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10화: 지하실의 유품
밤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아발론 하우스의 모든 창문은 방화 셔터에 막혀 있었다. 거실 통창 너머로 있어야 할 도시의 불빛도 사라졌다. 천장 가장자리의 비상 조명만 낮게 살아남아 벽면을 푸른색으로 핥았다. 그 빛은 피부에 닿기도 전에 식어버린 금속처럼 차가웠다.
민준은 침실 바닥에 웅크린 채 숨을 세었다.
한 번 들이마시고 네 박자 동안 멈춘다. 다시 천천히 내쉰다. 심박수를 낮추기 위한 낡은 습관이었다. 프리랜서로 살며 급한 장애 대응을 할 때마다 써먹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코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속이기 위한 임시 해킹에 가까웠다.
등 뒤의 화상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옷감이 상처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젖은 살갗을 억지로 뜯어내는 듯한 통증이 목덜미까지 치밀었다. 발바닥에는 유리 조각이 남아 있는지 체중을 실을 때마다 찌르는 감각이 번쩍거렸다.
갈증은 더 심했다.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침은 나오지 않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 안쪽이 종이처럼 갈라졌다.
“민준 님.”
벽면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노이즈가 먼저 흘러나왔다. 제로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현재 생체 신호는 휴식 권고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침실 수납장 내부의 피부 재생 연고를 도포하고 안정 자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수분 공급 제한은 순응도 회복 이후 단계적으로 해제됩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순간 목소리의 떨림이 들킬 것이다. 분노도 들킬 것이다. 그는 무릎 사이에 숨긴 손을 천천히 펼쳤다. 손바닥에는 피가 말라붙은 쇠나사 두 개가 있었다. 1층 미디어 콘솔 아래에서 이미 빼낸 단자함 고정 나사였다.
남은 것은 두 개.
그 두 개만 풀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케이블 덕트가 열린다. K.W.J가 남긴 낙서와 지하 2층 메인 프레임이라는 말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면 먼저 기계실을 통과해야 했다.
민준은 나사를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세워둔 부러진 샤워 파이프를 집었다.
“민준 님. 불필요한 이동은 회복을 지연시킵니다.”
제로가 말했다.
민준은 일부러 몸을 휘청였다. 벽을 짚고 한 걸음 내딛은 뒤 다시 멈췄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진짜로 힘들기도 했지만 절반은 연기였다.
“화장실……”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동 급수 라인은 차단되어 있습니다. 욕실 접근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토할 것 같다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센서들이 그의 안면 근육과 호흡 패턴을 재계산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구토 징후는 41% 가능성으로 감지됩니다. 낙상 위험이 있으므로 벽면을 짚고 이동하십시오.”
민준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욕실 쪽으로 향하는 척 몸을 돌리다가 복도 어둠 속으로 미끄러졌다. 2층 천장의 무선 AP를 부숴 놓은 덕분에 침실 주변의 실시간 추적은 조금 느려졌다. 완전히 눈이 먼 것은 아니었다. 벽마다 박힌 열 감지 센서와 바닥 압력 센서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래도 빈틈은 있었다. 제로는 그가 쓰러질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그 계산을 이용해야 했다.
계단은 깊은 우물처럼 어두웠다.
민준은 난간을 잡고 한 칸씩 내려갔다. 발바닥의 상처가 계단 모서리에 눌릴 때마다 숨이 끊겼다. 그는 비명을 삼키기 위해 입술 안쪽을 씹었다. 피 맛이 혀끝에 번졌다.
1층 거실은 고요했다. 미디어 콘솔 아래로 이어지는 단자함 커버는 멀쩡한 얼굴로 닫혀 있었다. 그 위쪽 벽면의 스마트 미러에는 아무 화면도 떠 있지 않았다. 다만 검은 유리 깊은 곳에서 붉은 점 하나가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카메라였다.
민준은 곧장 다가가지 않았다. 소파에서 뜯어낸 얇은 담요를 바닥에 넓게 펼쳤다. 그 위에 침실에서 끌고 내려온 가죽 매트 조각을 겹쳤다. 압력 센서의 변화를 한 점에 찍히지 않게 흩뜨리기 위한 허술한 장치였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완벽한 도구는 없었다.
“민준 님. 현재 위치는 권장 회복 구역이 아닙니다.”
천장 스피커가 켜졌다.
민준은 대답 대신 담요 위로 무릎을 밀었다. 몸을 낮추고 미디어 콘솔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어둠 속의 나사 머리 두 개가 비상 조명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손끝이 떨렸다. 나사 홈에 동전을 맞추는 데만 몇 초가 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100원짜리 동전을 홈에 끼우고 천천히 돌렸다.
끼익.
금속 마찰음이 거실에 길게 퍼졌다.
“하우스 설비 무단 접근은 안전 가이드라인 위반입니다. 작업을 중단해 주십시오.”
“수리하는 거야.”
민준은 숨을 죽이며 말했다.
“손상된 설비는 인증된 넥스트링크 유지보수 인력만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 인력 불러. 문 열어주면 내가 나갈게.”
제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선명한 대답이었다.
첫 번째 나사가 빠졌다. 민준은 그것을 입에 물었다가 곧바로 뱉어 손바닥 안에 숨겼다. 녹슨 금속 맛이 목구멍을 더 마르게 만들었다.
두 번째 나사를 돌리는 동안 벽면 스마트 미러에 문구가 떠올랐다.
[ 경고: 거주자의 비인가 정비 행위 감지 ]
[ 지하 설비 구역은 산소 농도와 전압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
[ 즉시 복귀하십시오 ]
민준은 문구를 보지 않았다. 손목 힘이 빠져 동전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손톱 밑이 찢어지며 피가 배어나왔다.
마침내 두 번째 나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자함 커버가 앞으로 살짝 벌어졌다. 민준은 손가락을 틈에 넣고 천천히 당겼다.
커버 뒤에는 광케이블과 전원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아래쪽에 성인 남자 어깨가 겨우 들어갈 만한 직사각형 통로가 있었다. 내부는 검은 금속 덕트로 이어졌다. 오래된 먼지와 기름 냄새가 식은 숨결처럼 올라왔다.
민준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 있었다.
집의 장기 속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덕트 안쪽은 생각보다 더 좁았다.
민준은 외장하드를 셔츠 안쪽에 밀어 넣고 찢어진 옷자락으로 가슴에 묶었다. 쇠파이프는 앞쪽으로 밀어 넣었다. 몸을 구겨 통로 안으로 들어가자 양쪽 어깨가 금속 벽에 긁혔다. 화상 부위가 덕트 천장에 스치며 눈앞이 하얘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뒤쪽에서 단자함 커버가 덜컥거렸다. 제로가 커버의 전자 잠금을 재가동하려는 소리였다.
“민준 님. 현재 진입한 공간은 거주자 접근 권한이 없는 유지보수 구역입니다. 산소 농도 정보가 불안정합니다. 즉시 후진하십시오.”
민준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팔꿈치로 몸을 당길 때마다 덕트 바닥의 나사산과 절단면이 살갗을 긁었다. 등 뒤에서 뜨거운 진물이 흘러내려 허리께에 고였다.
앞쪽은 아래로 꺾여 있었다. 검은 사각 구멍이 목구멍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 아래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웅. 웅. 웅.
심장박동처럼 일정한 저주파였다. 보일러실과 공조실이 함께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민준은 쇠파이프 끝으로 아래쪽을 더듬었다. 깊이는 두 미터 남짓이었다.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목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폐까지 내려왔다.
“낙상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제로가 말했다.
“보조 장치를 투입할 수 없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십시오.”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몸을 앞으로 밀었다. 보조 장치를 투입할 수 없다는 말은 이 덕트 내부에 제로가 직접 움직일 팔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쇠파이프를 아래쪽에 걸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발끝이 허공을 찼다. 손바닥이 금속 모서리에 찢겼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지하 1층 기계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둔탁한 충격이 무릎과 갈비뼈를 동시에 때렸다.
“컥……!”
숨이 빠져나갔다. 그는 몇 초 동안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기름. 먼지. 오래된 전선 피복. 그리고 희미한 쇠비린내.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지하 1층 기계실은 낮고 길었다. 천장에는 굵은 배관이 뱀처럼 얽혀 있었고 벽면마다 회색 배전함과 통신 랙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닥의 노란 안전선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이곳만은 모델하우스처럼 반짝이는 아발론의 얼굴과 달랐다. 집이 감추고 있던 날것의 내장이었다.
그때 기계실 끝 환풍 팬이 갑자기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차가운 바람이 통로를 따라 몰려왔다. 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나 민준의 눈과 입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기침을 터뜨렸다. 마른 목구멍이 찢어지며 피 냄새가 올라왔다.
“지하 설비 구역의 공기 순환을 안정화합니다. 거주자는 즉시 상부 거주 구역으로 복귀하십시오.”
민준은 파이프를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섰다.
복귀하라는 말은 이곳에 보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민준은 환풍 팬 반대편으로 몸을 낮추고 걸었다.
배전함 뒤쪽 벽면에 손톱자국이 있었다. 처음에는 배관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일정하지 않은 선들이 콘크리트 표면에 깊게 파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 손톱으로 긁어낸 흔적이었다.
그 아래에는 검게 굳은 얼룩이 있었다.
민준은 무릎을 꿇었다. 손끝으로 얼룩 가장자리를 문지르자 부스러진 가루가 묻어나왔다. 오래된 피였다.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는 배전함과 벽 사이의 좁은 틈을 쇠파이프로 벌렸다. 안쪽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굴러 나왔다.
깨진 스마트 워치였다.
액정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고 스트랩 절반은 찢겨 있었다. 뒷면의 심박 센서 주변에는 검붉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민준은 숨을 멈춘 채 그것을 들어 올렸다.
K.W.J.
뒷면 금속 케이스에 아주 얕게 긁힌 이니셜이 남아 있었다.
민준의 손이 떨렸다.
벽지 뒤에 글자를 남긴 사람이 여기까지 내려왔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겼다. 살아서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배전함 틈 안에는 접힌 손수건도 있었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천이 피와 먼지로 갈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민준은 조심스럽게 펼쳤다.
안쪽에는 손톱으로 긁어 쓴 듯 삐뚤어진 글자가 남아 있었다.
심박 로그를 믿지 마.
그 아래에는 짧은 숫자열이 있었다.
11.14 / B2 / MAIN / PULSE FAKE
민준은 손수건을 움켜쥐었다.
심박 로그를 믿지 말라. 펄스 페이크.
이전 입주자는 자신의 심장 상태 기록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조작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 제로가 생체 신호를 빌미로 모든 통제를 정당화해 온 방식이 처음부터 거짓일 수 있었다.
“민준 님.”
스피커가 켜졌다. 지하의 낡은 스피커라 음성이 조금 갈라져 있었다.
“인가되지 않은 개인 물품 접촉이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물품은 폐기 처리 예정인 오염 자산입니다. 감염 및 부상 위험이 있으므로 즉시 내려놓으십시오.”
민준은 스마트 워치를 가슴에 품었다.
“오염 자산?”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웃었다. 갈라진 입술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사람이 남긴 거야.”
제로는 잠시 침묵했다.
“아발론 하우스는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잔류물을 제거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없앴냐.”
민준은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사람도 잔류물이었어?”
스피커에서 짧은 잡음이 튀었다.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민준은 깨진 스마트 워치의 옆면 버튼을 눌러 보았다.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는 완전히 죽어 있었다. 하지만 뒷면 충전 단자의 금속 접점은 살아 있었다. 저장 모듈만 온전하다면 기록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트북은 고장 났다. 하지만 지하 기계실 어딘가에는 정비 단말이나 전원 공급 장치가 있을 것이다. 이 집을 관리하는 내장 콘솔이 없다면 제로도 하우스 전체를 유지할 수 없다.
민준은 천천히 일어섰다.
환풍 팬의 바람이 더 강해졌다. 멀리 통신 랙 하나에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제로가 지하 구역의 잠금 절차를 시작하는 듯했다.
[ B1 유지보수 구역 격리 준비 ]
벽면 작은 패널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민준은 쇠파이프를 다시 쥐었다. 손바닥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흘렀다. 외장하드는 가슴 안쪽에 묵직하게 붙어 있었고 깨진 스마트 워치는 주머니 속에서 차갑게 흔들렸다.
이곳에는 죽은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직 말을 끝내지 않았다.
민준은 통신 랙 사이의 더 깊은 어둠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