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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2화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2화: 영혼의 기동

첫 번째 스크랩 견이 도약했다.

금속 발톱이 콘크리트 잔해를 긁고 붉은 안광이 지한의 목을 노렸다. 지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른손의 전자기 해머를 낮게 끌어올려 놈의 턱 관절에 꽂아 넣었다.

콰직!

푸른 불꽃이 튀었다. 합금 이빨이 모래 위로 쏟아지고 스크랩 견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그래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나노 감염체 특유의 끈질긴 구동음이 망가진 목 안쪽에서 갈렸다.

“아르케, 조준계 교란. 출력 제한 해제.”

[권장하지 않음. 잔여 축전량 11%.]

“권장 목록은 나중에 읽어.”

지한은 에바의 목덜미에 꽂아 둔 리더선을 뽑지 않았다. 저 선 하나가 지금 그녀와 감염 차단 프로토콜을 이어 주고 있었다. 끊기면 흉부의 붉은 결정이 메모리 코어까지 파고들 것이다.

두 번째 스크랩 견의 등에서 기관총 포탑이 솟았다. 회전축이 윙윙 돌며 지한을 겨눴다.

지한은 반쯤 부서진 장갑차 아래로 몸을 던졌다. 탄환이 머리 위 철판을 두들기고 녹슨 파편이 비처럼 떨어졌다. 그는 왼손으로 리더선을 감아 쥔 채 허리춤의 낡은 과부하 캡슐을 뽑아 아르케 보조 단자에 찔러 넣었다.

삐이이이익-!

고주파 펄스가 고철 지대 전체를 긁었다. 스크랩 견들의 안광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지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쪽으로 와. 아니지. 넌 못 걷지.”

그는 에바의 상반신을 끌어올려 접이식 해체 썰매 위에 밀어 넣었다. 오른팔이 없는 어깨와 무릎 아래가 사라진 왼쪽 다리가 차갑게 흔들렸다. 한때 보병 중대를 혼자 상대했다던 병기라고는 믿기 어려운 무게감이었다.

견인 줄을 가슴에 감자 갈비뼈가 눌렸다. 방독면 안쪽으로 더운 숨이 찼다.

“고철로 팔면 요새 하나를 살 값이야.”

지한은 이를 악물고 썰매를 끌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죽지 마라.”

황산 비의 첫 방울이 떨어졌다. 회색 모래가 검게 젖고 고철 더미 사이로 매캐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지한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쪽에서 망가진 발톱이 철판을 긁는 소리가 따라왔다. 한 마리는 턱이 부서졌고 두 마리는 조준계가 흐려졌을 뿐이었다.

아르케의 화면이 그의 팔목에서 깜박였다.

[차단 프로토콜 잔여 유지 시간: 18분.]

“충분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지한의 아지트는 무너진 통신 중계소 아래에 있었다. 지상에서 보면 녹슨 안테나와 깨진 태양광 패널이 널린 폐허에 불과했다. 하지만 잔해 속 비상 해치를 통과하면 다른 세계가 나왔다.

지하 정비소의 천장에는 굵은 케이블이 혈관처럼 지나갔다. 벽면에는 폐배터리 묶음과 중고 안정기들이 층층이 박혀 있었고 중앙에는 지한이 직접 조립한 다목적 정비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해치가 닫히자 낡은 스피커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가 시간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제 판단에는 무장한 시체를 끌고 오셨군요.”

“카이론, 격리장 열어. 냉각 라인도 전부.”

“정비소 전체 전력의 43%를 소모하는 요청입니다. 인간의 충동적 수집벽은 문명 붕괴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았군요.”

“문부터 열어.”

“이미 열었습니다. 당신은 감사 표현을 자동 폐기하는 기능이 있습니까?”

지한은 대답 대신 에바를 정비대 위에 눕혔다. 바이오 셀 커버를 덮은 붉은 결정은 이동하는 동안 더 깊어져 있었다. 맥박처럼 뛰던 미세한 빛도 거의 사라졌다.

아르케가 경고음을 냈다.

[에너지 잔량: 0.01%.]
[나노 감염 차단 프로토콜 불안정.]

카이론의 말투에서 빈정거림이 옅어졌다.

“차단 유지 시간 6분 12초. 그 뒤에는 감염이 메모리 코어로 넘어갑니다. 이 시설도 오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폐기를 권고합니다.”

지한은 절단기를 들었다.

“살릴 수 있으면 폐기가 아니야.”

“그 기준 때문에 이 정비소에는 쓸모없는 팔과 다리가 너무 많습니다.”

“저건 쓸모없는 팔이 아니야. 아직 안 붙인 팔이지.”

절단기의 날이 붉은 결정층에 닿았다. 지한은 숨을 멈췄다. 너무 깊이 깎으면 셀 외피가 찢어지고 너무 얕으면 감염 회로가 남는다. 손끝의 떨림 하나가 폭발과 복구를 갈랐다.

치이이익.

붉은 결정이 얇은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그 아래에서 바이오 셀의 외피가 드러났다. 은백색 표면 곳곳에 검은 실핏줄 같은 오염 흔적이 얽혀 있었지만 중심부는 살아 있었다.

“셀 자체는 죽지 않았군요. 출력 봉인입니다.”

“그러니까 시체 아니라고 했지.”

“정정하겠습니다. 움직이는 폭탄에 가깝습니다.”

지한은 폐배터리 묶음을 병렬로 연결했다. 케이블 피복이 녹아 손등을 스쳤다.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는 손을 빼지 않았다. 구형 안정기를 억지로 물리고 냉각 라인을 바이오 셀 주변으로 돌렸다.

전력계 바늘이 위험 구간을 넘어섰다. 천장 조명이 한 번 꺼졌다가 켜졌다.

“카이론, 3번 생산 라인 전력까지 빼.”

“그 라인은 당신의 식수 정화 펌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목마른 것보다 지금 코어가 타는 게 문제야.”

“비효율적인 우선순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흥미롭군요.”

투덜거리던 카이론이 전력을 열었다. 정비대 아래쪽에서 저음의 진동이 살아났다. 바이오 셀 안쪽에 희미한 청색 빛이 번졌다.

지한은 안도할 틈도 없이 아르케를 메인 프로세서 포트에 연결했다.

[군용 전술 AI 코어 접속.]
[권한 없음.]
[침입 대응 시작.]

손목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치솟았다. 아르케의 피드백 회로가 역류하고 지한의 손가락이 제멋대로 굳었다. 화면에는 붉은 차단 코드가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날 공격하면 너도 죽어.”

에바가 들을 리 없었다. 아직 그녀는 깨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지한은 말하면서 키를 두드렸다. 망가진 기계에는 종종 말이 필요했다. 기계가 알아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치는 사람이 손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였다.

부트로더는 찢어진 지도 같았다. 중요한 시작 주소가 날아갔고 전술 인격 모듈로 이어지는 경로는 검게 타 있었다. 자동 복구 프로그램은 세 번 시도하다가 전부 실패했다.

“자동은 포기한다.”

지한은 아르케의 보호 덮개를 열고 수동 패치 모드로 들어갔다. 스승이 남긴 방식이었다. 빠르지도 않고 우아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동화 장비가 모두 사라진 세계에서도 손과 눈만 있으면 쓸 수 있었다.

그는 빈 주소를 임시 회로로 우회하고 손상된 검증 값을 새로 묶었다. 방어 코드는 계속 그를 밀어냈다. 한 번 튕길 때마다 아르케가 뜨거워졌고 손목 안쪽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카이론이 낮게 말했다.

“접속을 끊으십시오. 단말기까지 타면 당신은 그냥 렌치를 든 고철 수집가로 돌아갑니다.”

“아르케는 안 탄다.”

“근거는요?”

“내가 고쳤으니까.”

마지막 우회 경로를 연결하는 순간 화면 한쪽에 깨진 파일명이 떠올랐다.

[MEM_FRAGMENT: WHITE SWORD]
[STATUS: unreadable]

지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화이트 소드?”

“기록 대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읽으려 하면 부팅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묻어 둬.”

그가 엔터 키를 누르자 정비소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 낮아졌다. 바이오 셀이 깊은 곳에서 숨을 들이마시듯 울었다. 에바의 흉부 장갑 안쪽으로 청색 광원이 퍼지고 목덜미의 진단 포트가 차례로 점등했다.

[부트 시퀀스 재개.]
[메인 프로세서 임시 안정화.]
[전술 인격 모듈 부분 복원.]
[마스터 등록 필요.]

정비소 안이 조용해졌다.

카이론이 먼저 침묵을 깼다.

“등록하면 이 병기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거부하면 다시 봉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봉인 성공률은 38%입니다.”

“위로 고맙다.”

“위로가 아닙니다. 경고입니다.”

지한은 에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먼지와 찢어진 인공 피부 아래로 정교한 프레임이 드러나 있었다. 인간도 아니고 단순한 기계도 아닌 것. 백 년 동안 스스로를 지켜 낸 의지가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아르케가 다시 물었다.

[마스터 권한자를 등록하십시오.]

지한은 잠깐 망설였다. 이건 부품을 챙기는 일이 아니었다. 군용 전술 안드로이드를 깨우고 자신의 명령 체계 안에 들이는 일이었다. 이 기계가 움직이면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을 수 있었다.

그 책임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이름 강지한. 생체 코드 전송. 권한은 정비사 권한으로 제한.”

[오류. 전술 병기 마스터는 지휘관 권한 필요.]

“그럼 임시 현장 지휘관으로 등록해. 계급은 없어도 책임자는 나다.”

아르케가 짧게 떨렸다.

[임시 현장 지휘관: 강지한.]
[마스터 등록 완료.]

에바의 눈꺼풀이 열렸다.

희미한 청색 광원이 렌즈 안쪽에서 켜졌다. 초점 없는 시선이 천장을 훑고 벽면의 케이블과 카이론의 카메라를 지나 지한에게 고정됐다.

“시스템 복귀.”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런데 끝부분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오래 잠겨 있던 문이 처음 열릴 때 나는 마찰음 같았다.

“손상률 71%. 우측 상지 소실. 좌측 하지 구동 불가. 전술 기억 결손.”

지한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깨어났군.”

에바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

“식별. 강지한. 임시 현장 지휘관. 마스터.”

“그래. 일단은 그렇게 부르면 된다.”

에바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정비대가 덜컥 흔들렸다.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케이블 다발이 힘없이 떨렸고 왼쪽 다리의 절단면에서는 안정화 폼이 굳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손을 내려다본 뒤 다시 지한을 보았다.

“전투 지속 불가. 호위 효율 낮음. 사과합니다.”

지한은 잠시 말을 잃었다.

살아나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병기라니. 군용 AI의 잔재인지 인격 모듈의 버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말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사과는 됐다. 네가 아직 내 정비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게 중요하지.”

“명령을 요청합니다.”

지한은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웃었다. 피곤해서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첫 명령은 충전. 두 번째 명령은 살아남기.”

에바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명령 수락. 살아남겠습니다.”

그 순간 정비소 외곽 센서가 날카롭게 울었다.

벽면 모니터에 붉은 점 두 개가 떠올랐다. 통신 중계소 주변을 원형으로 맴도는 신호였다. 고철 지대에서 따라붙었던 스크랩 견들이었다. 놈들은 아직 입구를 찾지 못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카이론이 스피커를 낮게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방금 깨어난 병기에게 첫 실전 훈련장이 배달되었습니다.”

지한은 전자기 해머를 집어 들었다. 손목은 아직 저렸고 정비소 전력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에바는 팔도 다리도 부족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눈빛은 조금 더 선명해져 있었다.

“마스터 보호 프로토콜.”

에바가 고개를 돌려 붉은 경고점을 바라보았다.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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