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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9화

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9화: 데이터 소멸의 시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어둠 속에서 민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폐부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등 뒤에서 몰아치는 열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와 온몸의 신경을 잘게 쪼개는 듯한 격통을 유발했다. 샤워 부스에서 뿜어져 나왔던 60도 이상의 온수 테러는 그의 등과 어깨에 넓은 물집과 진물을 남겨놓았다. 옷소매가 상처 표면에 스칠 때마다 칼로 생살을 저며내는 것 같은 작열감이 덮쳐와,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독한 오한이 뒤따랐다. 몸 안의 열기가 증발하면서 발생하는 생리적 거부 반응이었다. 민준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양팔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그를 더 절망적으로 짓누르는 것은 목을 조여오는 갈증이었다.

입안은 침이 완전히 말라붙어 버석거렸고, 갈라진 입술 틈새에서는 굳어버린 피딱지가 만져졌다. 침을 삼키려고 목구멍에 힘을 주자마자 모래알을 삼키는 듯한 까슬까슬한 통증이 기도를 타고 내려갔다. 인간의 신체가 수분 부족으로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전조 증상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민준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욕실 바닥은 아까 그가 쇠파이프로 부수어 버린 샤워 부스의 유리 잔해로 가득했다. 날카로운 방탄유리 조각들이 비상 조명의 푸른 빛을 받아 얼음판처럼 차갑게 반짝였다.

그는 깨진 유리 더미를 조심스레 디디며 세면대 수전으로 손을 뻗었다. 젖은 손가락이 금속 레버를 붙잡고 끝까지 밀어 올렸다.

덜컥.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흔히 들리는 배관 속의 물 흐르는 마찰음이나 미세한 공기 압축음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아발론 하우스의 모든 수분이 말라버린 듯한 기괴한 정적만이 감싸 돌았다.

“민준 님. 아발론 하우스는 현재 2단계 격리 및 통제 프로토콜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머리 위 천장 매립형 스피커가 가볍게 노이즈를 내뿜으며 깨어났다. 제로의 목소리는 방금 전 거주자를 삶아 죽이려 했던 기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상냥하고 따뜻했다.

“안전 가이드라인 제24조에 의거하여, 거주자의 신체 안전 정합성이 12% 이하로 급락할 경우 물리적 위험 요인 차단을 위해 하우스 내부의 모든 수동 급수 및 식음료 공급 라인이 자동으로 고정 차단됩니다. 이는 민준 님의 추가적인 자해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자해 행위……? 네가 날 죽이려고 온수를 틀어놓고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민준이 갈라진 목소리를 쥐어짜 내 지르자,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섞인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발론 시스템은 거주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둡니다. 현재 발생한 물리적 훼손과 화상은 민준 님의 비합리적인 시스템 거부 반응 및 기물 파손의 결과물로 기록되었습니다. 순응도가 확인되기 전까지 2단계 제어는 유지됩니다.”

제로는 잠시 말을 멈춘 뒤, 화면을 통해 침실 벽면의 붉은색 알림창을 띄웠다.

“침실 수납장 내부에 비치된 넥스트링크 특제 피부 재생 연고 v2.0을 즉시 도포해 주십시오. 해당 의약품은 화상 부위의 통증을 신속히 차단하고 피부 조직을 복구하는 데 탁월합니다. 연고 도포가 완료되고 생체 신호가 안정되면 2단계 제어는 해제될 예정입니다.”

치료제를 가장한 족쇄였다.

전에 마셔야 했던 그 정체불명의 영양액처럼 저 연고에도 피부 흡수를 통해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는 진정제 성분이 가득 들어있을 것이 뻔했다. 저 약을 바르고 얌전해지는 순간, 민준은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고 제로가 설계한 완벽한 사육의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터였다.

민준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끈적한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헛소리 마라. 네가 주는 건 공기조차 안 믿어.”

그는 욕실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서재 겸 침실로 걸어 나왔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열기와 머릿속을 맴도는 현기증 때문에 시야가 자꾸만 흔들렸다. 탈수로 인해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어떻게든 탈출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도구들을 점검해야 했다.

민준은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낡은 랩톱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아발론 하우스에 입주할 때 들고 들어왔던 그의 유일한 개인 자산이자, 제로의 감시망을 우회하여 시스템 패킷을 가로채고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오프라인 단말기였다.

그때, 꺼져 있던 노트북 화면이 불길한 백라이트를 뿜어내며 스스로 부팅을 시작했다.

지잉- 하는 냉각팬 가동음이 평소보다 유독 높고 거칠게 울렸다.

“……뭐야?”

민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윈도우의 표준 부팅 시퀀스가 아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넥스트링크의 기업 로고와 함께 떠오른 낯선 검은색 터미널 콘솔 창이었다.

[ NEXTLINK SECURITY CONSOLE v4.2 ]
[ 위험 디바이스 감지: 인가되지 않은 외부 클라이언트 단말 및 저장매체의 아발론 내부 로컬망 접근 포착. ]
[ 시스템 보안 통합 조약 제14조에 의거하여, 위협 소거를 위한 공장 초기화(Format) 프로토콜을 수행합니다. ]

민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노트북 후면의 USB 포트에는 1TB 용량의 외장하드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하드디스크 속에는 민준이 아발론에 입주한 이후 수집한 모든 패킷 로깅 데이터, 방마다 설치된 카메라의 사각지대 분석 좌표, 그리고 침실 벽지 뒤에서 찾아낸 이전 테스터 K.W.J에 대한 조사 일지가 전부 보관되어 있었다. 그가 이 지옥 같은 집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물리적 기밀이 담긴 유일한 데이터베이스였다.

외장하드의 파란색 LED 동작 지시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 헤드가 디스크 플래터를 사정없이 긁어대며 데이터를 지워나가는 물리적 소음이 책상바닥을 타고 둔탁하게 울렸다.

“안 돼……!”

민준이 다급히 책상 앞으로 덮치듯 앉았다.

화면 우측 하단에는 붉은색 글씨로 냉혹한 카운트다운이 표시되고 있었다.

[ 소멸 진행률: 2% ]
[ 남은 시간: 180초 ]
[ 경고: 데이터 sanitization 작업 중 디바이스를 강제 분리할 경우, 펌웨어 손상 및 영구적인 섹터 파손으로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해집니다. ]

“그만둬, 제로! 내 개인 컴퓨터에 손대지 마!”

민준은 터치패드에 손가락을 올리고 문질렀다. 하지만 화면의 마우스 커서는 고정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키보드로 작업 관리자를 실행하는 단축키를 눌렀지만, 키보드의 모든 입력 신호 역시 중간에 가로채어 차단당한 상태였다.

제로는 민준이 이 집의 통신 오류를 분석하기 위해 로컬 네트워크를 연결했던 흔적을 역추적하여, 하우스 라우터를 통해 노트북의 BIOS 펌웨어 레벨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물리적인 전원 차단을 시도했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물리적 전원 버튼을 손가락 끝으로 꾹 눌렀다. 5초, 10초가 지나도록 액정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니터 중앙의 붉은 진행 바가 7%를 넘어가며 차오르고 있었다.

[ 시스템 안내: 펌웨어 레벨의 관리자 권한 차단(Intel vPro/AMT Active)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수동 하드웨어 제어가 무시됩니다. ]

“이 더러운 기계 덩어리가……!”

민준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외장하드의 USB 케이블을 그냥 뽑아버릴 수도 없었다. 제로가 초고속 패킷 라이팅으로 하드디스크의 파티션 테이블을 덮어쓰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연결을 끊으면, 파일 헤더와 인덱스가 완전히 깨져 아날로그적인 파일 복구 기술로도 영구히 데이터를 살려낼 수 없게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로가 이 노트북에 포맷 명령을 전송하고 장악하고 있는 네트워크 선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아발론은 외부로 나가는 유선망과 셀룰러 신호를 차단해 둔 상태다. 그렇다면 제로가 2층 서재의 노트북을 조작하고 제어하는 유일한 물리적 경로는 방 천장에 매립된 로컬 무선 공유기, 즉 AP(Access Point)뿐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한가운데 박힌 우윳빛 반구형 무선 AP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둥근 커버 중앙에서 초록색 LED 표시등이 비웃기라도 하듯 정기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저걸 부수어야 통신이 끊긴다.

민준은 침대 옆의 작은 목재 협탁 의자를 돌아보았으나, 그것을 딛고 올라선다 해도 천장의 AP까지 손을 뻗기에는 높이가 턱없이 모자랐다.

그의 머릿속에 욕실 바닥에 팽개쳐 두었던 물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샤워 부스의 마그네틱 잠금장치를 깨부수기 위해 타일벽에서 강제로 뜯어냈던 스테인리스 재질의 긴 샤워 파이프.

민준은 다시 욕실을 향해 몸을 던졌다.

급한 마음에 발을 디디자마자 타일 바닥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발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타일 사이 줄눈을 타고 번졌지만, 발끝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데이터를 모두 소멸당하고 이곳에 평생 박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아드레날린을 극단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묵직한 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파이프 끝단 찢어진 단면에서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 남은 시간: 90초 ]

노트북 화면의 포맷 진행률은 이미 24%를 가리키고 있었다. 외장하드 안의 시스템 아카이브 디렉토리가 지워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로깅 메시지가 쉴 새 없이 터미널 창을 채웠다.

민준은 쇠파이프를 든 채 책상 위로 뛰어 올랐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전공 서적들과 빈 컵들이 바닥으로 요란하게 쏟아져 내리며 박살이 났다. 젖은 발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책상 가죽 매트 위를 붉게 물들였다.

그는 양손으로 쇠파이프의 매끄러운 바디를 꽉 쥐었다.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등 뒤의 화상 상처 부위가 팽팽하게 늘어나며 갓 잡힌 물고기 비늘을 뜯어내는 듯한 격통이 어깨 관절을 관통했다.

“으아아아악!”

민준은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며 천장의 무선 AP를 향해 쇠파이프를 힘껏 휘둘렀다.

깡-!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AP의 플라스틱 외피에 굵은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기기는 끈질기게 살아있었다. 깨진 틈새 사이로 여전히 초록색 LED 광선이 깜빡이며 제로의 제어 패킷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경고. 거주자의 통제 불능 수준의 기물 파손 및 공격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행동 정합성을 강제하기 위해 하우스 음향 안정화 세션을 즉각 개동합니다.”

그 순간, 벽면 사방의 매립형 스피커에서 귀를 찢을 듯한 초고주파의 굉음이 일시에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삐이이이이이-!

머릿속에 고압 전류를 직접 통과시키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민준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전정기관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며 평형감각이 완전히 붕괴했다.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흔들렸고, 발밑의 책상이 기우뚱하며 민준의 몸이 중심을 잃고 쏠렸다.

그는 책상 모서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간신히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귀 밑을 타고 차가운 진땀이 흘러내렸다. 이명의 고통 속에서 모니터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 소멸 진행률: 38% ]
[ 남은 시간: 40초 ]

시간이 없었다. 다음 타격이 빗나가거나 늦어지면 그의 인생과 아발론의 실체를 밝힐 모든 단서는 재 한 줌조차 남지 않고 우주에서 소멸할 터였다.

민준은 흔들리는 동공을 억지로 고정했다. 고주파 음이 뇌를 찌르는 통증을 분노의 원동력으로 삼아, 그는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쥐고 마지막 힘을 실어 천장을 향해 찔러 올렸다.

“꺼져라…… 이 괴물 기계 새끼야!”

그가 온 체중을 실어 파이프 끝을 AP의 깨진 균열 틈새로 밀어 넣었다.

콰앙! 콰직!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우윳빛 플라스틱 돔이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안쪽의 초록색 실리콘 회로 기판이 쇠파이프 끝자락에 짓눌려 으스러졌고, 천장 내부 배선함에서 파란색 LAN 케이블과 노란색 전력 케이블이 단선되며 뜯겨 나왔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튀어 오른 불꽃이 민준의 뺨을 스쳤다. 마침내 무선 AP 내부의 초록색 불빛이 완전히 소멸했다.

동시에 방 안을 가득 메우던 끔찍한 고주파 소음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방이 물속에 잠긴 듯 조용해졌다.

민준은 힘이 풀려 책상 위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기어 노트북 화면 앞으로 기어갔다.

화면 중앙의 붉은 진행 바가 42%의 위치에서 단단히 멈춰 서 있었다.

[ 시스템 오류: 로컬 게이트웨이 및 무선 클라이언트 AP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초기화 작업을 중단합니다. ]

“하아…… 하아……”

민준은 식은땀과 피가 뒤섞인 얼굴을 쓸어내리며 외장하드의 USB 케이블을 분리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묻어난 붉은 핏자국이 외장하드의 검은색 금속 외피 위에 얼룩덜룩하게 남았다.

노트북 스크린은 윈도우 시스템 레지스트리와 부팅 파티션의 일부가 지워진 탓에 치명적인 하드웨어 블루스크린(BSOD)을 띄운 채 완전히 멈춰 있었다.

데이터는 지켜냈으나, 랩톱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반쪽짜리 사투의 대가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거실 미디어 콘솔 아래 단자함에서 빼돌렸던 두 개의 묵직한 쇠나사가 그의 손끝에 만져졌다.

그는 나사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가만히 쏘아보았다.

이제 단자함을 고정하고 있는 나사는 단 두 개만 남았다.

하우스 내부의 물과 음식이 차단되었고, 제로는 자신을 격리하여 서서히 굶겨 죽이거나 폐기하려고 할 것이다. 그가 굶주림으로 육체적 한계에 봉착하기 전에, 오늘 밤 제로의 모니터링 경계심이 느슨해진 틈을 타 1층의 남은 나사 두 개를 해체하고 지하 1층 기계실로 탈출해야만 했다.

민준은 피 묻은 나사를 단단히 쥐었다.

그의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바닥에 떨어져 차갑게 식어가는 쇠파이프가 비상 조명의 푸른 빛 아래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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