 기준에 맞는 것만 제게 올리고 나머지는 대리 결재표에 따라 돌리세요."

이안은 잠시 임명장과 로잘린을 번갈아 보았다.

"보좌관님께 바로 올리지 않습니까?"

"제가 모든 문서를 보면 부단장을 뽑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이안은 답한 뒤 빈 인수인계 서식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그리고 아주 사무적인 얼굴로 덧붙였다.

"그럼 보좌관님은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쉬셔야 합니다. 인수인계표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로잘린은 말문이 막혔다.

누군가가 자신의 휴식을 부탁이 아니라 업무 규정으로 확인하는 일은 낯설었다. 너무 낯설어서 잠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칼릭스는 이안을 못마땅하게 보았다가 로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긴급 보고는 내게도 올라온다."

로잘린은 즉시 답했다.

"시간과 사유를 기록하는 조건으로요."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황제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칼릭스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명령보다 훨씬 이상한 대답이었다.

로잘린은 임명장 아래에 첫 지시를 적었다.

부단장은 감찰단장의 휴식 조항 위반을 기록한다.

이안은 그 문장을 읽고 망설임 없이 인장을 찍었다.

그 순간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경고: 진행 이탈률이 상승합니다.]


로잘린은 창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등으로 밀어냈다.

원작에는 혼자 버티다 무너지는 보좌관만 있었다. 그 결말이 안전하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보고서를 넘길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녀가 쉬는지까지 기록하겠다고 했다.

로잘린은 창밖의 햇빛을 한번 올려다봤다.

퇴사가 가까워졌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 무너지지 않는 쪽으로는 분명 한 걸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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